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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_은유 편

설날 일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 사골국물을 데워 떡국을 끓였죠. 배우자는 당직이라서 출근했고 저만 아이들과 식탁에 앉았습니다. 김치 반찬 하나에 대충 첫끼를 때우고 나갈 준비를 했어요. 간밤에 쌓인 눈이 고와서 고궁에 갑니다. 아이들과의 외출. 나는 자동문을 지나가는 것처럼 유유히 현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더이상 손댈 게 없네요. 각자의 방에서 각자 옷을 챙겨 입고 나와 각자의 교통카드를 찍죠. 어른 하나에 아이 둘이 아닌 관계. 양쪽 발에 달린 두개의 쇠사슬 같았던 아이들인데 어느새 분리됐습니다. 
눈 내린 세상은 환해도 마음은 내리 어둡죠. 나는 아직도 명절이 즐겁지 않습니다. 최근 2~3년 동안 코로나, 작업 등을 이유로 시가에 가지 않았고 차례도 없어졌어요. 시가의 사슬도 저절로 풀렸습니다. 가부장제의 마지막 요새는 뜻밖에도 친정입니다. 엄마 없는 친정. 그 말은 살림하는 사람이 없는 집이라는 뜻이죠. 가사노동의 빈자리는 평소에는 주 2회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메우고, 외동딸인 내가 일년에 세번 맡습니다. 명절 두번, 엄마 기일 한번.
친정 가는 길은 늘 양손이 무겁습니다. 이번에도 육수에 떡국 떡, 매생이와 굴, 불고기 잰 것, 문어 샐러드감, 잡채까지 식구들 먹을 음식을 챙겨 갔죠. 한끼 양식입니다. 없는 엄마 일을 있는 딸이 합니다. 아버지는 안 하고 오빠도 못하고. 똑같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수십년을 살았는데 그 능력은 딸에게만 전승됐습니다. 왜 두 남자는 식구를 위해 밥 한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 의지, 노력을 내지 않는가, 저는 생각합니다. 아마 배달음식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거예요. 요청하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키는 일에도 신경이 소모되는 법입니다. 어떤 톤으로 말해야 하는지, 거절당했을 때의 대처법은 무엇인지, 다른 대안까지 고려해야죠. 그러니 그냥 하고 말자, 싶어 간소한 반찬 몇가지를 출장 뷔페처럼 이고지고 차에 싣고 갑니다. 바꾸기보다 행하기를 택합니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편을 택하는 겁니다. 
친정-집은 좁아지고 있습니다. 현관에서부터 신발이 열켤레 넘게 나와 있죠. 엄마의 자랑이자 특기였던 식물 키우기. 베란다에 작은 식물원처럼 가꿔놓은 수십종의 화초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실은 택배 상자와 생수 묶음이 놓여 있어 복도처럼 돼버렸고, 식탁 위엔 커피 머신과 일회용 수저, 소스 같은 잔재들이 점령했고요. 냉동실에선 유통기한이 2년쯤 지난 냉동 식품이 발굴되죠. 음식 아닌 식품으로 꽉 찬 냉장고. 택배 집하장으로 변해가는 집. 엄마의 부재 16년간 아주 서서히 틀어지고 소멸하는 집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없어서 엄마가 보이는 그곳에 나는 가기 싫습니다.
그러나 나의 특기는 무릅쓰기. 그대로 참고 견디기. 마음 없이 임무 수행 모드가 가능합니다. 아버지는 85세가 됐네요. 늙은 아빠와 아픈 오빠에 대한 연민이 크겠죠. 또 살림 구력 30년, 한끼 밥상은 몇시간이면 뚝딱이니까요. 밥은 이상해서 먹는 사람은 차리는 사람의 수고를 알기 어렵지만 밥은 또 이상해서 먹는 사람을 보는 것으로 차리는 사람의 수고는 얼마간 보상을 받습니다. 밥을 내가 밀어내려 해도 밥이 나를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갑니다. 
나는 나를 이중으로 비난합니다. 아버지랑 먹을 밥 한끼 하는데 웬 불만이 그리 많아? 왜 아직도 명절에 꼭 모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어? 물론 한쪽 성 역할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가부장제가 원인임을 알지만 어디다가 화를 내야 할지 몰라서 나를 야단칩니다. 꾸짖고 어르죠. 이번만 참고 지나가자. 아직 족쇄가 풀리지 않은 곳. 여자 없는 남자들의 거처, 목소리를 삼키게 되는 곳이 내 존재의 시원(始原), 원가족입니다. 
일전에 친구가 그러더군요. 네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딸이 이렇게 작가로 열심히 활동하는 걸 보셨어야 하는데! 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네요. 엄마는 여든 넘도록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을 게 빤합니다. 육신의 노화는 착실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세끼 식사를 차리고 반찬 투정을 들으며 사는 엄마의 삶을,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부장제는 엄마에게 집 아닌 다른 장소를 허락하지 않았고 집은 엄마에게 제대로 된 사랑과 안정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명절 때마다 사라진 엄마를 만나고 엄마와 함께 사라집니다. “너는 없는 것처럼 컸다.” 손이 하나도 안 가는 자식이었던 순둥이 딸. 비(非)존재로 자신을 만드는 건 여자들의 개인기이자 생존술이죠. 앞치마 두르고 시금치 뿌리에 흙을 살살 털어내던 어딘가 기가 죽어 있는 새 며느리인 나는 시댁에서도 없는 듯이 일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날엔 눈물을 누르고 자아를 죽이고 밥을 차렸고요. 집에 와서 도망치듯 카페로 달려가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봅니다. 아, 문득 고릿적 유행가 한곡으로 먹고사는 가수가 된 양 처량 맞고 쓸쓸한 기분에 젖고 맙니다. 나는 왜, 아직도, 명절 타령인가. 

사실 ‘이런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습니다. 기혼-유자녀 여성으로서 내적 분투의 기록이라면 이미 책 한권(『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서해문집 2016)으로 웬만큼 털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리뷰를 남기기도 했죠. ‘명절 때 가져가는 책이다.’ ‘밥에 묶인 삶이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터졌다.’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나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인지, 몸통이 뒤집힌 벌레처럼 ‘밥에 묶인 삶’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네요. 아이들이 다 자라고 시가에 가지 않아도 명절이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힘든 마음에 죄의식이 엉겨 붙습니다. 그래서 못 썼습니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있자니 다른 글도 나오지가 않더군요. 슬슬 걱정이 되었죠. 나 고장 난 사람이 된 걸까.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제 앞에서 리베카 솔닛이 지은 안전한 사유의 방이 열렸습니다. 그는 제게 각별한 작가입니다. 제 사유와 언어는 솔닛의 노동에 빚졌거든요. 솔닛의 표현대로, 그의 책은 내 앞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습니다. 저는 그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이번에는 회고록입니다. 개인적 경험을 담았지만 그것을 여성이 겪는 집단적 경험의 맥락 속에서 서술합니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아마 솔닛 최고의 저작이 될 듯합니다. 죄다 밑줄을 그을 지경이었는데요, 유독 이 문장이 달려들었습니다. “나는 망가진 사람이다. 우리 모두를 망가뜨리며 그중에서 여성을 특정 방식으로 망가뜨리는 사회의 일원이다.”(295면) 개인이 아니라 구조와 토대를 보게 하는 문장은 솔닛의 주특기죠. 나는 망가진 사람,이라는 선언을 수치의 언어가 아니라 해방의 언어로 전유합니다. 그랬습니다. 망가졌기 때문에 망가뜨리는 것들에 대해 쓸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망가진 것을 수선해야 하기 때문에 써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닛이 내어준 작고 환한 방에 머물면서, 저는 저의 깊고 어둑한 곳에 묻어둔 묵은 이야기를 꺼내놓을 용기를 냈습니다. 일말의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솔닛이 기혼에 유자녀 여성이었다면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장기간 싸우고 대뜸 트럭에 올라 몇주고 어디론가 떠나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집안과 밥상에서 전투를 치르는 드라마도 들어 있었을까. 그가 쓴 밥 이야기를 보았다면 저도 제 근심을 ‘그까짓 밥’으로 축소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제가 바라는 건 명절 철폐나 아버지와 밥 먹지 않기가 아닙니다. 내가 살던 집을 목소리를 가질 수 있고 밥의 즐거움을 되찾는 장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엄마 제사를 간소화하자는 제안을 수용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나도 가족의 구성원이자 상 차리는 사람으로서 권한을 갖고 있음을 차분히 말하고 싶습니다. 끊어내지 않고 연결하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싶습니다. 솔닛이 말한 작가의 책무인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일”(303면)을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두번 읽었습니다. 한번은 솔닛은 어떻게 오늘의 솔닛이 되었나를 생각하며 읽었고, 한번은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나를 생각하며 읽었죠. 그의 글을 내 나름의 “이미지, 얼굴, 장소, 빛, 그림자, 소리, 감정으로 번역”해보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전진한 것은 후퇴할 수도 있고, 닫힌 것이 다시 열리기도 한다는 것. 한사람의 긴 강물 같은 삶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보여줍니다. 
다시 써야겠습니다. “긴급한 것, 강렬한 것, 과잉되고 극단적인 것, 구속을 깨뜨리고 터져나오는 문장과 서사”(134면)를 쓰는 일에 부지런해야겠습니다. 우리의 핵심 도구는 이야기니까요. “그 낮은 곳들로부터 벗어날 때 사다리로 쓴 논리와 서사를 다른 이들에게도 건네주고 싶”(113면)은 솔닛의 친절함이 저의 이야기를 끌어내주었듯이 제 이야기도 누군가의 말문을 틔우는 입김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창비 뉴스레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