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왜 살수록 빚쟁이가 되는가

[은유칼럼]


“왜 목동 아파트를 고집하느냐” “좁아터진 집에서 사느니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넓게 산다” “공부할 애들은 학원 안 보내도 공부한다”…. 내가 목동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사는 동안 귀가 따갑게 들었던 충고다.


신혼 때 남편의 지점 발령으로 목동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단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10층이었다. 몇 해 사이 백화점과 방송국이 들어서고 주상복합 시설과 고층빌딩이 앞다퉈 생겼다. 건물 안은 학원과 부동산으로 신속하게 채워졌다. ‘전문가 집단’ ‘물꼬터 학원’ ‘열정과 끈기’ ‘자기주도학습센터’ 등등 자고 나면 학원 간판이 내걸렸다. 내가 학원 천국 목동으로 이사를 간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학원들이 난입한 거다. 


그 즈음 난 20평 아파트 세입자가 됐다. 단지 안 가장 좁은 평수 맨 위층 복도 끝 집을 겨우 구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4인 가족이 살기엔 비좁았다. 그래도 이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이 아니라 양육 때문에. 목동은 내게 학원이 많은 곳이 아니라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언니들’이 많은 동네였다. 그 ‘언니들’은 남편 말고 육아 대체자가 없는 워킹맘에겐 동아줄이다. 육아 난민이 되느니 목동 빈민을 택했다.


 가끔 만나는 친척이나 지인들은 주저 없었다. 아이가 둘 있고 집이 목동이라고 하면 사교육 때문에 목동에 사는구나 자동으로 연상했다. 대개의 판단은 자기 정념과 욕망에 근거하는 법. 현실은 달랐다. 서울·경기 서남부권에서 세단을 몰고 와 아이들을 들여보내는 소위 이름난 학원과 족집게 강사를 집 앞에 두고 구경만 했다. 입시생이라고 해주는 것도 없는데 친구들과 생이별까지 시키기 미안해서 큰애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20년 살던 나의 고향 목동을 등졌다.


목포에 취재 갔을 때다. 여느 도시처럼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가 생겨났고 구도심도 재개발 위기에 처했다. 구도심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르신들만 남았다. 이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말했다. 어르신들이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려면 김치도 담가 이웃과 나누고 마실도 다니고 해야 한다, 그런데 노인네라서 음식 할 기력도 없고 관절도 성치 않고 귀도 안 들린다, 재개발이 시행돼 어르신들이 이 동네를 떠나면 살기 힘들 거라고 우려했다. 어르신들이 ‘살던 데서 살기를’ 고집하는 이유를 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에는 가난한 대학생의 속사정이 소상히 나온다. 독립연구자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서 “통장잔고는 늘 10만원을 넘지 못했”(9쪽)던 저자가 대학원까지 학자금 대출금 2200만 원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내가 무심코 가졌던 청년․공부․가난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게 했다.


“끼니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더 이상 절약할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세미나 뒤풀이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15쪽)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경우, 메뉴와 가격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195쪽)


‘우리 때’와 달리 혼밥이 왜 그리 유행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요즘 청년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스펙 관리만 하느라 밥도 혼자 먹고 깍쟁이처럼 뒤풀이도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500원 1000원이 고민거리가 되는 “굶주림이 익숙해진 삶”을 채무자-대학생은 피할 수 없었다. “밥 한 끼에 마음 졸이며 눈치를 보는 삶 속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 영역에서 스스로 단속하며 살아간다.”(196쪽)


또 다른 편견들. 가난한데 대학원을 왜 굳이 가려고 할까, 했다가 저자처럼 공부가 너무 재밌고 평생 하고 싶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까를 묻게 됐다. 학자금 대출 받지 말고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각 장학금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 “가난소개서”(99쪽)를 써야 한다며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강제적으로 발화하게 하는 것은 특정 계층에 대한 낙인화이자 폭력”(102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큰애도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아이의 표정이 얄궂었다. 장학금 종류마다 이름이 다르단다. 기준 학점 이상에, 부모 소득 분위 하위권 학생에게 지급되는 ◯◯◯ 장학금을 받았으니 그 사실 하나로 자기 처지가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거다. 나는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틀에 박힌 말로 위로했는데 저자는 나은 답을 들려준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부끄러운 것이다.”(102쪽)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 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 없다. 설명도 간단치 않다. 저자처럼 수년을 공부하고 책 한권 분량의 구조적 분석을 마쳐야 제대로 이해시킬까 말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189쪽)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유통 된다. 


나는 목동 아파트를 떠나 집을 구하며 주택담보대출이란 것을 받았다. 용쓰고 살았으나 살다보니 중년에 빚쟁이다. 20년 상환의 굴레에 갇혀 죽지도 못할 처지가 된 게 황망하고 서글펐는데 이 책에서 부채에 관한 다른 해석을 얻었다.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105쪽) 학생-채무자의 글에 노동자-채무자인 나는 위안을 받는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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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인공자궁을 생각함

[은유칼럼]

        “저 엄마 왜 울어?” 

        “몰라. 아까부터 울더라.”


간호사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멀어진다. 새벽 4시 32분 아이를 낳고 나는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예닐곱 시간 산통 끝에 몸통은 거죽만 남은 듯 너덜너덜했다. 혀가 껄끄러워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노란 모래 가루 같은 입자가 묻어나왔다. 물 좀 달랬더니 간호사가 적신 거즈를 준다. 그걸 입술에 대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무슨 스위치를 켠 것처럼 느닷없고 하염없이. 흐느낌도 통곡도 아닌 조용한 눈물의 방류를 간호사들이 본 모양이다.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오빠를 낳고 어떻게 나를 또 낳았을까. 첫 아이 출산 때 정신이 돌아오고 처음 든 생각이다. 몸을 초과하는 통증에 몸서리쳤다. 그래 놓고 나는 또 둘째를 낳은 것이다. 동이 트자마자 남편이 양가에 전화를 드렸고, 엄마는 아침 7시 병실 문을 열고 뛰듯이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던 엄마. 왈칵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고생했다. 애 낳는 게 얼마나 아픈데…”


삼칠일이 지나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가고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혼자 남겨졌다. 밤낮으로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쩔쩔매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방문을 닫는데 아이가 뒤척였다. 다시 토닥토닥하고 재우면 또 깨고 그러길 수차례. ‘잘 자라 우리 아가’를 입으로는 흥얼흥얼 등을 두드려주는데, 빨리 자라 좀 제발 하면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등짝을 세게 한 번 내리쳤다. 손바닥에 꽉 차는 조그만 등의 느낌. 후끈했다. 그런 난폭함이 내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놀랐고 더 놀란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는 분유도 이유식도 거부했다. 끼니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제발 한 입만 먹어라, 제발. 애원은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던졌다. 아기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모든 게 지옥이었다.” 

한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앓았던 경험을 글쓰기 수업에서 발표했다. 저 대목에서 멈칫,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오래 전 화의 기운이 나를 덮쳤다. 행여나 들킬세라 과제물에 시선을 두었다. 낭독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더니 세상에나,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휴지를 꺼내 코를 푼다. 각기 다른 연령 대 여성들이 운다. 침묵을 깨고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척척 해내는 육아가 나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들까.” 이 문장이 특히 공감이 간다고, “그 말을 저는 남편에게 들었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 이 집단적 슬픔의 광경이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도 육아의 고통을 자신의 모성 부족으로 탓하며 속울음 삼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안의 폭력 성향이 불쑥 나타날 때 어떻게 잠재울까. 문득 엄마들을 모아서 ‘봉기蜂起’를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충동적으로 페이스북에 봉기 단상을 올렸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토록 고된 육아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수행한 선배 엄마들에 대한 원망, 육아로 인한 일상의 압박과 인격의 왜곡에 대한 토로가 족자처럼 펼쳐지는 와중에 한 줄 의견이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저도 봉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봉기는 단순하다. 벌떼처럼 모여서 윙윙윙 떠들기다. 자기 공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법이니, 내 목소리를 내보내고 내 삶에 다른 목소리가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육아의 기쁨만큼이나 슬픔을, 어린 생명이 주는 충만함만큼이나 자멸감을 저마다 말하기만 해도 자신이 비정상이 아님을 알고 적어도 자기 억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또 엄마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펼쳐서 읽어주고 싶다. 그간 젠더 불평등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난 회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깨인 남자, 페미니스트 배우자를 만나더라도 여자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이뤄지는 한 양육에 따른 최종 책임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여자에게 귀속되더라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삶도 무거워진다. 비출산 경향도 그걸 인지한 여성들의 선택일 거다. 이에 대한 여성의 구제 방안을 『성의 변증법』 이 제시한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 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292쪽) 저자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인공 생식의 완전한 발달을 뜻한다. 즉,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잉태함으로써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지도록 하자며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것.”(294쪽)을 요구한다.


스물다섯 살의 저자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 급진적 주장에 처음엔 놀랐지만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시험관 아기처럼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인류의 반이 그들 모두의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293쪽)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와 물음을 던진 점,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 계속되는 출산으로 여성들이 끊임없는 부인병, 조로, 죽음을 겪는 현실의 단절을 꾀한 점, 온갖 지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온다.


         『성의 변증법』은 1970년에 발간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남성 양육 역할 확대는 남성 육아휴직제로 논의, 실천되고 있으니 파이어스톤의 ‘혁명적 요구’가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만 일축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정 불변의 현실로 여기지 않고 다른 삶을 그려보는 태도를 배웠다.


가끔 생각난다. 분만실 침대 위에서 천장의 사나운 형광등 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짓던 내 모습이. 귓속에 흘러들던 미지근한 눈물이.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애 낳은 게 뭐 대수라고 ‘저 엄마는 왜’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지 나도 잘 몰라서 더 서글펐다. 그런 내게 “임신은 야만적이다. (…) 임신은 종을 위하여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이다”(287쪽)라는 말, 자연분만의 신화화를 비판하는 문장은 구원 같았다.


그날 나는 여자의 몸에서 발생하는 고통,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외로운 노동을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고 미안했던 것 같다. 엄마가 몸을 푼 나를 보자마자 울었듯이 나 역시 막 탯줄 끊어낸 딸에게 본능적으로 눈물을 바친 게 아닌가 싶다. ‘생식의 기계화’를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언어가 내 초라한 눈물의 이유를 밝혀주었다. 그러니 점점이 흩어져 홀로 고행하던 여성들의 입술이 말할 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고통의 언어화’로 자기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들의 봉기는 인공자궁에 버금가는 혁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상상한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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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은유칼럼]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초봄 꽃샘바람이 사정없이 볼을 때리니 견디지 못해 올라탔다. 중간에 환승할 심산으로 옷에 붙은 바람을 털며 통로 안쪽에 자리를 잡던 중, 한 사람과 시선이 얽혔다. K? 어! 여기 웬일이냐며 우린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눅였다. 우연한 상봉, 물러설 곳 없는 마주침, 기승전결의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어정쩡한 시공간. 이 불리한 조건의 만남이란 강제된 소개팅처럼 어색하다.

 

“저 이 버스 백 년 만에 탔어요.” “저도 거의 안 타는 버스인 걸요.” 어머 이럴 수가.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영화 한 편 봤어요.” “무슨 영화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좋나요?” “네. 초반엔 좀 졸다가 울면서 봤네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서촌에 미팅이 있어서요.” “그랬구나. 아직 거기 살죠?” “작업실 냈어요.” “와, 번성하네요.”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이번에 작업한 거 좋던데요.”

 

K는 디자이너다. 5년 전 작은 잡지를 만들 때 같이 일했다. 편집주간까지 뭉쳐 낮밤으로 술 마시고 말을 나눴다. 흥이 잘 통했다. K는 젠틀하고 익살맞다. 엉뚱하고 단정하다. 색깔이 다른 양말을 신되 셔츠의 단추는 반드시 목 끝까지 채웠다. 남자 사람이지만 자기 얘기를 앞다투어 꺼내지 않았으며, 가만히 듣다가 한 번씩 재치 있는 대사를 쳤다. 섬세한 개인주의자인 K는 좋은 동료였다. 일하기에도 놀기에도. 가끔 보고 싶었지만 굳이 연락은 하지 않고 그리운 대로 흘려보낸 지 어언 2,3년이다.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K와 나. 말의 시속이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대화가 끊기다 이어지다 했다. K가 입을 뗐다. “영화 보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셨잖아요, 조용히 감동을 안고 가야 하는데 제가 괜히 방해한 거 아니에요.” 두 눈을 껌뻑이며 미안함을 표하는 K는 여전했다. 난 손사래를 치고 고개까지 흔들었다. 선의도 호의도 없이 우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탄 것뿐이다. 게다가 난 극장을 나와 카페에 들러 비엔나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영화를 음미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K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제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이 짧은 해후가 삼삼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의 모범 답안 같은 그것. 버스 장면을 몇 번 돌려봤다.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흔해 빠진 관용구로 인연을 복제하는 건 시시하니까. 자기가 나의 고요를 침탈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주어 고마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말씨는 다정하니까. 기억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싫음이 올라오면 곤란하니까.

 

예정된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 재작년 다른 결혼식에서 만났던 후배의 동기들 서넛이 보인다. 그중에 Y도 있다. 지난 번에 이혼 의사를 내비쳤던 Y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데도 연락 한번 안 하는 일이 살다보니 가능해지고 있다. 어쩐지 미안해서 직접 묻지 않고 옆에 있던 C에게 넌지시 물었다. 귀에 대고 손으로 막고 소곤소곤. “Y말야, 이혼했어?” C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때 했지”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쪽에서 다가오는 Y에게 말한다. “언니가 모르고 있어서 네 소식 업데이트 해드렸다.”

 

순간 난 뒷담화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저 혼자 무안했다. Y는 결혼하든 이혼하든 슬기롭고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비옷에 묻은 빗방울 털 듯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말 꺼내는 자체가 아직 괴로울 수도 있으니까, 여기는 결혼식장이고 난 교양인이니까 조용히 말한 건데 나 빼고 아무도 조심하지 않았다. 신여성들 사이에서 나만 동그마니 구여성이다.

 

그 어중간한 만남,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이란 관습적 사고의 척결을 주장했다. 결혼식은 일생의 화창한 하루일 뿐 평생의 맑음을 보장하는 의례는 아니고 이혼은 비감한 일이지만 앞날의 불행을 예비하는 생의 절차는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한다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혼은 축하로 이혼은 염려로 몸이 자동 반응한 것이다.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내 고민과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신상 정보의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쪽)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 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 차례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의 탑승 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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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

[은유칼럼]

“맞벌이 하시죠? 수레는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면서 보내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학부모가 되고부터 핸드폰 액정에 학교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철렁한다. 학교는 어쩐지 불길의 정조를 몰고 온다. 담임의 부름을 받고 불안을 안고 몇 시간 후 빈 교실에 마주 앉았을 때, 담임은 물었고 나는 순간 깜깜했다. 뭐든지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말할 게 없었다. 월수금 영어학원 간다고 둘러댔지만 고작 한 시간 반. 끝나면 아이는 또 무얼 할까.

 

상담 중 담임이 말했다. 지난주 과학 시험을 보았고 아이는 점수가 낮았고 남자애들 몇 명이 놀렸고 아이가 울었다. 수레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삭이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 같다. 일기에 ‘정주행’한 드라마 이야기를 쓰는데 줄거리 요약을 제법 잘한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라는 당부와 함께 상담이 끝났다.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교정을 빠져나오며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노랗고 바람은 시렸다. 세상과 내가, 나와 아이가 분리된 느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동장 끝에서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담임과의 상담은 아이를 아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아는 자리였다.


수레는 둘째다. 첫 아이 때는 교과서 육아로 임하느라 ‘9개월 이후는 물젖’ 이론에 입각해 만 9개월 되는 날 모유에서 분유로 갈아탔다. 지나고서 후회했다. 더 먹일걸. 그래서 둘째는 마냥 먹였다. 젖이 텅텅 비어 쭈글쭈글해지도록 대여섯 살까지 물렸다. 몸으로 연결된 관계는 각별했다. 내가 울면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찼다. 아이는 유능한 기상관처럼 내 표정 변화를 감지해 기분을 맞췄다. 그런데 난 밥만 제때 먹이는 것만으로도 허덕였고, 아이의 감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모성을 맹신하는 사이 아이는 열세 살이 됐다.

 

그날 밤 아이에게 학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대개 아이들이 그렇듯 겉으론 태연했다. 남자애들이 놀린 건 사실이지만 사과했고 다 끝난 일이라며 말꼬리를 잘랐다.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엄마는 무조건 걱정만 하잖아” 한다. 엄마한테 말해봤자 문제 해결에 도움은 안 되고 ‘엄마의 걱정’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문제까지 추가되는 구조를, 아이는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맥없이 울었다. 자책과 회한과 연민이겠지. 아이의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하고, 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 섭섭하고, 밤이고 낮이고 일하느라 뒷등만 보여준 게 면목 없고, 무엇보다 아이의 몸에 고통을 견디는 회로가 깔린 게 안쓰러웠다. 흘깃 쳐다본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고통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눈물은 공유하는 우리. 그런데 아이는 왜 울었을까.

 

돌이켜보니, 난 딸이랑 닮았다. 나도 엄마를 좋아했지만 엄마에게 비밀이 많았다. 인생 고민은 막판까지 숨겼다. 고등학교 때 담임한테 말대꾸하다가 뺨 맞고 조퇴한 일을 엄마는 모르고 내가 모범생에 순둥이인 줄만 안다. 스물한 살 노조 상근을 결정했을 때도 출근 전날에야 실토했다. 말하는데 눈물이 마냥 흘렀다. 노조 활동 하는 거보다 이유 없이 운다고 혼났다. 도대체 왜 우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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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에도 모녀 사이 눈물의 강이 흐른다.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딸은 출산 후 몸조리를 하다가 침대에서 느닷없이 운다. 엄마는 왜 우느냐며 이런저런 이유를 캐묻지만 딸은 말없이 울기만 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테마가 녹아든, 내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딸과 엄마는 서로에게 멀고도 가까운 타인이다. 주변의 동성애자 친구들도 엄마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마지막 과제로 남겨둔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엄마에게 말하는 딸은 드물다. 돌싱녀 친구들은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서 엄마에게 통보한다. 그건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효심과 자신의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포함된 고도의 협상이다. 덜 진실한 태도는 아니다. 자식의 정체성 투쟁에서 엄마가 최후의 관문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 봄날 상담 이후, 나는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에서 일찌감치 퇴각했다. 모녀관계에서의 무능을 인정했다. 아이도 내게 자주 상기시킨다. 수레는 요즘은 방과 후 집에서 고양이 무지와 노는 것으로 소일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난 무지가 너무 좋아. 잘 놀아주고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이것은 언중유골. 그러니까 고양이와 달리 (엄마) 사람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뜻이다. 난 잔소리 안 하는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아이 입장에선 아닌가 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157쪽) 구원은 과거에 있다. 엄마가 되면서 상실한 아이 적 감각을 복원하기. 이를 위해 엄마가 쓴 자식 양육서를 읽느니 딸이 쓴 엄마 이야기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앞부분에 나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귀했다. 사실 딸의 금발과 눈썹을 질투하는 엄마는 보편적이지 않다. 전래동화 캐릭터처럼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기심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고 명분을 사실로 바꾸는”(36쪽) 어머니, “내 삶에 분노를 쏟아내는”(41쪽) “나를 단 한번도 알아보지 못한”(43쪽) 필자의 어머니는 내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도 종종 딸을 향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기정 사실로 왜곡할 때가 있고, 나의 풀리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퍼붓기도 한다, 보고 싶은 면만 초점을 맞추니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연구 대상’ 엄마를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딸의 지적 여정을 함께 하고 난 후, 나의 꿈은 정교해졌다. 자기가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지 않는 엄마 되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수시로 그려보기. 그저 고양이처럼 말없이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http://m.ch.yes24.com/Article/View/32972

* 이 글은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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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예스24 직원이 뽑은 '올해의 저자'

[글쓰기의 최전선]


누군가에게 내가 '올해의 저자'라는 사실이 낯설고 멋쩍다. 근데 쫌 자랑하고 싶다. 야단스럽지 않게. 국내 내로라 하는 저자는 다 만나고 다니는 분이 나를 택해주다니 으쓱한 거다. 이상한 얘기지만, 무명 작가인 내 책을 '굳이' 읽는 독자들에 대한 신뢰가 나는 있다. 드물게 '발굴 독서'를 하는 분들이니까. 새해에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송구영신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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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통해 글자를 읽지만, 동시에 저자를 읽는다. 사람이 없으면 글자도 없고 문장도 없고 책도 없다. 좋은 책이 만들어지면 우선 저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스24 직원들에게 물었다. “올해, 당신이 만난 최고의 저자는 누구였습니까?”, “후속작을 기대하는 저자가 있습니까?” 독자 10명이 저자 10명을 꼽았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전작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 

 

 

장강명
조선영(도서1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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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저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장강명 작가의 이름을 말하겠다. 10년이나 기자 생활을 하다가 전업 작가로 변신한 이력도 흥미로운데다, 낸 책들도 흥미롭다. 문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우리 소설에 취재를 바탕으로 한 서사가 강한 작가가 많아졌음 좋겠고, 또한 그런 작가가 책을 자주 썼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는 나로선 그의 작품과 행보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이 작가에게 흥미를 느끼는 데에는 비슷한 연령-비슷한 시공간에서 활동한 이력-비슷한 것을 보고 자란 이력에서 오는 개인적 이유도 있다. 인상적이었던 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강연장(예스24 소설학교)에서 독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던 장면! 개인적으론 올해 낸 책 중엔 『댓글 부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존 버거
김유리(뉴미디어팀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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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나는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특별한 일이었다. 왜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서점직원인 나에게 책 추천하는 지인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고르고 서점에서 산 책을 선물 받은 적도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A가 X에게』. 대학시절, 사진, 그리고 관점으로서의 이해를 배울 때, 페이퍼 속에서 많이 오고 갔던 저자로 기억하는 존 버거가 쓴 소설이었다. 2009년도에 나온 책을 6년이 흐른 2015년에 읽고, 냉큼 '올해의 저자' 타이틀을 준 것은 그만큼 내게 큰 울림을 준 까닭이었다. 그 뒤로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킹』과 같은 그의 소설은 물론이고 『사진의 이해』 등 그의 저술도 챙겨 읽었다. 한 권 한 권 모두 즐거운 체험이었다. 한 저자를 통해 이토록 다채롭고 넓은 세계를 보고 따듯하게 무언가를 써내려 갈 수 있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쓴 저자를 대면하는 일. 지난 여름, 어쩌면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지나왔을 수도.


 

프레드릭 배크만
김성광(문학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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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취향은 보통 베스트셀러와 거리가 있는데, 올해는 좀 달랐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는 2015년 가장 사랑 받은 소설이면서, 나를 가장 만족시킨 소설이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서 본 프레드릭 배크만은 콧볼이 좁았고, 앙다문 입 때문에 턱주름도 깊었다. 고집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눈을 빛내며 카메라를 주시하는 모습과 한쪽으로 살짝 처진 입꼬리가 장난스러워 보였다. 『오베라는 남자』의 까칠한 캐릭터와 유쾌한 유머는 그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베라는 남자』는 굉장히 넓은 범주의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소설이면서도 유사한 독자층의 소설들보다 좀 더 특별한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시대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내 기준에는) 맞춤한 비율로 잘 안배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휘황찬란하고 그 자체로 코믹한 소재가 아니라 조그만 동네 한 켠에서만 일어나는 에피소드들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특별했다. 이것이 작가의 스킬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아직은 판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다음 행보가 굉장히 기대된다. 배크만의 후속작을 내년 봄에는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아마 그때는 이 작가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서유미
손민규(뉴미디어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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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는 좋아하는 소설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소설은 국적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점점 한국 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 번역된 글을 읽어야 해서 외국 소설을 꺼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재나 주제 의식이 한국 소설만큼 나와 밀접한 이야기가 없어서다.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한국 소설을 즐겨 읽은 건 아니고,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다. 전역하고 시간이 좀 뜨기도 했고, 함께 놀 친구도 없었으며, 취미 생활 할 돈도 없었던 시절 도서관에 즐겨 갔다. 이런 저런 책을 읽다 발견한 작품이 『쿨하게 한걸음』과 『판타스틱 개미 지옥』이었다. 한국 소설이 이렇게도 재밌다니! 그 이후로 서유미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 뒤로 그리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올해에는 『끝의 시작』과 『틈』 두 편을 냈다. 그런 면에서 2015년 적어도 내게는 서유미 작가의 해였다.


 

비비안 마이어
최지혜(역사,예술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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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던 비비안 마이어. 올 한 해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사람이다. 필름을 보관했던 창고의 임대료를 낼 돈이 없어 사후 경매로 필름이 거래가 되는데, 그 필름을 샀던 존 말루프가 우연히 사진을 인화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그녀는 유명 인사가 된다. 1950년대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사진들 235점이 소개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조작된 설정 사진이 넘쳐나는 요즘,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사진을 찍었던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를 다시 읽는다. 


 

도나 타트
김미선(도서2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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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방울새』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에서 책 홍보문구로 자랑스럽게 쓴 '완독률 98.5%'는 처음부터 눈에 거슬렸다. 무슨 기준으로? 누굴 대상으로? 측정은 어떻게?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천 페이지가 넘는 책' 이라는 부담감 때문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98.5%의 진실을 내가 확인해내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올해 안에는 기필코)으로 책을 펼쳐 들었고, 난 빠져들었다. 작가 도나 타트는 발자크의 열혈 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등장인물의 심리와 배경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미술관 폭탄 테러로 엄마를 잃은 시오. 엄마의 죽음에 대한 끝없는 자책과 그의 운명을 지배하게 된 명화 <황금방울새>. 소년의 삶은 위태로움과 안도감, 행복과 슬픔, 상실과 충만함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독자들을 책 속으로 흡입한다. 게다가 2권 말미에서 밝혀지는 반전이라니. 이 반전은 완독률 98.5%의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다.


 

은유
엄지혜(뉴미디어팀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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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저자의 전작(『올드걸의 시집』)을 찾아 읽었다. 은유 작가가 나의 '올해의 저자'인 이유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대체로 재미가 없다. 아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하나, 『글쓰기의 최전선』은 달랐다. 이론은 없고 체험이 있는 신기한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목적 없는 글쓰기'로 지을까도 생각했다. '목적 없음에서 드러나는 쓸모 없음의 쓸모'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최전선이란 무엇인가, 삶이 아닌가. 삶과 동떨어진 글쓰기란 존재할 수 있는가?' 책을 읽으며, 곱씹었다. 책만 좋았다면 '올해의 저자'로 뽑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본 저자는 사회와 유리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스티브 젠킨스
김규영(유아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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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과학이 싫었다. 내 성향을 정확히 파악한 엄마는 과학 백과사전 세트를 거금을 들여 구입한 후 억지로 읽혔지만, 여전히 지루했다. 내용은 어렵고 하품이 났다. 그런데 연말에 만난 『동물 아트 그림책을 보니, 어릴 때 이런 책을 만났으면 좀 달라졌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브 젠킨스는 여러 질감의 종이를 찢고 자르고 붙여서 동물 300여 마리를 만들었다. 그래픽인 줄 알았는데 종이로 하나하나 만든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다시 눈비비고 살펴보니 정말 그림마다 종이의 거친 질감이 동물의 털이 솟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항상 자신의 그림 재료가 되는 새로운 종이를 수집한다고 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 텐데, 신기할 따름이다. 나처럼 과학이라면 일단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 작가를 추천해 주고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작업 방식도 소개하는데 참 손이 많이 가고 꼼꼼한 작업을 하는구나 싶어 새삼 존경스럽다. 이래서 그동안 칼데곳 아너 상, 보스턴 혼북 상 등을 수상한 걸까? 상 받았다고 다 훌륭한 작가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좀더 신뢰가 가는 건 사실이니까.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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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선
김도훈(인문사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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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벌고 잘 살기』,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사소한 평범함마저 허락하지 않는 세상이라 그런가 보다. 저자 김진선은 잘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외친다. 모두가 다 이것만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때,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다른 현실을 꿈꾸며 그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 덕분에 '애쓰지 않는 삶'을 그려본다.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그런 인생 말이다.


 

황인찬
김지연(뉴미디어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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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올해의 저자는 황인찬 시인이다. 황인찬 시인을 처음 안 것은 『구관조 씻기기』 라는 시집을 통해서였지만, '아 난 이 사람이 정말 좋다.' 라고 느낀 것은 『희지의 세계』, 「종로사가」를 읽으면서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종로사가」를 보며 울고, 먹먹한 감정으로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그 시만 '끝도 없이' 읽고 있었다. 다이어리에 필사도 하고. 내가 나중에 결혼할 남자가 생긴다면 반드시 「종로사가」를 읽은 남자일 것이다(그러면 참 좋겠다). 참, <채널예스>의 인터뷰를 보니 시인님은 굉장한 훈남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저자일지도.

 

<채널예스> 독자 여러분의 ‘올해의 저자’는 누구였나요?

 

2015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알려주세요. (책 제목, 저자 이름, 이유) 
소중한 이야기를 남겨주신 독자 5분을 선정해 예스포인트 3천 원을 드립니다.
(발표: 2016년 1월 10일 / 채널예스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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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인터뷰 -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글쓰기의 최전선]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는데 계속 읽게 되었고,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드린다."는 말을 두 사람에게 들었다. 

책을 내고 인터뷰한 두 군데 매체 '시사인'이랑 '채널예스' 담당 기자다. 

무명 출판사에서 책을 낸 무명 작가에게는 쉬이 오지 않는 기회이다.  

특히 나의 이야기를 사려깊고 섬세하게 들어준 채널예스 엄지혜 기자의 글은 더 소중하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이 주는 기쁨을, 실로 오랜만에 느꼈다. 

이제 여기 나오는 말들을 배반하지 않는 삶을 착실히 살아야한다.




[글쓰기 특집] 은유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글쓰기의 최전선』 펴내
세상에 나와서 부딪히고 넘어져야 글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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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에 ‘글쓰기’를 입력하고 책을 검색하면 1만 5천 여권의 책들이 얼굴을 내민다. 팔리니까, 원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책일 텐데 ‘노하우’, ‘비법’, ‘매뉴얼’이란 카피를 맞닥뜨리면 다소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도 필요해서 책을 골라 읽다 보면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을 쓰고 싶던 마음이 달아난다.


포털 사이트에 ‘글쓰기’를 입력하고 책을 검색하면 1만 5천 여권의 책들이 얼굴을 내민다. 팔리니까, 원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책일 텐데 ‘노하우’, ‘비법’, ‘매뉴얼’이란 카피를 맞닥뜨리면 다소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도 필요해서 책을 골라 읽다 보면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을 쓰고 싶던 마음이 달아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책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글쓰기의 최전선』을 만났다. 글쓰기 책에 전쟁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무얼까. 치열하게 쓰라는 의미일까? 책 표지에는 7개의 가지각색 펜이 사이 좋게 누워있다. 두께도 길이도 펜촉도 모두 다르다. 다만 촉이 바라보는 방향은 같다. 7개의 펜은 독자들에게 단 한마디를 던진다. “’왜’ 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어렵다. 역시, 글쓰기는 심오해야 하는가? 저자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글로 여는 글을 대신했다. 미셸 푸코의 말로 시작되는 17쪽 장문의 글. 밤마다 구직 사이트를 헤매다 글을 쓰게 됐고 자유기고가가 된 저자는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는 그는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했다. 이어지는 서문의 글 ‘글쓰기의 최전선으로’. 저자가 글쓰기 수업을 열게 된 까닭을 차분히 밝힌다.

 

글쓰기 수업은 내 생애 최고의 배움의 장소였다. 학인들이 ‘이런 삶을 살았다’고 불쑥 내미는 글은 늘 압도적이었다. 질박하고 진지하고 열띠었다. 철학과 문학에서 읽지 못하고 신문과 라디오 사연에서 들을 수 없었던 삶의 진귀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았다. 그 비밀스러운 생의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타인과 관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깨칠 수 있었다. 인간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본능을 가진 존재임을 믿게 되었다” (33쪽)

 

최근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자신의 트위터에 “읽기와 생각하기와 글쓰기에 대해 매우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삶의 최전선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온 경험집약. 책 뒤 ‘글쓰기 수업시간에 읽은 책들’은 아주 잘 짜인 추천도서 목록이다”라고 적었다. 은유 저자는 친구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어디 신문에 대서특필 난 것보다 만 배쯤 더 좋았다”고 했다. 무명작가의 책을 꼼꼼히 읽어준 선생의 평에 평소와 다른 달뜬 기분을 느꼈다고.

 

‘글 쓰는 사람’ 은유는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2015년부터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평소 니체와 시(詩)를 읽으면서 질문과 언어를 구한다. 월간 『나.들』에 성폭력 피해 여성 인터뷰를 1년간 연재했고,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과 인터뷰집 『도시기획자들』 등을 펴냈다. 황지우 시인의 「산경」 시구인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를 마음에 새기고 글을 쓰는 저자 은유. 그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던 건, 『글쓰기의 최전선』이 가져다 준 감응 때문이었다. 진짜 글을 쓰고 싶은 감흥 아닌, ‘감응’.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후, 사람에 대해 조심스러워졌다


서문만 읽었을 때부터 막 설렜다. 글쓰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책을 내게 된 과정, 계기가 궁금하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했을 때, “내가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사람들이 글을 안 쓰면 그만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가 아는 걸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를 고백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감응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치 글쓰기에 관한 진리의 터득자인 양 수업하는 건 있을 수 없고. 나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회의하고 질문하는 가운데, 글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 생각을 정리했던 글이 서문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3년 정도 했을 즈음, 글쓰기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을 조금 받았다. 글쓰기 책이 워낙 많이 나오는데, 나까지 낸다는 게 민망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일반인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눈떠가는 과정이 신비로웠다. 배움과 우정이 일어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다. 그래서 좀 써보자고 생각했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시작해 올해는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하고 있다. 책에 글쓰기 수업에 오는 수강생들을 ‘학인’으로 지칭했는데, 대개 뚜렷한 목적 없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이 책을 ‘목적 없는 글쓰기’라고 지을까도 생각했다. 소설가 되기, 기자 되기, 시인 되기도 아니고 치유 글쓰기도 아닌, 특정한 목적 없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목적 없음에서 드러나는 쓸모 없음의 쓸모랄까? 수업을 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발견됐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가장 많은 수강 동기는 “나를 알고 싶어서”였다. 책을 내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홈스쿨링을 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블로그 인사말이 황지우 시인의 시구,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다 아프지 않나. 우울증도 많고 공황장애도 많고. 글쓰기 수업에 오는 분들이 모두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아프다는 내밀한 고백을 해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게 질병이기도 하고 병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고통이기도 했다. 다 개별적으로 아픈 거다.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고 한 건, 나의 아픔을 사회에 나가 말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좀 나아지니까. 치유가 된다기보다 아픔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약간’의 믿음이 있다. 글 쓰면 다 좋아지는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인차가 있으니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인들에게 오히려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공부일 거다. 사람들이 대개 자기 개인의 경험의 폭을 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데, 글쓰기 수업에 온 학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상세한 이야기를 통해서 삶이란 게 개개인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좀 조심스러워졌다. 쉽게 단언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를테면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아?”라는 생각을 덜하게 됐다. 모두 저마다 삶의 고유한 배경과 조건에서 고통이 발생하는 거고,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더 섬세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심스러워진 것도 같고. 그동안 지은 죄도 생각나고 그랬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나?


이를 테면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쉽게 말했던 것들이다. 글쓰기 수업에 17살 소년이 오는 경우도 있었고 20살 학생이 오기도 했다. 그들이 어릴 적 엄마와 겪었던 갈등 상황들을 듣고 ‘이런 것도 아이들한테는 상처가 되는 구나’를 알게 됐다. 다양한 세대가 모여있으니까 학인들도 서로 인지가 되는 거다. 나이를 좀 드신 분들은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겠구나’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다양한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최근에 “글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꽤 공감했다. 저자도 그러한가?

 

처음 글쓰기 수업을 열었을 때,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했다. 강의실에 젊은 친구들이 와 있는데 마음이 짠했다. “이 화창한 봄날에 왜 여기에 와 있냐? 행복해지면 잡지 않을 테니 언제든지 나가라”고 했다. 행복한 사람은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정말 힘들지 않나.

 

요즘은 SNS 시대다. 사람들의 자기표현도 많아졌는데.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리는 글은 사소한 자기표현인데, 자기과시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내가 좋고 행복할 때는 말을 많이 할 수 있다. “나 책 나왔어”, “좋은 일 있어”, “나 상 받았어” 같이 이야기할 수 잇는데, 어두운 감정, 고통이나 상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발언할 장이 별로 없다. 왜냐면 내 아픔, 약점, 상실을 이야기했을 때 개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까. 우리는 불행을 받아들이는데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연습이 안 되어 있어서 큰일날 것처럼 반응한다. 불행도 해석된 고통을 앓고 있다.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감정이든 불행한 감정이든 밖으로 나오는 게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는 공론의 장이 없다. 기껏 하는 게 술 먹고 친한 사람들이랑 하소연하는 일인데, 그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푸념을 늘여놓는 거다. 이걸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불행한 일이나 개인의 고통은 공적인 자리에서 안전한 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부모가 “우리 아이가 대학을 안 가서 슬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탈학교 아이가 밖에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도 살 수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글쓰기 수업에도 알고 보니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들이 많았다. 부모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서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다가, 어느 시점에 말할 수 있게 되면 홀가분해진다. 그런 게 좋은 거다. 지지해줄 수 있고 다독거려줄 수 있으니까. 내가 처한 불행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불행한 건 아니다. 행복적인 요소도 줄 수 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불행이 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답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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