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실수’와 ‘꿈’에 대해 주목했다. 대개 하찮은 것, 무의미한 행위로 흘려버리는 것들에서 한 인간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것에서 단서들을 토대로 자신의 학문적 기틀을 다졌다는 것에 프로이트의 위대함이 있는 게 아닐까. 기존의 통념과 관습에 개의치 않았던 소신과 용기. 인간의 진실에 가 닿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의 진솔한 태도가 ‘정신분석학’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 실수를 통해 인간의 진실이 드러난다
실수는 ‘단지’ 실수가 아니다. 실수가 그냥 피로하고 방심한 상태에서 주의력을 집중하지 않아서 생기는 무의미한 사건이라고? 그렇지 않다. 우리는 주의력을 높이면 정신능력이 높아지고 주의력을 낮추면 낮아진다고 말할 수 없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동숙련행위가 얼마나 많은가. 숙련된 피아니스튼 굳이 생각하지 않고도 정확하게 건반을 두드린다. 능력은 주의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지 않던가. 주의력 이론은 실수 행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물어야 한다. “왜 굳이 그런 형태의 실수를 반복할까?” 정신분석은 이 실수의 형식을 분석한다. 무의식과 인과율의 의미를 밝힌다.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인과율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가” 본디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아주 미약한 징조만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원래 중요한 것은 미약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사람의 감정은 아주 미약한 징조로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도 못할 시선 하나, 스쳐 지나가는 듯한 몸짓 하나, 혹은 단 1초 정도 더 긴 듯한 악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렇듯 프로이트는 잘못, 실수, 고장을 통해서 한 인간과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병들었을 때 몸의 진실이 드러나고, 공황일 때 자본의 진실이 드러나고, 싸웠을 때 관계의 진실이 드러나듯이 말이다.
# 꿈은 소원성취다
프로이트는 왜 꿈에 주목했을까. 원래는 관심이 없었는데 환자들이 자꾸 꿈 얘기를 하더란다. 그래서 꿈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은 어디까지나 심리현상’이라는 전제 하에 꿈들 간의 관련성을 도출해낸다. 이 현상들 간의 지배력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꿈 분석의 목적이다.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통로로서 정신분석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꿈은 왜 꾸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본능충동 같은 ‘신체적 욕망’이 환각적 체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꿈을 만드는 동력은 의식이나 사고가 아니다. 어떤 충족되고자 하는 소망 ‘소원성취’와 낮의 잔재가 만나 꿈으로 형상화된다. “꿈은 항상 어떤 무의식적인 소원의 성취입니다”(306)
그런데 우리가 꿈 내용을 말할 때는 재료의 누락, 수정, 내용 재편성 등으로 꿈-검열을 한다. 꿈-왜곡이 일어나는데, 꿈-왜곡은 용인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소원 충동에 반대하는 검열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어떤 경향성’이 꿈의 검열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일까? 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미적 교육과정을 통해 나쁜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들이며 모든 관습적인 제약에 반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꿈에서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자신의 욕구 충족이 가능하다. 윤리적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자아는 성본능의 모든 요구들과 일치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에 프로이트는 ‘선인이란 악인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을 꿈속에서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면서, 꿈을 통한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음을 확신한다. 또한 우리가 편협한 윤리적 평가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악과 선의 관계에 대한 더욱 정확한 공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개개 존재들의 영혼의 삶은 정신분석적인 연구를 통했을 때 우리에게 해명을 던져줄 것이며 그것들로 우리는 인간 대중의 삶에서의 많은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게 되거나 최소한 밝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29)”
꿈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신경증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역할이다. 제3부는 신경증에 관한 일반이론이 펼쳐진다. 왜곡된 고통을 정상적인 고통으로 되돌리는 겸허한 작업.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되찾는 방법으로서의 정신분석이 시작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