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드걸의시집

하늘 / 박노해 '우리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 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아무래도 하늘은 명박이 편인가봐. 날씨가 너무 추워. 촛불집회 때도 주말마다 비오더니. 기도발이 정말 세긴 센가봐." 여의도 언론노조 총파업 집회 현장에서 만난 그녀가 푸념한다. 벌써 며칠째 거리투쟁인데 내내 춥다고 원망이다. 고개들어 하늘을 쳐다보고는 한숨이다. 스티로폼에 엠보싱 방석 두장을 깔고 앉아서 무릎담요를 덥고도 덜덜 떤다. 십분이나 흘렀을까. 몸이 슬러시처럼 살짝 얼어버렸다. 가만히 서 있으니 바람에 흔들렸다. 신장개업하는 매장 앞에 놓인 거인풍선처럼 이리휘청 저리휘청. 여의도는 '우리 생을 관장하는' 검은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러운 땅이다. 

아무려나, 투쟁하는 사람들은 즐겁다. 방송사가 파업을 하면 더욱 재밌다. 일단 사회자가 아나운서니까 진행이 매끄럽다. 이벤트도 아기자기하다. 단상에 명박산성 모형을 만들어놓고 단위노조 위원장들이 올라가 발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니 덩달아 유쾌했다. 투쟁가를 부르는 가수도 멋있다. 하얀 코트자락에 검은 롱부츠. 운동권 가수도 칙칙함을 벗어버리고 화사하고 밝게 치장해야 한다. 암. 그렇고 말고. 즐거워야 이긴다. 즐거운 저항만이 승리한다. 신명의 크기가 승리의 크기라고,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도 촛불집회에서 말씀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