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미나 4-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올드걸의시집]

오후 6. 세미나실에 사람들 들고 나는 시간. 문학세미나가 끝나고 시세미나가 열린다. 방에서 나오던 가연이 카페 테이블 위 시집을 쥐어든다. “, 이거 멋지다.” 제목을 적겠다고 볼펜을 꺼내려다가 스마트폰으로 찍기로 했다. 옆에 있던 유정과 나는 얼결에 모델대오로 포즈를 취했다. 시집팔이소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매혹적인 언어의 조합을 팝니다. 

장석남의 것. 시세미나 시즌1 ‘올드걸의 시집열권을 선별하면서 끝까지 망설인 시집이다. 넣다가 뺐다가를 반복했다. 단 한 편의 시가 너무 아름다운데, 나머지는 미궁이다. 사실 그가 언어를 부리는 솜씨가 아주 빼어나거나 통찰이 남다르지는 않다. 근데 시집 전체에 긴장이 흐른다. 낡은 풍경을 심상하게 그리는데 이론상 쉬워야하는데, 의미가 모아지지 않고 미끄러진다. 바늘귀에 들어가지 못하는 실처럼 애가 탄다. 이성복의 몽환도 아니고 미래파의 분열도 아니고 이것은 대체 뭔가. 아랍어도 아닌데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나는 또 뭔가. 모국어권에서 일어나는 의미의 단절사태. 엄마가 자식의 말을 못 알아듣고 남편이 아내의 말을 못 알아듣듯이 나는 시인의 말을 모르는 거다. 그래서 끌렸다. 변태처럼. 시인이 감각하는 세계를 들춰보고 만져보고 싶었다. 나도 좀 보자 

첫 시. <옛 노트에서>는 시집 제목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구절이 나온다. 발제자단단이 골라왔다. 나에게도 특별한 시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말에 우리는 왜 집단적으로 반응하는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던 가슴 터지던 시절이 지나갔음을 느끼게 해주어서 좋았어요.” 나의 말. 불혹인가? 누군가의 물음. 미혹당하지 않음은 아니다. 그럼 애늙은이 같은 시인의 조로한 감성인가 민이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이고 시인은 그래서 그 옆에서 숨죽이고 있다. 

우리는 탐정으로 변해갔다. 앵두가 언제 익지? 6. 그럼 온갖 꽃과 열매가 만개하는 때다. 성하의 계절 이전. 시인은 낙엽처럼 그리움을 떼버리지 않았다. 끼몽이 정리했다. ‘간신히가 단서다. 시인의 가슴은 팝콘처럼 터지는데 뚜껑을 닫듯이 그리움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사탕 먹고 싶을 때 나는 사탕 안 먹을래. 이빨 썩으니까말하는 것처럼 시인은 너무도 그리워서, 그리움이 앵두처럼 영글어서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짐짓 정색발언 하는 거다. 내 마음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리움을 말려버린 떨궈버린 해탈과 무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앵두같은 그리움을, 무의식 언저리에 키우고 있어서 이 시가 그리도 좋았나보다 

<소나기> ‘머위밭을 한꺼번에 훑는/ 무수한 초조함들/ 처럼/ 이제 어디에라도/ 닿을 때가 되었는데/ 되었는데이 시를 읽은 혜진. 처음엔 좋았지만 다시 읽으니 별로라고 뾰로통하게 말했다. 장석남이 소나기를 일방적으로 대상화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유민이 그랬다. 문태준은 땅이 받아주어 빗소리가 난다고 했는데 장석남은 닿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고. 아주 가까이 몸을 대고 만물의 교통과 순환을 관찰하는 문태준과 저만치 서서 상하고 탈각되고 허허롭고 부유하는 것을 지켜보는 장석남. 시에서도 고백한다. ‘다시보리라/ 빈 대궁들과 함께 서서/ 구경꾼처럼/ 구경꾼처럼/ 눈에 담으리라

구경꾼의 세상 관람. ‘학림다방 창문가에 앉아’<구름의 아홉 번째 지나감> 멍하기 보기도 하고 공터에 안겼던 하늘싫증난 여자처럼 공토를 버리고’<공터> 달아나는 것을 본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로 희미한 옛일을 불러내거나 연못을 파서 지난 시간을 비춘다.’ 그것은 상한 세월. 희붐하고 부유하고 낡아빠진 어슴푸레한 이미지다. 시인의 살던 고향, 인천 <송학동1>의 비틀어진 계단마저도 출렁인다

 

계단만으로도 한동네가 되다니  

무릎만 남은 삶의
계단 끝마다 베고니아의 붉은 뜰이 위태롭게
뱃고동들을 받아먹고 있다

저 아래는 어디일까 뱃고동이 올라오는 그곳은
어느 황혼이 섭정하는 저녁의 나라일까 

무엇인가 막 쳐들어와서
꽉차서
사는 것의 쓸쓸함이 만조를 이룰 때
무엇인가 빠져나갈 것 많을 듯
가파름만으로도 한생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돌멩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이 시를 낭독한 유민은 국어교사다. “수업하러 4층까지 계단에 오를 때 숨이 차거든요. 뭐가 막 빠져나가는 느낌이에요.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꽉 찼는데 쓸쓸하고...혼자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특히 아침이면 더 그래요.”

어느 초임 교사의 아침처럼, 쓸쓸한 몇 가지 말들을 알았다. 세미나하면서 사전을 얼마나 찾아대는지 모른다. 시 읽기는 '집단번역 놀이'다. <격렬비열도>는 우리나라 최서단에 위치한 태안반도 섬이다. <다게레오타이프>1830년대의 최초의 사진술. 암호 같은 제목의 시 <한진여>가 있다. 한진중공업 자회사도 아니고 뭘까 싶었다. 한진은 대부도 언저리 지명이고 는 큰 바위 혹은 작은 섬을 뜻한다. 밀물일 때는 보이고 썰물일 때는 안 보이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큰 바위. 늘 살던 자리에 머문다면 놓치는 것이 많을지 모르겠다. 썰물일 때는 안 보이는 섬 같은 것들. 연못을 파지 않으면 담아낼 수 없는 그렁그렁한 풍경 같은 것들. 그렇다면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장석남여. 젖은 눈일 때는 보이고 마른 눈일 때는 안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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