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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시세미나1 : 가재미 - 물렁물렁한 바퀴 되기


토요일 오후 6. 황금시간. 조직의 강제에서 놓여나는 자유시간. 가족에게 봉사하는 시간. 광고시장의 프라임 타임. 리모콘 운전하면서 시청자와 소비자 주체로 살아가는 시간. 존재증명을 위한 스펙을 쌓는 시간. 방황하는 시간. 나의 욕망과 본능대로 살고 싶지만 달리 방법을 몰라 어정쩡하게 흘려보내는 시간. 집회시간.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드는 시간. 어쨌거나 현대인의 자아의 활동력이 가장 왕성한 시간 

그 삶의 노른자위에서 시집을 편다는 것은, 느긋한 저항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일. 쓸 데 없는 짓을 행함으로써 쓸모 있음의 세상에 등지겠다는 것. 잠시나마 다른 삶의 시공간을 열어 밝히고 싶은 욕망. 내 삶의 촛불시위. 같이 모여서 둘러앉아 시집의 모서리를 부딪치며 마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안도현).  

글쓰기의 최전선에 시 읽기 수업이 있었다. 기형도를 읽었고, 김수영을 읽었다. 같은 시집을 읽고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는 그 시간. 위대한 문학평론가 김현이 일러주지 못했던 수많은 의미의 결이 살아났다. 눈물처럼 짭짤하고 초콜릿처럼 달았다. 시가. 이 고급한 오감만족을 매주 느낄 수 있기를 바랐고 꿈은 이루어졌다. 시 세미나 첫 날. 마침 가을이고 하필 비가 내린다. 근사한 창틀과 어둠이 내려앉고 흐릿한 조명이 있는 세미나실. 수줍게 모여든 사람들. 나는 간략히 발제문을 써왔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내 체험/감각에 대한 이의제기다'라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태준의 <가재미>를 읽었다 

시인이 시집을 낼 때 순서를 그냥 정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처음으로 정한 시라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제목이 뭔지...옆에 있는 한자는 몰라서 그냥 넘어갈게요.”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 / 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는 감추시게...’ 제목이 한자다. <思慕 - 물의 안쪽> 부끄럽게도 나는 이 한자를 사막으로 독음했다. 물의 안쪽이라는 부제 때문에 이겠거니 어림잡고 상형문자처럼 읽었다. 그런데 사모! 

조지훈의 사모.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유명한 시구의 그 사모.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함. 중대한 단서가 풀렸다. 시가 총체적으로 다가왔다.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인줄 알겠네요. 나를 내려놓고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주체의 소멸의지 같아요."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이 구절은 뭘까요.” “뼈가 있다는 것은 나와 의자에 경계처럼 구분이 생긴다는 거잖아요...”  



<극빈>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내게 없었다이 부분의 독해는 둘로 갈리었다. 내가 누구에게 연탄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과 내 삶이 쉬다갈 거처가 없었다는 한탄.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또 흔들렸다.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서 있다로 시작하는 <자루>의 낭독. “맹꽁이의 울음주머니도 자루네요.”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자기 몸에 자루가 들어있음을 알아차린다 

타이틀곡 <가재미> 가만히 적셔주는 시. 대상을 연인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사모곡. 건조한 아들이 읽는다. 이어달리기처럼 옆자리에서 <가재미3>를 읽겠다고 나선다. 엄마가 돌아가신 시골 빈집의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는 얘기다.고욤나무가 정말 작고 초라한 나무라서 쓸쓸한 서정에 어울리네요. 여기에 감나무가 있었으면...”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집에 오랜만에 갔더니 풀이 이만큼 자라있고 감나무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수확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도 너무 슬펐어요.” “그러네요. 풍요로우면 더 쓸쓸할 수도 있겠군요.” 시안에서 헤매고 생각과 생각 사이를 거니는 만큼 인식의 넓이는 확장됐다. 시는 시 밖으로 뻗어갔다.

<슬픈 샘이 하나 있다> 맹꽁이에서 매미로, <평상이 있는 국숫집>쯧쯧쯧쯧은 국수를 삶는 이야기로 <빈집의 약속>에서는 착한 사진사의 멍하게 살았던 고백에서 멍하게 산다는 것의 절절한 체험담으로, 개심사 지도 찾기로 흘러가고 <옥매미>중음체험으로 우리를 데려다놓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막히면 우리는 또 현직 국어선생님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해석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를 곱씹으며 무지를 깨달았다. '눈도 귀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면서 사람의 말에 점점점 몸이 기울었다. 우리는 단체로 '물렁물렁한 바퀴'가 되어 '찰라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