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연-친족성폭력 첫수기 작가

[행복한인터뷰]

지옥 9년 기록 10년 작가 2년차, 난 평범해지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딴사람, 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

-김수영, ‘생활의 극복’ 중

 

휴일이면 종종 도심의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영어 공부 삼매경에 빠진다. 잠시 고개를 들어보면 자신처럼 다들 혼자서 꾸역꾸역 뭔가를 하고 있다. 한 층이 거의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풍경이 새삼 놀라워 중얼거린다. “나는 너희와 다 얘기해보고 싶다. 혼자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니?”

그러는 당사자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서울 거주 30대 싱글 여성이다. 장마철 습한 공기를 머금은 바지통이 다리에 감기는 게 싫어서 반바지를 입었지만 책상물림 생활에 실해진 장딴지가 영 신경에 거슬린다. 젖은 머리 물기 탈탈 털어 고무줄로 짤막하게 동여매고 까만 안경테에 목에는 하얀 헤드셋을 걸치고 어깨에 멘 에코백에는 형광펜 그어진 영어교재가 한가득. 직장을 그만두고 ‘적금 깨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같은 학급 20대 초반 학생들은 남다른 열공과 연륜 포스를 내뿜는 그녀를 ‘골드미스’로 인식하나 자신들과 죽이 잘 맞다보니 언니 혹은 누나라고 부른다. 눈치 없는 젊은 강사가 그녀를 ‘이모님’이라고 칭하는 바람에 듣는 사람 발끈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늦깎이 유학 준비생의 고군분투. 한국 사회의 30대 여성치고 흔치 않은 일상을 산다. 그녀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온 그 책은 ‘인면수심’ 친부의 성폭력 실상을 가감 없이 묘사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고, 저자 은수연은 얼굴 없는 유명인이 되었다. 신문 및 TV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그림자 연극의 주인공처럼 실루엣 혹은 목소리만 드러났다. 그런 상황들이 성폭력 피해자는 어둡고 침울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확인시켜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매체 밖에서 만난 은수연씨는 들장미 캔디처럼 표정이 다채롭고 말투도 활달하다.

눈에서 살기가 빠진 유학 준비생

“제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그녀의 10대는 더욱 평범치도 평탄치도 않았다. 아빠에게 9년간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당한 아동 피해자로 살았다. 집을 뛰쳐나온 20대는 겹치기 출연 배우가 따로 없었다. 혼자 있을 때는 수치심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성폭력 생존자로, 밖에서는 밝고 야무진 금순이 캐릭터로 오락가락 지냈다. 틈틈이 글을 썼고 30대 들어서 작가의 이름을 얻었다. 작가이거나 학생이거나, 일상을 두 가지 버전으로 산다. 어느새 평범과 비범을 자유로이 즐기는 생의 곡예사가 됐다. 주변에서 그녀의 변화를 느끼는 지점은 따로 있다.

“저를 20대부터 봐온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그때에 비하면 눈에서 살기가 빠졌다고요. 제가 봐도 대학생 때 증명사진을 보면 눈이, 완전 무서워요. 하하.”

눈빛이 달라지는 것만큼 확실한 ‘딴사람’의 징표가 있을까. 이제 그녀는 선한 반달눈을 하고 하얀 치열이 다 보이도록 환하게 고개 젖혀 자주 웃는다. 카페에 서식하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까지 호기심이 발동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어졌다. 증오와 원한과 울분이 스르르 빠져나간 마음자리에 웃음과 수다, 공감 같은 것이 속속 들어차고 있다.

은수연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가족치료를 공부할 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사례를 참조했다. 이 가족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희생양은 누구인지 분석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정리해 글로 썼다. 어떤 생각과 감정이 떠다니던 게 말로 나오고 말을 글로 정리하면서 개념이 잡혀갔다. 이게 아니었구나, 이게 이거였구나. 논거를 찾지 못했던 감정이 정리돼가는 기쁨이 컸다. 또한 세상 밖에 나와서 지내보니 자신은 여러 면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빠라는 사람이 이상했던 거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피해 사실을 숨기고 수치스러워했는데, 수치심을 오롯이 느껴야 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성장기의 고통과 치욕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게 되자 조금씩 홀가분해졌다. 공부의 효능을 안 이상 중단할 순 없다. 더 하기로 했다.

“여성학을 할지 사회복지를 할지, 아직 고민이에요. 네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뭐니, 스스로 묻고 있어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한데, 내가 살아낸 삶에 대해서 그냥 악바리처럼 잘 살았어 이러는 게 아니고, 나의 감정 중에 뭐가 잘못됐는지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고 싶어요.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나를 붙잡고 있었던 시간이 꽤 길었으니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 몸이 붙잡고 있는 기억이 있어요. 공부해서 생각을 일깨우고 싶어요.”

9년의 폭력, 10년의 기록

은수연의 책이 나온 건 2012년 8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그 다음달이었다. 매체의 영향력이 컸다. 특히 <한겨레> 9월16일치 ‘조국의 만남’ 코너에 지면을 통으로 할애한 은수연 인터뷰는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아마 월요일이었을 거예요. 기사가 나간 날 아침에 조국 교수님한테 문자가 왔어요. 조회 수가 100만 건이 넘었다고, 이 정도면 1년에 손꼽는 대박이라고 하더라며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인터뷰 분위기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눈물은 딱 한 번 흘렸는데 그 장면이 공교롭게 기사화됐다. 은수연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화할 수 있었다. 집을 나온 뒤 가해자를 맞닥뜨린 적이 있는지 조국 교수가 물었을 때, 은수연은 아버지의 출소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해코지의 두려움에 떨다가 직접 교도소에 찾아간 기억을 떠올렸다. 면전에 대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망가뜨리려고 해도 망가지지 않았고,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걸 말하려고 왔다.’ 조국 교수는 물었다. “그게 왜 책에서 빠졌죠?” 이 극적인 장면, 성폭력 피해자가 눈앞의 거대한 악이자 자기 안의 끔찍한 공포와 대결하고 발언하는 장면은 그대로 기사 제목이 되었다. “아버지의 성폭력에도 난 더럽혀지지 않았어요.”

은수연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1994년 대학에 들어간 해, 집에서 탈출해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에 갔다. 당시 최영애 소장이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냥 흘려들었다.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피해 경험이 글감이 된 전례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막 집을 나왔을 때라 너무 힘들고 정리도 안 돼 있고 무엇보다 피해 경험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네 잘못이 아니다’ 같은 말이 계속 내 안에서 쌓여갔다.” 도전 의식이 생겼다. 한번 정리해보자.

직장을 다니면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좌를 수강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겪은 일들을 써나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수기를 연재하면서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글쓰기 전담 선생에게 글쓰기 묘사와 표현 등 개별지도를 받았다. ‘괴물 같은 사람이…’로 시작하면 안 되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내러티브 원칙에 따라서 그 배경이나 표정, 말투, 심정을 되도록 상세히 묘사해라. 그 상황에 있는 피해자가 어떤 감정일지 읽는 사람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너무 몰입해 공포와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눈물의 방류 사태로 글쓰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독자와 마감이 있어 글을 쓸 수 있었다. 회원들이 소식지를 받으면 가장 먼저 찾아본다는 피드백이 왔다. 끔찍하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상담자들도 피해자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많이 배운다고 했다. 피해자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힘든 시기를 써야 할 때는 끔찍한 기억에 붙들렸다. 길게는 2년 정도 손을 못 댔다.

“수능 전날 호텔에 갇혀서 폭행당했던 장면을 쓸 때는 겁이 나서 글이 나아가지 않았죠. 그래서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보았어요. 아, 나 지금 저 안에 있지 않지. 그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글을 썼어요.”

재판이 진행됐던 법원 앞에도 찾아갔다. 글 쓰다가 막히고 찝찝하고 내가 왜 여기에 계속 붙들려 있지 그런 느낌이 들면 혼자 여행 가듯이 기억의 현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한 장면씩 마주하고 사유하다보니 20대 후반에 시작해서 30대 후반까지, 10년이 걸렸다. 피해 기간보다 더 긴 집필 기간을 보내고서야 자꾸만 삐져나오는 통곡 같은 기억을 가지런히 언어화할 수 있었다. 피로 쓰고 온몸으로 쓴 덕분일까. “글이 사진처럼 생생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고 시인 이성복은 말했다. 정말 그랬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내용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그것처럼 끔찍하나 책의 표지는 곱디고운 순백색이다. 이 책이 실제 은수연에게 숫눈길처럼 귀한 시간을 열어주었다.

2013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제29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은수연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쓴 공로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처음엔 ‘이 상을 왜 나에게 주지?’ 하는 마음에 당혹스러웠으나 이제부터라도 그 상에 부응하는 역사를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에 기꺼이 행동하고 있다. 강의나 좌담회, 인터뷰 등에 응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전국에서 모인 성폭력 전담 판사 120명과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판사, 언론인, 가해자 전담 국선변호사, 의료인, 법조인 등과 얼굴을 맞댔다. 생존자가 직접 책을 내고 하는 강의는 처음이라고 했다. 은수연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러분이 무얼 상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왠지 긴장된 공기로 팽팽하게 당겨진 강연장 분위기가 다소 헐거워졌다. 은수연은 교통사고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직장에서 출장을 다녀오다가 하루에 두 번이나 사고가 났다. 나는 가장 먼저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일을 처리했다. 운전자에게 ‘너 왜 이렇게 운전을 못하냐’ ‘하필 왜 그 시간에 이 터널로 갔느냐’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계신 판사님들은 법정에서 성폭력 사건을 특별하게 접근한다. ‘여자애가 왜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어?’ ‘치마 길이는 왜 짧지?’라는 식으로 묻는다. 성폭력 사건도 똑같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교통사고처럼 사건 자체로 봐달라.

경청과 공감의 박수가 나왔다. 당시 판사모임의 좌장 판사는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교통사고 같은 사건사고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려줘 고맙다고 각별히 인사를 전했다.

지난해 전북 전주에서 북콘서트를 했을 땐 진땀을 흘렸다. 어떤 나이 든 남성이 질문을 한다더니, 아가씨가 너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 자기 합리화가 심한 거 아니냐고 말한 것이다. 그 자리에는 성폭력 생존자 아이들도 와 있었다. 은수연은 꾹 참고 답변했다.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그러곤 관객을 향해 말했다. 생존자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상처받을 수 있는데 무시하고,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 합리화 많이 해주시라고. 겨우 행사를 끝냈지만 놀라고 속상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엄청 울었다”. 얼마 전 양성평등원에서 직원 대상 강의를 할 때도 편견의 벽을 마주해야 했다. 한 중년 남성이 이런 교육인지 몰랐는데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한 것이다.

피해자다움과 피해자답지 않음 사이에서

“성폭력이란 얘기를 들으면 ‘폭력’보다 ‘성’과 관련된 걸로 받아들여요. 그런데 참가자들한테 매체에서 본 성폭력, 친한 사람이 겪은 성폭력, 자신의 성폭력 사례를 물어보면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거든요. 저는 말하죠. 내 얘기는 별로 할 거 없고, 얼마나 일상적으로 성폭력이 일어나는지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가자고.”

성폭력을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로 감각한다는 건 무엇일까. 은수연은 막내올케의 반응을 들려주었다. 언니한테 어떤 일이 어느 정도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되게 많이 울었다며 말했단다. “근데 나는 언니가 참 존경스러워. 옛날에는 내 딸들이 절대 어디 가서 그런 일 당하지 말기를 바라는 맘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일을 겪어도 언니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맘이 생겼어….”

한 몸에 쏟아져내린 험난한 인생사를 통과한 사람. 오직 생존이 목표였던 지옥에서의 9년. 그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그 힘든 시기를 통과했느냐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울면서 기도하는 게 취미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너는 성격 때문에 산 거 같다”고 했다. 이 또한 사실이다. 은수연은 나쁘게 보려는 마음이 없고 일상을 반듯하게 살려는 자세가 있다. 강인한 면, 나약한 면, 새침한 면, 예민한 면, 호탕한 면, 그것들 모두 은수연이 기르는 자아의 모습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우울하거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만 그려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미지는 일상에서 반복되고 재생산된다. 영화 <여자, 정혜> <텔미 썸딩>이나 드라마 <보고 싶다> <야왕> 등에서 나타난 성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어릴 때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거나 복수욕에 불타거나 보호받아야 하는 여자 어른으로 나오는데, 그게 은수연은 못마땅하다. 성폭력 피해가 지독한 상처를 남기지만 그렇다고 피해자가 그 시간, 그 감정에 꼼짝 못하고 멈춰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금방 씻기는 상처도 아니지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아니다. 은수연도 경험적으로 알아갔다. 스무 살엔 ‘성폭력 피해자’라는, 만들어진 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벗어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찾아가자마자 한 일이 정신과 검진이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내가 과연 정상일까’ 심리검사를 받고 전문가의 정상 판정에 안도했을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과 비정상, 그 유동하는 경계에서 오뚝이처럼 흔들리며 산다. 누구라도 그러하다면 은수연도 그러하다.

“자기를 다뤄간다고 할까요. 그게(고통이) 올라오면 또 느껴주고. (웃음) 인생의 목적이 상처를 치유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사는 거죠. 계속 따라오지만 병적인 반응을 하지 않게 된 거고요.”

더 이상 상처와의 동거가 불편하지도 일상을 방해하지도 않는 삶. 이걸 평범한 삶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그녀는 자신의 삶이 평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예전에는 대구지하철 참사나 서해 페리호 참사같이 큰 인명 피해 사건에도 아무 느낌이 없었거든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할 때 사이코드라마가 진행됐어요. 다른 사람이 힘든 얘기를 하면 다들 안타까워하는데 나는 사과를 씹어 먹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대요. 누가 얘기해줘서 알았지, 내가 그러는 것도 몰랐어요. 왜 저런 걸로 힘들다고 난리야, 생각했겠죠. 내 아픔이 너무 크니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공부도 못했어요. 내가 온 국민과 하나가 된 것처럼 슬퍼하고 있더라고요.”

일상의 평범함, 오래 동경한 삶이다. 현모양처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앞치마 두르고 간식을 차려주고 놀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었다. 해보지 못한 일이라 더 해보고 싶고 막상 해보면 “오글거려서 앞치마를 벗어던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평범한 가정, 평화로운 일상을 소망한다.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과 야참으로 라면 먹기도 꼭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자세와 능력도 이미 갖춰져 있다. 가사일을 좋아한다. 웬만하면 손빨래를 하고 물걸레질도 즐긴다. 햇살 좋은 날 이불을 널고, 밤이면 햇볕 냄새 든 이불을 덮을 때 더없이 만족스럽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하곤 하는데 “요샌 화가 안 나서 집이 무척 더럽다”며 또 깔깔 웃는다.

용서는 숙제가 아니다

“내 문제에 스스로 충분히 애도하고 다른 사람들도 애도해줘서 슬픔을 건넌 것 같아요. 나 인복 완전 넘치는데 집에서 부모복만 없어, 그러거든요. (웃음) 인생의 멘토들, 친구들의 도움으로 트라우마가 극복됐어요. 사실 사람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것만큼 큰 상처가 없잖아요. 사람에 대한 상처를 사람으로 잘 극복한 것 같아요.”

은수연의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가 반짝인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 추천사를 써준 인연으로 이금희 아나운서에게 받은 선물이다. (“촌스럽게” 이거 너무 자랑하고 싶으니 꼭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나오는 이미지 그대로 실제 봐도 푸근하고 자상한 큰언니 같은 분이라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은수연은 사람이 살면서 사람들한테 받아야 하는 것들, 부모가 무너뜨린 것들을 좋은 인연으로 채울 수 있었다.

“용서하려고 애쓰지 마라.” 친한 목사님의 말씀도 일상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용서가 의무나 숙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용서가 어느 순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하는 거더라고요. 자신의 요구, 자기의 필요에서 나와야 해요. 누구를 미워할 때 나도 같이 썩어가는 것 같잖아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자기를 위해서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학 공부에 몰두하느라 ‘그 사람’이란 단어가 떠오를 시간이 없어요. 예전에는 같이 방구석에 있어도 두렵지 않은 존재이길 바랐는데 지금은 마음에 들여놓을 영역이 없는 거죠. 그 사람은 지금 저에게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수연 개인도 변하고 사회적 통념도 변했다. 스무 살 때 처음 만난 상담교사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사실을 말하자 “아빠가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꼭 잠그고 자라”고 충고했다. 그랬다간 가해자의 분노를 사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엔 친족 성폭력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그녀조차 자신이 당한 일을 뭐라고 명명할지 몰랐다. 강간? 느낌이 이상했다. 지금은 성폭력이란 단어를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니 변하긴 변한 거다. 성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 <소원>도 흥행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지금까지 5쇄가 나갔다. 전례 없는 출판 불황과 소재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이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일단 성폭력이 사회 일반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고 그녀는 본다. 대학원 석사 논문 주제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 대한 사회복지적 지원에 관한 것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놀랍게도” 그것들이 얼추 갖춰졌다.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바뀌었으니 소프트웨어가 바뀌는 일이 남았다. 생존자의 변화, 그리고 생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내 직업도 아니고 나를 특별하게 하는 것도 아니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얼굴을 안 보이고 싶어요. 꼭 성폭력이 아니어도 각자 자기 상처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쟤, 그런 일 있었어’ 하면서 아래로 보거나 쑥덕거리지 않고 같이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은수연은 그날을 그려본다. 나의 기쁨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필명보다 더 예쁜 본명으로, 어쩐지 쓸쓸한 뒷모습이 아닌 선한 눈빛을 나누며 마주할 수 있기를. “얼굴을 돌리고 나는 너를 기다린다”는 독일 시인 넬리 작스의 시구처럼, 그렇게 은수연은 ‘얼굴을 돌리고’ 기다린다.

 

한겨레 <나들> 내 몸, 파르헤시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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