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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어느 면접관의 고백

 

마흔 넘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년 만이라 얼떨떨했다. 열 명 남짓 일하는 작은 비영리조직이라도 회사는 회사다. 출퇴근, 야근, 회식, 주간업무회의 등 온갖 직장의 관습을 익히느라 진땀 흘리며 늙은 신입사원노릇을 수행했다. 그런 내가 입사 4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면접관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비록 팀원을 한 명 두었지만 직함이 팀장이라서, 조직에서 나이가 많은 죄로 그리되었다. 자기를 신입으로 아는 나한테 면접관을 하라니 자아분열 돋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무실 테이블에는 서류심사를 앞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이백인분이 쌓여있었다. 저 존재의 아우성들, 사각형에 갇힌 면면들. 꼭 무슨 전단지 묶음 같았다. 귀해 보이지 않았다. 옆 자리 젊은 팀장은 일차 서류를 추렸다며 면접 대상자 여섯 명을 골라달라고 이력서 파일을 건넸다. 형광색 포스트잇과 함께.

밥을 먹고 쓰는 것./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 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오늘 밤에도/ 내 자랑을 겸손하게 해야 한다./ 혼자 추는 왈츠처럼, 시끄러운 팬터마임처럼 (-오은 이력서)

그 삶의 편철들을 차례로 넘겼다. 반짝이 스티커 같이 현란한 말들이 퍽이나 처량 맞게 느껴졌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각종 자격증, 현장 경험, 직무능력, 어학연수 등 여러모로 나보다 나은 실력과 경험을 갖춘 지원자도 눈에 들었다. 누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도 서류를 최대한 꼼꼼히 읽고 겨우 선별하고 면접채점표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하고 새로운 동료를 가까스로 맞았지만, 면접 스트레스가 컸다. 사람을 서류로 골라내는 거, 삼십 여분 대화로 평가하는 거, 오라 가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 먹고 살려면 자본가가 내놓은 조건에 굴복해야 하는 현실. 인간을 길들이고 왜소하게 만드는 데 면접은 무척 유용해보였다. 나는 면접을 보면서도 노동자의 위치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반년 후 상반기 공채 면접을 또 치렀다. 사람이 이렇게 무뎌지는가 싶게 두 번째라고 좀 덤덤했다. 서류를 보는 일은 덜 부대꼈다. 세 명 뽑기 위해 열 명을 면접했다. 이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괴로웠다. 나머지 여덟 명의 선량한 얼굴이 눈에 밟히고 곡진한 맹세의 말들이 귀에 울렸다.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얼마나 낙담할까.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당장 일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장기 취준생의 빈 하루는 또 무엇으로 채우려나. 자기비하에 빠진 건 아닐까.

기업은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지만 잘한다는 기준은 랜덤이다. 너무나 많은 관점과 이해가 얽혀있다. 산업화시대는 근면·성실이 정보화시대에는 창의·도전이 인재의 덕목이다. 지나치게 꼼꼼하고 사리분별 명확한 사람이 조직과 불화했을 경우, 후임자를 뽑는 면접에서는 부드러운 말투의 순종적인 유형이 동일한 조건이라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누가 좋음을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므로, 인재의 기준은 워낙 당대의 것이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나와 잠시 눈을 맞추었던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삶에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기분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처럼 얼결에 등 떠밀린 얼치기 면접관도 얼마든지 있으니 부디 기죽지 말라고.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