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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심보선 / 슬픔이 없는 십오초



사는 일에 미련이 없다. 없었다. 그말을 예사롭게 해댔다. 진심이었다. 자식 두고 죽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쯤이면 나한테는 생의 마지노선까지 다녀온 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죽음이 목전에 닿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팔자 좋은 말잔치같아 부끄러웠다.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아니다. 삶의 밀도가 중요하지 길이가 중요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명은 재천이니까 안달해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나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만 순한 양처럼 주어진 시간에 복종하고 싶다.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질 길. 그저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전화할 때마다 ‘빨리 가고 싶다’는 시어머니의 말은 진심일까. 살고 싶다는 표현에 비가 새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어머님의 말은 왜 반어법이라고 단정했을까. 늙은 자의 말, 그것은 생의 갈망도 생의 포기도 전부 생의 미련으로 번역했다. 세련된 투사. 내가 생에 미련이 많았나보다. 합정역 2번 출구 파리바게트 앞, 아침 10시부터 휴지통에서 먹을 것을 뒤지는 할아버지는 지금 살고 싶을까, 죽고 싶을까. 배고프세요. 빵을 들고 빛처럼 사라진다. 살기 위해서 죽고 싶어져야 하는, 이 생이 지긋지긋 할 것 같다. 아무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흔을 앞둔 목수. 전란에 태어나서 고생이 극심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최장 5일을 굶었다고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흔치 않은 귀결. 아니, 보상. 요즘은 운전기사가 모는 에쿠우스를 탄다. 제자도 기르고 기부도 한다. 대화 말미에 그가 우두커니 말한다. “사람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 내가 한 가지 욕심이 생겼어... 더 좀 살았으면 좋겠어..” 옛날엔 살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돈도 쉽게 벌고 일이 잘 되니까 오래 살고 싶다며 내 눈을 본다. 애원하듯, 늙은이 욕하지 말라는 듯. 연민 없이 십오초 정도가 흘렀다.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어르신 처음 봤다. 나도, 덩달아 오래 살고 싶어졌다. 생에 매달리지도 않고, 생에 발목 잡히지도 않고 양껏 사는 법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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