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재 시집 <제국호텔>
일산 엠비씨 드림센터에 갔다. 크고 멋진 건물 1층에 악세사리처럼 예쁜 카페 '커피프린스'가 있었다. 의자 하나하나 컵 하나하나가 다 잡지에서 꺼낸 것처럼 예뻤다. 채광창에 쏟아지는 빛살이 탐스럽게 쏟아져 눈이 부셨다. 발 아래 강물이 흐르는 선상카페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여기서 얼마전에 태지가 공연을 했었다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페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인터뷰이를 기다리면서 '애인'생각하고 있는데 '애인있어요'가 나왔다. 2008년 내 노래방 18번.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나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내가 태지와 처음 스친 것도 엠비씨 로비다. 내 근무지가 여의도였다. 난 파업중인 노동자였고, 엠비씨도 파업중이었다. 노보에 싣기 위해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를 취재갔었다. 로비에서 기다리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자나갔다. "앗, 귀엽다~" 음악팬이었던 나는 그를 의연하게 보내줬다. 그리고 몇 년후 엠비씨에서 태지를 또 몇 번 봤다. '얼굴팬'으로서 공개홀로, 대기실로 누비고 다녔다. 극성맞게 방송국에 잠입했던 것이다. 근데 태지를 일미터 앞에 두고 광채에 눈이 멀어 번번이 '석상처럼' 몸이 굳어버렸더랬다. 한 걸음도 못 떼고 말 한 마디도 못 걸었으니. 난 그저 누군가를 멀리 떨어져서 마음으로 사랑해야할 팔자다.
어제 엠넷음악프로에 태지가 출연하는 사전녹화가 있어서 방청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크게 기대를 안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니었나 보다. 막상 명단에 내 이름이 없자 이게 굉장히 서운했다. 스크롤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600명 명단을 열번쯤 확인했다. 황지우시인의 시구처럼 난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참을 멍했다.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상실감. 무력함. 난 이거에 약하다. 아는 동생과 문자질하면서 다짐했다. '나 다시는 신청 안해. 태지한테서까지 상처받기 싫어' 태지가 무슨 나에게 상처를 줬나. 복권 떨어지는 것처럼 운없는 내 복이지. 근데 왜, 도대체 왜 그런 기회에 나를 노출시켰는지. 아무래도 미쳤었던 게다. 조신히 있다가 5월 전국투어나 가야겠다. 그래. 난 사랑할 자유도 없고 누구에게 빠져서도 안 된다. 원고도 잔뜩 밀린 주제에 언제 쓰려고 이러는지. 시국이 흉흉한데 다 생까고서 말이다. 허무하고 속상하다. 장기하도 아닌데 나 너무 '별일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