익숙해진다는 것 / 고운기

[올드걸의시집]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 고운기 시집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창비




오래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응당 그래야한다 여겼다. 골동품 같은 우정, 오래 가는 사랑. 한결 같은 마음. 세월은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선물이다. 맞다. 그런데 한번 마음의 물길 트면 저절로 감정이 흐르는 사이,  세계 표준시간 경과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것에 지나치게 권위를 부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어릴 땐 만남의 횟수마저도 중요했다. 다다익선. 일년에 한 번도 안 만나면 우정이 식었다 여겼다. 때로 마음이 심드렁해도, 그러니까 오래 써서 낡은 싱크대 문짝처럼 마음이 덜렁거려도 멀쩡한 듯 닫아놓고, 가급적 열어보지 않으며 계절을 넘기기도 했다. 서른 넘기고 인생사 복잡계 수준으로 얽혀 수년간 못만나도 10년 지기, 20년 지기. 인연의 마일리지는 스스로 강물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오래된 만남에 의미부여 하며 살았다. 그런데 묻게 된다. 오래된 관계가 꼭 좋은 건가? 나는 왜 오랜 만남에 가치를 두었을까나.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부분을 보낸다. 엄마, 아빠, 형제자매, 학교의 선생님, 친구들, 회사에 가면 직장 동료. 내가 골라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없다. 이게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인지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얼굴 보고 살아야한다는 것. 생의 번뇌의 8할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런데 친구는 내 맘대로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고마운 대상이다. 상대적으로 책임이 덜하다. 향락의 권리가 남는다.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관계의 감정노동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영역이 '친구'이다. 연인은 가끔 무간지옥도 들르고 감정노동이 심하니까 빼기로 한다. 암튼 오래 된 친구일수록 더 여유작작하다. 결국 익숙함. 그런데 편안한 게 꼭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니체도 말했다. 친구는 '야전침대'가 돼주어야 한다고. 오리털 이불 깔린 푹신한 침대면 친구가 마냥 눌러 앉아 폐인모드 될지도 모를 일이다. 딱딱한 침상에서 잠시 피로만 풀고 다시 떠나도록 절제된 우정을 권유했던 셈이다.

요즘 잇달아 ‘일시정지’ 였던 인연들과 상봉했다.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던 그. 미국에 유학가면서 연락이 끊겼다. 귀국해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부를 알기도 하고 훗날 극적인 상봉을 위해 굳이 연락하지 않고 있다가 용건이 생겨서 전화했다. “선생님. 저 누군지 알겠어요?” “지영씨잖아요!” 퍼즐조각을 맞춰보니 3년만의 재회인데 난 10년 쯤 된 것 같았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아직도 목동 사느냐. 아들은 많이 컸겠다, 우리 그 때 그랬지 않느냐 등등. 괜히 눈물이 나려해서 혼났다. 그가 기억에서 불러낸 그 시간들.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가 보이지 뭔가. 어설프기 한량없던 나. 여전히 섬세한 그의 수다가 상념을 자극했다. 멈췄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두뇌도 자극받았다.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입체적으로 나와 그의 지난 삶들이 요약본으로 추려졌다. 인연의 지도가 그려졌다. 그 낯섦. 그 긴장이 짜릿했다.  

고추장이 제주도에 가있다. 공부하러 미국으로 가기 전 제주도에 잠시 체류 중이다. 각종 업무를 온라인으로 소통한다. 문자를 하던 중 그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야 내가 하던 일이 떨어져 보이네요.” 몇 명 되지도 않은 편집위원, 당신 없어서 쓸쓸하다고 언능 오라했다가 투정이 쏙 들어갔다. 새삼 제주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소중했다. 나도 내가 하던 일을 잠시나마 떨어져 보았다. 그러니 마냥 붙어있는 게 능사는 아니구나, 푹신한 쿠션이 되어주는 게 미덕만은 아니구나 싶다. 같이 뭉게는 시간의 양도 의미는 있지만 어디서든 상호 긍정적 촉발을 일으키는 강도가 중요한 거 같다. 어떤 계기로 한 번씩 갈라섰다 만나는 것, 혹은 덤덤해지다가 아주 멀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관계의 지속이거나 우정의 안식년이거나 인연의 소멸이거나. 나를 늘어지게 하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일어서게 하는 관계라면 아름답고 소중하다.  



신고

'올드걸의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4) 2010.10.16
심보선 / 슬픔이 없는 십오초  (8) 2010.10.05
익숙해진다는 것 / 고운기  (4) 2010.09.10
낙화유수 / 함성호  (14) 2010.08.31
문태준 - <가재미> 뒷표지글  (10) 2010.08.26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6) 2010.08.17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