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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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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필무렵, 안양교도소 가는 길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거리에서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봄이 온 거다. 조회 시작할 때 애국가 부르는 것처럼 을 부르며 봄을 맞는다. 난분분 낙화하는 양희은의 목소리에 위로받는다. 뭇 생명 약동하는 봄이라지만 언제부턴가 버겁고 부럽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보다.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곁눈질 하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 봄은 잔혹한 계절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기형도에게도 봄은 비생명의 계절이었다. 천생 약한 것들에게 마음 주었던 시인들의 노고에도, 봄은 어김없다. 햇살 푸지다. 기화요초 피어난다. 재작년 봄도 그랬다. 을 부르던 즈음이다. 평화인문학 졸업식을 취재하러 안양교도소에 갔다. 화사한 봄빛 물든 거리를 지나며 ‘그 자리에..
제네바, 좋은경치 좋은사람에 취하다 10년 전 첫 해외여행을 갔다. 베푸와의 동행. 동남아 7일짜리 자유여행사 상품이었다. 원래 우리는 유럽배낭여행을 가고팠다. 그런데 유럽을 가려면 최소한 보름은 필요했다. 그 때 나는 다섯 살 바기 아들과 그렇게 오래 떨어지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소심한 엄마였기에 일주일에 타협을 봤고 만만한 동남아행을 결정한 것이다.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뭔가 꽤 알려진 명소들, 멋진 바다 보고 좋은 호텔서 먹고 자며 호강한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지하철 노선처럼 정해진 대로 다녔으며, 매우 등 따시고 배불렀기에 그건 관광이지 여행이 될 수 없다. 그 때 못간 유럽. 그 때 못한 여행. 십년 만에 스위스에 가면서 아무런 준비도 안 했다. 제네바에 있는 선배는 어떤 여행을 ..
68혁명의 땅으로 간 '귀환불능자' ‘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나타난 특이한 현상은 대학의 국유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대학에 진학해 있던 대학생들이 얻어낸 것이 아니고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게 될 중고등학생들이 얻어낸 것이다. 68집회에서 대학생들은 교실 증설과 복리 증가 등을 요구하였지만, 당시의 중고등학생들은 대학생들의 이러한 요구를 배신이라고 규정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직접 내걸고 거리에 나서게 되는데, 그야말로 국가 시스템의 전면적인 붕괴를 눈앞에 둔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은 결국 대학 국유화를 카드로 내밀게 된다. 전국의 대학에 대한 전면적인 국유화가 진행되고, 서열을 없애기 위해 대학의 이름을 없애면서 총장들의 추첨에 의해 각 대학마다 번호를 하나씩 가져가게 되는데, 가장 오래된 소르본은 4번을 받았고, 나중에 생긴 생..
도시의 원조, 파리를 걷다 첫날은 ‘겁나게 화창’ 다음날은 ‘가볍게 우울’ 파리에 머무는 이틀 동안 날씨가 그랬다. 내가 하늘에 대고 리모콘이라도 누른 것처럼 파리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의 오랜 동경을 알기라도 한 듯. 브레히트 말대로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 도시. 시골의 목가적인 고요함보다는 도시의 북적이는 쓸쓸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메트로폴리스의 원조’ 파리에 달려가 안기고 싶은 맘 굴뚝이었다. 그 뿐인가. 나의 베스트무비 ‘비포선셋’의 배경이고 파리를 숭배하면서 혐오했던 보들레르가 기침처럼 시를 토해낸 고장이며 도시관상학자 벤야민이 살고 싶어 한 도시. 직업 선호도 1위가 예술가인 멋진 나라의 심장부. 공기가 궁금했다. 단, 파리를 가거들랑 혼자서나 혼자 같은 둘이서 좀 긴 호흡으로 ‘딩군다’는 ..
어른 윤구병 마룻바닥에 새침하게 몸 말고 있는 신문이 가끔 내 발목을 끄잡아 당길 때가 있다. 자기 좀 봐달라고 측은한 눈길 보낸다. 그날도 그랬다. 유통기한 이틀 지난 신문을 폈다. 육자배기 같은 걸쭉한 표정의 어르신이 웃고 계신다. 윤구병 선생님이다. 고화질 TV처럼 생생한 표정. 반가워 단숨에 기사를 훑었다. 형제가 아홉이었는데 위로 일병부터 팔병이 있고 선생님이 막내 ‘구병’이라는 부분을 읽다가 뒤집어졌다. 윤일병, 윤이병...윤구병까지 중얼중얼 아홉 명을 기필코 꼽아보고야 만다.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나라가 산다’는 대목에서는 수첩을 꺼내 적어놓았다.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강시처럼 미이라처럼 하루 종일 책상에 앉혀놓고 학대를 한다고 일갈하시는 대목은 속 시원했다. 선생님이 벌써 예순 일곱이시다. ‘오늘 ..
위클리 수유너머를 열며 연구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지난해 여섯군데로 분리실험을 했다. 지금은 ‘꼬뮤넷 수유너머’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주간 웹진 를 만들었다. 웹마스터 김현식, 웹디자이너 정기화, 그리고 고병권, 박정수, 내가 편집팀을 맡았다. 처음에 동 뜬 사람은 고병권이다. 예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그 옛날 80년대 찌라시를 복원시켜볼까” 그런 얘기를 가볍게 나누었는데 몇 달 후 웹진으로 탄생한 셈이다. 내가 합류한 계기는 지난해 12월 고병권의 권유로 선뜻 그러자고 했다. 오마이뉴스나 다음뷰에 기사를 내면서 자극적인 선정성을 비껴가지 못하는 자본화된 언론에 회의를 느꼈었다. 가 대안 언론이 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이런 일은 사람이 여럿 인거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고병권과 박정수는 지난..
용산참사 범국민장 - 민들레꽃처럼 살아야한다 가볍고 따뜻한 검은색 옷으로 최대한 겹겹이 입느라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했다. 추운 것도 싫지만 둔한 건 더 싫었다. 아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아들아, 이렇게 입으면 따뜻하겠지? 근데 너무 투박한가, 조끼를 벗을까....” “엄마, 장례식인데 그냥 소박하게 입어요. 장례식에는 화장도 하는 거 아니래요.” “얘는, 내가 뭐 깃털모자라도 썼냐;; 날씨가 추워서 그렇지. 글구 립스틱만 발랐거든. -_-; 근데 화장하는 거 아니라고 누가 그러던?” “도덕시간에 배웠어요.” '쳇. 도덕시험이나 좀 잘 볼 것이지...' 아들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나는 지금 상가에 가는 길이다. 이례적인 장례식이다. 조의금은 온라인으로 넣었다. 고인이나 유가족을 아는 것도 아니지만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일 년 동안 ..
용산참사 317일 째 미사 다시 겨울이 될 줄은 몰랐다. 백일 지나고 이백일 지나고 삼백일 지났다는 얘기를 듣는 동안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로. 매일 미사가 열린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한편 불안했다. 가느다란 실로 발목을 매단 것처럼 마음이 쓰였다. 한번 가보자는 결심만 주기적으로 남발했다.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사태가 해결됐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일은 기어코 생기지 않았다. 용산참사 317일 째 미사에 참석했다. 저녁에 시간 되면 용산에 갈래? 친구에게 문자를 넣어 기습적으로 동행했다. 한 사람이라도 체온을 더 보태면 좋을 것 같았다. 한 오십여명 모였을까. 조촐했다. 회색 의자에 은박지 방석을 깔고 맨 뒷줄에 앉았다.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었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