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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2] 최영미, 원한의 인간의 고백 (12)
  2. [2010.10.16]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4)
  3. [2010.01.21] 행복론 / 최영미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12)

최영미, 원한의 인간의 고백

[올드걸의시집]


글쓰기 수업 때 들은 얘기다
. 그녀는 서른을 갓 넘긴 비혼여성이다. ‘달려라 하니처럼 커트머리에 자전거여행으로 팔도를 누비는 씩씩한 캐릭터이다. 하루는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마트에 갔단다. 시식코너에서 맛있게도 냠냠 먹고 있는데 직원이 그러더란다. “고객님~ 남편 안주용이나 아이들 간식용으로 좋아요~” 순간 당황하고 불쾌하여 제가 먹을 건데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고. 이 에피소드를 듣고는 다 같이 박장대소했다. 사실 처연한 웃음이다. 얼굴에 앳된 기색 사라지고 나면 한 여자의 개체성은 상실되고 엄마나 어머니로 호명되는 경우가 많다. 욕망하는 주체가 아닌 돌봄노동의 대명사로 불린다. 현실은 훨씬 징하고 찡했다. 주부들과 글쓰기 수업에서 그녀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주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개처럼 일상에 스며있는 여성억압적 현실은 퍽 쓸쓸하고 암담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결은 얼마나 무한하고 섬세한가. 여자로 사는 고단함을 제법 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일종의 존재론적 질환이다. 엄마 불쌍병이 원래도 있었는데 글쓰기 수업이 기폭제가 됐다. 행복한 이유는 거의 비슷비슷해도 불행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는 <안나 까레리나> 첫 문장이 떠올랐다. 같은 듯 다른 삶. 그 즈음 아는 선배가 엄마를 주제로 사진전을 한다고 했다. 나는 기대보다 우려를 표명했다. 너희가 엄마를 아느냐는 오만함인지 엄마를 부탁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인지 뭔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시집, 철학서, 실용서, 번역서 등등 장르불문 거의 모든 책 첫 장이나 머리말에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회한의 글귀가 적혀있다.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남자 필자의 책에서 자주 본다. 부채감정에 시달리는 아들들.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클리셰. 한 줄로 요약되는 차가운 이성. 그걸 보면 마음이 안 좋다. 남자들이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어머니를 호명함에 따라 불효자 아들 - 희생과 헌신의 모성관계가 영영 고착될 것만 같았기에 그렇다 

갤러리 관장이랑 그랑 같이 모여서 전시할 사진을 봤다. 국내외 중장년 여성들의 주름진 얼굴과 쪼그라든 젖가슴과 갈라진 손등과 발등과 철지난 꽃무늬 몸뻬의 추레한 입성이 슬라이드로 넘어가며 줄줄이 시야를 스치는데, 역시나 울컥했다. 나에게는 강인한 모성 전혀 아니고 국경초월 지지리 궁상인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때는 빗방울 같은 처녀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노동하는 신체가 보였다. “아마 저 백 명 넘는 여성들 중에 비혼도 있을 거예요. 나이든 여자가 다 엄마는 아니잖아요.” 꽈배기처럼 꼬고 또 꼬인 나의 속내를 밝혔다. 그도 조심스레 터놓았다. 남자로서 시선의 한계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대부분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교감이나 끌림이 있을 때, 대상화의 우려를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셔터를 눌렀다고 했다. 그럴 거다. 오랜 시간 우리사회 그늘진 곳만 찾아다니고 자기 주머니 털어 나누는 인정 많고 따뜻한 사람이다. 며칠 후. 사진전이 열리니까 와서 냉정히 평가해달라는 메일이 왔다. 답장도 사진전도 미뤘다. 내가 봐야할 건 엄니들 사진이 아닌 발끈의 여왕인 나였다. 한 장의 사진으로 가부장제 전복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가. 아니다. 내가 어쩌다가 원한의 인간이 되었을까. 모른다. 혹시 다른 해석과 화해의 여지는 없는가. 글쎄다
 

고통은 고통끼리 정붙여
살 맞대고 물어뜯는 밤,
치욕은 또 다른 치욕으로만 씻기느니
아무것도 그냥은 사라지지 않는다

- <폭풍주의보> 부분

내가 짓고 허문 마음의 감옥에서 엎치락뒤치락. 달이 차고 기울었다. 몸이 개운하고 가벼워졌다. 전시 폐장 삼일 전에 급습했다. 막상 얼굴 보니 더욱 미안했다. 우물쭈물 배시시 웃으면서 지각사태를 얼버무리고 있는데 아는 분이 나타났다. 우연의 구제! 평소 존경하는 보고싶던 우리들의 큰언니이다. 두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나누고는 저녁 먹는 자리에 따라갔다. 큰언니는 사진전을 보고서 당신 어머니의 신산스러운 삶을 떠올렸다. “그 때는 다 그랬지. 우리 아버지가 바람 피고 도박하고 어머니 때리고...일 년에 추수할 때만 꼭 한번 집에 왔어. 돈 가져가려고. 근데 나중에는 엄마가 너무 미운 거야. 좀 피하지 왜 맞고 있어. 아버지 늙어서는 가족들이 다 엄마 편만 들고 아버지 곁에는 아무도 안 갔지. 엄마가 미웠어. 사람이 외로운 게 제일 불쌍하잖아. 아버지가 정말 외로웠거든. 아버지 돌아가실 때 엄마가 후련해할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우셨어.”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자기얘기라며 가슴을 쳤다. “제가 시골에서 살았는데 밤중이면 이집 저집에서 여자들 비명이 들렸어요. 그럴 때마다 생각했죠. , 왜 여자의 인생은 이래야하는가.”

평생 당신이 갖지 못한 것만 꿈꾸신 아버지
자잘토실한 근심들로 광대뼈만 움푹 살진 어머니
....
징그럽게 애비 꿈, 에미 잠 축내는
아귀 같은 딸년들 하나, ,

- <우리 집> 부분

맑스가 그랬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과로를 내적으로 규제할 그 어떤 선험적 원리를 갖지 않는다고. 자본주의가 개별 자본가의 선의와 악의와는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삶도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부장제는 어머니의 과로를 내적으로 규제할 어떤 선험적 원리를 갖지 않았다. 능력이든 랜덤이든 운명이든 여성 일부가 좋은 남자를 만나는 건 우연이겠으나 전체로서 여성은 가부장 질서와 규범에 이미 속해있다는 얘기다. 다른 듯 같은 삶.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는 그 질곡이 더 심했으며, 주로는 딸들이 목격자이자 피해자로서 그 원한을 간직한다. 약자에게 원한은 단 하나의 기억의 장소다. 대를 거듭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다니, 뜨끔했다. 나는 너무 지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랬더니 선배는 그날 대화로 전시의 방향을 잡았다며 외려 고맙다고 했다. 큰 언니가 듣고 있다가 쓴 소리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거들었다. 덜 민망했다. 집요하게,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가길 얼마나 잘했는지. 소주에 맥주를 연거푸 마셔도 취하지 않는 밤이 얼마만인지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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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가을 / 최영미

[올드걸의시집]




나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슬프다고 다 우는 게 아니고 눈물이라고 다 순결한 게 아니다.  두 눈에 눈물이 삐져나올 때 '지금 나 슬픈가?' 생각해보면 정말로 가슴 미어질 때도 있고,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인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내겐 눈물이 방귀처럼 몸에서 삐져나오는 액체 정도. 수정같은 눈물 아니고 습관성 방귀나 집중호우 같은 개념이다. 내가 잘 우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집중적인 훈련으로 뇌에서 눈까지 눈물이 다니는 길이 닦인 것 같다. 스스로도 기가 막힐 때가 많다. 특히 오후 8시무렵 주차장 씬. 시장보고 오는 길에 차 댈 때 멜로배우처럼 운전대 앞에서 멍하니 눈물 흘린다. 클래식, 가요, 락 등 장르불문. 어둑한 밤길에 흐르는 음악이 나를 가을날 창가로 데려간다. 얼마전 라디오에서 이동원의 이별노래가 나왔다. 직효다. 가슴에 바람 한줄기 휭하니 지나가더니 일초만에 낙엽지듯 눈물졌다. 시동 끄고 마저 울고 일어난다. 장바구니와 휴지보따리 양손에 들고 뒤뚱 거리며 집에 들어가서는 꽃수레 쌀강아지 불러가며 호들갑 부리고, 밥 하고 찌개 끓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운다. 연기력 쩐다.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20년 전 맹렬히 학습할 때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책으로 봤었다. 돌베개에서 조영래 변호사님이 쓴 걸로 <전태일평전>이 나왔는데 사려다가 말았다. 안 봐도 '비디오'처럼 다 아는 이야기라고 여겼겠지. 헌데 책을 읽고서 그간 전태일이란 이름 석자만 알고있었다는 걸 알았다. 전태일은 생각보다 많이 가난했다. 생각보다 많이 고생했고 생각보다 훨씬 똑똑했다. 그의 존재가 헤아릴 수 없이 컸다. 맑스의 <자본론>의 초과노동 공부할 때는 전태일이 보이지 않았는데 전태일에서 <자본론>이 보였다. 자본의 포악함이 살갗을 할퀴었다. 그가 노동소외니 인간소외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노동자를 '밑지는 인생'이라고 표현할 때 죄스러움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눈물은 쓸모있었다. 울어 마땅한 대오각성의 눈물. 이주노동자가 우린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난 왜 전태일을 떠올리지 못햇을까. 난 자본이 왜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존속하는가를 치밀하게 고려하지 못했을까. 아직 짙게 물들지 아니한 초록 잎들 사이로 수많은 전태일이 보였다. 기억의 초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흩어졌다. 강수확률 높아지는 계절 가을. 눈물이 있으면 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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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론 / 최영미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올드걸의시집]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슬러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최영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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