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易傳 1 / 이성복

[올드걸의시집]


며칠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눈물 흘리는 짐승들이
슬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기를 먹었습니다
넓적넓적 썰은 것을 구워먹으니 맛이 좋습니다 그날 아
침 처형당한 간첩의 시체라고 했어요 한참을 토하다 고개
들어보니 입가에 피범벅을 한 세상이 어그적어그적 고기
를 씹고 있었습니다

-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시장을 봤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동안 김치찌개와 계란후라이에 밥 먹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장바구니를 챙겼다. 사실 좀 덜먹을 참이었다. 부산을 댕겨오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강건너 불구경을 한 것 같았다. 그동안 돼지처럼 꼬박꼬박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기름진 육체에서 나태한 사고가 나온다. 비대해진 몸으로는 세상의 외침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나름의 위기의식. 한살림으로 현대백화점으로 내 자식 먹일 온갖 고가의 식재료를 사러 다니는 내가 낯설었다. 자책과 반성을 빙자한 게으름으로 이불에 몸을 말기를 삼일. 기초식량인 우유와 계란마저 동이났다. 한살림엘 갔다. 콩나물, 두부, 감자, 상추, 초복용 삼계탕, 오징어젓갈 등을 담았다.  소고기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냉동고 앞에 섰다. 문짝에 붙은 가격표를 들여다봤다. 서너가지 부위의 가격을 외울 무렵. 에잇. 일주일이라도 참자. 밖으로 나왔다.

옆가게가 정육점이다. '장조림 오늘 하루 특가' 형광색 안내문이 붙어있다. "어머니, 이것 좀 사가세요. 오늘 고기가 너무 좋네~이런 가격 또 안 나와요.' 꼭 나한테 그런 건 아닌데 치마끝을 붙잡힌다. 아들의 대사가 말풍선으로 뜬다. "엄마 요새 왜 장조림 안해주세요?" 그래. 아예 안 먹을 순 없고 점진적으로 줄이자. 값이 쌀 때 샀다가 나중에 해먹여야지. "한 근만 주세요." 넙적살 고깃덩이가 리얼했다. 도축과정이 영상지원됐다. 그 벌건 살덩이를 두부자르듯이 토막을 내는데 갑자기 토가 쏠렸다. 눈을 감았다. 그냥 내 처지가 한심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저녁반찬 하기 귀찮아서 차돌박이까지 샀다. 부산에서 보았던 이색조직. 혁명적육식동맹 깃발이 떠올랐다. 거기에 가입이라도 하고 먹을까 싶으니 웃음이 났다. 오만원이 넘게 나왔다. 카드에 사인을 하고 영수증을 받아서 황급히 나왔다. "저기요, 고기 가져가셔야지! 우리 먹으라고 사주시는 거에요? 잘 먹을게요." 푸줏간 총각이 너스레를 떤다. 옆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도 웃는다.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덜컹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손만 뻗어서 까만 봉지를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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