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0.19] 나는 네가 쓴 번역투를 알고 있다 (6)
  2. [2010.10.07] 수미일관, 작은 주제로 밀고가라 (6)

나는 네가 쓴 번역투를 알고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연구원들은 생계수단이 크게 두 가지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강의하기 그리고 책 쓰거나 번역하기. 나의 스승이자 동료인 박정수도 대학에 출강을 나가고 지젝이랑 라캉 책을 몇 권 번역했다. 처음에 그에게 배울 때 강의안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학적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문체의 꼬임이 거슬렸다. 한국어이지만 번역이 필요했다. 집에 와서 강의안을 ‘나의 언어’로 바꿔가며 정리하고 이해했다. 그는 국문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명색이 국문학도가 왜 이러나 싶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문체얘기가 나왔다.

“내가 예전엔 김훈 글을 읽을 때는 김훈 문체처럼 됐는데 책 몇 권 번역하고 났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번역투로 문체가 변하더라고. 큰일이야~^^;”

다행히도 박정수는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매이데이를 웹진에 연재하면서 자기 문체를 되찾고 있다. 암튼 가랑비에 옷 젖는 게 제일 무서운 법, 대학이나 언론의 지식생산과정에서 번역투의 오남용이 자연스레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번역투의 표현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 회의를 보다 즐거운 것으로 하기 위하여, 좋은 제안을 보내주십시오.

* 새달 중순경 회의를 가지려 합니다.

*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 오늘 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더 일찍 제출할 터였는데 미안합니다.

*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시킨 것일까요.  

문제없이 읽힌다고? 번역투에 정든 거다. -.- 위의 예문의 특징은 1. 피동표현 2. 에두르는 완곡법 표현 3. 생명체화한 활유법. 4. 빈번한 지시어 사용 등이다. 피동형은 글심을 약하게 하고, 완곡법은 문장이 늘어진다. 고쳐보자.  

* 이 책은 젊은이들이 많이 읽고 있습니다.

* 즐거운 회의가 되도록 좋은 생각을 보내주십시오.

* 새달 중순께 회의하겠습니다.

* 계획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 오늘 중으로 해야 합니다.

* 더 일찍 내지 못해 미안합니다.

*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을 행한다, ~을 갖는다, ~을 시키다도 대표적인 번역투의 말이다.


* 7년간 연구를 행한 끝에 - > 7년간 연구한 끝에

* 전문적 조사를 행하고서야 -> 전문적으로 조사해야

* 재판이 행해진 뒤에 -> 재판이 끝난 뒤에

* 단독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 단독회담의 자리에서

* 환경을 개선시키다 -> 환경을 개선하다

* 계획을 구체화시키다 ->계획을 구체화하다

(예문인용; 글고치기 전략)

 

벤야민의 <보들레르의 파리>를 아무데나 폈다. ‘의’와 ‘것’의 한 문장에 기본 서너 개^^;  예문을 고쳐보자.

* 보들레르의 작품에 들어 있는 알레고리적인 것을 연구할 때 바로크적 요소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중세적 요소를 간과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 보들레르 작품의 알레고리적인 것을 연구할 때 바로크적 요소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중세적 요소를 간과함은 오류다. 
 

* “사유재산이 우리를 너무나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사물은 오직 그것을 소유할 때만 비로소, 그러니까 우리를 위한 자본으로 존재할 때 또는 우리에 의해 사용될 때라야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 칼 맑스 <역사유물론>

-> 사유재산이 우리를 너무나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기에, 어떤 사물은 오직 그것을 소유할 때만, 즉 우리를 위한 자본으로 존재할 때 또는 우리 사용할 때라야 우리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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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일관, 작은 주제로 밀고가라

[글쓰기의 최전선]

몇 년 전 11월, 이 달이 가기 전에 꼭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난 종교가 없다. 낭만진리교리에 따른 것이다. 우천시 음주처럼 11월에 장기기증. 왠지 조화로워서 그랬는데 나의 사치가 무근거한 의식은 아니었나 보다. 천주교에서 11월이 위령성월이라고 한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달. 서울 합정동 절두산 성지로 취재를 가면서 알았다. 그곳은 순교성인 이외에 일반인의 납골당도 있다. (우리엄마도 여기에 계시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의 장소로 절두산 성지를 택한 것이다.  

글을 써야한다. 소재가 많다. 11월, 죽음, 절두산 성지, 일반신도 납골당 부활의 집 소개, 사람들이야기. 이것들을 버무려 원고를 써야 한다.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죽음이란 주제가 너무 크다. 어둡고 심오하고 방대하고 한편 진부하다. 자칫 추상으로 흐르기 쉽다. 절두산과 부활의 집이 어떤 곳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명료하게 말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슬프다 두렵다 등 감정을 뭉뚱그린다. 글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지기 딱 좋다.

욕심을 버리고 작게 시작하자.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하는 흐름이 있어야 독자의 주의가 흩어지지 않는다. 글에다가 수미일관한 통일성 부여하기. 이를 위해 글쓰기 전에 스스로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아야 한다. 소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적극 개입 아니면 관조) 어느 정도로 다루며 '어떤 점을 강조할 것인가?' 이 질문을 상기하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를 망치는 지름길은 ‘지금 여기서 몽땅 다’ 말하려는 것이다.  

글쓰기에 결정판은 없다. 자기 글이 결정판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완벽함에 대한 콤플렉스는 버려라. 누구도 무언가에 ‘대한’ 책이나 글을 쓸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고, 멜빌은 고래잡이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시간과 장소에 대한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만 썼다. 모든 글쓰기는 시작하기 전에 먼저 범위를 좁혀야 한다.
- 글쓰기 생각쓰기
 

절두산 취재의 경우라면 11월 죽음에 ‘대한’이야기가 아니라 ‘절두산 납골당에 온 사람들이 경험한 가족의 죽음’으로 주제를 좁혀야 한다. 가까운 사람을 먼저 보낸 경험을 녹여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절두산의 유래, 여기에 잠든 성인들, 부활의 집 이야기를 고루 담은 ‘절두산 가이드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작가의 과도한 개입으로 죽음에 심취한 '어느 염세주의자의 일기'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글의 분위기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를 한 곳으로 끌고 가는 힘이다. 이것은 뼈대나 구성보다 ‘전기자장력’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힘, 구심력이다. 구심력과 구성력은 다르다. 대개는 글쓰기에서 기-승-전-결이나 현상-원인-해결책 등 구성을 해놓고 글을 쓰라고 가르친다. 나는 그렇게 써본 적이 없다. 각자의 스타일인데, 뼈대를 짜놓으면 생각의 흐름을 미리 가둬두는 것 같아서 갑갑하다. 내 생각이 어디로 튈지,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는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구성력이든 구심력이든 각자에 맞게 택하되 ‘주제는 작게’ ‘하나의 흐름으로’ 밀고 나가자.

마지막으로 선물. 여행기 쓰는 법. 모르긴 해도 사람들은 여행기에서 글쓰기 결정판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래서 논점이탈, 주위산만의 오류가 흔히 발견된다. 온누리여행사 패키지를 요약한 듯한 나의 여행일지와 정보를 담은 파리의 가이드북을 만들려고 하면 글쓰기가 부담스럽고, 쓰고나면 장황하고, 읽는 사람도 재미없다. 명소에서 디카로 사진 찍듯이 전부 다 쓰려고 하지 말고 '내 인생의 한 컷'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세느강에서 본 것, 들은 것, 일어난 사건 하나'에서 출발하라. 내가 겪은 것 그 이후 나의 감각과 사유의 변화에 대해 써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크게 중요치 않다. 그 상황이 어떤 영향을 주어 지금의 나를 형성했느냐가 중요하다. 글쓰기는 거듭되는 자기갱신의 기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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