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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또 비가오면 / 이성복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 이성복 시집 <남해금산>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