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쉼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때로 높은음자리표도 필요하다. 날이면 날마다 고시생처럼 빼곡한 문자의 행렬 따라 뚜벅뚜벅 걷고 있는 그들에게 초대권 두 장을 내밀었다. “우리 잠시 방향을 틀어 오선지의 물결 위로 떠나지 않을래요” 춘삼월 첫째 일요일, 날짜도 단아한 3월 7일. 안치환 새봄 콘서트 마지막 날. 우리는 편집회의를 부랴부랴 마치고 출발했다. 백목련보다 먼저 봄소식을 물고 온 안치환을 만나기 위해.
“아, 공연 온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G가 들떠 말했다. “집회도 아니고 안치환 노래를 콘서트에서 듣다니 왠지 어색한 걸~ 기대된다” P가 맞장구친다. 오색 조명이 햇살만큼 포근하고 공연장이 카페만큼 편안한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넣고 콘솔박스에서 음향팀이 틀어주는 ‘앞저트’ 음악에 빠져들었다.
“아, 이 노래 잘 들어봐요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가사 참 좋죠?”
<풍경달다>라는 정호승 시에 곡을 붙인 노래라고 해설을 곁들였다. G와 P는 이 곡의 운율에서 예전에 들었던 민중가요가 생각난다면서 가사를 흥얼흥얼 맞춰보더니만 G가 “나는 왜 이런 걸 여태 기억하고 있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혹한 시절, 연대 노천극장에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던 안치환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올드보이스앤걸은 몸으로 익힌 노래의 위력을 실감하며 키득키득 고개 숙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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