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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2011년 6월 30일 목요일. 이날은 병역거부자 현민의 가석방데이. 우산 받쳐들고 영등포교도소로 향했다. 오전 10시에 맞춰 겨우겨우 도착.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어색한 표정의 출소자들이 경계를 넘는 극적인 상봉을 기대했으나 불발이다. 예정보다 일찍 나온 민이는 벌써 비를 피해 건물로 들어가 엄마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눈부실만큼 하얀 셔츠에 쥐색 바지, 짧게 깎은 머리가 어쩐지 수도승 같기도 했다. 그동안 위클리수유너머 '영장찢고 하이킥'에 보내온 글에서는 이미 깨달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령 '유치함에서 두어 계단 오르면 잔인함에 도달한다' 같은 구절. 바늘귀같은 마음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피폐함을 토로하는 대목이었을 거다. 폭발할 듯한 침묵의 요동. 몸으로 쓴 그의 글은 교도소 생활정보가 아니라 귀기울여 듣게 하는 매혹적인 이야기덩어리였다.
교도소 안으로 우산이 연이어 입장했다. 현민의 친구들. 마치 무슨 게임처럼 민이는 그들과 포옹하면서 교도소를 통과했다. 연신 뒤돌아본다. 입소할 때 컴컴한 밤에 차타고 바로 들어가서 감옥 바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봤단다. 전체적인 '뷰'가 궁금했을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장소 외부를 상상하면 덜 불안하니까... 교도소 정문에서 '두부' 세레모니를 치렀다. 빈집의 지음님과 살구님이 깻잎과 양념간장까지 뿌려서 정성스레 준비해온 두부. 민이는 두살 바기 아기처럼 서툴게 먹었다. 떨려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나무젓가락을 짚으니 잘 안된다며 웃는다. 횡단보도. 사람들 틈에 섞여 건너고싶다는 빗금쳐진 그 길을 건너면서 또 뒤돌아본다. 탐정처럼 두리번두리번. 그러더니 '저 아파트가 궁금했어요' 한다. 교도소 운동장에서 저 아파트가 보였는데 뿌연 불투명 유리로 막아놓아서 아파트 안에 사람들이 그림자도 안 보였다고.
일행은 어느 좌식식당을 다 차지하고 앉았다. 민이가 수줍게 인사를 하고 출소를 축하하며 사이다로 건배를 하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결혼피로연처럼 지인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민이는 엄마옆에 앉았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견딜만했다고, 엄마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또 들어가라고 하면 이제는 겁은 안 난다고 한다. 군대 다녀온 남자는 두번 다시 군대 안 간다고 하던데. 군대보다 감옥이 나은 걸까, 민이가 특별한 걸까. 민이 어머님에게 자꾸 눈이 갔다. 아들이 옥살이 하고 있는 내내 편히 잠들지 못했으리라. 그러다가 어느 하루는 또 살만했을 것이다. 365일 지속되는 우기는 없다. 이별이 제아무리 슬퍼도 매일 2시간씩 빨래하고 낮잠자고 잠도 자고 그런다고 날이 갈수록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른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어머님 앞자리에는 민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들어간 날맹군의 엄마도 와계셨다. 꼭 민가협 어머니들처럼 두분이 어딘지 닮았다. 그 엄마와 그 아들. 서로를 깨어있게 만드는 위대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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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역삼동. 한시간 전에 도착해서 카페에 들어갔다. "생크림 넣어주세요" 카페모카를 한잔 마시고 책을 폈다. <남성성과 젠더> 레즈비언 인권운동가 한채윤씨, 권김현영 글이 재미나고 명쾌하다. 일전에 선배가 그녀들 강연도 잘하고 진짜 멋지다고 강추했다.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 얼마나 억울하고 갑갑하고 설명해야할 것이 많았을까. 일찌감치 자기삶을 설명할 언어를 발명해야했을 그들. 글쓰기 실력이 신장되는 건 당연지사. 본문에 자신에게는 마치 소고기 등급표시처럼 '레즈비언'이라는 꼬리표가 매달려있었다고 적혀있다. 좀 놀랐다. '꼬리표'의 비유는 여성장애운동가 박김영희 선생님도 그대로 사용했던 표현이다. 겹친다. 장애인 몇 등급 낙인 찍힌 삶이 싫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알고보면 꼬리표 천국. 이혼녀라는 꼬리표. 문제아라는 꼬리표. 이주민이라는 꼬리표. 여자라는 꼬리표. 보편적인 꼬리표들.
병원에 들렀다가 처방을 받고 약국엘 갔다. 서너사람이 대기중. 내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버물리' 주세요. 한다. 약사가 비슷한 다른 상품을 권했다. 이게 더 좋다고.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모기 말고 다른 벌레 물린데도 좋은지 물어보았다. 약사가 그렇다고 성분이 똑같은데 이 제품이 더 쿨하고 좋다고 말했다. 한말 또 하고. 거의 똑같은 질문과 답변이 두번 더 오갔다. 아주머니는 두 통을 사갔다. 처방전을 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었다. 조제실에서 약을 한 바구니 들고 나오는 약사. 한 사람 씩 투약지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직원이 받았다가 약사를 바꿔준다. 통화내용을 듣자하니 아까 그 아주머니다. 좀전과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버물리가 아니라서 영 찜찜한가보다. 약사가 설명하다가 지쳐서 '오시면 버물리로 바꿔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끊어야한다고 하소연했다. 아주머니가 물고 늘어지는 모양이다. 설왕설래. 내 옆의 양복입은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파스 하나 갖고 왜 저러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결국 끊긴 끊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멱살 잡혔다가 풀려난 기분이었다. 약국문을 나서며 나이듦과 고집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는 왜 버물리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백설표 식용류만 찾는 친구 시어머니 얘기가 떠올랐다. 일상에서 사소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거의 노년층이다. 젊은 사람이 그러는 경우는 드물다. 나이 들면 역정나는 일이 많다더라. 한 얘기 또 하기. 반복은 기본이다. 내가 이담에 커서 아주머니 나이가 되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서른 아홉까진 몰랐다가 마흔 넘으면서 머리가 아닌 육체적으로 풀리는 부분들이 있긴 하다. 엄마가 겨울이면 스타일 구겨지게 옷을 층층이 껴입고 다니는 거 못마땅했는데 나도 작년과 올해사이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지니까 스타일보다는 보온성부터 따진다. 지하철에서 의자만 보면 앉고 싶어하는 아주머니들 백번 이해한다. 상대적인 뻔뻔함과 고집스러움은 정신보다 체력문제가 원인 같다.
나이들수록 사는 일이 고단할 거다. 그러니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살길 바랄 뿐. 실험정신과 도전은 부담스러운 일일 터. 소소한 일상부터 보수화되는 것이다. 겨우 의약품 하나 바꾸기도 조심스러울 만큼이 아니라, 벌레물린 데 바르는 약 하나가 생의 전부일수도 있을만큼 자기 세계가 좁아진다는 얘기다. '탈 버물리'가 '목숨을 건 도약'으로 느껴지는 건 대체 어떤 감각일까. 이십년 후 어렴풋이라도 이해하고싶다. 그 아주머니를 위한 변명을 나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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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친구랑 홍대에서 맥주한잔 하려고 만났다. 급 벙개 성사. 닭가슴 샐러드랑 맥스500 시켜 놓고 왕수다를 떨었다. 출판일을 하는 친구다. 결국은 책과 사람 얘기. 밤이라도 샐 수 있는 주제다. 배도 부르고 안주도 바닥났고, 일어나서 좀 걷기로 했다. 맥주를 소 닭보듯이 하던 나는 소주파. 요즘 맥주를 즐겨찾는다. 그런 내가 낯설지만, 이 역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몸이 시킨 일이다. 우리 선택의 상당부분은 물질의 판단이다. 비가 그친 거리. 상상마당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스마트폰을 치켜들고 영상을 찍는 손이 꽃대처럼 치솟았다. 기타소리에 자석처럼 끌려서 그 앞에 가보았다. 사람이 많아 잘 안보였다. 멜로디가 익숙하다. 델리스파이스의 감성이 물씬한 저들은, 브로콜리너마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우리는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옆사람도 따라 부르고. 홍대에 오니 '탈나가수' 음악이 들린다. 보편적인 노래 따라 군중이 흘러다니는 홍대는 보편적이지 않다.
5시간 고아서 만든 수제 팥빙수로 입가심을 했다. 팥이 달지 않아서 좋다. 우유가 고소하다. 감탄을 섞어서 먹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막차를 탔다. 술냄새 퀘퀘한 버스에 매달려 양화대교를 건넜다. 가끔 걸어가는 길. 내려서 걷고 싶었다. 양화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영원보다 긴 다리를 건널 때 한없는 고독에 빠져든다.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 내가 보편적이지 않다고 누군가 지적질했다. 웬 여자가 혼자 터벅터벅 한강다리 건너면 행복해보일까 불행해보일까 질문했다. 듣고 보니, 차마 행복해보인다는 대답은 안 나왔다. 남들이 볼 때 좀 불쌍해보일 것 같다. 보편적인 행동이 아니면 불행해보이기 십상이니까. 병역거부자, 고집종결자, 브로콜리너마저.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로 경험을 꾸민, 아주 보편적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