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먼 집> 과제리뷰 - 정념엔딩

[글쓰기의 최전선]

허수경의 <혼자가는 먼집>을 읽고 쓴 여러분들 과제를 읽어보았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문장이 안정적이고 줄거리도 제법 잘 읽힙니다. 글이 재밌어졌습니다. 문득, 저도 글이 쓰고 싶었어요. 억지로라도 과제를 내야하는 여러분이 질투가 나고 부러웠습니다. 이번이 벌써 7차시 과제이더군요. 매주 한 편의 글을 낳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전전긍긍 하다보니 변화가 일어나는구나, 성급히 그런 판단을 내려 보기도 합니다. 모든 반복적인 행위는 힘 방향을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틀어놓는 법이니까 아주 근거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수업의 가장 큰 공부는 자기가 쓴 글만이 아니라 다른 학인들의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쓰니까 재밌다’ ‘이건 좀 밋밋하다를 가늠하실 거에요. 그게 가장 큰 공부죠. 안목 기르기. 글은 지루해서는 안 됩니다. 충격과 반전과 자극이 범람한다고 글이 재밌지는 않지요. 플로베르도 말했듯이,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입니다. 글이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야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서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아야 하고, 한 사람의 삶을 관음하고 나니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아야 합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글을 쓸 때, 어떤 이야기를 장황하게 연대기순으로 풀지 말고 범위를 좁혀서 그 '상황' '사건'으로 독자를 데려가주세요. 그리고 하필 내가 왜 (하고 많은 사건 중에) 이 이야기를 썼는지 그 화두에 몰입해주세요. 그 주제의식이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살면서 풀어야할 '매듭'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정리의 욕구가 본능처럼 있거든요. 몸에 생채기가 난 부분이 가렵고 자꾸 손이 가는 것처럼, 자기의 풀지 못한 숙제는 한켠에 밀쳐두어도 자꾸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마련이니까요. 시간을 두고 응시하면서 쓰세요. 그것이 나올 때까지.

 

지난 번 과제주제 '음식'과 이번 과제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과제게시판이 더 콩닥콩닥 흥성흥성 했습니다.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존재를 지탱해주는 두 축이니까, 제법 주제가 동시상영한 셈이지요. 여러분들 글을 읽다 보니, 음식이라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고 지탱하고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임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음식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정서가 발생하고 언어가 생성되는가 배울 수 있었고, 그래서 음식은 좋은 글감이 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앞으로도 먹을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까 궁리해주세요.

 

정념에 대하여. 사랑이야기는 또 얼마나 달달하고 치명적이고 쓸쓸하고 텁텁한지요. 사랑의 감정을 후련하게 느끼고 써내기란, 또한 얼마나 어려운지요.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을 사랑과 성에 굉장히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길러냅니다. 개인의 탓은 아니라고 봅니다. 얼마 전 인터넷 사교육 업체 광고가 물의를 빚었듯이 우정파괴, 연애파괴 권하는 사회죠. 모든 이를 똑같은 거푸집에 넣고 길러내니 그것이 산업사회 노동자 양산에는 유리하지만 개별자 영혼에게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한참 감수성 예민하고 충만할 나이에 연애소수자로 자라나는 청춘들이 애처롭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현대의 학교들과 대학들은 학생들을 비인간화된 배움, 본성과 성으로부터 소외됨, 위계질서에 복종함, 권위를 두려워함, 자기 대상화와 살 떨리는 경쟁의 습성들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런 성격 자질들은 현대 산업주의의 뒤틀린 성격형의 본질이다. 그것들은 본성과 성 그리고 사람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들과는 철저히 떨어진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바로 그 성격 자질이다. - 아서 에반스


지금이라도 영혼을 사수할 것. 돌보고 가꾸어서 존재의 미학을 실천해야지요. 제가 글쓰기수업 할 때 농담처럼 여기 나와 있지 말고 연애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연애만큼 존재에 집중하고 언어가 폭발하고 생성과 몰락이 일어나는 시기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진담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연애와 병행하면 (시간관리를 잘 할 경우) 효과 두 배입니다다자이 오사무가 연애 권하는 말은 더 설득력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연애에 빠지는걸요. 이렇게 태어났으니, 애써 홀로 고독하게 태어났으니, 알고 싶지 않습니까? 둘이 어떤 것인지.’

 

이 세상에 사람은 많고 사랑도 많습니다. 흔히 제도적 관습적 도덕적으로 승인된 사랑과 불허된 사랑을 가르고 사고하지요. 그것이 익숙한데 물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 분할선은 누가 그었을까요. 글 쓸 때는 도덕의 잣대를 맹신하기보다, 당대의 도덕과 나의 삶이 충돌하는 지점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니체의 말을 상기해보세요. 이 세상에는 자기초극의 사랑이 있고 자기함몰의 사랑도 있을 테고요. 천개의 삶이 있다면 사랑도 천개일 것입니다. 불안한 두 인류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 일, 자기를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후련하게 사랑하세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제하고 검열하지 말고 쓰고 싶은 것을 실컷 다 퍼내서 쓰세요. 아무 일 없습니다. 자기가 안간힘으로 지키려는 것은 대부분 실체 없거나 모호합니다. 두려움 없이 살고, 후련하게 사랑하며, 실컷 쓰세요.

 

안전함이란 대체로 미신이다. 자연 속에는 존재하지 않고, 사람의 아이들도 전체적으로 그걸 겪지 않는다. 위험을 피하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보면 깡그리 드러내놓는 것보다 더 안전한 일이 아니다. 삶은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헬렌켈러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날았지.' 처음 보는 세상과 만나고 그 아름답고 슬픈 세상을 기록할 때 글이 되고 음악이 될 것입니다. 이번 리뷰는 짧은 편지로 대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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