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걷다 - 쌍차 해고자 복직 걷기대회

[사람사는세상]

오랜만에 걸었다. 정수리 위에다 이글거리는 초여름 해를 지고 강바람 몸에다 걸고 뛰다가 걷다가 흘렀다. 여의도에서 시청까지. 작년 가을 시세미나 시작하고 '토요집회'에 소홀했었다. 아무래도 에너지가 한 곳으로 쏠리면 흐름을 돌리기는 어렵다. 하나의 수도꼭지에 하나의 호수 밖에 들어가지 않듯이 나의 리비도는 '시'에 끼워졌던 것이다. 세미나를 오래해서 여유가 좀 생긴 건지, 아니면 맑스를 읽어서 그런지 집회에 가고픈 충동이 일었다. 재능노조 1500일 투쟁. 쌍차 22명의 죽음. 삼성전자의 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 내가 공부하는 이유와 내가 공부한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현실에 내 몸을 들여놓고 싶었다. 여의도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낯선 얼굴이 보인다.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나는 완전 반가워서 입을 귀에 걸고 넙죽 몸을 반으로 접어 인사하고 - 사실은 큰절이나 큰 포옹을 하고싶었다. -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었다. 

뭔가 길한 조짐에 살짝 흥분했다. 오길 잘했군 잘했어. 공원 입구에서 mbc 노조분들이 백만인 서명받고 있어서 사인하고. 광장에서 기념수건 사고, 얼음조각전 보고. 박재동화백이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것도 구경하고 아는 선배 만나서 기념사진 찍고 놀다가 행진시작.  마포대교 앞에 차벽에 막혀서 그 앞에서 30분 공연보고. 경찰차에서는 계속 안내방송이 나왔다. 집회 때마다 반복되는 징징거림. 여러분은 도로교통법 몇조 몇항을 위반하고 있다고, 그러니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청소년 대상 선도방송에도 못 써먹을 얘기를 장성한 시민들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돌아갈 가정이 없다!" 파편적인 외침이 들려온다. 그날 따라 법조문이 유독 듣기 싫었다. 저것은 말이 아니다. 모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소통을 거부하는 철갑옷의 언어. 모든 말을 튕겨내는 권력언어를 총알 발사하듯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발설한다.   

시위대와 차벽의 대치가 길어져서 행로급변경. 우르르 여의나루역에서 공덕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고 공덕역에서 시청까지 다시 대오를 만들어 걸었다. 한 천명쯤 되는 시위인파가 게릴라전처럼 도로에서 지하철로 차도에서 인도로 밀렸다가 뛰다가 걷다가 시청까지 흘러가는 과정이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했다. 오후 5시 무렵 시청 도착. 본행사 준비로 분주한 대한문을 뒤로하고 시세미나 하기 위해 연구실로 들어가서 오은의 <호텔타셀의 돼지들>을 읽었다. '아침이 수수께끼'라는 시구에 대한 곰곰한 대화.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어느 공간에 끼워진다는 사실이 싫었다고 그래서 아침은 자기에게 수수께끼였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삶의 방식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세미나 친구들 다섯명과 다시 대한문으로 왔다. 1박2일 난장이라 했거늘, 시위대가 많이 빠져나갔고 빈 돗자리와 빈 생수병이 나뒹굴어 을씨년스러웠으나 무대는 한껏 달궈졌었다.

알짜배기는 그 때부터. 골든브릿지, 유성기업, 재능, 쌍차, 한진 등 사업장 투쟁동지들이 발언과 공연을 선보였다. 요즘은 싸웠다하면 1000일은 기본이다. 재능노조가 벌써 1600일이라고 해서 가슴 쓸어내렸다. 사업장은 달라도 자본가의 악랄하고 치졸한 행태, 억압과 착취를 자행하는 방식은 흡사했다.  맑스의 치밀한 분석글을 읽을 때처럼 소름돋았다. 누군가 무대 앞을 슬그머니 오가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쪼그려 앉아 경청하다가 그러길래 보니까 김진숙 지도다. 밤에 보니 더 작고 작은 체구의 그녀. 저 몸 어디서 기운이 나와 35미터 벼랑 끝에서 삼백일을 버텼을까 싶으니 또 뭉클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조남호 육실헐놈. 구호와 욕설과 웃음이 난무한다. 신난다. 집회의 저러한 천편일률적인 방식과 배치가 좀 싫었었는데 그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주먹에는 거짓이 없다. 몸에 들끓는 울분과 원한과 분노는 손끝까지 뻗치니 주먹으로 뭉쳐 우주로 날릴 수밖에 없구나.

지하철 막차를 기다리며. 시세미나에서 대한문 갔다가 같이 귀가하던 스물셋 친구는 정치적 집회가 처음이라고 한다. 약간 멍한 표정이다. 시 읽고 맑스 공부하는 물리학도에게 말한다. 오늘 들은 생생한 얘기 참조하면 맑스가 더 잘 읽힐 거다. 노동자들은 자본론을 그냥 삶으로 흡수한다. 막차 손잡이에 매달려 노동과 자본의 적대를 생각한다. 그 화해불가능성. 맑스의 작업은 일개의 악덕 자본가에 대한 성토가 아니다. 그러니 자본가 일명이 개과천선해서 풀리는 문제도 아니다. 맑스가 문제삼는 대상은 전체 사회의 자본, 자본 그 자체. 잉여로 생산된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려 더 막강한 자본으로 행세하며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장악한다. 노동자가 일하고도 자기몫을 못받는 부등가교환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이 교환가치로 전환되는 시스템 자체의 폭력성을 맑스는 지적한다. 노동이 가치증식의 수단이길 중단하고 노동이 자기단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계속, 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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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309일 승리의 기록, <사람을 보라>

[사람사는세상]

김진숙 지도가 웃으면서 내려오는 장면까지 309일의 기록이 사진전에 전시됩니다.
이번 사진전 디렉터 한금선 작가님이 어제 한진에 내려가셨고 작업한 것까지 추가 프린트하기로 했어요.
(언론에 나온 사진인데 볼수록 감동적인..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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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숙농성 300일 <사람을 보라> 사진전을 기획하며

[사람사는세상]

세 개의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김진숙 지도위원한테 점점 소원해지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의리없다고 생각했다. 뭘 할 수 있을까 멍하니 틈틈이 고민했다. 둘은 연구실이 별꼴카페와 동거하는데, 아직은 비어있는 시간이 많은 카페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나하고 놀자. 좋은 사람들과 멋진 일을 꾸미고 싶었다. 셋은 사진하는 선배가 연구실 구경시켜 달라고했다. 커피 시켜놓고 노닥거리면서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유연함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사진전 하자고 추동했다. 불현듯 <사람을 보라> 사진전을 해볼까. 제안했다. 그 즉시 두어군데. 다음날 한 군데. 전화해서 미팅 날짜를 잡았다. 꿈처럼 무정형으로 흘러간 일들.  


4차 희망버스에서 사진집<사람을 보라>를 샀다. 첫장을 넘겼다. '이것은 우리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쓸쓸한 사진이 누워있다. 가슴이 쿵했다. 신체에 각인된 찰나의 기억. 그리고 밀도 있는 보폭으로 다가오는 이미지들. 멀건 얼굴. 목장갑. 손. 풍등. 꽃이불. 양동이. 헬멧,등짝같은 시큰한 것들... 이후 김진숙 지도위원을 생각할 때면, 고공 크레인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영도앞바다를 떠올릴 때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몸 어디선가 들려왔다. 눈 밝고 손 예민한 사진가들이 만든 순정한 책. 희망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망의 정의로움(신형철)을 보여주는 순정한 사람들의 기록 <사람을 보라>

그것으로 사진전을 한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날을 잡고 판을 짰다. 오늘 낮에 웹자보 초안을 넘겼다. 찌라시가 나오면 주말 노동자대회에 뿌릴 작정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좋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전시, 차 한잔 마시면서 찬찬히 숨고르고 정리하는 시간, 와글와글 수다와 웃음이 채워지는 자리면 좋겠다. 진숙농성 300일. 내려와도 이어져도 의미있다. 김지도가 내려와서 전시를 보러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한진중공업 사태와 김진숙 고공농성 300일

<CT85-사람을 보라> 사진전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의 운명과 관계된 '별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300일 넘게 40미터 크레인에서 사는 참 별난 사람
자기 밥그릇은 뒷전이고 해고된 동료들과 싸워온 별난 사람들
한 사람의 절망에서 저마다의 절망을 구하러 모여든 별난 사람들
무심코 스쳐가는 삶의 자리를 찍는 별난 외눈박이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립니다.


전시기간: 2011년 11월 15일(화)부터 12월 4일(일)까지
전시장소: 문화예술카페 <별꼴>
오픈행사: 2011년 11월 15일 저녁 7시 인디밴드 공연 및 사진가와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 입장료: 커피 한 잔

* 함께하는 사람들: 권우성, 김수진, 김재송, 김홍지, 김흥구, 노순택, 류우종, 박민혁,
박승화, 박정훈, 양태훈, 오은진, 유성호, 이명익, 이미지, 이재원, 이치열, 이정선,
임태훈, 정기훈, 정택용, 조재무, 최형락, 한금선 (한진중공업 사진집 <사람을 보라>제작 참여 사진가23명)
희망버스 기획단 / 수유너머R / 수유너머N / 문화예술카페 ‘별꼴’ / 장애인극단 ‘판’ 

 

찾아오시는 길: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 4가 322번지 삼정빌딩 3층 (070-8268-7355 수유너머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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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고공농성 200일 기념

[사람사는세상]






앉으나서나 당신 생각이 따로 없다. 날이 더워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는데 김진숙 지도위원이 자꾸 생각난다. 그 높은 곳에서 매달린 채 200일이 흘렀다. 매서운 겨울 지나 여름 삼복더위 한 복판까지 왔다. 그동안 목욕을 못하고 지냈다는 얘기다. 희망버스 타고 갈 때 고공 크레인 영상을 봤는데 정말이지 맥주집에 걸린 수영복 입은 여자 나오는 달력 폭 정도의 크기만한 곳에 꽃이불이 깔려있었다. 비좁은 곳에서 잠인들 편히 자겠는가. 부실한 식사. 옹색한 공간. 못 먹고 못 자고. 몸이 다 망가졌을 텐데. 감옥에도 책과 신문은 넣어주는데 크레인에는 올려주지 않는다. 하루종일 뭐하고 지내실까. 그분에겐 트윗이 유일한 세상과의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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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와 소금꽃나무

[사람사는세상]

# 갈까 말까

한진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 출신, 김진숙 부산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185일차. 이를 두고 ‘여자의 몸’으로 극한의 외로운 투쟁을 전개한다고들 얘기한다. 모두가 한 여성 노동운동가의 입신에 주목하고 칭송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잠시 딴 생각을 했다. ‘그렇게나 오래 집을 비워도 괜찮은 거면 결혼을 안 했거나 했어도 아이가 없거나 아니면 친정엄마가 옆에 있나보다.’ 얼추 적중. 52세 김진숙은 비혼이다. 그 사실을 알려준 친구가 덧붙인다. 아마 김진숙 정도의 인물이 남자였으면 그의 옆에는 헌신하는 여성이 필시 있지 않았겠느냐고.

지난주, 김대리의 대출광고 스팸 문자를 압도한 문자메시지가 있으니 ‘희망버스 타자’는 불온한 속삭임이다. 또 다른 ‘여자의 몸’은 고민했다.남편 1인 자식 2인의 삼시세끼 보급투쟁을 날마다 치르는 전사이자 하필 생리주기가 딱 걸린 생물학적 존재에게 1박2일 부산행은 번잡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갈까 말까.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그리움이 커져갔다. 뭘까. 나를 흔드는 이 느낌, ‘심장의 나태’를 집단적으로 일깨우는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지상에 발 묶인 여성은 고공에 매달린 여성을 연민하고 동경했다. 이틀 치 국을 끓여놓고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 무지개 버스

(광장에서 만난 선배남편)
오후 1시. 시청 앞 재능교조 농성장. 희망버스 집결지다. 이주노동자 소모뚜씨도, 게이활동가 김조광수씨도 만났다. 나는 노들장애인야학과 동행했다. 청소년, 이주노동자, 장애인, 인권단체 활동가 등 소수자가 타는 차에 배정됐다. 일명 무지개버스 16호차. 바퀴 달린 동료들을 보자 궁금했다. 저 덩치 큰 휠체어를 어떻게 싣고 간담. 잠시 후 대형트럭이 왔다. 탑승시작. 인도에서 차도로 전동휠체어가 ‘덜커덩’ 낙하했다. 활동보조인 세 사람이 장애인을 안아서 버스에 앉혔다. 100kg이 넘는 전동휠체어. 그것을 또 건장한 청년들이 들어서 트럭에 차곡차곡 실었다. 그러니까 장애인의 부산 나들이는 ‘외출’이 아니라 ‘이사’였다. 우리 차는 오후 2시 반이 돼서야 출발했다. 


 “지금 상황이 슬프고 안타깝기보다는 많이 설렙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합시다.” (이은정 천주교인권연대 활동가)

“전자주민증 반대에 사람들이 관심이 적어서 저희가 외롭게 싸우고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외로운 투쟁을 하는 김진숙 씨에게 힘을 보태드리려고 갑니다.” (장여경 진보넷 활동가)

“어젯밤 김진숙씨가 쓴 <소금꽃나무>를 읽다가 너무 슬퍼서 그냥 덮었어요. 막상 희망버스 타니까 MT가는 기분이 들고 좋네요.” (정민경 진보넷 활동가)

“만 명이 모이는 그 자체가 울컥합니다. 연대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구속노동자 후원회 활동가)

1차 희망버스를 탔는데 너무 재밌어서 또 신청했다는 희망버스 단골손님, 만날 공부만하라고 잔소리하던 고등학교1학년 조카와 함께 간다는 개념 이모, 희망버스 타기 위해 며칠 야근도 안 하고 가족에게 잘 했다는 워킹맘,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내려오길 바라는 마음에 간다는 학생, 내가 힘을 얻고 싶어서 간다는 시민 등 제각각 사연을 밝혔다. 1983년 하반신 마비로 중도장애인이 된 박경석 노들장애인 야학 교장은 ‘20년 만에 고속버스 타고 부산에 간다’는 벅찬 소회를 페이스북에 남겼다.


# 빗속 행진

오후 7시 30분 부산역 도착. 폭우가 쏟아진다. 광장을 메운 1만 여명의 함성. 우산과 깃발이 춤춘다.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 이미 축제는 시작됐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한쪽에서는 부산지역 장애인단체에서 준비한 천막을 쳤다. 임시 대피소. 뒤늦게야 트럭이 도착하고 휠체어를 내렸다. 주인을 찾은 휠체어. 우비를 덧씌운다. 활동보조인이 함께 선다. 광장으로 한 대씩 나아갔다. 존재와 존재가 일사분란하게 분리-장착 되는 장애인 투쟁이 문득 신비롭다. 무대 조명, 가로등 불빛, 형형색색 우비가 빗물 웅덩이에 반사되어 온통 번들거린다. 우주정거장처럼 낯선 공간. 김진숙과 결합하기 위해 모인 거대한 군중들. 희망버스 사건 자체가 SF적이다. 돈만 아는 저질들에겐 스릴러 공포물일지도 모를 일.



오후 9시 40분. 행진 시작. 문정현 신부, 백기완 선생이 앞장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휠체어 부대가 뒤따랐다. 그림 좋다. 시민 1만 여명이 영도대교를 건너 걸었다. 신발이 첨벙첨벙 빗물 위를 떠간다. 여기가 부산인지 서울인지. 2008년인지 2011년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무렵. 바다가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 조선소를 700미터 앞둔 지점. 봉래로터리 8차선 도로에는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 차벽을 쌓고 기다렸다. 5분 거리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으나 다가가지 못한다. 인도 쪽 일부 참가자는 생수병을 던지고 두드려가며 끈질기게 진입을 시도했다. 건물 옥상에는 카메라 방송기자 20여 명이 매달려 역사현장을 기록했다.


# 직녀에게

새벽 1시 40분. 김진숙 지도위원과 전화통화가 성사됐다. “여러분들을 한 달 동안 목이 메도록 기다렸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게 두려운 가 봅니다. 힘내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대형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생생한 목소리.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권위 있는 음성. 짧은 통화가 침묵의 밤을 열어 밝힌다. 그 와중에 “우윳빛깔 김진숙~ 사랑해요 김진숙~” 수건으로 찜질방 양머리를 치장한 일군의 젊은 친구들이 애교 돋는 구호로 응답한다.

그녀의 말이 더 나올 것 같은 스피커에서 귀를 떼지 못하는데 <직녀에게>가 흐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우리는 만나야 한다.’ 운명적인 전언. 20년 전 노조에서 간부수련회를 갔다. 이 노래를 좋아하던 나는 악보를 수첩에 지니고 다녔다. 기타를 든 그가 연주해주었다. 너무 좋은 곡이라면서 밤새 연습하고 불렀다. 그날도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그 날 그 노래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연을 점지하는 노래. 나는 김진숙과 영혼 층위에서 꽁꽁 묶였다고 느끼고 말았다.


# 피란생활자

새벽 2시 30분. 오작교와 노둣돌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 희망벽돌쌓기가 시작됐다. 뒤에서부터 벽돌과 모래주머니를 든 행렬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벽돌을 나르려고 뒤로 갔다. “우리 줄 서서 전달합시다!” 누군가의 말에 징검다리처럼 대오를 정비했다.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듯 옆으로 옆으로 벽돌을 날랐다.갑자기 “뒤로 빠져” 고함이 들린다. 하얀물과 파란물이 번갈아 분사. 최루액 한방에 시민들은 일순간 뒤로 밀렸다. “천천히 천천히” 구호를 외치면서 후퇴. 빗물이 마른자리에 눈물이. 눈물이 지난자리에 최루액이. 얼굴이 벌게져 너도나도 철퍼덕 주저앉았다.

노래와 연설 등 자발적 문화공연이 밤새 진행됐다. 어디선가 뜨끈뜨끈한 주먹감자가 나왔다. 뽀얀 속살에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 초코파이가 돌고 물과 휴지가 전달됐다. “좀 드소”출처 모를 먹을 것들이 자꾸만 내 손에 놓여있다. 정작 부산명물 오뎅탕은 먹지 못했다. 부산 경남 아고라 회원이 희망버스 시민들을 위해 5000인분의 오뎅탕을 준비했다는 소식을 유인물에서 접했으나, 경찰에서 오뎅탕이 담긴 솥을 ‘집회위험물품’이라며 수거해 갔다고 한다.

오전 7시까지 먹다가 웃다가 걷다가 졸다가. 날이 밝았다. 여기저기서 선채로 앉은 채로 누운 채로 새우등처럼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노숙의 달인들. 6.25 전쟁영화에 나오는 피란민들 같았다. 재난상황. 근처 해동병원이 화장실을 개방했다. 줄이 길다. 한 시간 지나서 가보아도 마찬가지. 줄지 않는다. 2층, 3층으로 올라가본다. 최루액을 뒤집어써서 팔뚝이 퉁퉁 부은 아저씨가 몸을 닦는다. 한 여성이 휴지를 주고 가다가 되돌아오더니 소시지 스틱을 건넨다.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화장실 휴지통은 바닥으로 넘친다. 이걸 다 누가 치울까. 청소노동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고생할 생각을 하자 죄송했다. 약자들의 세상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약자의 노동에 빚져야 한다.


# 강주룡과 김진숙

오전 9시. 먼저 나섰다. 낮에는 친정아버지 생신, 저녁에는 시아버지 생신 모임이 있는 선배랑 서울행 KTX를 탔다. 노동운동판에서 20년을 보낸 선배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은 여성이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1930년 평원고무공장에 다니던 강주룡. 남성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던 여성임금을 깎고 이에 저항하는 49명을 부당해고 하자 평양 을밀대 지붕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강주룡의 각오는 한진중공업 생산직 172명 정리해고에 맞서는 김진숙의 외침으로 이어진다.

선배는 ‘김진숙 지도’가 껍데기뿐인 노동운동 관료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고, 자기 삶으로 얘기하니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크게 와 닿지 않던 얘기들. 더 해달라고 졸랐다.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파업을 시작하면 꼭 김진숙 지도가 가서 연설하거든. 어디든지 꼭 가. 전부 감동해. 70년대 조선소 높은 곳에서 용접하다가 사람이 떨어져 죽어도 그냥 빗자루로 쓸어서 양동이에 담아 버렸대. 그걸 보고 노동운동을 시작한 얘기하면 다 입을 다물지 못하지. 그래서 경찰이 희망버스 막는 거야. 그 위력을 아니까.”


# 지상의 폐허

선배는 잠들고 나는 <소금꽃나무>를 읽었다. 몸의 말들이 깨알 같다. 앞부분은 <전태일평전>만큼 충격적인 실상이 펼쳐진다. 눈앞이 흐려지는 얘기들. 요즘 상황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노동자가 잘려가고 죽어간다. 사무실 앞에는 아직도 빈소가 놓여있는 현실을 그녀는 고한다. 2003년 노동자탄압 규탄대회 연설문 중 인용해보면,

‘100만원 주던 노동자 잘라 내면 70만원 주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다가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리는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군더더기 없고 속 시원한 일갈. 좋은 책은 세상을 명료하게 이해시켜준다.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세상이 좋아졌다고 떠드는 사이 진행된 ‘지상의 폐허’를 그녀는 세세히 목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알린다.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었던 거라고. ‘인간이 참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고백하며 ‘나는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할 때 그녀는 혁명가다.


# 소금꽃나무 효과

<소금꽃나무>를 다 읽었다. 1박 2일의 기적. 희망버스, 그 자발적 시민행동의 비밀이 풀렸다.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는 벤야민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런 희망 없이 노동자를 사랑하는 김진숙. 범주로서 노동자가 아니라 ‘한진중공업 아저씨’ 개개인 분노와 눈물과 한숨과 그 억장무너짐을,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세 동료의 한 맺힌 죽음을 아는 그녀. 아는 만큼 사랑해서 독사처럼 칭칭 감겨드는 것이다. 입사동기이자 동지인 김주익의 죽음을 겪고는 죄책감에 8년 동안 방에 불을 떼지 않았다니 35m 고공으로의 몰락은 필연으로 보인다. 그 삶의 자명함이 어지러운 세상을 밝혔다. 김진숙이라는 등대 불빛에 끌려 너도나도 부산으로 모인 것이 아닐까.

2차 희망버스는 오후 3시 30분 해산했다. 3차 희망버스를 기약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게다. 나도 그랬다. 희망버스 타고 김진숙의 삶을 통과했고 나는 감염되었다. 삶에서 집중해야할 것이 분명해졌다. 홀가분함. 그리고 고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한 여성의 몸은, 귀가와 동시에 생생한 집안의 폐허를 목도했다. 날씨가 더워서 국은 다 상해버렸다. 바닥엔 머리카락과 먼지가 엉켰다. 건조대 빨래는 말라비틀어질 지경이다.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이 사태가 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희망없이 삶을 사랑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는 그녀에게 배운 소금꽃나무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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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희덕

[올드걸의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
짐짓 큰 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
   

- 나희덕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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