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자기에게로 가까이 간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벗어나야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존재의 비밀을 확대해보면 한 사회에도 해당된다. 한국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한국에게로 가까이 간다. 박노자를 보면 그렇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귀화 지식인이다. 한국에서 정규직 취업이 되지 않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 교수로 일한다. 외부자의 시각으로 쓴 대한민국 보고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는 지금까지 20여만 부가 팔려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밖에 지난 십년 간 저술과 강연을 통해 드러난 사유의 편린을 꿰어보면 한국사회와 물샐틈없이 밀착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학벌주의, 인종주의, 군대문화 등 한국사회 병폐에 대해 비판해온 그는 특히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문제점이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것을 줄곧 지적해왔다. 이와는 반대로 그가 보기에 요즘 너무 무겁게 다뤄지는 문제가 있다. 아동성범죄자 거세 논란이 그것이다. 연이은 아동 성폭력 사건의 생중계에 국민들은 화산처럼 분노했고 급기야 2년간 캐비닛에서 잠자던 일명 ‘화학적 거세’ 법안이 지난 6월 29일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된 상태다.
그러나 버스는 떠나도 질문은 남는 것. 일각에서 조심스레 화학적 거세의 실효성을 따지고 찬반을 논할 때, 박노자의 물음은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향한다. 왜 우리는 아동성범죄자 문제엔 뜨겁게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엔 차갑게 반응할까? 어린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어른에게 국가가 저지르는 행위는 정당한가? 국가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신체를 지배하는 세상이 과연 더 안전한 걸까? 지난 7월 수유너머R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푸근한 미소 사이로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국가, 개인의 신체를 관리하다
“노르웨이에서는 화학적거세가 논의됐다가 부결됐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 법안이 통과됐더라. 이제 국가가 남성을 따로 분류해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그의 신체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다스려서 바꿀 수 있다. 국가가 개인의 행복추구권, 신체적 온전성 등을 모조리 빼앗아도 되는 쪽으로 대세는 기울어가고 있다. 이는 일종의 우생학으로 볼 수 있다.”
‘화학적 거세는 인종개선학’이라고 단언한 박노자는 생명에 질적 위계를 두고자 했던 우울한 역사를 언급했다. 1933년 나치 독일에서는 40만 명이 불임수술을 받았다. 미국이나 북구 등지에서도 우생학적으로 열등하다고 판정된 유전병 소유자 등을 의무적으로 불임수술을 했다. 일제말기에 일본에서도 단종법을 만들어 개인 신체에 대한 과학적인 국가적 조절을 법제화해버렸다. 화학적 거세 역시 이 같은 전체주의적 발상에 근거한 끔찍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가 볼 때 한국 사회에서 화학적거세의 의미는 더 특별하다. ‘앞으로 씨를 남길 수 없다’는 것은 유교문화권에선 최악의 형벌이자 응징이며 복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번식기능은 원래 신의 권한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화학적 거세는 과학이 전지전능한 신의 자리를 부여받는 일이다. 그가 볼 때 국가에 의한 신체의 통제는 비단 화학적 거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강도만 다를 뿐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신체검사를 통해 모든 남성을 군대에 보낸다. 노르웨이만 해도 병역 이행율이 30%이고 스웨덴은 징병제가 없어졌다. 한국은 징병율이 80%다. 국가에서 성인 남자 개개인에 대한 세세하고 막대한 신체정보를 보유, 관리하고 있다. 공항의 알몸 투시기 또한 권력이 신체를 다루는 행위다. 어떻게 보면 파시즘적인 부분이다. 공항에서 보안검사 한다고 금속품을 벗기는데, 소련에서는 여성 앞에서 벨트 벗는 것은 성행위 하자는 뜻이다.(웃음) 남 앞에서 벨트를 푸는 일에 왜 아무도 거부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옥살이와 거세의 이중처벌을 지적했다. 외국의 경우 화학적 거세가 가석방을 조건으로 해서 거래형태로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 통과된 법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근대적 치안론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복수가 아니라 교정, 감화, 치료가 원칙이다. 인격개선과 재발방지라는 형벌의 목적을 비켜가는 화학적 거세는 “근대적인 과학숭배와 전근대적 복수심이 결합한 형태”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스탈린, 정치적 문제를 의학적 문제로 풀다
러시아의 아들 박노자(露子)는 소련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스탈린 통치하에서 거세는 없었다. 그런데 반체제 인사를 정신병자로 분류해 치료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정치적인 문제를 의학적인 문제로 풀어버린 것이다.
“87년 정치범이 석방될 때 죄질이 무겁지 않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을 무엇으로 분류했느냐 하면 정신박약이다. 체제를 반대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뭔가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보았다. 소련 권력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좋은지 당연히 알 텐데 모른다면 그 사람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맑스-레닌 집착하여 맑스를 계속 읽으면서 체제 비판에 실마리를 찾으려는 사람들, 대체로 반대파는 권력 당국에 항의하는 고집불통의 존재였다. 그런 사람에게 의학적 진단을 내리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해진다.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문제제기에 답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약물투입으로 인해 정신병이 없는 사람이 생긴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에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국민이 사회적으로 부적응 하고 비행을 저지르는 등 규범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할 때 의학적 방법으로 처벌 내린다. 즉 격리시키거나 번식을 막고 정상적인 인간적으로서의 권리를 빼앗는다. 국가는 의학적인 논리로 그 백성을 지배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덴마크는 1929년 유럽 최초로 강제불임시술에 착수한 이후 67년까지 1만1천명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는 덴마크, 스웨덴 등 복지국가에서 거세법이 일찍이 시행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사민주의자들이 복지국가를 만들 때 우생학에 관심이 많다”며 “세금을 낼 정상인과 사회 안전에 위협이 되는 비정상인에 대한 기준이 엄격했다”고 했다.
“계급을 평등화 시키려는 것이긴 하지만 사민주의 복지모델은 철저히 규율화 된 국민이다. 일체의 국민을 다 등록해서 소득을 관리하고 사회보장번호를 부여한다. 그 번호가 없으면 약도 못 산다. 노르웨이는 납세자의 명단을 인터넷에 걸어놓고 공유한다. 신고정신을 발휘하지 않으면 복지국가가 운영되지 않는다. 사민주의자들이 대부분 노조출신이라서 사회를 공장으로 본다. 파시스트가 사회를 군대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파시즘보다는 인도주의적이다.(웃음)”
우리는 왜 아동 성폭행범에만 분노하는가
알고 보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화학적 거세.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심도 깊은 논의와 다각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채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나쁜 역할을 했다며 박노자는 한국사회의 끔찍한 현실을 조목조목 짚었다.
한국은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미국보다 4배나 많고 영국보다 사망자가 21배가 많다. 이 통계도 산재 보험 적용 대상자만 잡히는 통계인 관계로, 상당수 중소기업 노동자 및 외국인 노동자의 재해 사고는 여기에 잡히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가 죽어가는 것 정도가 삼성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논리로 인해 그나마 화제가 된다. 건설현장에서 일 하는 막 노동자, 우리사회 최 하류층의 죽음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자살률은 OECD 최고 수준으로 하루 35명꼴로 자살한다. 청소년 자살도 심각하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이 그렇듯이 이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동 성범죄는 대단히 나쁜 일이다. 하지만 한국사회 그 모든 끔찍한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큰 재벌의 산업재해, 세계 최고의 자살률 등 한국사회의 온갖 끔찍한 일에 대해 원인을 파헤치는 보도는 하지 않고 국민적 관심을 온통 아동성범죄에만 집중시켰다. 그러는 사이 무서운 재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진다.”
성범죄 유발 요인은 아주 복합적이다. 유전적 요인부터 유아기 부모로부터의 학대까지. 흔히 ‘무서운 10대’의 상당부분은 가난하고 폭력적 가정 출신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과 푸대접, 차별을 받아온 이들은 학력피라미드 사회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짓에는 사회도 일말의 책임은 있을 터인데 이게 다 공분 속에서 묻혀버린다.
이를 일컬어 그는 ‘의분의 정치’라고 명명했다. 여러 개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드는 간단한 방법으로 누군가를 같이 희생시키거나 누군가를 상대로 다함께 도덕적으로 올바른 분노, 그러니까 의분(공분)을 내는 것이다. 기존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한 의분은 필수다. 권력자들은 사안에 따라 국민감정을 쥐락펴락 조절하며 손쉽게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아동성범죄 비공개 수사 원칙으로 해야
언론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용의자와 피해아동에 관한 무분별한 신상정보 공개를 언급했다. 특히 방송국에서 카메라를 들고 피해아동의 동네와 학교를 찾아가는 보도 관행에 대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아동이 인격 장애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아동성범죄는 비공개 수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의자에 대한 신변보호도 마찬가지다. 유죄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을 받아야 한다. 이는 범죄자가 아니라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런데도 언론에선 국가가 고발한 사람이면 당연히 범죄자로 취급한다. 송두율 교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고발하는 순간 유죄확정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간첩이 되는 식이다.
“대한민국 언론은 공인의 사적영역까지도 무분별하게 공적화 시킨다. 가령 ‘PD수첩’ 피디의 이메일 유출은 엄청난 인권 침해다. 소련 KGB에서도 개인의 편지를 엿보는 일은 없었다. 한국 경찰들은 그런 일을 해놓고 조선일보에 정보를 흘린다. 사적영역을 공개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민심의 분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폭력보다는 눈에 보이는 죄인을 향한다. 몹쓸 짓을 한 사람에게 무슨 인권이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화학적 거세가 아니면 대안이 뭐냐고 따진다. 박노자는 ‘개방형 감옥’을 말했다. 커다란 농장에서 폭력범이나 누범들을 모아서 양치기, 소젖 짜기, 방직물 짜기 등 일을 하고 대학교를 원격 수강하는 등 교양을 쌓게 한다. 그런 곳에서 7-8년을 보내면 사람이 착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그런 사람들한테 기대를 버리면 안 된다”고.
MB정권 실적 만들기?
그는 ‘화학적 거세’가 강행 처리된 까닭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실적 만들기 가능성을 점쳤다. 노무현 정권은 군의문사, 친일문제 등 과거사 청산의 의지를 보였으나 이명박 정권은 4대강사업도 매끄럽지 않고 마땅히 내세울 업적이 없는 형국이다. 이럴 때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뭔가를 해냈다는 가시적인 성과로 화학적 거세를 택했다는 것이다. ‘권력은 소유되기보다 행사 된다’는 푸코의 말대로 그의 추측은 설득력을 갖는다. 성범죄자를 거점 삼아 신체통치의 일반형태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라고 해서 국가의 신체통치가 용인되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아주 쉽게 참조돼서 나올 거다. 중범죄자의 DNA정보를 축적한다, 전자발찌를 채운다 등등. 이는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무작정 도려내고 추방하는 식의 발상이다. 화학적 거세는 이중처벌이다. 예외적인 범죄에 대해서 법외적인 국가폭력이 행사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일전에 그는 19세기 부르주아 인권담론의 재미있는 특징으로 전쟁 수행은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반면 전시의 징병된 군인의 전사는 ‘인권 침해’로 인식되지 않았음을 꼽았다. 20세기 접어들고 인권의식이 성장하면서 개인생활에 국가의 개입능력과 범위는 상상이상으로 늘어났음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박수칠 때 통과’된 법안 화학적 거세는 국가의 개입범위 그 상상이상의 신호탄이 아닐까, 그는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