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왜 궁금한 거죠?

[은유칼럼]


“세상에 저런 일이 어딨어.” 아버지는 TV를 보면서 늘 말씀하시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말도 꼭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세상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지? 말도 안 된다면서 굳이 보면서 욕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자라서 세상에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백발 성성한 아버지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온순한 시청자가 됐다. 

아랫집에 사는 60대 초반의 어르신과 엘리베이터에 가끔 동승한다. 오전에 눈곱만 간신히 뗀 몰골로 대파가 삐져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있을 때도 보고 저녁 강의를 마치고 노트북 가방 멘 채 밤 12시에 마주치기도 한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아랫집 아저씨가 당신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더라.”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지난 성묘 때 친척 남자 어른은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길래 성묘에 빠지)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단다. 그들에게 나는 남편을 경유해서 존재하는 ‘안사람’이다. 

“무슨 일 하세요?” 가끔 눈앞에서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게 또 꼭 유쾌한 건 아니다. 글 쓰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소설가냐, 시인이냐, 방송작가냐 직업 유형을 대가며 되묻는다. 자동반응이다. 문창과 나왔냐, 국문과 나왔냐, 신방과 나왔냐는 질문도 곁들여진다. 글쓰기 수업 버전도 있다. 소속을 물어온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한다고 말하면 그게 어디냐, 누가 듣느냐, 무슨 과정이냐 묻고는 마지막 질문은 꼭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런 일 하고도 먹고살 수 있어요?” 

그 말은 그 옛날 아버지의 말씀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어”의 리메이크처럼 내게는 들린다.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서 이해하기 위한 말 건넴이 아니라 바깥에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말 던짐이다. 달갑지 않다. 먹고살 수 없으면 생활비 대줄 거냐고 따지고 싶은 심술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그들은 왜 질문하는 자리에 있고 나는 왜 쩔쩔매며 답하는 자리에 있는가. 아니, 저 질문(의 형식을 띤 모욕)하는 자리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나와 글쓰기 공부를 하는 학인들도 자주 하소연한다. 어떤 이는 대학교 3학년에 자퇴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만 하고 있다. 어른들은 물론 친구들조차 ‘재입시’로 추측하거나 아니면 철없는 ‘한량짓’으로 본다며 심지어 ‘집이 부자구나’라는 말도 듣는단다. 자기는 한량도 부잣집 자식도 아니고,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감에 흔들리는 존재지만 그래도 지금은 자기를 내버려두는 중이라며 주변의 몰이해를 안타까워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허수경).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 건 당연시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 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 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몸으로 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 주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장 준비해야 할까 보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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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과제리뷰 - 정념엔딩

[글쓰기의 최전선]

허수경의 <혼자가는 먼집>을 읽고 쓴 여러분들 과제를 읽어보았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문장이 안정적이고 줄거리도 제법 잘 읽힙니다. 글이 재밌어졌습니다. 문득, 저도 글이 쓰고 싶었어요. 억지로라도 과제를 내야하는 여러분이 질투가 나고 부러웠습니다. 이번이 벌써 7차시 과제이더군요. 매주 한 편의 글을 낳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전전긍긍 하다보니 변화가 일어나는구나, 성급히 그런 판단을 내려 보기도 합니다. 모든 반복적인 행위는 힘 방향을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틀어놓는 법이니까 아주 근거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수업의 가장 큰 공부는 자기가 쓴 글만이 아니라 다른 학인들의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쓰니까 재밌다’ ‘이건 좀 밋밋하다를 가늠하실 거에요. 그게 가장 큰 공부죠. 안목 기르기. 글은 지루해서는 안 됩니다. 충격과 반전과 자극이 범람한다고 글이 재밌지는 않지요. 플로베르도 말했듯이,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입니다. 글이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야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서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아야 하고, 한 사람의 삶을 관음하고 나니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아야 합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글을 쓸 때, 어떤 이야기를 장황하게 연대기순으로 풀지 말고 범위를 좁혀서 그 '상황' '사건'으로 독자를 데려가주세요. 그리고 하필 내가 왜 (하고 많은 사건 중에) 이 이야기를 썼는지 그 화두에 몰입해주세요. 그 주제의식이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살면서 풀어야할 '매듭'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정리의 욕구가 본능처럼 있거든요. 몸에 생채기가 난 부분이 가렵고 자꾸 손이 가는 것처럼, 자기의 풀지 못한 숙제는 한켠에 밀쳐두어도 자꾸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마련이니까요. 시간을 두고 응시하면서 쓰세요. 그것이 나올 때까지.

 

지난 번 과제주제 '음식'과 이번 과제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과제게시판이 더 콩닥콩닥 흥성흥성 했습니다.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존재를 지탱해주는 두 축이니까, 제법 주제가 동시상영한 셈이지요. 여러분들 글을 읽다 보니, 음식이라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고 지탱하고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임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음식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정서가 발생하고 언어가 생성되는가 배울 수 있었고, 그래서 음식은 좋은 글감이 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앞으로도 먹을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까 궁리해주세요.

 

정념에 대하여. 사랑이야기는 또 얼마나 달달하고 치명적이고 쓸쓸하고 텁텁한지요. 사랑의 감정을 후련하게 느끼고 써내기란, 또한 얼마나 어려운지요.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을 사랑과 성에 굉장히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길러냅니다. 개인의 탓은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 전 인터넷 사교육 업체 광고가 물의를 빚었듯이 우정파괴, 연애파괴 권하는 사회죠. 모든 이를 똑같은 거푸집에 넣고 길러내니 그것이 산업사회 노동자 양산에는 유리하지만 개별자 영혼에게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한참 감수성 예민하고 충만할 나이에 연애소수자로 자라나는 청춘들이 애처롭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현대의 학교들과 대학들은 학생들을 비인간화된 배움, 본성과 성으로부터 소외됨, 위계질서에 복종함, 권위를 두려워함, 자기 대상화와 살 떨리는 경쟁의 습성들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런 성격 자질들은 현대 산업주의의 뒤틀린 성격형의 본질이다. 그것들은 본성과 성 그리고 사람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들과는 철저히 떨어진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바로 그 성격 자질이다. - 아서 에반스


지금이라도 영혼을 사수할 것. 돌보고 가꾸어서 존재의 미학을 실천해야지요. 제가 글쓰기수업 할 때 농담처럼 여기 나와 있지 말고 연애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연애만큼 존재에 집중하고 언어가 폭발하고 생성과 몰락이 일어나는 시기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진담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연애와 병행하면 (시간관리를 잘 할 경우) 효과 두 배입니다다자이 오사무가 연애 권하는 말은 더 설득력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연애에 빠지는걸요. 이렇게 태어났으니, 애써 홀로 고독하게 태어났으니, 알고 싶지 않습니까? 둘이 어떤 것인지.’

 

이 세상에 사람은 많고 사랑도 많습니다. 흔히 제도적 관습적 도덕적으로 승인된 사랑과 불허된 사랑을 가르고 사고하지요. 그것이 익숙한데 물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 분할선은 누가 그었을까요. 글 쓸 때는 도덕의 잣대를 맹신하기보다, 당대의 도덕과 나의 삶이 충돌하는 지점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니체의 말을 상기해보세요. 이 세상에는 자기초극의 사랑이 있고 자기함몰의 사랑도 있을 테고요. 천개의 삶이 있다면 사랑도 천개일 것입니다. 불안한 두 인류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 일, 자기를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후련하게 사랑하세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제하고 검열하지 말고 쓰고 싶은 것을 실컷 다 퍼내서 쓰세요. 아무 일 없습니다. 자기가 안간힘으로 지키려는 것은 대부분 실체 없거나 모호합니다. 두려움 없이 살고, 후련하게 사랑하며, 실컷 쓰세요.

 

안전함이란 대체로 미신이다. 자연 속에는 존재하지 않고, 사람의 아이들도 전체적으로 그걸 겪지 않는다. 위험을 피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보면 깡그리 드러내놓는 것보다 더 안전한 일이 아니다. 삶은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헬렌켈러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날았지.' 처음 보는 세상과 만나고 그 아름답고 슬픈 세상을 기록할 때 글이 되고 음악이 될 것입니다. 이번 리뷰는 짧은 편지로 대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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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 늙은 가수

[올드걸의시집]

허수경 시집 네 권을 열흘 째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있어. 앞의 7일은 세미나 준비하느라 읽었고 나머지 3일은 후기 쓰기 위해 훑어보려고 담아 다녔지. 어깨 아프네. 오늘은 후기를 꼭 써서 이제 그만 허수경과, 헤어지고 싶다.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

그게 창녀 아닌가, 제 갈길 너무 빤해 우는 거

- <늙은 가수>

 

 

제 갈 길이 너무 빤해서 우는 자. 그래서 눈물이 났나봐. 시시쿠나. 라는 표현에서 옳타구나. 했어. 시시해. 하면 푸석한데 시시쿠나. 하니까 촉촉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아직 그리 멀리 가버린 건 아닌데 여기까지 와 버린 길을 돌아 나가기엔 다리에 힘이 없다. 지금 이 포맷으로 이 구성으로 이 강도로 지하철2호선 순환선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하루 가고 한달 가고 한 해 가고 하겠구나. 연명활동이 남았는데, 이게 뭔가. 인생이 왜 이렇게 시시한가. 내 영혼에 구멍이 뚫렸나봐. 강물에 노을번지는 것처럼 붉은 생각이 저절로 스며. 어쩌니. 삶에게 미안하지.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 부적처럼 가슴에 지니고 살지만 그래도 이런 불우의 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시인 말대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하네.

 

시인은 그래서 떠났을까. 사는 일이 어느 날 보니까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는 슬픔의 순환 고리에 갇혀버린 거야.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이 반복이 갑갑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떠난 게 아닐까. 다른 삶의 지층을 열어보고자. 다른 측면에서 문을 열어보고자. 혼자 먼 집으로 간 거야. 오래된 영혼을 끌고서. 고고학자가 된 시인. 이런 시를 쓰네.

 

 

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이면 움파 조곤조곤 무 숭덩숭덩

붉은 고춧가루 마늘이 국에서 노닥거리는 저녁이면

어디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벚나무 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국 냄새 감나무 가지에 오그리고 앉아

그 먼 데, 대구국 끓는 저녁,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저녁 무렵 도닥도닥 밥한다

...

- <대구 저녁국> 부분

 

 

떠나고 싶다. 막 살고 싶다. 술 마시면서 얘기했잖아. 막 살아보고 싶다. 자주 꿈꿔. 어느 시인이 노래한 대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로울까 궁금해 하면서. 근데 나는 몰라.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나보고 막 살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고작 강릉? 동해바다에 가는 것. 밖에 말하지 못했어. 어차피 상상인데 지중해쯤은 나가줘도 좋잖아. 그게 억울했는데 또 금방 머쓱하더라. 막 사는 상상을 한다는 건, 지금은 잘 산다는 전제가 된 거잖아. 나 지금 잘 사나. 그냥 살던대로 익숙한 대로 살뿐이야. 이 세상에 막 사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노숙자가, 거리의 아이들이 막 살고, 명문대생은 잘 사나. 아니겠지. 저마다 그리 살 수밖에 없는 필연. 존재의 최선이지.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먼 데가 어딘지 몰라" 여기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처럼.

 

잘 사는 사람은 몰라도 잘 떠나는 사람은 있더라. 떠나는 일은 붉은 일인가봐. 허수경의 붉은에 대한 편애처럼, 화가 조지아오키프도 사막의 붉은 관능을 사랑해서 떠나.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을 벗어나서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아주 눌러 앉지. 반평생을 보내. 제법 긴 셀프 유배야. 매일 근처 사막으로 산책을 나가고 풍경의 기억을 안고 와 그림을 그렸다고 하던데, 그래서 오키프의 그림에는 꽃, 짐승, 뼈가 많고. 허수경도 새벽발굴의 고고학적 상상력을 가져와서 시를 썼겠지. 몸에 돋아나는 달 이야기가 아름다워.

 

 

 

 

...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 <달이 걸어오는 밤> 부분

 

 

이 시랑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어. 여성학자 정희진이 쓴 건데, 읽어줄게. ‘유사 이래 모든 문학, 예술 작품의 지은이들은 실연당한사람들이다. “나는 그를 버렸도다!” 이런 작품은 없다. 대부분의 예술은 그가 나를 떠났구나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에 대해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것의 구조와 원인, 역사를 규명하려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언제나 약자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와 깊이를 깨닫는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그러니까, 기형도 버전으로 줄이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겠지. 언어를 배양하기에는 슬픔만한 거름이 없다는 것. “통증도 없이 살 순 없잖아라는 시인의 말인 즉슨, 사랑도 없이 살 순 없다는 말같지. 동감해. 그러고 보니 잃고 썼지, 얻고 쓴 적은 없네. 쓰고 기쁘지 않은 적도 없고. 사랑과 밥. 인생이 결국 저 두 가지로 몸살을 앓다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밥을 갈구하고 사랑을 간구하고. 어른들을 위한 놀이. 허수경처럼 쓰라리도록 잘 놀면 삶의 찌꺼기로 아름다운 시가 남겠지. , 나도 놀고 싶다. 최승자가 신과 마주하는 단독자라면 허수경은 한 사내와 마주하는 작부같아. 한잔 술에서  오백년 세월-정한을 퍼내는 느낌이야. 재밌어 보여. 오늘 밤, 나는 시인이 꿈꾸고 간 베개에 기대 꿈을 꾼다.

 

 

언어

자연

과거

 

여기에서 놀았다

 

놀았다

 

더러는 햇빛처럼

더러는 빗물처럼

 

그 사이 사이

그대도 있다가 없다가

그랬다

 

옷을 다 벗고 욕탕에 들어가기 직전

몸 계곡 들판 등성이 수풀

한 때 그대도 여기에 있었으나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이 자연은 과거가 되었고

 

지금 그대 없는 자연은

언어가 되었다

 

놀았다

 

더운 물속에 쓰라린 상처처럼

바람 앞에 얼굴을 가리는 새처럼

 

결국은 아팠다

놀았으므로 지극히 쓰라렸다

 

- <여기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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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킥킥 당신 이쁜 당신...'이소선 <어머니>

[올드걸의시집]

 

소선小仙작은 선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작은데 태어났을 때는 을매나 작았겠느냐며 옛날이야기 하듯 당신 생의 기원을 더듬는 할머니가 정겹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의 삶을 담은 영화 <어머니>를 보았다. 곱고 예쁜 이름만큼이나 영화가 소소하고 재밌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평생 살아왔는데 그런 칭호가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으니 노동자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겄냐고 조단조단 말씀하시는데 웃음이 난다. 질그릇처럼 투박하게 때론 놋그릇처럼 쨍쨍하게 때론 유리그릇처럼 투명하게 울리는 어머니의 일상 

창신동 좁은 골목길 올라간 방에서 고스톱을 판이 벌어진다. 어머니는 은행에서 출고된 포장용 동전꾸러미를 종자돈으로 꺼내놓으며 어느 금융위원장이 고스톱 칠 때 쓰라고 준 것이라고 자랑한다. 왼손에 힘이 없어 오른손 손톱을 깎지 못할 때는 신세한탄 구슬프고, 꽃무늬 이불에 드러누워 낮잠 잘 때는 들숨날숨으로 늘어진 뱃살 출렁인다. 손님들과 앉은뱅이 밥상 마주하고는 시종 어서 먹으라며 빨갛게 나눈다. 초고추장 찍어 굴을 먹고 얼음 띄운 냉면을 비비고 싱싱한 딸기를 건넨다. 주먹 불끈 쥔 걸개그림 앞에서 마이크를 쥐는 순간 눈썹 하나 떨림 없이 수천수만 노동자를 압도하고 천둥 같은 박수와 깨알 같은 웃음을 끌어낸다.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아들에게 그동안 혼자서 잘 있었느냐사람들이 찾아와서 얘기 많이 하고 가드냐묻는 음성은 진흙처럼 척척하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공터의 사랑> 부분 

 

네모난 하늘에 번지는 순수하고 투명한 긍정의 기류. 영화에는 인물다큐가 빠지기 쉬운 영웅주의적 관점이 없고 한 사람 생의 스스로 그러함이 무심한 구름처럼 흐른다. 어느 새 빗물 같은 눈물이 내린다.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술회하는 장면은 비통의 극에 달하고, 상처 그 이후 어머니가 사람을 챙기는 잔잔한 말들과 표정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비애’(김수영). 가령 어머니는 다큐를 찍는 감독에게 총각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있다더니 몇 살이냐 묻는다. 7살이라니까 놀이방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30만원이라는 말에 큰돈이네, 있는 사람한테는 껌 값이지만 없는 사람한테는 큰돈이지한다. 그리곤 작은 한숨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사는 게 힘들어한없이 시어빠진 그 대사가 가슴에 박혔다. 신념의 올곧음을 행하기는커녕 일상의 고단함에 치여 사는 날들. 점점 시들하고 쩨쩨하게 기우는 삶을 연민하던 나는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말을 낚아챘다. 그러니까 기껏 영화관에 앉아 눈물콧물 찍어가며 이소선의 위대함을 보기보다 나의 초라함을 위로한 것이다.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이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 <울고 있는 가수> 부분  

 

눈물의 투사. 이런 적 처음이 아니다. 재작년에 시어머니가 고관절이 부러져 입원하셨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가서 병실 문을 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반응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늘 세로로 서 계시던 분이 가로로 누워있으니 낯이 설고 며칠 사이 확 쪼그라든 모습에 연민이 치밀기도 하였지만, 실은 울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멀쩡히 지내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다만 일주일이라도 앓다가 돌아가셨으면 이별을 예비했을 텐데 싶어 두고두고 한스러웠다. 입원실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를 보니 느닷없이 엄마의 얼굴이 개입한 거다. 효심 아니라 통한. 이 눈물의 사회학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엄마 친구가 하도 섧게 울어 이제 고만 우시라고 했더니 그러셨다. “니 엄마 가엾어 우는 게 아니다. 내 설움에 우는 거지.”

그 후로 종종 목도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시청 분향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들려왔다.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자기설움 토해내는 갖가지 궁상과 청승의 사연들. 소방호스보다 긴 눈물의 행렬들. 고역의 시절을 살아내느라 지친 민초들은 광장에 마련된 공식 초상집에 와서 꺼이꺼이 울다가 가곤 했다. 박완서는 단편소설 <친절한 복희씨>에서 눈물에 담긴 미묘한 복합감정을 멋진 문장으로 정리했다. 첫사랑이었던 그에게 청첩장을 건네니 그 남자가 우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건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

...

내일의 노래란 있는 것인가

정처없이 물으며 나 운다네

- <늙은 가수> 부분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 든어머니, 이소선은 2011931일 향년 81세로 영면에 드셨다. 어머니 생애 마지막 2년을 그림자처럼 붙어서 기록한 태준식 감독 제작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더 놀다 가지라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자주 찾아뵐 게요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오던 창신동 골목에서 전체의 그림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조직과 효율이라는 몸에 밴 그동안의 작업 관성을 버리고 작업했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눈길이 고맙고도 궁금했다. 그이의 가슴에는 어떤 큰 비애의 강물이 있어 한 삶을 이리도 고요히 받아낸 걸까. 덕분에 나는 어머니의 삶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는 게 힘든데 그 힘듦에서 어떻게 재밌고 값지게 살아야할까, 삶의 기본값으로 주어진 설움과 청승을 어떻게 품고 갈까, 아주 구체적으로는 어디에 돈과 시간을 써야할까를 배웠다.

19701113. 불에 타 온몸에 붕대를 감고 끓고 있는 전태일은 엄마에게 말한다. 내가 죽는 건 암흑 속에 작은 구멍 뚫는 거 에요. 그 구멍을 조금만 넓혀주세요. 어머니 그렇게 사세요. 빨리 대답하세요. 그래.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 잘 안들려요. 크게, 크게! 아들은 더 크게 대답하라고 애원하다가 눈을 감는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돌아 일주일을 잠을 못 잔다는 어머니. 생피 번지는 기억 안고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드러눕고 살아간 당신. 생전에 집회현장에서 연행이나 구류로 끌려간 횟수만도 250회가 넘는다는데, 어째서 영화에는 억척스러운 투사가 아닌 다정한 선녀가 노니는가. '킥킥 당신 이쁜 당신......' 용량이 매우 크고 자애롭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한 어머니의 영혼을 빌리고 싶다. 남의 입에 밥 들어갈 끼니를 걱정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주름이 늘고 검버섯 피어난 어머니의 생은 얼마나 시적인가.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찍어라

찍힌 허리로 이만큼 왔다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또 찍어라

또 찍힌 허리로 밥상을 챙긴다

 

비린 생피처럼 노을이 오는데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또 물도 먹고

드러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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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구름 / 허수경

[올드걸의시집]


한--, 청평쯤 가서 매운 생선국에 밥 말아먹는다
내가 술을 마셨나 아무 마음도 없이 몸이 변하는 구름
늙은 여자 몇이 젊은 사내 하나 데리고 와 논다

젊은 놈은 그늘에서 장고만 치는데
여자는 뙤약볕에서 울면서 논다
이룰 수 없는 그대와의 사랑이라는 게지!
시들한 인생의 살찐 배가 출렁인다
저기도 세월이 있다네 일테면 마음의 기름 같은 거

천변만화의 무심이 나에게 있다면
상처받은 마음이 몸을 치유시킬 수 있을랑가
그때도 그랬죠 뿔이 있으니 소라는 걸 알았죠
갈기가 있으니 말이란 걸 알았죠
그렇다면 몸이 있으니 마음이라는 걸 알았나

생선죽에 풀죽은 쑥갓을 건져내며
눈가에 차오른 술을 거둬내며 본다
무심하게 건너가버린 시절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시절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집>, 문학과지성사



하루 참 길다. 비가 내려 집에 갇혀지냈다.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가 비가 들이치면 닫았다가 바닥을 닦았다가 걸레를 빨았다가 화장실에 간김에 세면대를 닦았다가 세수랑 양치를 했다가 책상에 앉았다가 뉴스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커피를 내리다가 밥을 차리다가를 서너번 반복했다. 기계적이다. 사각으로 된 집안을 미로찾기 하는 것처럼 요러조리 돌다보니 밖이 캄캄하다. 비오는 휴일엔 집이 감옥이다. 빗발이 창살이고, 자식들은 나를 감시하는 간수다. 특히 딸내미. 참새처럼 떠들어 귀여운데 그 재롱이 길어지면 고문이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어도 와서 그림을 들이민다.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크게 가고싶은 곳도 없고. 다만 말 안하고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인데 '고독의 권리', 그러니까 은신처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게 싫다. 밝은방. 다 드러난다. 식구들 잠든 시간. 겨우 되찾은 어둠에 살 비비는 심정으로 심야를 맞는다. 

웬 글을 그렇게도 많이 썼을까. 일주일 동안 그 생각을 했다. 하나마나한 말들. 나에겐 절박해도 남에겐 크게 중요치 않은 사건들. 누구도 궁금해하지도 않은 이야기. 끊임없이 세상을 대상화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참 많이도 떠들었다. 그 아득한 정념과 도취. 한바탕 꿈같다. 뱃살처럼 출렁이는 글들. 응시하고 만져보고 두드리고 늘여보고. 기름기처럼 떨어지지 않는 그 집착들. 그 언어화된 흔적들이 괜히 꼴도 보기 싫었으나 그것이 내 삶을 지켜주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위안해본다. 여자의 똥배가 자궁을 보호하듯이 말이다. 쓰지 않았으면 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서른 이후 생에 대한 애도작업이었으려나. 슬픔을 잘 떠나보내기 위한 몸부림. 돌이켜보면 글뿐만이 아니다. 삶이 총체적으로 그랬다. 무목적성. 무계획성. 무시간성의 환상적 구현. 뭘 그리도 만날 쓸데 없는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가까이는 엄마와 남편에게, 이따금씩 오랜만에 만나는 벗들에게 듣고 살았다. 

쓸 데 없음의 결정판을 이루려고 지난 목요일엔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3차 희망버스 떠나는 날까지 열흘 전부터 240시간, 240인이 일인시위를 했는데 마침 장소가 숙대입구역에서 가까웠다. 연구실 근처라서 나도 신청했다. 낮동안 괜찮더니 오후7시무렵 부터 억수같이 비가 퍼부었다. 저녁에 일인시위 동지랑 숙대 근처 고대앞 스러운 허름한 주점에서 만났다. 파전에 막걸리 한통 비우고 건들건들 슬리퍼 끌고갔다. 밤 10시부터 11시. 앞이 안보이는 빗속. 피켓 들고 우산 들고 한 시간을 서있었다.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하고 산 죄값. 팔 아프게 반성했다. 11시부터 12시까지는 동지의 일인시위를 지켜보고. 12시부터는 발 잠기는 폭우에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렸다.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사라지는 검은 차의 행렬.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빈차없는 세상. 졸짜증.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는 시절. 그저 하루하루 쓸데 없는 짓으로 건너간다. "삶 속에는 비만 내리고 나는 육체를 우산 삼아 그 빗속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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