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집에 술 익거든 / 김육 '백년덧 시름잊을 일을'

[올드걸의시집]

    



    자네집에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옵네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 김육 (1580∼1658)





삼일동안 술을 연구했다. 전통주에 대한 원고 때문이다. 인터넷 자료도 찾고 서점에 가서 책도 보았다. 사실 난 사람을 만나서 필을 받아야 원고를 신나게 쓰고, 책상에 앉아서 자료 찾아 글 쓰는 건 좀 괴로워하는 편인데 이번엔 즐거웠다.  한번 마시면 맛이 독특해 못 일어난다는 앉은뱅이술 한산 소곡주, 빛깔이 고와 눈이 먼저 취한다는 진도 홍주, 배꽃처럼 뽀얗고 융단처럼 보드라운 이화주. 석잔에 5리를 못간다는 면천 두견주 등등. 아주 군침을 꼴깍 삼켜가면서 썼다. 탈고를 하고나니 취한다. 술도 안 마시고 취하는 게 아까워서 아쉬운대로 복분자주 한사발 마시고 있다. 술과 관련된 좋은 글이 무척 많았다. 우리 조상은 제사나 경조사에 집에서 직접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였다. 전국 방방곡곡의 술 익는 마을화. 그러니 술 익으면 벗을 불러 함께 마시고 벗은 꽃 피었다고 불러준다는 정겨운 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술 한잔 앞에 두고 백년 동안 시름 잊을 일까지 의논까지 한단다. 하루만 시름을 잊어도 좋은데 백년동안이라니. 술마시면 이래서 좋다. 마음이 커지고 대인배 모드 되는 것. 영원을 약속하는 용기. 술과 풍류는 같이 간다.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마음의 리듬을 맞추는 것이 풍류다. 한 자락 자유만 있다면  스치는 봄바람에서도 풍류를 지어낼 수 있다고 정약용은 말했다. '때론 가난하고 때론 고달프다 해도 풍류를 잃지 않음은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했다. 매화가 꽃망울 터뜨리는 것에도, 농염한 달빛에도, 도화 흩날리고 녹음이 퍼지는 것에도 응하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고 자연에 대한 도리다. 주선으로 유명한 이백은 '월하독주'에서 술 석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술 한말이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 노래했다. 홀로든 무리든 술과 함께 하면 지구가 다 술상이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는 '풍류법칙'에 따라 추석에는 달빛 받아 진한 술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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