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이전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당연했으나 지금은 상대방의 구두나 우산 값을 물어보는 것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사교상의 어떠한 이야깃거리에도 삶의 상황에 관한 테마, 돈이라는 테마가 어김없이 침입해 들어온다...마치 극장 안에 갇혀서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무대 위의 공연을 계속해서 봐야만 하고,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반복해서 사고와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일방통행로> 벤야민
저번 수업시간에 좀 웃겼다. <남성성과 젠더> 텍스트가 논문형식이라 좀 난해하다. 너나없이 어려웠다고들 말하면서 얘기가 시작됐는데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성역할에 따른 성차별- 젠더 이분법을 넘어서야한다는 이론적 논의는 어느새 '아침마당' 수준의 일상영역으로 급하강했다. 아기가 울 때 남자가 일어나야하느나 마느니, 설거지를 누가 하느니 마느니, 데이트 비용을 공평하게 내야하느니 마느니. 아무리 고상한 이론도 현실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20대의 데이트 문화였다. 술값을 안 내자니 쩨쩨해보이고 내자니 집에 걸어갈 일이 걱정이라는 남학생.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쓰는 것은 물질에 비례해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여학생. 이런저런 계산으로 인한 불화를 막고자 아예 공동명의의 통장을 개설해서 월수입에 비례해서 그 통장에서 데이트 비용을 충당한다는 커플까지.
"그럼 헤어질 땐 그돈 어떡해?" 다 쓸 때까지 만나던가, 나누던가, 다 줘버리고 헤어지던가 그런단다. 여러 경우가 가능했다. 이건 뭐, 결혼도 하기 전이구만 이혼 재산분할을 연상케했다. 젊은 날의 연애사건이 손익계산서 그려가며 거래되는 현실이 내겐 너무 쓸쓸하다. 늙은 이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나만 몰랐으려나. 암튼 그렇다면 그런 설움 없이 20대를 통과해서 다행이다. 정신적 피해나 물질적 손해는 조금도 안 보고 살려는 옹색한 마음이 인생의 가장 큰 손해라고 외치고싶다. 통큰- 접두사는 피자보다 사랑에 어울린다. 일상 곳곳에 도사리는 합리성의 함정. 무상급식 반대자들의 주장대로 잘 사는 집 아이까지 뭐하러 공짜로 밥 주냐는 말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그 계산에 사람은 없다. 인과관계와 개연성은 삶의 섬세한 결을 설명하지도 담아내지도 못한다. 존재론적 위계만 공고히할 뿐..
벤야민도 그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짧은 아포리즘 곳곳에서 '돈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모든 핵심적인 이해의 중심에 자리잡음'을 개탄한다. 그리고 이런 낭만적인 말도 한다. '극히 번잡한 한 구역, 몇 년 동안 피해왔던 가로망이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이사 온 순간 단숨에 훤히 보이게 되었다. 마치 그의 집 창문에 서치라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빛의 다발들로 주변 일대를 해부하는 것 같았다.'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통찰. 단숨에 환해지는 기적. 대책없이 사랑하면 눈이 밝아진다. 귀도 밝아져 음악이 몸에 가득찬다. 어쩔 줄 모르고 하루를 살면 마음이 깊어진다. 이것만큼 위대한 이익이 또 있을까. 십년 전, 훗날 오랜 사랑을 나누게될 벗을 대면한 날 그녀가 <미선이>를 선물로 주었다. 이 노래만 들으면 마음이 청신해지곤 했다. 거칠게 호흡하는 노래.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싫어하세요. 나를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