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극장옆소극장]

황지우 시집을 한참 들고 다닐 때 <뼈아픈 후회>란 시에 매료됐었다. 첫줄부터 흔든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
내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이 구절이 왠지 멋있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스산함과 사랑한 자의 처연함이 느껴졌다. 모름지기 사랑이란 이 정도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값어치 있다’고 믿었다. 몸뚱이의 뼈 206개가 달그락 거리면서 몰락과 생성을 거듭하는 게 사랑이니까.


11월 첫번째 월요일 조조영화로 텅빈 극장에서 <파주>를 보고 저 시구가 떠올랐다. <질투는 나의힘>의 박찬옥 감독 작품 <파주>는 시처럼 리듬감 있고 울림 있게 함축적으로 만든 빼어난 영화다. 남녀가 사랑하면 인생이 허물어지고 다시 조립되듯이 자본이 돈을 사랑해서 낡은 건물이 철거되고 다시 세워지는 공간 ‘파주’가 영화의 배경이다. 주인공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고 마는 한 남자, 이름도 무거운 중식(이선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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