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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벚꽃 핀 술잔 / 함성호


마셔, 너 같은 년 처음 봐

이년아 치마 좀 내리고, 말끝마다

그렇지 않아요? 라는 말 좀 그만해

내가 왜 화대 내고 네년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나도 한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야

미친년

나도 생이 슬퍼서 우는 놈이야

니가 작분지 내가 작분지

술이나 쳐봐, 아까부터 자꾸 흐드러진 꽃잎만 술잔에 그득해

귀찮아 죽겠어, 입가에 묻은 꽃잎이나 털고 말해

꽃 다 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게

니는 니가 좀 따라 마셔

잔 비면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말고

술보다 독한 게 인생이라고?

뽕짝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술이나 쳐

또 봄이잖니

- 함성호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 , 문학과 지성사





지난 금요일 파티하쥐에서 인디밴드 네 팀이 출연했다. 홍대 두리반 주차장이 해방구가 됐다. 미니 락페의 열기. 오랜만에 잘 놀았다. '푼돈들' 사랑스럽다. 이름처럼 헐렁한 그룹이다. 기타 2. 베이스 1로 이뤄진 삼인조. 드럼도 없다. 사보 취재다니면서 만난 직장인 밴드 정도의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컨셉이 뚜렷하다. 자칭 '옛정서 발굴밴드'. 올드하다. 신파와 뽕끼가 좌르르 흐른다. 들기름처럼 느끼한데 엿가락처럼 착착 감긴다. 매력적이다. 그밤 이후, 계속 입에서 멜로디가 굴러다닌다.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결코 녹지 않는 싸구려 눈깔사탕의 위력. 로맨스 조의 보컬은 뼈 마디마디를 눌러준단 말이지. 몇달 전 연구실에서 '공공미술' 토론회 할 때 왔던 분이다. 미술도 하고 음악도 한다. 낭만종결자. 그날 발표할 때 옆에 앉은 이. 문화컨텐츠 기획자랑 연신 귓속말해댔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진짜 멋있어요." 그러게 말이다. 상상력의 과잉상태와 고급한 똘끼와 부족함 모르는 가난이 탐난다.
  
파티 뒷설거지로 새벽 3시 다 돼어 귀가했으며, 잠깐 자고 일어나서 글쓰기 수업에 갔는데 2시에 시작해서 7시 40분에 끝났다. 같은 분량의 강의안, 비슷한 구성의 수업인데 왜 이리 러닝타임이 길어지는지 미스테리다. 5시간 40분. 최고 기록. 피로회복 차원에서 카페모카와 아메리카노 2잔을 연거푸 마시고 생수 1통을 들이마신 나는 수업 중간에 오줌보가 터지려고 해서 뛰쳐나갔다. 요란한 마지막 수업. 다음주 합평 MT만 남았다. 배고파서 온몸이 아팠다. 친구들 여덟 명과 밥앞에 주저앉았다. 벽마다 달력그림이 걸렸고 일년내내 성탄전구가 깜빡이고 7080노래가 줄창 흐르는 '울엄마' 누군가 '엄마손'으로 착각했던 이름도 구슬픈 밥집. 밥 다 먹고 해방촌부터 서울역까지 걸었다. 한 30분 코스. 가로등불빛 쏟아지는 밤길. 구불구불 보도블럭길. 미개발 둘레길. 글쓰기수업 끝나면 토요일에 심심할 거 같아요. 누군가의 말에 미리 외롭다. 노래했다. '외로움 떨쳐 버리고 웃자 웃자..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수봉언니 애달븐 음성이 회초리같다. 그래. 뭐. 술보다 독한 인생 무슨 걱정이더냐. 뽕짝 흐르는 밤. 늦봄 맑은 밤. 근데 제목이 왜 '젊은'태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