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 내가 돌아설 때

[올드걸의시집]

지난 주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여의도에 갔다. 약속한 사람이 MBC 조합원이다. 엠비시 노조는 지금 사방이 화택이다. 파업 80일을 넘기면서 본사 마당에 텐트 치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동참하는 그와 잠시 나와서 저녁을 들었다. 파업이 너무 길어지고 회사는 요지부동이고 시민은 무관심하고. 내부에서도 업무에 복귀하는 조합원이 생기고 (파업에 합류하는 조합원도 있지만) 회사는 경력직을 채용하여 대체인력을 확보하니까 분위기가 무겁다고 했다. 그 역시 파업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모르고 약속해 놓은 작품이 있었는데 고심 끝에 파업에 계속 동참하기로 결정했단다.

 

윗사람과의 갈등이 컸던 모양이다. 불판에 삼겹살처럼 수시로 뒤집히는 마음. 남을까 떠날까를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동안 같이 팀을 이루어 일하던 동료들을 놔두고 복귀할 수 없었다고 추임새처럼 욕설을 섞어가면서 고충을 토로했다. 파업이 힘든 이유는 월급 가압류, 작품 활동 불가, 인사상 불이익 등등 여러 사정이 있겠으나 이런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자기의 욕망과 한계를 직시해야 하기 때문일 거다. 그는 나중일은 모르겠고모처럼 시간이 많아져서 한강변 따라 자전거도 타고 동료들과 이야기도 실컷 하는 이 봄날이 너무 좋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봄밤의 명소 한강 고수부지로 자리를 옮겼다. 셋이서 솔솔 부는 강바람을 배경으로 노천카페에서 얼음처럼 찬 맥주를 마셨다. 한 잔 더 주문하러 간 그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며 소개해주었다. 자기의 입사동기이고 MBC에 있다가 종편으로 간 친구인데 파업하는 전직 동료들 응원 차 술 사주러 온 거였다. 둘이서 포옹하고 쓰다듬고 염려하고 자랑하고 시끄러운 우애를 나누는 그 장면이 좋아보였다. 어쨌든 같은 밥 먹다가 돌아선 사람머무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누는 사람이었다. 자기테이블로 돌아가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의 전직동료를 보노라니 훈훈함이 밀려왔다. 술자리를 파하고 다시 철야농성장으로 돌아가는 그가, 주제 넘는 생각이지만 많이 고마웠다. 때로는 그대로 있어주면 되는 게 인생이라니 놀랍기도 했다.

 

낮 동안에 글쓰기 수업에서도 온종일 존재론적 고민을 나누었던 터다. 당장에 답도 없고 실익도 없는 화두 '진실로 어떻게 살 것인가로 뒤척이는 사람들과 하루를 보내다니 뭔가 사무치면서도 행복했다. 사실 돌아설 때와 머물 때를 몰라서 인생이 늘 헷갈렸다. 관계의 매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적이 많다. 풀자니 힘들고 끊자니 아프고 끌자니 고되고. 삶이란 묘해서 우유부단함은 초지일관함의 미덕으로 기능하기도 하니까, 그냥, 살았다. 결국 돌아서는 자의 자리에는 한 번도 서보지 못하고 이번 생은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날 여의도 고수부지를 걸어 나오면서 슬쩍 버렸다. 돌아서는 자는 매정하며 남아있는 나는 초라하다는 공식을 강물에 흘려보냈다. 서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의미한 대립을 벗으니 보인다. 저 무논같은 강물에 비춰진 세상풍경은 서로에게 사무치며 중심을 잡는 글썽임으로 거대하게 부풀어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에게서 돌아설 때가 있었으니

 

무논에 들어가 걸음을 옮기며 되돌아보니 내 발자국

뗀 자리 몸을 부풀렸던 흙물이 느리고 느리게 수많은

어깨를 들썩이며 가라앉으며 아, 그리하여 다시 중심

을 잡는 것이었다

 

이 무거운 속도는, 글썽임은 서로에게 사무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 내가 돌아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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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가재미> 뒷표지글

[올드걸의시집]




비오니까 여러모로 살겠다. 덥지 않아 살겠고, 책 읽기 좋아 살겠다. 철지난 유행가 싱크로율도 100%다. 올만에 이오공감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김수철 <정녕그대를>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들었다. 김수철은 훌륭한 가수다. 가사랑 음악과 목소리가 조화롭다. 밤 깊자 빗소리 커튼 삼아 골방모드 됐다. 비교적 행복하다. 긴 원고 한 편 쓰고나니 육신이 고되다. 쓸고 닦고 청소하고 몸도 씼고. 시집이 꽂힌 책꽂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거기가 내 우물가다. 한 권 뽑아서 아무데나 펴서 읽어본다. 이 어둠, 이 기온, 이 바람, 이 허함에 응하는 시를 제발 제발 만나길 염원했다. 문태준의 <가재미>가 눈에 들었다. 이리저리 매만지다가 뒷표지글을 봤다. 아, 그랬었다. 그 때 서점에서 이걸 읽고 놀래서 가슴에 포갰었다. 난 아름다운 책을 보면 일단 안아본다. 갖고 싶어서. 하나가 되고 싶다. 이 언어들이 내몸에 살면 좋겠다. 얼마전 새로산 노트를 꺼내서 썼다. 잘 쓰고 싶었는데 오타가 있다. '이것이 모자랐음을 알게 된다'인데 '보게 된다'라고 썼다. 고치지 않기로 한다.

결을 맞추는 시간. 왠지 요즘 나의 속도가 못마땅하다. 마음 기울이는 속도. 밥 먹는 속도, 커피 마시는 속도, 문자에 답하는 속도, 글을 쓰는 속도. 대화하는 속도. 인내하는 속도. 눈물이 나는 속도. 책을 읽는 속도. 책을 사는 속도. 남편에게 신경질 내는 속도. 그리움에 물드는 속도. 모두 다 너무 빠르거나 느린 속도만 있다. 지난번 속도에 대한 미약한 자각 이후, 한조각 구름 떠가듯 살려했는데 그랬더니 게을러진다. 중간이 없는 인간인가 나는.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근데 생에 허천난 사람이었던 거 같다. 품위 없게시리. 그러지 않으면 살아지지 않았다고 위안해보아도 내 마음 얼마나 얼뜨고 거칠었나. 들볶았고 들볶였다. 물에 녹지 않은 미숫가루처럼 둥둥 떠다니는 감정의 건더기들이 이제사 걸린다. 이놈의 속도를 개선할 일이 막막하다. 신체에 새겨진 삶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속도의 정치>에도 안 나오는 문제. 어떤 일은 느린 가락으로 어떤 건 빠른 템포로 살아야한다. 사랑하는 것들과 결을 맞추는 연습. 얻어온 것들의 본래 자리를 기억하는 노력. 비에다 대고 손가락 걸어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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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 / 문태준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올드걸의시집]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

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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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 문태준

[올드걸의시집]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생일날에는 아침부터 이를 닦다가 울컥했다. 엄마가 나를 낳고 하루라도 입원비를 줄이려고 바로 그날밤 퇴원했다고 하셨다. 나는 애를 낳고서야 엄마의 궁상 혹은 결단이 실감나서 숙연해지고 말았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나의 출산스토리가 더욱 사무쳤다. 핏덩이를 품에 꼭 싸 안고 어그적 어그적 걸어가는 엄마의 불편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존재에 대한 연민에 복받쳤다. 저녁에 술을 '진탕' 마시고는 생애 첫 음주-구토를 일으켰다. 그것도 일급호텔 스카이라운지의 하얀 눈밭같은 테이블보에다가. 서울 한강의 야경을 배경삼아. 다음날은 생애 처음으로 원고기한을 어겼으며, 일박이일 간 머리를 바닥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슬픔이 가슴보다 커질 때는 술을 붓는다. 그 술은 마중물이다. 몸안에 것들을 위로 위로 퍼올리기 위한. 나의 육신은 슬픔을 처리하는 성능좋은 기계가 되어 열심히 돌아간다. 약 30시간 정도 가동되면 몸무게 2키로그람이 줄어든다. 살덩이 같은 슬픔이 비로소 빠져나간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시작된 슬픔사태는 달을 넘겼다. 몽유병 환자처럼 꿈결인듯 서해 곁을 떠돌았던 3박4일간의 여정을 이제야 마무리짓는다. 좀 덜 속쓰리게 잊고 싶어서 주종을 변경한 게 외려 화근이었다. 심하게 속병을 앓았으나 지금은 깨끗한 해피엔드다. 거의 매일 책을 읽거나 원고를 끄적이거나 가사노동에 투여되던 나의 일상의 외도, 마음의 외출은 괴로웠으나 한편 행복했다고 말하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라는 시인의 비석같은 가르침을 되새긴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 생각나는 순간은 알토란같은 의미로 충실했던 날들보다는 '쓸데없는' 방황으로 채워진 시간들일 게다. 사랑은 미친짓의 기억으로 위대해지고 인생 또한 미친짓의 기억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울렁이는 눈으로 보았던 샛노란 은행나무지붕 길과 해질녘 발갛게 충혈된 노을진 바다와 무서울만큼 까맣고 고요한 가로등 불 밝힌 대로와  눈물과 포옹의 이별장면들과 누군가 불러준 김광석의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빈집같던 마음에 차차 볕이 들고 물이 차고 얼룩이 번졌으니.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가을강처럼


      내 몸을 지나가는 빛들을 받아서 혹은 지나간 빛들

     을 받아서 

       가을강처럼 슬프게 내가 이곳에 서 있게 될줄이야

       격렬함도 없이 그냥 서늘하기만 해서 자꾸 마음이

     결리는 그런 가을강처럼

       저물게 저물게 이곳에 허물어지는 빛으로 서 있게 

     될 줄이야

     주름이 도닥도닥 맺힌 듯 졸망스러운 낯빛으로 어정

    거리게 될 줄이야  



     - 문태준 시집 <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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