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파르헤시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7.14] 은수연-친족성폭력 첫수기 작가 (2)
  2. [2014.06.16] 김수경 - 아동성폭력 피해자의 엄마 (1)
  3. [2014.03.13] 손경이 - 엄마가 말하는 폭력, 아들과 바꾸는 세상 (4)

은수연-친족성폭력 첫수기 작가

[행복한인터뷰]

지옥 9년 기록 10년 작가 2년차, 난 평범해지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딴사람, 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

-김수영, ‘생활의 극복’ 중

 

휴일이면 종종 도심의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영어 공부 삼매경에 빠진다. 잠시 고개를 들어보면 자신처럼 다들 혼자서 꾸역꾸역 뭔가를 하고 있다. 한 층이 거의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풍경이 새삼 놀라워 중얼거린다. “나는 너희와 다 얘기해보고 싶다. 혼자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니?”

그러는 당사자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서울 거주 30대 싱글 여성이다. 장마철 습한 공기를 머금은 바지통이 다리에 감기는 게 싫어서 반바지를 입었지만 책상물림 생활에 실해진 장딴지가 영 신경에 거슬린다. 젖은 머리 물기 탈탈 털어 고무줄로 짤막하게 동여매고 까만 안경테에 목에는 하얀 헤드셋을 걸치고 어깨에 멘 에코백에는 형광펜 그어진 영어교재가 한가득. 직장을 그만두고 ‘적금 깨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같은 학급 20대 초반 학생들은 남다른 열공과 연륜 포스를 내뿜는 그녀를 ‘골드미스’로 인식하나 자신들과 죽이 잘 맞다보니 언니 혹은 누나라고 부른다. 눈치 없는 젊은 강사가 그녀를 ‘이모님’이라고 칭하는 바람에 듣는 사람 발끈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늦깎이 유학 준비생의 고군분투. 한국 사회의 30대 여성치고 흔치 않은 일상을 산다. 그녀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온 그 책은 ‘인면수심’ 친부의 성폭력 실상을 가감 없이 묘사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고, 저자 은수연은 얼굴 없는 유명인이 되었다. 신문 및 TV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그림자 연극의 주인공처럼 실루엣 혹은 목소리만 드러났다. 그런 상황들이 성폭력 피해자는 어둡고 침울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확인시켜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매체 밖에서 만난 은수연씨는 들장미 캔디처럼 표정이 다채롭고 말투도 활달하다.

눈에서 살기가 빠진 유학 준비생

“제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그녀의 10대는 더욱 평범치도 평탄치도 않았다. 아빠에게 9년간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당한 아동 피해자로 살았다. 집을 뛰쳐나온 20대는 겹치기 출연 배우가 따로 없었다. 혼자 있을 때는 수치심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성폭력 생존자로, 밖에서는 밝고 야무진 금순이 캐릭터로 오락가락 지냈다. 틈틈이 글을 썼고 30대 들어서 작가의 이름을 얻었다. 작가이거나 학생이거나, 일상을 두 가지 버전으로 산다. 어느새 평범과 비범을 자유로이 즐기는 생의 곡예사가 됐다. 주변에서 그녀의 변화를 느끼는 지점은 따로 있다.

“저를 20대부터 봐온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그때에 비하면 눈에서 살기가 빠졌다고요. 제가 봐도 대학생 때 증명사진을 보면 눈이, 완전 무서워요. 하하.”

눈빛이 달라지는 것만큼 확실한 ‘딴사람’의 징표가 있을까. 이제 그녀는 선한 반달눈을 하고 하얀 치열이 다 보이도록 환하게 고개 젖혀 자주 웃는다. 카페에 서식하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까지 호기심이 발동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어졌다. 증오와 원한과 울분이 스르르 빠져나간 마음자리에 웃음과 수다, 공감 같은 것이 속속 들어차고 있다.

은수연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가족치료를 공부할 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사례를 참조했다. 이 가족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희생양은 누구인지 분석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정리해 글로 썼다. 어떤 생각과 감정이 떠다니던 게 말로 나오고 말을 글로 정리하면서 개념이 잡혀갔다. 이게 아니었구나, 이게 이거였구나. 논거를 찾지 못했던 감정이 정리돼가는 기쁨이 컸다. 또한 세상 밖에 나와서 지내보니 자신은 여러 면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빠라는 사람이 이상했던 거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피해 사실을 숨기고 수치스러워했는데, 수치심을 오롯이 느껴야 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성장기의 고통과 치욕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게 되자 조금씩 홀가분해졌다. 공부의 효능을 안 이상 중단할 순 없다. 더 하기로 했다.

“여성학을 할지 사회복지를 할지, 아직 고민이에요. 네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뭐니, 스스로 묻고 있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한데, 내가 살아낸 삶에 대해서 그냥 악바리처럼 잘 살았어 이러는 게 아니고, 나의 감정 중에 뭐가 잘못됐는지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싶어요.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나를 붙잡고 있었던 시간이 꽤 길었으니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 몸이 붙잡고 있는 기억이 있어요. 공부해서 생각을 일깨우고 싶어요.”

9년의 폭력, 10년의 기록

은수연의 책이 나온 건 2012년 8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그 다음달이었다. 매체의 영향력이 컸다. 특히 <한겨레> 9월16일치 ‘조국의 만남’ 코너에 지면을 통으로 할애한 은수연 인터뷰는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아마 월요일이었을 거예요. 기사가 나간 날 아침에 조국 교수님한테 문자가 왔어요. 조회 수가 100만 건이 넘었다고, 이 정도면 1년에 손꼽는 대박이라고 하더라며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인터뷰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눈물은 딱 한 번 흘렸는데 그 장면이 공교롭게 기사화됐다. 은수연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화할 수 있었다. 집을 나온 뒤 가해자를 맞닥뜨린 적이 있는지 조국 교수가 물었을 때, 은수연은 아버지의 출소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해코지의 두려움에 떨다가 직접 교도소에 찾아간 기억을 떠올렸다. 면전에 대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망가뜨리려고 해도 망가지지 않았고,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걸 말하려고 왔다.’ 조국 교수는 물었다. “그게 왜 책에서 빠졌죠?” 이 극적인 장면, 성폭력 피해자가 눈앞의 거대한 악이자 자기 안의 끔찍한 공포와 대결하고 발언하는 장면은 그대로 기사 제목이 되었다. “아버지의 성폭력에도 난 더럽혀지지 않았어요.”

은수연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1994년 대학에 들어간 해, 집에서 탈출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에 갔다. 당시 최영애 소장이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냥 흘려들었다.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피해 경험이 글감이 된 전례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막 집을 나왔을 때라 너무 힘들고 정리도 안 돼 있고 무엇보다 피해 경험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네 잘못이 아니다’ 같은 말이 계속 내 안에서 쌓여갔다.” 도전 의식이 생겼다. 한번 정리해보자.

직장을 다니면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좌를 수강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겪은 일들을 써나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수기를 연재하면서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글쓰기 전담 선생에게 글쓰기 묘사와 표현 등 개별지도를 받았다. ‘괴물 같은 사람이…’로 시작하면 안 되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내러티브 원칙에 따라서 그 배경이나 표정, 말투, 심정을 되도록 상세히 묘사해라. 그 상황에 있는 피해자가 어떤 감정일지 읽는 사람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너무 몰입해 공포와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눈물의 방류 사태로 글쓰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독자와 마감이 있어 글을 쓸 수 있었다. 회원들이 소식지를 받으면 가장 먼저 찾아본다는 피드백이 왔다. 끔찍하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상담자들도 피해자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많이 배운다고 했다. 피해자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힘든 시기를 써야 할 때는 끔찍한 기억에 붙들렸다. 길게는 2년 정도 손을 못 댔다.

“수능 전날 호텔에 갇혀서 폭행당했던 장면을 쓸 때는 겁이 나서 글이 나아가지 않았죠. 그래서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보았어요. 아, 나 지금 저 안에 있지 않지. 그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글을 썼어요.”

재판이 진행됐던 법원 앞에도 찾아갔다. 글 쓰다가 막히고 찝찝하고 내가 왜 여기에 계속 붙들려 있지 그런 느낌이 들면 혼자 여행 가듯이 기억의 현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한 장면씩 마주하고 사유하다보니 20대 후반에 시작해서 30대 후반까지, 10년이 걸렸다. 피해 기간보다 더 긴 집필 기간을 보내고서야 자꾸만 삐져나오는 통곡 같은 기억을 가지런히 언어화할 수 있었다. 피로 쓰고 온몸으로 쓴 덕분일까. “글이 사진처럼 생생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고 시인 이성복은 말했다. 정말 그랬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내용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그것처럼 끔찍하나 책의 표지는 곱디고운 순백색이다. 이 책이 실제 은수연에게 숫눈길처럼 귀한 시간을 열어주었다.

2013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제29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은수연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쓴 공로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처음엔 ‘이 상을 왜 나에게 주지?’ 하는 마음에 당혹스러웠으나 이제부터라도 그 상에 부응하는 역사를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에 기꺼이 행동하고 있다. 강의나 좌담회, 인터뷰 등에 응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전국에서 모인 성폭력 전담 판사 120명과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판사, 언론인, 가해자 전담 국선변호사, 의료인, 법조인 등과 얼굴을 맞댔다. 생존자가 직접 책을 내고 하는 강의는 처음이라고 했다. 은수연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러분이 무얼 상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왠지 긴장된 공기로 팽팽하게 당겨진 강연장 분위기가 다소 헐거워졌다. 은수연은 교통사고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직장에서 출장을 다녀오다가 하루에 두 번이나 사고가 났다. 나는 가장 먼저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일을 처리했다. 운전자에게 ‘너 왜 이렇게 운전을 못하냐’ ‘하필 왜 그 시간에 이 터널로 갔느냐’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계신 판사님들은 법정에서 성폭력 사건을 특별하게 접근한다. ‘여자애가 왜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어?’ ‘치마 길이는 왜 짧지?’라는 식으로 묻는다. 성폭력 사건도 똑같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교통사고처럼 사건 자체로 봐달라.

경청과 공감의 박수가 나왔다. 당시 판사모임의 좌장 판사는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교통사고 같은 사건사고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려줘 고맙다고 각별히 인사를 전했다.

지난해 전북 전주에서 북콘서트를 했을 땐 진땀을 흘렸다. 어떤 나이 든 남성이 질문을 한다더니, 아가씨가 너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 자기 합리화가 심한 거 아니냐고 말한 것이다. 그 자리에는 성폭력 생존자 아이들도 와 있었다. 은수연은 꾹 참고 답변했다.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그러곤 관객을 향해 말했다. 생존자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상처받을 수 있는데 무시하고,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 합리화 많이 해주시라고. 겨우 행사를 끝냈지만 놀라고 속상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엄청 울었다”. 얼마 전 양성평등원에서 직원 대상 강의를 할 때도 편견의 벽을 마주해야 했다. 한 중년 남성이 이런 교육인지 몰랐는데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한 것이다.

피해자다움과 피해자답지 않음 사이에서

“성폭력이란 얘기를 들으면 ‘폭력’보다 ‘성’과 관련된 걸로 받아들여요. 그런데 참가자들한테 매체에서 본 성폭력, 친한 사람이 겪은 성폭력, 자신의 성폭력 사례를 물어보면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거든요. 저는 말하죠. 내 얘기는 별로 할 거 없고, 얼마나 일상적으로 성폭력이 일어나는지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가자고.”

성폭력을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로 감각한다는 건 무엇일까. 은수연은 막내올케의 반응을 들려주었다. 언니한테 어떤 일이 어느 정도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되게 많이 울었다며 말했단다. “근데 나는 언니가 참 존경스러워. 옛날에는 내 딸들이 절대 어디 가서 그런 일 당하지 말기를 바라는 맘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일을 겪어도 언니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맘이 생겼어….”

한 몸에 쏟아져내린 험난한 인생사를 통과한 사람. 오직 생존이 목표였던 지옥에서의 9년. 그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그 힘든 시기를 통과했느냐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울면서 기도하는 게 취미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너는 성격 때문에 산 거 같다”고 했다. 이 또한 사실이다. 은수연은 나쁘게 보려는 마음이 없고 일상을 반듯하게 살려는 자세가 있다. 강인한 면, 나약한 면, 새침한 면, 예민한 면, 호탕한 면, 그것들 모두 은수연이 기르는 자아의 모습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우울하거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만 그려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미지는 일상에서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영화 <여자, 정혜> <텔미 썸딩>이나 드라마 <보고 싶다> <야왕> 등에서 나타난 성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어릴 때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거나 복수욕에 불타거나 보호받아야 하는 여자 어른으로 나오는데, 그게 은수연은 못마땅하다. 성폭력 피해가 지독한 상처를 남기지만 그렇다고 피해자가 그 시간, 그 감정에 꼼짝 못하고 멈춰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금방 씻기는 상처도 아니지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아니다. 은수연도 경험적으로 알아갔다. 스무 살엔 ‘성폭력 피해자’라는, 만들어진 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벗어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찾아가자마자 한 일이 정신과 검진이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내가 과연 정상일까’ 심리검사를 받고 전문가의 정상 판정에 안도했을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과 비정상, 그 유동하는 경계에서 오뚝이처럼 흔들리며 산다. 누구라도 그러하다면 은수연도 그러하다.

“자기를 다뤄간다고 할까요. 그게(고통이) 올라오면 또 느껴주고. (웃음) 인생의 목적이 상처를 치유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사는 거죠. 계속 따라오지만 병적인 반응을 하지 않게 된 거고요.”

더 이상 상처와의 동거가 불편하지도 일상을 방해하지도 않는 삶. 이걸 평범한 삶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그녀는 자신의 삶이 평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예전에는 대구지하철 참사나 서해 페리호 참사같이 큰 인명 피해 사건에도 아무 느낌이 없었거든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할 때 사이코드라마가 진행됐어요. 다른 사람이 힘든 얘기를 하면 다들 안타까워하는데 나는 사과를 씹어 먹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대요. 누가 얘기해줘서 알았지, 내가 그러는 것도 몰랐어요. 왜 저런 걸로 힘들다고 난리야, 생각했겠죠. 내 아픔이 너무 크니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공부도 못했어요. 내가 온 국민과 하나가 된 것처럼 슬퍼하고 있더라고요.”

일상의 평범함, 오래 동경한 삶이다. 현모양처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앞치마 두르고 간식을 차려주고 놀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었다. 해보지 못한 일이라 더 해보고 싶고 막상 해보면 “오글거려서 앞치마를 벗어던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평범한 가정, 평화로운 일상을 소망한다.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과 야참으로 라면 먹기도 꼭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자세와 능력도 이미 갖춰져 있다. 가사일을 좋아한다. 웬만하면 손빨래를 하고 물걸레질도 즐긴다. 햇살 좋은 날 이불을 널고, 밤이면 햇볕 냄새 든 이불을 덮을 때 더없이 만족스럽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하곤 하는데 “요샌 화가 안 나서 집이 무척 더럽다”며 또 깔깔 웃는다.

용서는 숙제가 아니다

“내 문제에 스스로 충분히 애도하고 다른 사람들도 애도해줘서 슬픔을 건넌 것 같아요. 나 인복 완전 넘치는데 집에서 부모복만 없어, 그러거든요. (웃음) 인생의 멘토들, 친구들의 도움으로 트라우마가 극복됐어요. 사실 사람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것만큼 큰 상처가 없잖아요. 사람에 대한 상처를 사람으로 잘 극복한 것 같아요.”

은수연의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가 반짝인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 추천사를 써준 인연으로 이금희 아나운서에게 받은 선물이다. (“촌스럽게” 이거 너무 자랑하고 싶으니 꼭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나오는 이미지 그대로 실제 봐도 푸근하고 자상한 큰언니 같은 분이라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은수연은 사람이 살면서 사람들한테 받아야 하는 것들, 부모가 무너뜨린 것들을 좋은 인연으로 채울 수 있었다.

“용서하려고 애쓰지 마라.” 친한 목사님의 말씀도 일상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용서가 의무나 숙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용서가 어느 순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하는 거더라고요. 자신의 요구, 자기의 필요에서 나와야 해요. 누구를 미워할 때 나도 같이 썩어가는 것 같잖아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자기를 위해서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학 공부에 몰두하느라 ‘그 사람’이란 단어가 떠오를 시간이 없어요. 예전에는 같이 방구석에 있어도 두렵지 않은 존재이길 바랐는데 지금은 마음에 들여놓을 영역이 없는 거죠. 그 사람은 지금 저에게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수연 개인도 변하고 사회적 통념도 변했다. 스무 살 때 처음 만난 상담교사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사실을 말하자 “아빠가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꼭 잠그고 자라”고 충고했다. 그랬다간 가해자의 분노를 사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엔 친족 성폭력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녀조차 자신이 당한 일을 뭐라고 명명할지 몰랐다. 강간? 느낌이 이상했다. 지금은 성폭력이란 단어를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니 변하긴 변한 거다. 성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 <소원>도 흥행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지금까지 5쇄가 나갔다. 전례 없는 출판 불황과 소재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이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일단 성폭력이 사회 일반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고 그녀는 본다.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 대한 사회복지적 지원에 관한 것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놀랍게도” 그것들이 얼추 갖춰졌다.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바뀌었으니 소프트웨어가 바뀌는 일이 남았다. 생존자의 변화, 그리고 생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 직업도 아니고 나를 특별하게 하는 것도 아니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얼굴을 안 보이고 싶어요. 꼭 성폭력이 아니어도 각자 자기 상처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쟤, 그런 일 있었어’ 하면서 아래로 보거나 쑥덕거리지 않고 같이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은수연은 그날을 그려본다. 나의 기쁨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필명보다 더 예쁜 본명으로, 어쩐지 쓸쓸한 뒷모습이 아닌 선한 눈빛을 나누며 마주할 수 있기를. “얼굴을 돌리고 나는 너를 기다린다”는 독일 시인 넬리 작스의 시구처럼, 그렇게 은수연은 ‘얼굴을 돌리고’ 기다린다.

 

한겨레 <나들> 내 몸, 파르헤시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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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 아동성폭력 피해자의 엄마

[행복한인터뷰]

[내 몸, 파르헤시아]딸은 엄마에 엄마는 딸에 공유된 기억  
 
 
세 명의 엄마가 있다. 영화 <마더>의 엄마(김혜자)는 살인사건에 연루된 장애인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지적장애아에게 누명을 씌우고 마더에서 머더(murder·살인자)로 되어간다. 광기와 폭력의 왜곡된 모성은 말한다.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영화 <한공주>의 공주 엄마(성여진)는 전화번호까지 바꾸고 다른 남자와 산다. 거세된 모성의 리비도는 오직 자기 욕망과 생존으로 쏠리고 3년 만에 찾아온 딸에게 말한다. “엄마도 힘들어. 다신 찾아오지 마.” 영화 <말아톤>의 엄마(김미숙)는 자폐를 앓는 자식에게 ‘백만불짜리 다리’라며 주술을 건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전능한 모성은 말한다. “내 소원은 초원이 죽은 다음날 죽는 것이다.”

자식의 고통 앞에 선 모성은 각 영화에서 하나의 인격으로 극화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여러 갈래의 모성 충동이 한 사람의 신체에서 길항하다 상황에 따라 돌출된다. 성폭력 피해 아동 유정(가명)이의 엄마, 김수경(가명)이 그랬다. 두 아이의 양육을 혼자 책임지며 생계 압박에 시달렸으나 거세된 모성으로 달아나지 않기 위해 버텼다. 반듯한 아이로 키우고자 매사 엄격히 통제하고 북돋우고 기도하는 전능한 모성에 도전했다. 그리고 1년 전, 그 사건 이후 이상적 모성은 분열했다. 복수와 은폐의 왜곡된 모성으로 추락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일단은 딸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제부터 엄마가 너를 보호해줄 거야. 값싼 용서 하지 마라.”

“하나씩 찾아가면서 딸을 위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았어요. 상담소를 찾아가고 변호사를 만나고 자조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고 치유 프로그램에도 참석했죠. 오늘 아침에도 유정이가 지난해에 쓴 글을 읽는데 또 눈물이 났지만 많이 희미해졌더라고요. 쓰지 않았으면 응어리로 남았겠죠. 지금의 나를 봤더니 대견해요. 얼마 전까지 딸이랑 부둥켜안고 울고 그랬는데. 유정이도 지금은 친구랑 문자를 주고받고 아이돌그룹 ‘엑소’도 좋아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너무 대견해요. 이 사건을 묻어두지 않고 기회를 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 우린 가족이잖아”

때는 경계의 시간. 잔인한 4월이 가고 푸르른 5월을 맞는 4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딸아이가 잠든 방에서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렸다. 왠지 모를 불안이 등줄기를 훑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일기장이나 메시지를 몰래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봐야 할 것 같았다. 손가락 따라 화면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사실인가 허구인가. 이 자는 인간인가 짐승인가. 경계의 말들. 그건 아이의 몸을 집요하게 탐하는 어린 늑대의 말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죄어왔다. 메시지 발신자는, 아이의 사촌이었다. 곤히 자는 딸아이를 깨웠다. 엄마가 카톡을 봤어. 그동안 왜 말을 안 했니…. 딸아이는 답했다.

“엄마, 우린 가족이잖아.”

유정이는 가족에 애착이 컸다. 자신이 사촌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말할 경우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아빠, 사촌 모두와 연결고리가 끊어질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아이는 왜 한 해 두 번 만나는 사촌까지 ‘가족’으로 품었을까. 엄마는 알뜰하여 500원짜리 요요 장난감 하나 사주는 것에도 인색했다. 친척이 사주는 티셔츠나 양말 하나조차 아이는 상대적으로 크게 느꼈을 터다. 또 외할머니는 종종 말했다. 엄마 힘드니까 친가에 가서 아빠랑 살라고. 유정이에게 친가는 자신의 삶을 의탁할 수 있는 최후이자 유일한 거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정이는 친가에서 환대받지 못했다. 태어났을 때도 ‘아들이면 몰라도 딸인데’라며 너덜너덜한 헌 기저귀와 말간 미역국을 내놓았다. 남아선호 관념이 뿌리 깊은 집안에서 손녀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결국, 사달이 났다. 가부장제 질서의 가장 약자인 손녀의 몸에 은밀한 폭력이 가해졌고 그 신음소리는 어디에도 가닿지 못했다.

엄마가 나섰다. 사건을 알려야 했다. 명절마다 면접교섭권을 주장하며 아이들을 데려갔던 전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 발생한 일이다. 그는 외려 노발대발 소리를 질렀다. “둘 다 똑같다. 가만두지 않겠다.” 딸아이까지 싸잡아 탓했다. 전남편은 평소 아이들과 교류가 없었다. 아이들이 아빠가 밥은 먹었는지, 잘 지내는지 걱정스러워 메시지를 보내도 답을 하지 않았다. 명절에만 모습을 드러냈던 건 핏줄에 집착하는 할아버지가 유정이 동생인 손자를 보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 조부에게도 말씀드렸다. 가만히 듣더니 태연스럽게 얼버무렸다. “글쎄다. 나는 금시초문이다.”

가해자 엄마의 반응도 싸늘했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 갔으니 직접 들어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그 후에 “우리 아이가 그런 일까지는 하지 않았다더라”며 사건을 축소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착한 거만 바라보고 살았다, 성교육도 어려서부터 시켰다며 아들의 폭력행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했다. 가해자는 일찌감치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친가 구성원 모두 사건을 외면했고 진실을 알려 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가해자에게 잘못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그 일이 있고 며칠간, 처음엔 내가 잘못을 한 건가? 내 잘못인가? 누가 이 일을 알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잘 감당할 수 있나? 내 욕을 하진 않을까? 내 말을 믿어줄까? 다 포기하고 싶다. 아… 죽고 싶다. 내가 지금 죽어도 되는 걸까? 내가 죽으면 이 일은 이제 끝나는 건가? 내가 죽으면 스스로 이 일은 내 잘못입니다 하고 인정하는 게 되는 건데, 난 죄가 없는데. 죽을 각오를 하고 베란다 난간으로 갔다. 밑을 쳐다봤다. 너무 높다. 맘속으로는 죽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딸, 유정의 글

유정이 나이 열한 살, 4학년 후반에 생긴 일이다. 그즈음 아이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키 크고 마른 체형이던 아이는 이것저것 마구 먹기 시작했다. 식탐을 부리고 방 안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정리·정돈을 하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그저 사춘기인가보다 생각했다. 아이의 성적이 다소 떨어졌지만 사교육을 시키지 못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를 의심할 수 없었다. 2년이 지나고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서도 모녀는 서로 눈치만 살폈다. 엄마는 아이를 살피지 못한 죄책감이 컸다. 유정이는 이불에 방대한 오줌을 두 번이나 쌌다. 수경은 엄마로서 묵묵히 이불을 빨고 방을 치워주었다. 그럴 때면 마개 뽑힌 가슴에서 눈물이 한없이 솟구쳤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고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법기관의 출입이 꺼려졌다. 인권도 보호도 느낄 수 없는 곳을 출입했다간 딸아이를 망칠 것만 같았다. 아동성폭력상담소를 검색했다. 법적 절차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사건 당시 가해자의 나이가 어려서 강한 처벌은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모든 소송이 그렇듯이 시간과의 싸움이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주었다.

유정이는 사촌의 고소를 반대했다. 자기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게 싫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남동생과 다투면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모두가 남동생을 두둔했다. 둘째아이 특유의 생존법으로 남동생이 잔꾀를 부려 잘못을 누나에게 뒤집어씌우면 그 말을 믿고 어른들은 일방적으로 호통을 쳤다.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고 자라서인지 유정이는 누가 자신을 지적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했다. 또한 가해자가 소년원에 들어갔다 나와서 자신을 해코지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아이를 안심시켰죠. 엄마가 널 보호할 거다. 아직은 네가 미성년자라서 결정권이 엄마에게 있고 가해자에게도 잘못을 알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 그게 또 다른 피해자를 줄이는 방법이라고요.”

가해자는 사건 당시 미성년자여서 형사책임을 면했고 거주지역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갔다. 가해자와 가해자 부모와 판사만 있는 곳에서 판결이 내려진다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사법처리는 내 딸을 회복시키기 위한 당연한 일이었어요. 소송의 진행은 진행이고 일상은 일상이죠. 소송은 일상에서 감내해야 하는 무수한 일들 중 좀더 버거운 사안일 뿐이었어요. 사법처리를 결정했으면 선택에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죠. 어차피 판결은 판사 몫이고.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해보고 나면 미련은 없을 테니까요.”

가족주의의 껍질을 깨고 나온 엄마의 낭독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산다는 것은 서로를 돌보고 키우는 과정이다. 한 아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도 작은 마을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람에겐 사람이 약이다. 곁을 지켜주고 말을 들어주고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법. 수경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을까 싶은데 살려고 하니까 살고자 하는 힘으로 간 것 같다”고 말한다. 엄마는 딸을 데리고 치유워크숍에 참석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모여 각자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글로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정이는 최연소 참가자였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데려갔다. 그래도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잘 웃으면 이제 괜찮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안 데려갈 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꾀를 부리고 눈치를 보고 투정도 부리면서 몸이 그곳에 가 있는 동안, 유정이는 ‘엄마의 낭독’을 듣는다.

“갓 스무 살, 그녀는 여상을 졸업하고 벤처기업에 경리로 입사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연말정산, 법인세 신고로 연이은 야근에 환영식을 미루고 있었는데 관공서의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환영식을 겸한 회식 자리가 마련됐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 소주 한 잔을 마셨고 빈속인지라 취기가 확 올라왔다. 매운탕 한 숟가락을 떠서 먹지도 못하고 바로 머리 박고 잠이 들었다.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던 한 남자 동료는 수경을 집에 데려다준다며 차에 태웠다. 부축당한 기억도 있고 업힌 기억도 있고 짤막짤막 장면이 이어졌다. 허름한 여관 침대에서 바지와 속옷만 벗겨진 채로 두 팔은 머리 위로 저지당한 채 그녀는 성폭력을 당했다. 그 남자는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신앙생활에 따른 소신을 어기면서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하고 나서 그녀는 마음을 정리했다. 내가 더럽혀진 게 아니라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 믿자. 결혼하자. 스무 살 그녀는 그렇게 ‘값싼 용서’를 했다.” -엄마, 수경의 글

그녀는, 수경은 고백했다. “유정아, 엄마가 그녀야.” 엄마 역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고 그것이 결혼과 이혼의 기막힌 서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음을. 다단계에 빠져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가족도 등진 아빠, 그 아빠가 자식의 양육권과 친권을 자필로 쉽게 포기한 사실을, 스물일곱 살에 준비 없이 이혼녀가 되어 살아간 엄마의 외로운 날들을, 첩의 딸로 태어나 모진 구박을 받고 자란 엄마의 유년 시절까지. 유정이는 가족의 어두운 비밀을, 여자로 사는 비애를 어렴풋이 알아갔다. 값싼 용서를 하지 말라던 엄마의 말은 온 생애를 걸고 하는 너무도 곡진한 당부였다.

“저는 고상 떠는 엄마였어요. 아픈 티 안 내고 강한 척하고 화 한번 안 내는 엄마가 자기 얘기를 터놓으면서 눈물을 흘리니까 아이가 놀랐죠. 엄마한테 그런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동안 혼자 참고 아닌 척한 행동은 나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었죠.”

수경은 그간 아이들에게 이혼 사실을 숨겨왔다. 아빠는 일하러 지방에 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원망의 대상이 되기보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길 바랐다. 이웃이나 지인에게도 이혼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 엄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싶어 외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정상 가족’의 외양을 지키려 했다. 유정이가 상담치료를 마치는 날, 이혼 뒤 처음으로 세 식구가 음식점을 찾았을 정도다. 이혼녀라는 낙인, 세상의 수군거림 같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에 결박되어 전전긍긍 속을 끓였다. 유정이가 가족 간 단절의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이 아이, 정말 내 딸 맞구나….’

유정이도 슬슬 글을 썼다. 자신을 믿어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상담 선생님, 변호사 선생님, 무조건 내 편인 엄마, 자조모임 선생님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그분들이 믿어주고 아껴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고, “만약 누가 이 일을 알고 나에게 말을 해도 나는 당당하게 아주 자신 있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차분한 사유로 써내려간 끝에 기침처럼 터져나온 마지막 두 글자는,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냈으니 바로 이것이었다. ‘살자.’

다 말하고 다 먹이는 불량식품 엄마

말 그대로, 엄마와 딸은 조금씩 살아났다. 소송이 끝나고 상담이 마무리되고 6개월간의 치유워크숍도 마쳤다. 영화치료, 글쓰기치료, 반찬만들기 등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덮어두었던 과거를 들춰낼 수 있었다. 억눌렸던 온갖 것들이 우글우글 기어나왔다. 삶을 보호하기는커녕 결박해온 정상 가족의 위선과 가족주의의 압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숭배해온 낡은 믿음에서 자연스레 풀려났다. 정작 살면서 한번도 힘이나 지지가 되어준 적이 없었던 혈연관계의 무서운 진실을 확인하자 상실에 대한 막연한 공포도 사라진 것이다. 엄마와 딸은 단절의 두려움 대신 소통의 대화법을 체득했다.

사건 전에는 서로 듣고 싶은 말만 주고받았다. 아이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노력으로 대화에 임했고, 엄마도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서로 치켜세우기 바빴다. 수경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들고 나가서 버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평온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이들을 대했다.

사건 이후에는 편하게 모든 걸 이야기한다.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도 가해자, 가해자 부모, 친조부모, 아버지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도 자신의 감정, 생각나는 일, 느끼는 기분을 다 터놓았다. 여전히 소리 내서 ‘엉엉’ 울 줄은 모른다.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다. 그건 엄마가 우는 법이기도 하다. 수경의 눈자위가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릴 때면 유정은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얼른 팔을 벌려 안아주고 다독이며 달랜다. “엄마 또 울어?”

수경은 좋은 엄마가 꿈이고 낙이었다. 스물아홉 살에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과, 연이은 세 번의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해 8시간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지만 집에서 하는 조그만 사업으로 스스로 아이들을 책임진다는 자기만족이 컸다. 풍족한 환경은 아니나 아이를 끝까지 놓지 않고 책임지는 엄마가 되려 했다.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인스턴트 음식은 절대 먹이지 않고 삼시세끼 모두 집에서 챙겨주었다. 잘 먹는 것도 예쁘고 살아 있는 것도 감사했다. 임신해서 지금까지 아이에게 존댓말을 쓸 정도다.

지금은 불량식품 엄마다. 좋은 엄마의 기준을 완화했다. 아이들에게 라면을 먹이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바삭한 치킨도 사 먹인다. 영화 보고 돈 들지 않는 산책이라도 하려고 함께 집 밖을 나선다. 의례적인 칭찬이 아니라 시시콜콜 지적질도 잘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먹고사는 일에 치여 아이들 표정을 제대로 봐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편히 양껏 얘기할 수 있는 엄마는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아이에게도 사과했다. 긴 치유의 여정을 일단락지은 유정이도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겪은 일이 아주 큰 일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유정이가 ‘살자’라는 글을 썼을 때, 우리 딸이 죽음을 생각했다는 글을 보고 좌절했어요. 왜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어요. 늦게라도 드러나서 다행이죠. 내 딸, 내 일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여기저기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기보다 안전한 곳에서 얘기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아이가 피해를 입었을 때 ‘정확히 도움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이 있으니까 찾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에너지가 되었어요.”

생활공동체 반려가족의 탄생

올해 초 수경의 가족은 다른 가족과 ‘전격 합체’ 했다. 일전에 가입한 인터넷 카페 ‘한부모가정동호회’에서 만난 인연이다. 꾸준히 재혼을 염두에 두었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았다. 사람을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일은 집에서 했고, 작은 개척교회를 다녔지만 교인은 네 가정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활동할 자신도 없고 조건도 안 되었다. 그러곤 딸아이의 사건이 생겼으니 더욱 경황이 없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한창 힘든 시기를 보낼 무렵 공지가 떴다. 동호회에서 같이 워터파크에 가기로 했다. 유정이 기분 전환도 시켜줄 겸 나들이를 갔다. 그의 아이들과 수경의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였다. 네 명이 곧잘 어울려 몰려다녔다. 그날 친해진 이후 우리 같이 살자고, 엄마·아빠라고 해보라고 애들이 시키는 바람에 두 사람의 관계가 진지해졌다.

“나란 사람의 에너지는 저와 아이들 둘뿐이었어요. 한계가 딱 거기까지였죠. 아이들이 아빠랑 합쳐서 살면 안 되느냐고 요구할 때도 그렇게 말했죠. 엄마는 너희 둘은 책임질 수 있는데 아빠까진 여력이 없다고. 지금은 누구를 끌어안을 힘이 되더라고요. 새 가정을 꾸렸죠. 물론 꾸준히 의심도 해요. 왜 나랑 결혼했지? 보모가 필요한가? 섹스 파트너가 필요한가? 남편한테 계속 물어보고 의심하고 확인하죠. (웃음)”

혈연 중심의 성별 분업을 토대로 한 가족주의의 위계와 억압, 온갖 갈등과 폭력이 있어도 유지되는 가족이 문제이지 가족 자체가 배척의 대상일 리 없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을 하고, 그리고 그 희망이 몹시도 위험하지만, 산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 위험의 파도를 피하지 않고 타고 넘을 힘이 조금은 생겼기에 수경은 새 반려자를 맞이했다. 물론 현실은 늘 상상을 초과한다.

“내가 남편한테 맨날 책 낼 거라고 말해요. 제목은 ‘사별남과 결혼하지 마라’, 하하. 그럼 남편은 실명만 쓰지 말라고 그래요.”

어쩌면 정말로 책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수경은 새 가정을 꾸린 뒤 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그 상황을 글로 써서 남편한테 보낸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수경의 입장을 이해하는 답이 온다. 서로 감정이 누그러진다. 일상적인 일로 또다시 싸우더라도 “털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수경을 보고 남편은 말한다.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는 당신이 부럽다고. 수경은 으쓱하여 말한다. 글 쓰는 게 여러 사람 살린다고.

딸에 대한 사랑으로 몸부림친 시간이, 수경을 삶의 다른 자리에 데려다놓았다. 엄마가 딸을 돌보겠다고 나섰지만 어느 순간 딸이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전능한 모성이길 중지하고 나누는 모성으로 살아가자 수경도 유정도 다른 표정, 다른 관계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모성의 힘이라면, 아마 이상적 모성이란 약한 것들끼리의 돌봄 연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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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이 - 엄마가 말하는 폭력, 아들과 바꾸는 세상

[행복한인터뷰]

 

손경이는 전문 강사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성·학교·가정·직장 폭력 예방 등을 주제로 강의한다. 2012년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았다. 손경이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다. 강의 도중 그 자리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피해 경험을 터놓는다. 삶의 진실함에서 나온 묵직한 강의에 대부분 감동하지만 이런 반응은 피할 수 없다. “아, 자기가 당해서 성폭력 강사를 하는구나.” 어떤 이는 대놓고 구시렁거린다. “어쩐지 드세더라. 남자를 가만 안 둘 기세야.”

편견의 말은 대개 단순논리로 반복된다. 특히 성폭력에 관해서는 논리적 성찰을 허용하지 않는다. 삶의 여정에서 흘러들어온 모든 것의 퇴적층이 성정이다. 특수한 경험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드물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의사 할까. 더군다나 그는 반대다. 성폭력 경험이 있어서 강사를 하는 게 아니라, 강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기억하게 됐다.

손경이씨


성폭력 나만 당했다… 나도 당했다

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이다. 손경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했다. 2년차 새내기 강사는 매뉴얼대로 별다른 감정 없이 강의에 임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관한 통계를 보여줬다. 한 해에 ○○명이 사건을 겪고 가해자 1위는 사촌오빠, 2위 의붓아빠, 3위 친아빠, 4위 외삼촌, 5위 오빠다, 라고 설명하는데 한 여자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빠한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한 그는 수업이 끝나고 상담하자며 얼버무렸다. 강의가 끝나자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성폭력 통계를 보여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가해자 2·3위가 아빠였다니, 이건 자기 문제가 아니고 아빠의 잘못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간 다른 강의에서 통계를 제시하면 반응이 시큰둥했다. 비경험자는 못 믿는다. ‘그런 아빠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경험자인 아이는 달랐다. ‘나만 당했다’에서 ‘나도 당했다’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내처 아이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자기가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때 박수를 쳐주었어야지 왜 손을 내리라고 했느냐고. 선생님도 경찰이랑 똑같다고. 어른들은 왜 무조건 숨기느냐고. 그러고는 “선생님이 원칙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9개월 남짓, 강의를 하다 중단하다 했다. 열두 살 아이의 당당한 모습이 부러웠다. 강사로서 부끄럽고 어른으로서 미안했다.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진정한 감동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라고 했던가. 이전 지식은 폐기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성폭력 교육 자료를 조목조목 의심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그때 안에서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소리를 질러라? 소리 지르면 죽을 수도 있는데. 소리 질러서 산 사람이 있을까. 짧은 치마를 입지 마라,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 성폭력 예방 지침의 모든 항목이 피해자 유발론인 거예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이런 인식 때문에 여성이 피해를 입고도 자기 잘못이라는 자책감에 시달려요. 신고율도 저조하고. 내가 완전히 잘못 가르치고 있구나. 피해자 유발론에서 가해자 책임론으로 접근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았죠.”

어떻게 하면 강의를 잘할 수 있을까, 그것만 연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놓고 드나들면서 사례를 참고했다. 그 무렵 ‘제3회 성폭력 생존자 큰말하기대회’ 공지가 떴다. 호기심에 찾아갔다.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붙잡고 자기의 피해 경험을 얘기하는 여성들을 보았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눈물이 솟구치고 기억이 떠올랐다. 십수 년 전에 폭발해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 것이다.


교육중독자, 자격증과 자존감을 얻다

스물넷 봄날. 손경이는 촉망받는 회사원이었다. 여상을 졸업하고 대기업 경리과에 입사해서 1년 만에 그룹 경영기획실 인사과로 자리를 옮겼다. 주경야독으로 의상학과 대학을 마쳤다. 계열사 의류업체에서 재능을 펼치고 싶었다. 인생에서 가장 승승장구하던 그때, 꿈과 일에 빠져 살던 5월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낯선 남자에게 끌려가 닷새 동안 감금당했다가 풀려났다. 경찰에 신고했고, 잡지 못했다. 그러고는 잊었다. 해리 현상. 모든 종은 위험이나 전멸의 무시무시한 위협에 생물학적 반응을 한다. 해리는 신체적·정서적으로 뭔가를 느끼는 능력이 완전히 차단되면서 고통과 공포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으로, 효과적인 생존 기제다. 그도 그랬다. 기억은 지지직 타버리다 끊어졌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일하고 몇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을 지나며 일상을 살아갔다. 심해의 깊은 어둠을 밀고 올라온다는 산갈치처럼 외상의 기억이 불쑥 떠오르기 전까지는.

손경이의 일상은 늘 2배속으로 흘러갔다. 결혼 전에는 타고난 근면함과 탈(脫)가난에 대한 욕망으로 직장생활에 전념했고, 결혼 후에는 실질적 가장 노릇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신을 밀어붙였다. 백화점에서 스카우트 대상 1순위 숍매니저로 거론됐다. 밤이고 낮이고 일해서 돈을 벌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하루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다. 왜 열심히 살수록 관계가 끊어지고 심신이 피폐해지는가. 삶보다 앞선 근원적인 질문이 돋아났다. 돈이란 뭘까. 부모란 뭘까. 사는 게 뭘까.

좋은 부모가 되자. 일을 그만두었다. 동네 구청에서 하는 부모교육을 받았다. 그때 난생처음 성교육을 접했다. 흥미로웠다. 상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회복지학, 심리학까지 파고들다보니 40여 개의 자격증 및 수료증을 취득했다. 서른 중반에 ‘성폭력 예방 강사’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자칭 ‘교육중독자’가 되어 지식을 미친 듯이 습득했으나 정작 자신에게는 무지했다. 강의에서 만난 열두 살 여자아이, 그리고 다른 성폭력 생존자들의 외침은 그런 그를 일깨웠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나를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나를 온전히 인정하기 위해서는 성폭력 경험의 재해석과 기억의 복원이 필요했다.

나를 알아가는 진짜 공부가 시작됐다. 피해여성들과 대화하고, 전문가와 상담하고, 여성학 공부에 몰입했다. 그렇게 3년간 복구한 몸의 기억을 들고 손경이는 2007년 ‘제5회 성폭력 생존자 큰말하기대회’에 섰다. 성폭력 사건으로부터 14년이 흐른 뒤다.

“드러내자, 세상에 아픔을 드러내자. 하지만 잘 살고 있다는 것도 같이 보여주자. 항상 성폭력 피해자는 아프고 힘든 모습만 보여주는데,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피해자들도 잘 사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 생각했죠. 저라고 해서 아예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힘듦이 점점 줄어들고 의식이 바뀌고 주변 사람이 바뀌면서 덜 힘들어졌거든요.”

가치의 전환이 일어났다. ‘보이는 나’가 아닌 ‘변화하는 나’로 사는 쾌감이 컸다. 열심히 살수록 경험과 관계가 쌓이고 그의 풍요는 주변으로 넘쳤다. 비로소 좋은 삶에 안착한 것이다. 그러자 삶의 의미를 나누고 싶었다. 성폭력피해생존자 다큐멘터리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감독 조세영·2009) 출연을 수락했다. 영화에서는 ‘한새’라는 별칭으로 나온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성폭력 피해자와 달리 음성 변조나 모자이크 없는 최초의 다큐인권영화라는게 저한테는 신선했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항상 죄인처럼 가려야 하는 현실이 싫었거든요. 약간의 군중심리랄까.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주인공 네 명이 같이 하니까 용기가 났어요.”

영화 시사회 때 가족을 초대했다. 아빠, 엄마, 남동생, 여동생, 여동생 남편, 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보러 왔다. 그가 십수 년 전 닷새간 행방불명됐을 때, 집과 회사에서는 “연애에 실패하고 죽으려다 며칠 바람 쐬고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 돼 있었다. 그도 차마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영화를 본 가족들은 박수와 눈물로 외로웠을 그를 다독였다. 친정엄마는 밖으로 나가 연신 눈물을 닦았다. 아들 상민군은 무대에 올랐다. 극중 손경이의 일상을 다루는 장면에 출연하는 나름 조연 배우 자격인데, “내 허락도 안 받고 영화 찍었어요. 전 중학생인데 저 너무 창피해요”라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 엄마의 기록영화에 출연한 아들은 그 자체로 통념을 깨뜨렸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들은 말했다, 엄마는 성폭력 생존자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엄마의 어깨 위로 머리가 쑥 올라오는 상민군은 곧 대학생이 된다. 법대에 일찌감치 합격했다. 엄마와 나란히 서서 대각선으로 시선을 나누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여전히 쉴 새 없이 떠든다. 각별히 “공을 들여서” 키운 아들이다. 손경이는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빠와 남편,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까지 ‘남자’에게 상처가 많다. 아들만큼은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올바른 성의식을 갖도록 노력했다. 아이의 존중(사정)파티를 열어주는가 하면 엄마의 경험과 생각을 자주 들려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런 일상에서 영화 출연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상민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처음 들었다. 세월에 눅이고 삭이어 지금은 질감이 달라진 그날의 기억을 덤덤한 목소리로 되짚었다. “책이나 신문에서만 봤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피해 당사자)게 엄마라니까 느낌이 이상했어요. 상상도 못했죠. 엄마한테 뭐라고 얘기하려다가 너무 복잡한 거 같아서 그냥 똑같이 대했어요. 내가 하던 대로 해주면 엄마도 살던 대로 살겠구나….”

상민군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혹시 내가 아빠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정,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인물의 처지가 되어보기도 했다. 그런 미묘한 감정의 결까지 살려서 속내를 편안하게 터놓는 아이가, 평소 하던 대로 대해주는 아들이, 엄마는 마냥 미덥다. 특히 성폭력 사실을 듣고 나서 의연하게 대하는 일은 어른도 쉽지 않은 고난도의 배려 행위다. 대견하고 든든했다. 한때 “성폭력 얘기만 들어도 지겹다”고 말했던 상민군도 타자의 고통에 대한 수용력을 키워준 엄마가 고맙다. 전 여자친구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잘 들어줄 수 있었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겪는지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은 때로 강의에도 함께 나간다. 고아원이나 보육시설에서 성교육을 할 때, 상민군은 마지막 20여 분 특별강사로 나선다. 두 사람이 이심전심 마음이 척척 맞는 건 아니다. ‘야동’ 문제에선 의견이 갈린다. 엄마는 ‘왜곡된 성의식을 심어줄 수 있고 성차별성이 많으니 되도록 보지 말라’는 쪽이고, 아들은 ‘어차피 안 볼 수는 없으니 가짜임을 알고 보라’는 쪽이다. 상민군은 당당하다.

“야동을 한번 보고 나면 억제하는 건 불가능해요. 판타지 영화가 가짜라는 건 알지만 빠져서 보잖아요. 무조건 보지 말라고 막는 거보다 저건 허구라는 걸 알려주고 비판 능력을 길러줘야죠.”

상민군이 자기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를 전할 때 청중은 몰입한다. 옳은 주장으로 가득한 ‘어른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도 ‘아이의 말’에는 눈을 반짝인다. 이 확연한 차이를 보며 손경이는 강사이자 엄마의 입장에서 배우는 게 많다. 물론 아직도 야동 반대 의견에는 변함없다. 하지만 어차피 ‘정답 없음’의 삶이다. 다른 세대, 다른 존재가 각자의 견해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건전한 배움의 장이 되지 않을까 믿을 따름이다.

평소에도 두 사람은 왕왕 시끄럽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낙태 문제를 놓고 잠시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낙태를 반대하는 아들의 비판은 가차 없고, 엄마는 페미니즘 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종교 문제로 쟁점이 이동돼 토론을 유보해야 했다. 두 사람은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심상하다. 소개팅에 입고 나갈 두툼한 코트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그냥 있는 옷 입으라는 엄마가 옥신각신 정겹다. 아무튼 두 사람에게 대화는 일상이고 논쟁은 활력이다. 중요한 건 ‘차이’를 좁히는 게 아니다. 그 차이가 대화의 단절이 아니라 대화의 촉매가 되어주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 아이가 너무 착한 남자는 아니에요. 근데 솔직해요. 자기감정을 안 감춰요. 뭐 땜에 힘든지 다 말해요. 그러니까 대화가 잘돼요. 변화할 가능성이 있고, 문제가 뭔지 빨리 파악하고 인정하는 아이예요. 지난 4~5년간 수없이 싸웠죠. 지금은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줘요. (웃음)”

손경이씨와 아들


‘느낌 없음’의 청소년, 가정폭력이 낳은 괴물

아이가 스승이자 친구이다. 손경이는 아들과 싸울 때마다 조금씩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삶에서 도출한 앎은 이렇다. “좋은 남자를 많이 만들면 나쁜 남자는 사라진다.” 아들과 그랬듯이 꾸준히 대화를 나누면 이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나쁜 남자는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믿는다. 앎은 다시 삶을 이끌었다. 강의 초점을 성폭력 예방이 아니라 관계 교육에 맞추기 시작했다. 그가 작정하고 차린 연구소의 이름은 ‘관계교육원/연구소’. 강의의 목표는 좋은 여자, 좋은 남자 만들기다.

“제가 경험한 세상은 올바르지 않은 세상이거든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성적 위주의 투자 개념으로 봐요. 학원을 다녔으면 성적이 좋아야 하지 않느냐 다그치잖아요. 그런 부모의 태도가 사채업자 같다고 아이는 말하죠. 부모는 늘 사랑이라고 말하는데 아이는 다르게 느껴요. 남편은 자기가 돈 갖다 주는 사람 같다고 하고, 아내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손경이가 볼 때 성폭력 가해자는 한국 사회가 만든 괴물이다. 그래서 가해자의 무지를 미워하지 가해자의 인격을 미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법무부에서 ‘상담조건 기소유예’로 배정된 청소년이 있을 때 매달 정기적으로 청소년 가해자 상담을 진행하는데, 그들의 내밀한 고백을 통해 아이들만 나무랄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챘다. 야동, 대중매체, 친구, 부모, 학교 등 세상이 잘못 가르친 탓이 컸다. “엄마·아빠 대신 선생님이 사과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을 여는 강사는 3m 높이의 담장을 쌓아올린 아이들 마음도 허물어뜨린다.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듣다보니 나는 예비 가해자가 아닐까 싶다”며 강의 뒤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만 보면 스윽 만지고 싶고, 여자가 못 알아차리게 교묘히 성희롱을 하는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고 실토한다. 어쨌거나 가장 빨리 바뀌는 대상은 청소년들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느낌 없음’의 아이들이 눈동자가 흔들릴 때면 보람이 크다. 3∼4년 전에 상담했던 아이들에게 연락이 와 피자를 사주며 의젓해진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힘으로 손경이는 무겁고 어둡고 살벌한 폭력 예방 교육이 아니라 밝은 이야기, 밝은 생각, 밝은 교육을 하게 됐다.

“저의 요즘 관심사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및 성매매의 유사관계예요. 늘 아빠가 엄마를 학대하는 걸 보고 자란 아들은 여자를 하찮게 여기죠.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은 늘 주눅 들어 있고 의사표현을 못하고요.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어요. 그래서 큰 틀에서 보면 가정폭력이 성폭력의 시발점이죠. 아주 밀접해요. 성폭력을 일부 남자, 일부 여자의 문제로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일반인들이 내가 가해자도 만들고 피해자도 만든다는 의식이 있어야 해요.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군대폭력, 직장폭력 등 모든 폭력의 시작은 가정폭력이에요.”

그의 명함은 길다. ‘범죄예방위원회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고양시 일산서지구 협의회 위원 손경이’. 뒷면에는 이력서 한 장 분량의 소개가 빼곡하다. 원래는 이름과 주소만 적힌 명함을 들고 다녔으나 “센 사람처럼 보이려고 법무부 로고를 아예 넣었다”며 눈을 다 감고 좋아라 웃는다. 호신용 명함을 들고 정부기관 위주로, 대기업·학생·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해에 500여 회 강의를 나간다. 10년차 강사는 요즘 물이 올랐다. 어서 빨리 좋은 세상이 오기를,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학수고대한다. 그래서 전국을 누비며 강연하고, 영화도 찍었고, 지난해 12월엔 지상파 TV에도 출연했다. KBS 다큐멘터리 <공감> ‘성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편. 성폭력 예방 인기 강사이자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얼굴을 공개했다. 


내 힘은 작다, 그러나 침묵은 우릴 돕지 않는다

“저는 힘이 작아요. TV에 나오고 신문에 나와도 세상은 안 바뀌겠죠. 강의를 10년 했으니 어림잡아 5만 명을 만난 거 같아요. 세상이 변했나? 그대로죠. 그래서 이제 저도 당사자임을 공개하면 더 빨리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를 업신여길까봐, 남편 있는 여자처럼 행세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가정폭력으로 이혼했고 성폭력 피해자라는 걸 용기 있게 말해요. 그러면 깨닫는 가해자가 있을 거예요. 제가 그랬거든요. 성소수자를 혐오했는데 레즈비언 강사가 직접 나와서 당사자의 사례를 들어 얘기하는 인권 강의를 듣고 이해하게 됐어요. 재해석이 일어난 거죠.”

지킬 것이 없고 나눌 것만 남았다. 나는 학교폭력·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입니다, 라고 편히 얘기한다. 단, 앞서 말한 대로 ‘안전한 장소’라고 판단되는 경우다. 안전의 기준은 무얼까. “질문하는 사람이 많은 강의”다. 가령 이런 상황이다. 남자가 여자의 허벅지를 만진 성희롱 사례를 얘기한다. 조직에서 의무교육을 받기 위해 수십∼수백 명이 모인 경우라면, 보통은 듣고만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 조금 더 있는 자원봉사자들 강의에서는 달랐다. “그 상사 몇 살이에요?” “술자리에서 동영상 찍은 사람 없어요?” “그 여성 고소 안 해요?” 1시간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나의 사례로도 교육 내용을 다 풀어냈다. 남의 얘기로 듣는 사람은 안 바뀐다. 내 문제로 듣는 사람이 바뀐다. 질문하는 행위는 관심 있고, 알고 싶고, 의식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손경이는 강의의 꽃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꽃 대신 칼이 날아드는 순간도 더러 있다. 생존자임을 밝힌 뒤 조롱하거나 낙인찍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손경이를 피하거나 주춤하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한다’는 생각이 단단하다. 사명감이 남다른 이유를 묻자 엉뚱하게 드라마 <추적자>(SBS·2012) 이야기를 꺼낸다. 이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저항하는 손현주 역할에 감동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도와줘야 한다”는 걸 배웠고, 아무리 두렵고 힘들어도 정의와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불편해야 인간이다.” 그렇다. 인간다운 삶의 추구를 위해 손경이는 불편한 상황을 감내하고 불편한 말을 약으로 삼는다. 그런 사람을 이해하면 강의의 질이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말한다.

“악의적인 사람을 바꾸기보다 나의 주변을 먼저 바꾸는 게 더 낫죠. 청소년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학생에게 성의식의 중요성을 현실성 및 실천가능성 있게 가르치면 돼요. 젠더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살 거고 언젠가 누군가 그 사람을 신고하겠죠. 악의적인 사람이랑 싸우는 건 소모적인 일이에요. 일반 사람을 감수성 있는 좋은 사람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에요.”

손경이는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케이크에 불을 밝혔다. 이상민에서 손상민으로, 상민군의 성씨 변경을 기념하는 조촐한 파티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과 친가의 의도적 배제와 비윤리적인 대우로 정서적 폭력을 겪은 뒤 엄마 성을 따르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재판장에서 판사에게 성씨를 바꾸려는 이유를 또박또박 개진하고 온 상민군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엄마, 오늘 모성애만이 아니라 부성애도 느꼈지?” 세상은 바뀌는가, 안 바뀌는가, 더디 바뀌는가. 분명한 것은 지구상에서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부딪치며 인간에게 주어진 ‘변신의 권리’를 실천한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세상은 바뀌고 있다.

 

* 한겨레 사람매거진 <나들> 내 몸, 파르헤시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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