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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긍정적인 밥 / 함민복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 만큼'


가난한 사람은 많지만 밥 굶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그들을 생각하면 심히 걱정스러웠다. 시인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다. 시집은 정말 안 팔리는 책이다. 책값도 헐하다. 활동가들도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어떻게 3,4인 가족이 먹고 살까. 몇 년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회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알아보았는데 대체로 그들은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가족이 있더라도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검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활동가나 시인들도 그 그룹의 상위1%는 풍족하겠지만서도. 암튼 그즈음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읽었다. 그 뒤로는 서점에 갈 때마다 '시집'을 한 권 두 권 사들이고 있다. 별바당 콩다방 커피값에 천원짜리 한두장만 보태면 살 수 있다. 특히 가을 접어들면서부터는 시 읽기도 좋고 바람도 차가워지니 더 잘된 일이다. 대개 인세가 일년에 네 번 가량 정산되는데 겨울즈음에는 연탄 반 장 값이나 소주 반 병 값이라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엄밀히 말하면 공들이기다. 나는 함민복 시인의 '스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 강화도 바닷바람 소리를 듣고 싶다. 말랑말랑한 글씨로 알알이 새겨진 그 따순 얘기들. 술병에서 별처럼 떨어지는 맑고 순한 시어들을 보고 싶다.

가난이란 말이 어릴 때부터 왜 그렇게 무작정 슬펐는지 모른다. 물론 존엄한 가난도 있다. 함민복 시인처럼 따뜻한 가난도 있다. 가난이 꼭 궁핍과 불행과 동의어는 아니다. 안다. 그런데 불편하고 아픈 가난이 더 많다. 지난달에는 기초수급자로 어려서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열다섯 소녀아이를 만났다. 투석을 오래 해서 얼굴색이 검었고 피부가 건조해서 군데군데 긁어서 생긴 부스럼 투성이었다. 신장을 이식받았다가 부작용으로 다시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엄마가 잘 돌봐주지 않아 집에 있다가 아프면 혼자서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달려온다는 사회복지사의 얘기도 들었다. 저 작은 몸에 지워진 삶의 무게가 안쓰러워서 혼났다. 빈혈이 심해서 퇴원을 못하는데 어서 병원을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사고싶은 것도 하고싶은 것도 많을까. 가난하면 밥은 안 굶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다. 친척도 친구도 이웃도 없다. 부모대부터 인적기반이 취약하니 단돈 천원이라도 용돈은 있겠지만 세뱃돈이나 친척이나 지인이 주는 공돈의 기쁨이 없다. 얼마 전 할머니와 내 친구에게 용돈을 연거푸 받고 좋아 날뛰던 또래의 아들녀석 생각이나서 지갑에 있던 돈 삼만원을 몰래 환자복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엄마한테 말하지 말고 퇴원하면 쓰라고 했더니 얼굴이 해바라기꽃처럼 환해진다. 함민복 시인이 지어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긍정의 밥 삼만원이 그렇게 소녀의 입으로 들어갔다.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없네


   긍정적인 밥 - 함민복 ,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