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을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그림자 멀리멀리
얼음짱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 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 속에 든 빙산이 제 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열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하나>
춥고 추워서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이번 겨울. 한 겨울보다 더 추위를 느끼는 요즘. 특히 컴 앞에서 글쓰고 있으면 손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고 온 몸이 얼어버리는 기분이다. 뉴스라도 클릭할라치면 가슴에서 천불이 나지만 그래도 몸은 덥혀지지 않는다. 하나둘 껴입고 덮다보면 모자와 장갑만 없다뿐 완전 방한복 차림이다. 난방을 세게 틀어도 춥고. 집이 낡아서 창틀로 바람이 차단되지 않아서 더 추워지듯이 내 몸도 그런 게 아닐까. 같은 원리라면 해마다 더 추워지는 게 맞다. 집도 조금씩 늙어가고 나도 조금씩 노화되니 둘 중 하나를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겨울마다 떨어야한다. 추워추워. 말하는 동안이라도 입김을 내면서. 그렇게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면 이내 쓸쓸해진다. 마음까지 춥다.
파릇파릇 논에 물이 돌듯 마음에 온기를 전해준다는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도 더 쓸쓸해졌다. 가족은 뭘까. 마른 논에 물 들어갈 때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갈 때가 제일 좋다는 할머니의 중얼거림. 발가락 뼈 빠지도록 일만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소를 팔아버리자고 인민재판하듯 결론지어버리는 자식들의 일방적인 태도. 소의 눈물. 젊은에미 놔두고 늙어빠진 소에게 엉켜붙던 어린소. 싱싱한 영감과 최신식 기계를 가진 저편 세계를 부러워하는 할머니의 신세한탄. 흙구덩이에 모로 누워 있던 마흔살 마른 소. 틀니도 없는 노부부의 구멍같은 입. 무명옷 다려입고 찍은 영정사진. 그냥 삶은 다 쓸쓸한 것들의 다양한 모양의 퍼즐같다. 한평생 꿈쩍않고 '소'와 '땅'을 지킨 할아버지는 지구에서 가장 쓸쓸한 투사. 따뜻한 피가 도는 참 쓸쓸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