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옷정리를 했다. 집이 좁은 관계로 일년에 두번 치러야하는 일. 서랍장에 있던 동절기 옷을 꺼내서 수납합에 넣어 장롱 위에 올려놓았다. 나풀나풀한 봄옷과 컬러풀한 여름옷이 대방출됐다. 옷가지를 챙기면서 '입지도 않을 쓸데 없는 옷, 앞으로도 입을 일 없는 옷들'에 눈길이 갔다. 확 버리고 싶은데 본전생각 땜에 이고지고 산다. 3년째 보관중인 새원피스를 입어보았다. 흐린 분홍과 연보랏빛이 감도는 미니멀하고 여성스런 스타일인데 몇번 입고 현관을 나가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집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수가 없었다. 왜 샀느냐하면 '변신욕망' 때문인데 그 때 뿐,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한번 입어나 보자 싶어서 원피스를 무슨 푸대자루마냥 뒤집어 쓰고 거울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그런 나를 보더니 딸내미가 "엄마 예쁘다! 귀족같아~" 호들갑스런 찬사를 보낸다. "진짜야?" 반색하며 물었더니 그렇단다. 나는 도무지 부끄러워서 입을 수가 없노라고 중얼중얼 고민을 터놓았다. 딸내미가 타이른다.
"엄마,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입어봐. 뭐가 부끄럽다는 거야? 예쁘기만 하구만. 매일 청바지만 입고 초라하게 하고 다니지 말고."
나는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환생한 줄 알았다. 엄마가 맨날 하던 잔소리다. 딸아이는 또랑또랑 어찌나 목청까지 좋은지 거역할 수 없는 포스가 엄습했다. 그래. 귀족은 아니지만 중인계급;; 정도의 스타일은 집에서도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예쁜 어른'이 되어야 딸내미도 패션감각을 키울 테니까 말이다. 딸내미가 열살. 아직도 아침에 눈 뜨면 엄마 젖을 확인하는 애기짓을 일삼지만 유아티는 완전히 벗었다. 어엿한 아동이다. 둘이 외출하면 어린 자식을 건사하는 느낌이 안 든다. 일전에는 손잡고 나란히 걷는데 옛날에 남편이랑 데이트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순간 묘했다. 남편 손이 통통한데 딸내미가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딸내미에게서 남편의 체온이 느껴지다니. 남편이랑 손붙잡고 거리를 거닐어본지가 언제인지 아득했다.
지난주에는 딸이랑 둘이 사우나 갔다가 '커피 맛있는 집' 카페에 들렀다. 커피랑 프렌치 토스트를 먹으면서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는데 제법 말이 통했다. 이제 나의 반려자 역할을 딸내미가 인수인계한 걸까. 집에서도 나를 위해 정서노동을 기꺼이 해주는 사람, 깜짝 이벤트로 나를 감격에 빠뜨리는 존재는 딸밖에 없다.
어버이날 아침. 머리맡에 산타선물처럼 카드가 놓여있다. 종이접기로 만든 오색 카네이션 카드. 펼쳐보았더니 사연이 구구절절 한바닥이다. '저를 소중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착한 딸이 될게요. 공부를 열심히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게요. 어쩌구저쩌구..' 거의 5년째 똑같은 내용이다. 유치원 때부터 받다보니 구전민요처럼 입에 감긴다. 외울 지경이다. 푸푹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아침밥을 먹은 딸내미는 교보문고 개장 시간이 되자마자 아빠를 끌고 외출한다. "엄마 선물 사야한다"고. 내 파우치를 볼 때마다 '초라하다'고 난리더니만 자기가 선물로 사준단다. 어떤 조잡한 걸 사올지, 꽃가라 분홍은 아닐지 내심 걱정했다. 한 시간 후 들어온 딸. 짜잔하고 내민다.
나라면 사지 못했을 고가의 호피무늬 파우치다. 전날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 5만원을, 엄마 아빠 오빠에게 만원씩 '용돈'하라며 호기롭게 주더니만 나머지 2만원을 다 썼단다. 에미애비 닮아서 '축적' 개념이 전혀 없다. 지갑에 돈이 있으면 일단 쓰고 본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늦잠자고 부스스 일어난 아들은 가방에서 카네이션 두개를 꺼낸다. "엄마 아빠, 이거요" 아니 이것은 80년대 변두리 제과점에서 파는 것 같은 조악한 조화모양이다. 놀랐지만 고마운 척 연기했다. 이런 귀한 걸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공동구매했어요" 한다. 무려 하나에 4천원이라니! 한 술 더 떠서 자기네 반 애들이 거의 다 샀단다. 단순한 녀석들.
딸아이와 십년 세월. 강산이 변하듯이 관계도 변하나보다. 엄마의 보호를 받다가 엄마를 보호해주는 딸. 내가 엄마한테 그랬듯이 돌고 돈다. 마냥 예쁘면서도 족쇄같고 짐짝같던 자식인데 이런 날이 오다니 감격스럽다. 하긴 시어머니도 나에게 의지한다. 그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전화하면 돌발적으로 십년 묵은 일까지 일일이 들춰서 성난 감정덩어리를 퍼붓던 시어머니. 주변에서 나이들면 다 변한다고 할 때, 우리 시어머니에겐 그런 날이 영영 안 올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약해지신다. 여든을 바라보시니 목소리에 기력도 없다. 안부전화를 하면 반찬 사러 간 얘기, 김치 담근 얘기 등으로 한 30분씩 꽉 채워 말씀하시고는 마지막에 "전화해줘서 고마워" 그러신다. 시어머니가 면도날 같은 말들로 상처주실 때는 전화 끊고나면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는데, 연신 고마움을 표현하는 '독기다 다 빠진' 음성을 들으며 전화를 끊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딸이 없는 어머니. 지금은 딸이 있는 며느리를 부러워하는 어머니. 당신의 친자매들과도 교분을 쌓지 못했고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고등교육까지 받았지만 친구가 단 일명도 없다. 두 며느리에게 도통 마음을 열지 않으셨다. 의심하고 견제했다. 아버님 직장 부하직원의 사모님 두어 명과 가끔씩 고상한 안부를 주고 받을 뿐이다. 그 누구와도 '자매애'를 나누지 못한 분. '우정'을 누리지 못한 삶이다. 오직 남편과 자식. 세 남자에게만 평생을 바치셨다. 어머니에게서 소외된 가사노동, 가족중심주의의 쓸쓸한 뒤안길을 본다. 열심히 살기는 쉬워도 잘 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딸로 태어나 엄마가 되긴 쉬워도 당당한 여성으로 나이들기란 얼마나 힘겨운가. 가정의 달 5월, 한 손에는 딸에게 받은 파우치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어머님의 축처진 음성이 맴도는 수화기를 들고서 '여자의 한 살이'를 생각한다.
Mendelsshon Concerto -Allegro Part1 by Michael Ra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