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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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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쓰다 *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나는 사람과 관계맺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다. 연연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기를 희망한다. 그리 사는 영혼이 문득 가여운 거다. 연구실에서 집에 올 때 연대앞에서 버스를 갈아탄다. 버스도착시간 전광판에 15분. 이런 숫자가 새겨져있으면 황당스럽다. 15분을 정류장 의자에 구겨져서 기다릴 때도 있지만 주로 걷는다. 어제도 걸었다. 어둑신한 길을 걸으면서 번잡스러운 생에서 빠져나온다. 안간힘 쓰던 지난 2주의 시간들. 무엇을 연연하는가. 손에서 빠져나갈세라 움켜쥐는가. 그런 집착들이 통째로 무쓸모하..
잘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서 좋겠다." 언제부턴가 꽤나 자주 듣는 말이다. 며칠 전에도 들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를 보고 연구실 시 세미나에서 이상시집을 읽고,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선배를 잠깐 만나서 영화 얘기를 - 황금사자상은 김기덕이 탈 것이 분명해보인다고 대감동을 전했더니 나한테 그런 거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서 좋겠다. 니가 부럽다. 영화 보고 시 읽고 좋은 사람 만나고. 남들이 보면 윤택하고 풍부해보이는 일상이다. 보이는 진실도 있지만 그런데 이렇게 살기 위해서 포기한 것도 있다. 경제적인 안정. 정규직의 안락. 일상의 고요 등등은 반납했다. 나는 매우 잘 놀지만, 늘 불안과 대결하면서 논다. 도봉여성센터에서 글쓰기수업을 시작했다. 글쓰기수업 같이 했던 민우회 후배가 소개해줘서 하게..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 '견딜 수 없네' 부분 잔인한 8월이 갔다. 삶 앞에서 엄살부리지 않는 사람 되려고 노력한다. 특히 글이 엄살의 수단이 되면 안될 터이다. 그치만 8월이 잔인했던 이유 몇 가지를 떠올리면 나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더웠다. 사고가 중지되니 두려웠다.엄마 기일. 엄마 제사가 되면 아직도 슬프다. 이사준비. 이십평 전세생활 청산하고 넓혀서 월세로 갈 집을 구했다. 사보일. 월세 마련을 위해 복직했다. 한달에 두 건만 하기로 했다. 독서. 르포 글쓰기 수업 준비 때문에 읽은 교재가 내용이 혹독했다. 술. 마음이 허해서 술을 자주 마셨더니 피곤했다. 8월 말에 소주와 와인이라는 악마의 조합으로 과음한 다음 ..
봄날은 간다 가끔 듣고 싶은 옛가요를 검색하면 블로그, 카페 등이 주르륵 나오는데 들어가보면 정말이지 비슷하다. 메인화면에는 등산복 입은 독사진이 있거나 꽃사진, 나무사진. 무슨 산악회, 초등학교 동창회가 대다수. 추억을 뜯어먹고 사는 연령대가 많구나 나도 저들과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데.. 어느 날인가 어떤 노래를 검색어에 넣고 클릭했더니 '중년의 행복방'이라는 카페가 나왔다. 순간 어떤 당혹감이 밀려왔다. '행복한 중년방'이었으면 덜 애잔했을 텐데. 행복한 중년들이 모인 방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중년의 행복방은 다르다. 중년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목적성을 갖고 모였으며, 그 일환으로 추억의 노래를 듣는가 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메뉴얼이 총체적으로 빈약하다..
사랑밖엔 난 몰라 - 두통과 사랑 일년에 서너 번 정도 두통이 찾아온다. 주로는 과음으로 인한 후유증이고 가끔 체한다. 그 괴로움은 생각만해도 미칠 것 같다. 만화주인공처럼 머리카락에서 번갯불 뻗친다. 삼일 전부터 두통이 습격했다. 나 술도 안 마시고 체하지도 않았는데 이런적 처음이다. 집에 원두가 똑 떨어졌다. 혹시 카페인 부족으로 정신이 깨어나지 않는 건가 싶어 달려나가 그 뜨거운 커피 드링킹해보아도 좀체로 가라앉지 않았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프다고 말할 때, 그 지끈지끈의 전격 체험. 그렇게 머리가 아프니까 얼굴에 웃음 사라지고 표정 일그러진다. 엘리베이터 얼굴보고 깜짝 놀랐다. 아우. 저 퀘퀘한 여자가 나야? -.-; 누가 말시켰는데 기운없이 대답하고 대화를 잇지 못해 미안했다. 생이 통째로 우울해졌다. 늘 만성두통과 소화불량으로..
muse / uprising * 음악듣다가 시를 읽으면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떤 정서의 파도가 밀려와서 나를 덮치고 사라진다. 무섭고 신나고 떨리고 놀라고 외롭고. 난 그 때 온몸으로 번지는 감각의 파장이 좋다. 커다란 순수성으로부터 조롱당하는 느낌. 그래야 하는데 오늘 시는 실패다. 진부한 주제, 불확실한 생각들...발만 적시고 온 듯하다.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끔찍한 재능'이라고 니체라면 말했겠지. 삶을 뚫고 시가 나오는지 시를 위해 삶을 대여하는지. 그 차이일까. 어쨌거나 음악의 강력한 위로가 필요한 밤. 오랜만에 뮤즈에. * 공부하다가 삶을 법적 세력권 안으로 끌어 들이기위해 필요한 개념이 죄이다. 죄는 무엇을 위반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아니다. 죄는 법률을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법률의 절대 순수한 세력 때문에..
꽃수레와 납싹이 나 홀로 어항에. 외롭게 커다란 물속을 지키던 납싹이. 다른 물고기들처럼 곧 죽겠지 싶어서 방치해두었는데 오래토록 쌩쌩했다. 쓸쓸할까봐 친구 3마리를 사다 넣어주었더니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열마리, 스무마리, 오십마리, 백마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구조사를 포기했다. 그 잔멸치만한 새끼들을 꽃수레는'신납이'라고 부른다. '신생어+납싹이'라는 뜻이란다. 신납이는 작은 어항에 별도로 보관한다. 그 중에 '중싹이'로 자라서 꼬리에 무늬가 생기고 화려한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어엿한 성체가 되면 큰 어항으로 옮긴다. 딸아이의 오매불망 지극정성 보살핌 끝에 지금은 신납이 170여마리, 구피 10여마리가 되었다. 꽃수레의 납싹이나라. (왼쪽 상단의 꼬리 큰 물고기가 납싹이다) 수레는 아침에 눈..
12월 셋째주 단상들 # 나는 남자들과 불화하는 존재인가.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프리랜서 때도 지금 연구실도 더 거슬러 예전에 노조일 할 때도 주로 남자들과 일한다. 여러모로 죽이 맞아서 친하게 지내다가도 꼭 어떤 지점에서 부딪힌다. 실망한다. 내 성격이 이상하고 유난하여 그런지도 모른다. 일정 부분 별스러움이 작용하겠지만, 인격 대 인격이라기보다 젠더문제로 읽힌다. 여자들에게는 느껴본 적 없는 못마땅함이 온몸으로 전해져오므로 그렇다. 통칭 남성적인 것들. 정복하려는 욕망, 추월하려는 습성, 자기중심적인 태도 등등. 남근주의나 영웅주의로 대변되는 권력지향적 성향들. 남자들은 사람은 안 보고 일만 본다. 그럴 때 약한 것, 작은 것은 수단시 된다. 나도 안다. 남자의 눈에는 안 보인다는 사실을. 생존에 지장 없는 감각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