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식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 루쉰에 빠지다

[행복한인터뷰]

서울메트로 4호선 수유역. 당고개행 열차 종착역 부근이다. 마을버스로 네다섯 정거장 더 들어간다. 횡단보도 앞에 꽃집이 반갑다. 노란 프리지어를 한 묶음 들고서 골목 안쪽 뻥튀기 가게를 기웃거린다. 온갖 종류의 옛날 과자와 추억의 난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주인을 부르자 아저씨가 어디선가 한달음에 달려온다. 아직은 CCTV가 아닌 불 꺼진 난로가 빈 가게를 지키는 동네, 한적한 주택가 지하 셋방에서 김호식은 ‘루쉰’을 기다리고 있다.  


김호식은 뇌병변1급 장애인이다. 학습활동보조인 노규호의 도움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책을 읽는다. 커다란 모니터에 스캔한 책 파일을 띄워놓고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날은 루쉰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제3장 ‘유화진 군을 기념하며’를 읽을 차례다. 낭독이 시작됐다.

루쉰 읽는 일요일, 구치소의 추억

‘...18일 아침, 나는 오전에 군중들이 정부청사 앞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오후에 비보가 날아왔다. 호위병들이 발포, 사상자가 수백이며, 유화진 군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이 소문이 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그들이 이다지도 비열하고 잔인할 줄을! 더구나 언제나 미소를 띠고 상냥하던 유화진 군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정부청사 앞에서 피를 흘렸다니!...정부는 명령을 내려, 그들을 <폭도>라 불렀다...’  

1926년 3월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루쉰의 피맺힌 글이다. 행간마다 비통함과 비장함이 자욱하다. 화면을 한참 응시하던 그가 더듬더듬 말문을 연다. “어떻게 보면 광주사태 같은 그런 류 (사건)같아요. 정부의 본색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장애인은 만날 그러죠.” 루쉰이 당국자들의 흉악스럽고 잔인스러움을 성토하는 대목에서, 그는 구속된 경험을 떠올렸다.  

월드컵 끝나고 축제 때다. 아마 장애인이동권 싸움일 거다. 김호식은 선전전을 나갔다. 전경들이 방패 세우고 사방을 막아 놓았다. 휠체어도 안 갖고 나갔는데 감옥으로 끌고 갔다. 잡아 가둬 놓고 하루 만에 풀려났다. 조사받을 때 어떻게 참가했느냐는 질문에 ‘인터넷 보고 왔다’고 답했다. 같이 붙잡힌 친구는 말을 못하니까 그냥 풀어주더란다. 어쨌거나 구치소의 추억은 냄새도 꿀꿀하고 별로 안 좋았다. “보리밥이랑 단무지 나오더라고요. 심지어 꽁보리밥.”  

"나는 가부장이다"

계속 읽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운 사실은, 중국 여성들이 수천 년 동안 갖가지 음모와 억압을 받았으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루쉰이 학살자 남성과 대조적으로 여성의 백절불굴의 기개에 탄복했다고 활동보조인은 요약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문득 궁금했다. 평소에도 남자보다 여자가 낫다고 생각하는지. 그러자 하회탈처럼 온 얼굴을 접어 웃으며 그가 눙친다. “저 평소에 가부장적이에요.” 

핸드드립의 커피처럼 오랜 뜸들임 끝에 한두 방울 씩 느릿느릿 떨어지는 그의 말에 서서히 취한다. 이어 속사포처럼 루쉰의 말이 떨어진다. ‘기어이 시위 지도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면, 단 두 가지 죄일 뿐이다. 청원이 유용하다고 여긴 것, 상대방을 너무 좋게 보았다는 것. 이 둘 뿐이다’ 애당초 당국에 청원시위가 통할 거라는 순진한 생각부터가 잘못이라고 호통 치는 루쉰. 김호식은 적극 동감한다.  

“이 글에 루쉰의 가치관이 잘 나타나는 거 같아요. 근데 진짜 싸울 때는 예의를 갖추지 말고 싸워야지 되는 거 같아요. 일상생활에서도 호의를 베풀면 더 큰 화를 당한다고 생각해요.” 자못 비장한 말투에다 핵심을 짚어내는 직관이 놀랍다. 도대체 어떤 경우 누구에게 그런 화를 입었을까 물었더니 이번에도 반전이다. “가게 집 주인이라든지.......”  

식인파티와 4대강

그의 요즘 사는 낙은 루쉰 읽기다. 소설 읽는 시간엔 예습까지 해놓았다는 후문이다. 사실 그동안은 미리 공부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다. 살림을 돕는 활동보조인은 나이가 오십이라서 눈이 안 좋다며 거절하고 젊은 사람들이 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귀찮다며 책을 안 읽어준다. 요즘은 책을 스캔한 파일로 한자 한자 짚어가며 스스로 본다. 그래서 인지 내용 이해가 빠르다. 무엇보다 글을 삶으로 읽어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저는 식인파티를 돕고있습니다’라는 루쉰 글에 대한 소감은 4대강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사람을 직접 먹어서 식인파티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식인파티를 하고 있는 거 같아요. 4대강 사업에 돈을 들이 붓는 것에 대해서 복지 예산 삭감해서 거기에다 다 집어넣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 하고 연관이 있을 거 같아요. 식인 파티라는 것이요.” 

다음 장 ‘앎은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루쉰에게 쓴 편지글이다. 여기에 루쉰은 ‘미래를 지나치게 밝게 본 잘못’이라는 답신을 썼다. 미래를 지나치게 밝게 생각하면 조그만 장애물을 만나도 곧 큰 실망을 한다, 그러니 생계를 도모하라, 당신이 영원히 몰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애인을 위로하고 굶기지 말라는 충고이다. 사상가의 혜안이 돋보이는 루쉰의 편지. 이것을 그는 시대를 초월한 전언으로 수신한다.

“장애인 운동에서도 그런 거 같아요. 아주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시간이 가면서 퇴색된다고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면서 사람들이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한참 후) 갈 데가 있는 사람은 조금 하다가 말고, 갈 데가 없는 사람은 붙어 있는 거 같아요.”  

우화에 진실을 포장해 둔 니체

김호식은 서른 넘어 노들야학에 들어갔다. 술친구가 있었다. 그 놈이 어디 다니기 시작한 뒤로 복지관에 안 나왔다. 좋은 데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봉고차로 다녔다. 하교 때 그놈과 술 마시는 게 좋았다. 그 친구는 지금 아프다. 시설에 있다. 충북음성 꽃동네. 멀어서 자주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 친구는 멀리 갔어도, 그는 노들야학을 계속 다닌다. 니체와 루쉰을 만나고 새 친구도 사귀었다.  

그가 잘하는 과목은 과학과 수학이다. 어려운 과목은 한글. 복지관은 물론이요 오뚝이 글방을 다닐 때부터 20년 동안 읽고 쓰는 걸 배웠는데 잘 안 된다. “한글 일고 쓰기가 죽어도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그 다음 단계가 문제였다. 스스로 천천히 읽긴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다른 사람이 읽어주고 이해하는 게 빠르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철학이다. 그가 있는 불수레반은 국어 대신 철학을 공부한다. 시작은 재작년쯤이다. “고병권선생님이 오셔갖고 삶은 이렇게 살아야지 된다고 그러셔서 좀 감명을 받았다.” 내용은 생각이 안 난다. 철학이 좋긴 한데 어렵다. 너무 머리를 써야 되니까. 가장 어려웠던 건 푸코, 가장 재밌게 공부한 시간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화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것들이 재밌었다. “진실을 포장해놨다고 할까.” 

“철학공부하고 나서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그냥 지나가게 되는 것도 좀 생각이 많아졌어요. 예를 들면 원전사고 같은 거. 정부에서는 우리나라에 피해가 없을 거라고 하는데 피해가 왜 없겠어요. 그게. 지구에 어디가 구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구에서 방사능이 퍼져나가는데 피해가 없을 수가 없죠. 바람이 돌고 도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달라졌다. 엄마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에게 ‘빨갱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도 빨갱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다. 나는 “약간의 진보적 성향”이다. 그럼 고병권선생님이 빨갱이인가? 아니다. “아주 진보적 성향”이다. 혹시 김일성이 빨갱이일까? “김일성이 세습정치 하는데 빨갱이 아니죠. 무슨 빨갱이가 세습정치를 해요.” 우문에 현답을 날리는 그. 이렇듯 읽고 쓰기에 서툰 그가 말하고 듣기 등 인식능력이 발달한 비결은 ‘할머니’ 덕분이다.

할머니 슬하 20년 ‘듣기완전정복’

김호식은 삼남매의 막내다. 어릴 때 어머니는 공장에 일 나가고 세운상가 경비였던 아버지는 격일제로 출근했다. 형과 누나가 학교를 가면 집에서 할머니와 지냈다. 텅 빈 집에는 늘 할머니 친구들이 놀러왔다. 가끔씩 소주나 막걸리를 사서 드시거나 십 원짜리 내기 화투를 쳤다. 주로는 며느리 흉을 봤다. 그 자리에 없는 친구들 흉을 보기도 했다. 일곱 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열아홉 살에 복지관 나가기 전까지, 20여 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서 듣는 걸 잘한다.”

제도교육을 받는 대신 긴 하루, 해질녘까지 라디오처럼 들려오는 할머니의 수다를 들으며 성장한 그에게 삶과 앎은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블록 갖고 놀던 순둥이 호식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조금 행패 아닌 행패도 부렸다”. 그 때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던 터라 집 밖에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놀렸다.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따라다녔다. 화가 나면 그 녀석들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 놓았다. 힘이 좋았던지 5학년 6학년 애들과도 거뜬히 붙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지금 가족과 따로 산다. 5년 전 독립했다. 해가 들지 않는 지하생활자 신세다. 하지만 성격이 낙천적이라서 우울할 때는 별로 없다. 가끔 형을 생각하면 그게 좀 화가 치밀 뿐. 형과는 일곱 살 터울이다. 머리통 크고부터 계속 사이가 안 좋았다. 사실 독립한 이유도 형 때문, 아니 형의 술버릇 때문이다. 김호식은 할 말 많다.  

멈추지 않는 웃음, 나오지 않는 눈물

“술 먹고 들어오면 자꾸 시비를 걸어요. 이리 와 보라고 그러고. 두들겨 패기나 하면 다행이에요. 바른 말을 하면 또 때려요. 엄마가 너희들 사이에서 못 살겠다고 판단했는지 저를 내보내더라고요. 몇 개월 전에 대판 싸우고 서로 막말 나오고. 두들겨 패고. 지금까지 얘기도 안 해요. 쳐다보지도 않고. (제가) 멀쩡해서 도망갔으면 덜 맞았을 거예요. 서로 간에 쌓인 게 있는 거죠. (형이) 장가를 못 가서 그 나이 먹도록 왜 장가도 못가느냐고 했더니 나 때문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장가를 가지 말라고 그랬어.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그랬어.” 

뇌병변 장애인인 그는 웃음을 누르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병적으로 깔깔댄다.” 형이 그걸 아주 싫어한다. 왜 한번 웃으면 멈춰지질 않는지 이해하지 못 한다. 술 먹고 들어오면 잡는다. 앞에 앉혀놓고 훈계한다. “나의 가치관 하고 안 맞아서 말하면 또 (주먹을 불끈 쥐며) 날아온다. 사람이 나이가 먹었으면 이해심이 있어야지 되는 건데 이해를 안 해준다.” 그런 형과 안 만나니까 좀 살만 할까. “그렇지도 않아요. 형제간에 안 보는 게 좋지는 않죠.”  

루쉰은 눈물이 없는 성격이라 했다. 김호식도 그렇다. 웃음은 넘치고 눈물은 말랐다. 어렸을 때는 맞으면 울기도 했으나 열다섯 살부터 눈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소리를 지른다. 열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도 눈물이 안 나왔다. 아빠 돌아가시고 7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삼우제 끝나고 엄마가 말하셨다. “울지도 않고 지독한 놈이다” 물론 엄마는 안다. 그의 눈물샘이 메말랐다는 것을.  

결혼하고 싶다

김호식은 기초수급생활자다. 수입원은 정부보조금 50만원과 노들야학 장학금 6만원이 전부다. 그중 20만원은 적금 붓고 10만원은 세금 나가고 7만원은 아이패드 할부금을 낸다. 월 생활비 20만원. 거의 술값이다. 매일 1병씩 마신다. 안주는 돈 없으면 오징어, 주머니가 넉넉할 때는 짬뽕이나 오징어볶음이다. 나 홀로 술상을 벌인다. 집이 지하라서 휠체어가 드나들지 못한다. 친구들 부르고 싶어도 마음뿐이다. 곧 상계동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친구들과의 왕래, 우정의 향연을 위해.  

올해로 서른아홉 살. 어쩌면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술친구보다 여자친구가 더 필요한 나이다. “결혼을 하고는 싶은데 주변머리가 없어서” 못하고 있다. 연애경험이 아직 없다. “서로가 서로한테 끌려야지 좋아한다고 볼 수 있는 건데 그런 적이 없다고 봐야한다.” 이상형은 “내가 쾌활하니까 조용한 사람도 괜찮을 거 같다.”  

지난 3월 19일에는 노들야학 캠퍼스 커플이 탄생했다. 상연군과 정란양은 대학로에서 멋진 결혼식을 치렀다. 그는 “가지도 않았다.” 부러워서? “약간 그런 것도 있고. 솔직히 얘길 하자면 약간 그런 게 많다!” 하지만 루쉰의 말대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은 있다.’ ‘독사처럼 칭칭 감겨드는 사랑’이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욕먹을 말만 하는 스피노자

그는 작년까지 노들야학 불수레반 반장을 맡았다. 올해 그만두었다. “나는 완장이 싫은 사람이에요.” 완장을 차면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다. 막내라서 그런지 책임을 싫어한다고. 노들야학에서는 반장이 할 일이 많은 걸까 묻자 재빠르게 답한다. “없어요.” 돈이나 걷고 그러는데 그마저도 싫단다. 어쨌거나 요즘 그는 계급장 떼고 철학한다.  

이번 학기부터 스피노자를 시작했다. 새로운 철학자를 배우는 그는 역시나 날카로운 평가를 곁들인다. “그 시대에 욕먹을 소리만 계속 해요. <윤리학> 그 책. 하느님 창조설을 주장한 사회에서 이 지구 만물이 신이라고 한 것은 죽으려고 하지 않으면(웃음)......그 시대 때는 감옥도 갈 수 있었을 얘기 아닌가요.”  

스피노자 철학의 반시대성에 이어 소박한 일상도 언급한다. “그 시대 때는 안경 가는 게 전문직이었는데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고 친구들이랑 모여서 맥주나 한잔 정도 마시고. 굉장히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점.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벌고요.” 그런 스피노자의 삶을 동경하는 건 아니다. “내가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좋아보이진 않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그럴 뿐. 

불온한 장애인의 위험한 책

수시로 안면근육이 뒤틀리고 아이를 낳듯 힘겹게 마디마디 말을 낳는 그. 철학하는 장애인의 불온성을 여지없이 보여준 김호식은 대화 세 시간을 훌쩍 넘기자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입가엔 하얀 분비물이 고였다. 그럼에도 메마른 사막을 뚫듯 말, 말, 말이 꽃핀다. “언어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게 더 큰 거 같아요.” “글을 써서 뒤집어 놓는 게 더 큰 거 같아요.” 연거푸 같은 말을 반복한다. 니체, 루쉰, 스피노자까지. 이들의 전복적 언어에 영감을 받은 걸까. 그 역시 ‘위험한 책’을 쓸 계획이다.

“할머니한테 옛날 얘기 들었던 것들. 승냥이 얘기나 도깨비 얘기를 엮어보고 싶어요. 작가는 맞는데 동화는 아니에요. 스릴러. 그런 거 한번 해보고 싶어요. 책 한권 정도 쓰고 싶어요. 늘 생각은 하고 있어요. 구미호 얘긴 많아도 승냥이 얘긴 별로 없는 거 같아서요.”

- 위클리수유너머 전선인터뷰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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