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사적소유 그리고 존재의 빈곤

[스피노자맑스]

* 소외와 사적 소유  

<경제학-철학 수고>는 경제적 개념(사적 소유/노동/자본/토지)과 철학적 개념(소외)을 절묘하게 엮은 대단한 역작이다. 맑스는 과학은 발생을 설명해야 한다고 봤다. 즉 무엇이 어떻게 산출됐는가를 따지고 든다. 국민경제학은 사적소유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에 대한 개념적 해명은 없다. 왜 어디서 ‘사적 소유’가 발생했는가 묻지 않는다는 것. 맑스는 사적소유를 전제가 아닌 산출물로 다뤄야한다고 보았다. 심연을 파헤쳐 근거의 근거없음을 폭로하는 이 같은 작업은 니체의 계보학 작업과 유사하다.  

“노동자는 부를 보다 많이 생산할수록 더 가난해 진다.” 이 역설적인 사실에서 맑스는 출발한다. 사물 세계에서 가치증식이 이루어질수록 인간세계의 가치절하가 비례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 헤겔의 철학적 개념 ‘소외’로서 포착한다. 소외란 무엇인가. 본래의 소유자와 소유물이 분리되어 소유자에 대해 외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맑스는 노동하는 인간이 경험하는 소외를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지적한다.

1.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생산물이 생산자에 대립해서 낯선 존재로 나타나는 것.
2. 생산행위 자체의 소외. 생산물의 외화는 사실상 생산 자체의 외화가 요약된 것에 불과하다. 활동 자체가 그 주체로부터 분리된다.  

“노동자는 그의 노동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며, 자유로운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고행으로서 육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그의 정신을 파멸시킨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과 함께 있다고 느낀다.”  

3. 유적 본질의 소외.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서 유적 성격을 소외시킨다. 유적성격은 자기로부터 분리가 가능해 세계를 볼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도 소외된 노동에서는 인간의 유적 성격, 즉 자유로운 활동을 오로지 육체적 실존(동물적 삶)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4. 인간의 소외, 인간만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낯선 힘이다. 인간이 빼앗기는 것은 고스란히 다른 인간에게로 간다. 소외의 문제란 신학이나 종교, 철학의 문제이기 전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 즉 사회의 문제다.  

소외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 능력의 쇠퇴와 인간 욕망의 협소화(천박화)와 다름 아니다. 이처럼 소외된 노동, 외화된 노동의 필연적 귀결은 사적소유다. 사적소유 때문에 소외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소외된 노동의 결과가 사적소유 생겨난다. 

* 소외된 노동 극복  

인간의 사회적 현존재로서의 회귀이다. 인간은 개인일 때조차 총제적으로 존재한다. 사적 소유의 세계에서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감각들 대신에 내가 갖고 있다는 감각이 근본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적 소유를 지양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적 감각들과 속성들을 해방하는 일이고 다른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욕망하기 전에 그것을 욕망하는 눈을 바꾸는 것이다. 공산주의란 감성의 혁명적 전환을 뜻한다.  

오감의 형성은 지금까지 세계사 전체의 노동이다. 조야한 실제적 욕구에 붙박인 감각은 역시 제한적 감각만을 가진다. 근심에 가득찬 궁핍한 인간은 어떤 훌륭한 연극에 대해서도 아무런 감각을 갖지 않고, 광물상인은 단지 광물의 상업적 가치만을 볼 뿐이며, 광물의 아름다움이나 그 특유한 본성은 보지 않는다. 소외된 노동이 지배하는 곳에서 경제적 빈곤보다 더 근본적인 존재의 빈곤이다. 소외의 지양은 결국 인간적 감각의 창조이다. 가난한 자는 세계가 빈곤한 자다.  

"인간은 인간과 직접 관계를 맺는다. 매개(돈)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전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하고만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네가 사랑을 알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네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네 생활 표현을 통해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네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 조야한 공산주의  

맑스는 ‘경철수고’에서 공산주의를 보편적 사적소유라고 말한다. 사적 소유를 단지 외양으로만 판단해서 폐지하려 들 경우 우리는 조야한 공산주의가 부딪힌 문제에 빠져든다는 것. “조야한 공산주의는 지양된 사적 소유의 적극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보편적 사적 소유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이다.” 사적 소유를 공동소유로 전환함으로써 사적소유를 보편화하는 것은 노동자를 지양하지 않고 마치 모든 인간들에게 확장하는 것과 같다고 봤다.

(고병권샘과 공부한 내용 일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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