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드걸의시집

지하철에서4 / 최영미 '지하철은 실업자로 만원이다'

 

  세 여인이 졸고 있다
  한 여인의 머리가 한 여인의 어깨에
  한 여인의 어깨가 한 여인의 가슴에
  한 여인의 피곤이 또 한 여인의 시름에 기대
  도레미 나란히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순대 속 같은 지하철 
  데친 듯 풀죽은 눈알들 헤집고
  삶은 듯 늘어진 살덩이 타넘고

  먼저, 거지가 손을 내민다
  다음, 장님이 노래 부른다
  그 뒤를 예언지의 숱 많은 머리
  휴거를 준비하라 사람들아!
  외치며 깨우며 돌아다니지만
  세 여인이 졸고 있다
  세 남자가 오고 있다 

  오전 11시 지하철은 
  실업자로 만원이다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