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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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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 교수 - 한국전쟁에 한국군위안부 있다 과거의 풍경들이 솟아올라 하나 둘 섬을 만든다 - 최영미 중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5일까지, 그는 누구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한성대학교 연구동 805호에는 방송사 카메라가 찾아와 전쟁과 분단을 물었다. 각종 학술행사와 원고청탁이 밀려왔다.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을 전공한 학자는 많지만 젠더(gender) 관점의 평화 연구자로서 김귀옥 교수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한반도 분단 역사에서 민중, 여성이 당한 역사적 고통을 집중 연구해 남성중심의 기성 정치사에 균형을 잡아주었다. 그동안 그 실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북파공작원과 민간인 납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월간 지와 등에 기고해 주목을 끌었다. 특히 지난 2002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5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심포지움'에..
류춘수 건축가 - 사람과 공간을 향한 몰입 그의 머릿속에는 사람이 산다. 들판에서 연을 날리며 뛰노는 코흘리개부터 호텔의 연회장을 향하는 기업 총수까지. 그리고 그들을 향한 오랜 관찰과 성찰은 삶 속에 응축되어 예술의 힘으로 폭발하곤 한다. 건축계의 거장 류춘수, 그가 밝히는 성공의 비결은 ‘사람과 공간을 향한 몰입’이다. 건축, 과학과 예술의 조화 온 세계가 월드컵의 열기로 달아오를 때마다 그의 이름이 회자되곤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전이 치러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설계자 류춘수다. 하지만 월드컵 이전부터 그는 이름난 건축가였다. 1992년에는 배우 안성기보다 먼저 커피 광고모델로 TV에 출연해 부드러운 남자의 면모를 선보였다. 중국 해남시 868타워 국제 현상설계에 당선된 건축가라는 타이틀과 ‘잊지 못할 순간’이라는 자막이 흘렀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대표 - "노숙인, 인권과 복지의 그물망될 것" 월드컵 개최와 노숙인 추방은 동시에 일어난다. 한강의 기적과 판자촌 철거가 그랬듯이. 잔치가 성대할수록 출혈도 크다. 삶의 자리에서 내몰린 도시빈민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이를 군부독재 시절엔 '빈민운동'이라 불렀다. 반정부세력이었다. 21세기에는 '빈곤퇴치운동'이다. 나라에서 권장한다. 기업엔 사회공헌팀이 가동되고 지자체가 앞장선다. 기부와 봉사로 종교인은 건물을 세우고 연예인은 이름을 얻는다. 감동한 시민들도 NGO단체에 가입하고 나눔 행렬에 동참한다. 최대다수의 최대선행. 자본이 몸집을 불리면서 자선의 규모가 늘고, 빈민의 숫자도 증가했다. 거리로 고시촌으로 PC방으로 집 없이 떠도는 극빈자들의 질곡은 더 깊어졌다. 바로 그곳, 볕이 들지 않는 빈곤의 최전선에 이동현 홈리스행동 대표가 있..
김선주 언론인 -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몽테뉴는 성찰의 삶을 선택했으며 '자유인'으로 남고자 했다 권력의 은총을 받는 순간 자유롭게 회의할 수 있는 인간정신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SJ워너비 유독 춥던 지난 겨울날, 아침 댓바람부터 선배네 갔습니다. 선배가 커피물을 올리는 동안 저는 식탁에서 신문을 뒤적거렸지요. 김선주선생님 칼럼이 있었어요. 한달음에 읽고는 중얼거렸습니다. “김선주선생님은 최고의 글쟁이야. 술술 읽히고 핵심이 명료하잖아. 절밥 같이 담백한 외유내강 글쓰기. 아, 정말 닮고 싶어” 20년 논술교사로 높은 주가를 올리는 선배는 제 말에 열렬히 동조했습니다. 암튼 말에는 실행의 의미가 있나봅니다. 평소에 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터놓고 나자 김선주선생님은 그날로 제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김선주선생님의 책이나 그 흔한 인터뷰..
김조광수 게이활동가 - 동성연애, 그 쏠쏠함에 대하여 김조광수는 제작자 겸 감독이다.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정치색이 강한 16mm 단편영화를 만들다가 1999년 기획과 홍보를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청년필름을 설립해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2007년 커밍아웃 이후에는 등 퀴어영화 감독으로도 나섰다. 그 밖에 각종 동성애 운동을 주도해온 인권활동가이다. 꿋꿋한 소신과 말랑한 감성, 꽃무늬 셔츠를 너끈히 소화하는 곱상한 외모와 자아 검열을 거치지 않은 수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덕에 마니아층을 거느렸다. 불편한 연애계의 아이콘 김조광수. 그에게 요청했다. 진부한 '동성애' 담론이 아닌 발랄한 '동성연애' 실화를 들려달라고. 그러니까, 동성애를 논할 때 흔히 반복되는 동일화 기제,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르지 않아요. 소수자의 사랑도 인정해주세요’ 라는 방..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 - 강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내가 짝사랑이란 의미를 배운 것은 사람보다 강이 먼저였습니다.” 백발성성한 그가 낙동강에 애틋한 눈길을 던진다. 하지만 짝사랑의 진짜 불행은 만나고 싶을 때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의 짝사랑은 복되었다. 언제 찾아가도 낙동강은 옥빛 물결 넘실대며 너른 품으로 맞아주었으니까. 그렇게 낙동강 1300리 물길에 ‘그 집 앞’ 드나들듯 하기를 36년 세월.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1,400회가 넘는 낙동강답사와 800회 가까운 유역주민들과의 사랑방 좌담회를 갖는 등 낙동강 지키기에 앞장섰다. 30년 전엔 낙동강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고 요즘은 강의 신음소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그. 김상화 씨는 현재 낙동강공동체 대표이자 운하백지화국민운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철새, 유역주민, 시인…강에 기댄 삶 ..
소모뚜 이주노동자 - 스탑크랙다운, 끝나지 않는 노래 버마의 어느 작은 마을, 부챗살로 퍼지던 햇살이 몸을 접는 시간이면 기타를 멘 청년들이 하나둘 거리로 흘러나온다. 저마다 벤치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딩딩 기타를 매만진다. 가슴에 고이 접어두었던 오선지가 서서히 펴지고 감미로운 선율이 날개 달고 훨훨 허공으로 떼 지어 난다. 부르고 또 부르고, 여기서 한 소절 저기서 한 소절. 섬처럼 떨어져 노래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따로 또 같이 화음을 맞춘다. 어스름 밤공기 타고 골목골목 휘돌아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청량한 바람 되어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 소모뚜, 노래하다 “버마 젊은이들은 기본적으로 기타를 다룰 줄 알고 노래도 잘해요. 밤새 기타를 쳐도 아무도 시끄럽다고 얼굴 붉히거나 신고하지 않아요. 거리를 지나는 행상은 노래를 불러줘서 덕분에 쉴 수..
김세진 배구해설가 - 사는 거 같아 스포츠가 좋다 94년 이후 배구코트를 평정하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꽃미남스타 김세진. 온갖 진기록으로 뜨겁게 빛났던 21년 선수생활을 접은 그는, 현재 KBS N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한다. 최고선수 출신답게 날카로운 해설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한다. “사는 거 같아 스포츠가 좋다”는 김세진의 끝나지 않은 배구사랑이야기를 들었다. 배구스타에서 해설가로 ‘김세진의 즐거운 배구인생’ 파란 하늘에 담근 것 같은 물빛 셔츠에 정열의 빨간 카디건을 걸친 그가 저만치서 다가온다. 포토샵으로 늘려놓은 듯 비현실적인 키에 ‘주먹 만 한’ 얼굴이다. 코트를 휘저으며 대포 같은 스파이클 때리고 고른 치열 드러나게 좋아라 웃던 그 모습 그대로다. 이제는 민소매 유니폼 대신 패셔너블한 젊은 해설가로 돌아와 카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