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구나, 불아, 너는 왜 항상 벼랑 위에 서 있니? 말해봐, 촛불아, 바람은 부는데...... 가장 푸른 자오선을 목에 걸고 여자들이 벼랑 위에 서 있다. 말해봐, 불아, 누가 나를 벼랑으로 부르는지..... 어둠이 가득찬 내 척추의 흰뼈에 누가 자꾸만 한덩어리 촛불을 당기는지...... 오늘, 여기에선, 가장 숨죽인 소리들이 들려온다, 상여소리 바라 소리 피리소리 요령소리...... 오늘, 여기에서, 벼랑은 태양의 갈기를 달고..... 해는 하늘에도 있고 강물에도 있어서 천지의 맞닿음이여, 바라의 부딪침이여......햇덩어리 물덩어리 마음 덩어리들이 부딪쳐..... 피 톨속에 피어나는 일만 덩이의 바라의 태양꽃들을 너는 보았느냐..... 목숨이여...... 핏속으로 부풀면서 터지는 희디흰 두견의 피여...... 삶이 시작되는 곳에는 늘 언제나 벼랑이 있지, 눈먼 사랑, 치렁치렁 흘러가는 유화의 죽음의 물......말해봐, 불아, 누가 저 태양의 바라를 흔드는지, 삶이 시작되는 곳에는 왜 늘 벼랑이 있고, 벼랑에서 추는 춤만이 왜 홀로 아 름다움의 갈기를 가졌는가를...... - 김승희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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