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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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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린다는 것도요.” “노동력으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는 문장이 팍 와 닿아요.”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
김승호 전태일노동대학대표 '이론은 맑스, 실체는 전태일' 확고불변의 진리를 부정하면서 오 멋져라, 머리를 옆으로 흔드는 것은! - 브레히트 중에서 49년생 김승호, 48년생 전태일. 두 사람은 친구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던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를 원할 할 때는 서로를 몰랐다. 노동자와 대학생인 그들은 만날 수 없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에야 인연이 열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피맺힌 외침에 삼동친목회 친구들 김영문, 신진철, 이승철, 임현재, 최종인이 ‘청계피복노조’를 만들었다면 “나를 따르라”는 간곡한 요청에는 김승호가 가만히 손 맞잡았다. 1970년 11월 13일 대학생 배지를 떼고 노동운동에 투신해 “아직도 전태일이냐”는 말을 들으며 새천년을 맞았고 그해 을 세웠다. 공부하는 노동자 전태일의 부활로 40년 세월 신실한 우정을 다지고 있는 김승호 대표..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나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슬프다고 다 우는 게 아니고 눈물이라고 다 순결한 게 아니다. 두 눈에 눈물이 삐져나올 때 '지금 나 슬픈가?' 생각해보면 정말로 가슴 미어질 때도 있고,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인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내겐 눈물이 방귀처럼 몸에서 삐져나오는 액체 정도. 수정같은 눈물 아니고 습관성 방귀나 집중호우 같은 개념이다. 내가 잘 우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집중적인 훈련으로 뇌에서 눈까지 눈물이 다니는 길이 닦인 것 같다. 스스로도 기가 막힐 때가 많다. 특히 오후 8시무렵 주차장 씬. 시장보고 오는 길에 차 댈 때 멜로배우처럼 운전대 앞에서 멍하니 눈물 흘린다. 클래식, 가요, 락 등 장르불문. 어둑한 밤길에 흐르는 음악이 나를 가을날 창가로 데려간다. 얼마전..
[참여성노동복지터 수다공방] 창신동 언니들, 미싱에 날개달고 훨훨 3년 전 일이다. 동대문을 아시아의 패션 메카로 만든 ‘70년대 봉제공 언니들’이 뭉쳤다. 첨단 패션경향과 기술을 가르치는 ‘수다공방’에서 실력을 연마한 그들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패션쇼를 여는 등 신바람 나는 일을 해마다 벌려왔다. 또 여기서 축적된 기술과 인력과 열정을 담아내기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 ‘참 신나는 옷’을 창립, 새 브랜드 런칭을 준비 중이다. 웃음과 희망의 양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멋진 언니들’이 모인 곳, 수다공방을 찾았다. 참 신나는 배움, 참 신나는 옷, 참 신나는 사람들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 ‘창신2동 주민자치센터’ 안내판을 따라 방향을 틀면 조금 넓은 골목길이 나온다. 글자 한 두 개쯤은 떨어진 낡은 간판에는 치킨, 지물포, 푸줏간, 의상실 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