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2.13] 어느 면접관의 고백
  2. [2013.08.05] 오은 - 이력서 '밥 먹기 위해 쓰는 것' (6)

어느 면접관의 고백

[차오르는말들]

 

마흔 넘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년 만이라 얼떨떨했다. 열 명 남짓 일하는 작은 비영리조직이라도 회사는 회사다. 출퇴근, 야근, 회식, 주간업무회의 등 온갖 직장의 관습을 익히느라 진땀 흘리며 늙은 신입사원노릇을 수행했다. 그런 내가 입사 4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면접관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비록 팀원을 한 명 두었지만 직함이 팀장이라서, 조직에서 나이가 많은 죄로 그리되었다. 자기를 신입으로 아는 나한테 면접관을 하라니 자아분열 돋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무실 테이블에는 서류심사를 앞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이백인분이 쌓여있었다. 저 존재의 아우성들, 사각형에 갇힌 면면들. 꼭 무슨 전단지 묶음 같았다. 귀해 보이지 않았다. 옆 자리 젊은 팀장은 일차 서류를 추렸다며 면접 대상자 여섯 명을 골라달라고 이력서 파일을 건넸다. 형광색 포스트잇과 함께.

밥을 먹고 쓰는 것./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 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오늘 밤에도/ 내 자랑을 겸손하게 해야 한다./ 혼자 추는 왈츠처럼, 시끄러운 팬터마임처럼 (-오은 이력서)

그 삶의 편철들을 차례로 넘겼다. 반짝이 스티커 같이 현란한 말들이 퍽이나 처량 맞게 느껴졌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각종 자격증, 현장 경험, 직무능력, 어학연수 등 여러모로 나보다 나은 실력과 경험을 갖춘 지원자도 눈에 들었다. 누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도 서류를 최대한 꼼꼼히 읽고 겨우 선별하고 면접채점표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하고 새로운 동료를 가까스로 맞았지만, 면접 스트레스가 컸다. 사람을 서류로 골라내는 거, 삼십 여분 대화로 평가하는 거, 오라 가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 먹고 살려면 자본가가 내놓은 조건에 굴복해야 하는 현실. 인간을 길들이고 왜소하게 만드는 데 면접은 무척 유용해보였다. 나는 면접을 보면서도 노동자의 위치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반년 후 상반기 공채 면접을 또 치렀다. 사람이 이렇게 무뎌지는가 싶게 두 번째라고 좀 덤덤했다. 서류를 보는 일은 덜 부대꼈다. 세 명 뽑기 위해 열 명을 면접했다. 이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괴로웠다. 나머지 여덟 명의 선량한 얼굴이 눈에 밟히고 곡진한 맹세의 말들이 귀에 울렸다.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얼마나 낙담할까.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당장 일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장기 취준생의 빈 하루는 또 무엇으로 채우려나. 자기비하에 빠진 건 아닐까.

기업은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지만 잘한다는 기준은 랜덤이다. 너무나 많은 관점과 이해가 얽혀있다. 산업화시대는 근면·성실이 정보화시대에는 창의·도전이 인재의 덕목이다. 지나치게 꼼꼼하고 사리분별 명확한 사람이 조직과 불화했을 경우, 후임자를 뽑는 면접에서는 부드러운 말투의 순종적인 유형이 동일한 조건이라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누가 좋음을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므로, 인재의 기준은 워낙 당대의 것이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나와 잠시 눈을 맞추었던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삶에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기분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처럼 얼결에 등 떠밀린 얼치기 면접관도 얼마든지 있으니 부디 기죽지 말라고.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신고

오은 - 이력서 '밥 먹기 위해 쓰는 것'

[올드걸의시집]

 

밥을 먹고 쓰는 것.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

한 줄씩 쓸 때마다 한숨 나는 것.

 

나는 잘났고

나는 둥글둥글하고

나는 예의 바르다는 사실을

최대한 은밀하게 말해야 한다. 오늘밤에는, 그리고

 

오늘밤에도

내 자랑을 겸손하게 해야 한다.

혼자 추는 왈츠처럼, 시끄러운 팬터마임처럼

 

달콤한 혀로 속삭이듯

포장술을 스스로 익히는 시간.

 

다음 버전이 언제 업데이트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 쓰고 나면 어김없이 허기.

아무리 먹어도 허깨비처럼 가벼워지는데

 

몇 줄의 거짓말처럼

내일 아침 문서가 열린다.

문서상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다.

 

 

- 오은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문학동네

 

 

 

이주 전 즈음, 수능 100일 앞두고 처음으로 입시설명회를 가보았다. 양천구민회관에 유명한 입시전문가가 온다며 별일 없으면 같이 가보자고 아는 언니가 권유했다. 도대체 아들이 고3인데 원서는 어디에 어떻게 써야하는지 까막눈처럼 답답하기도 했던 참이고 마침 집 근처이기도 해서 따라나섰다. 2시에 가까스로 맞춰 도착했다. 강연장 입구부터 열기가 후끈했다. 두두두두. 분주한 발걸음이 심장 박동 소리 같았다. 설렘, 긴장, 초조의 에너지가 조여 오는 느낌이다. “1층은 자리가 없습니다. 2층으로 가세요.” 2층에 올라가서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맨 앞자리에 겨우 앉았다. 2시에 시작해서 5시 반까지. 두툼한 자료집을 펴놓고 설명을 듣노라니, 우매한 고3엄마는 당황하고 감탄하고 탄식했다.

 

1부는 작년에 서울대학교를 가장 많이 보낸 명문귀족고 하나고등학교 선생님이 한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샘플로 띄워놓고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을 설명했다. 2부는 이대부고 선생님이 각 대학별 논술, 적성 전형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문과학생인데 수학 점수가 안 나온다, 그럼 이 대학을 참고하면 되겠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식이었다. 다 듣고 나니까 안개가 걷히는 것도 같았고, 어차피 수능점수만 좋으면 선택지가 넓다는 점에서는 과거 입시제도와 크게 바뀐 게 없어 시시하단 생각도 들었다.

 

몇 해 전 아는 선배가 아들이 고3이 되자 딱 일을 그만두고 입시설명회만 따라다녔다. 도대체 엄마의 역할이 뭐 길래 저렇게까지 열성인가 궁금했다. 그 아들이 서울대를 갔다. 워낙 어릴 때부터 탁월한 아이였으니 당연한 귀결 같기도 했는데 그 선배는 공부를 아무리 잘 해도 안심할 수 없다며 정보와 전략의 중요성 강조했다. 우리 동네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수능은 정보 싸움이라고, 성적은 별로인데 무슨 전형을 뚫어서 명문대 보냈다는 엄마들 얘기가 무용담처럼 들려 왔다.

 

그럴 때마다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먹고 살기 바빠서 하루 종일 일 나가야 하거나 배움이 짧아서 저 방대한 암호덩어리 같은 입시요강을 독해할 수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지금의 입시제도는 이 사회의 취약계층을 이중삼중으로 배제시키고 소외시키는 제도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 이런 제도를 고안한 사람들은 학원 자본과 특목고 재단의 이익과 결탁한 기득권 세력일 것이다.

 

입시설명회에서 소개한 아이들이 쓴 자소서라는 것도 기성품 반짝이 패션처럼 번드르르했다. 친구들과 자전거여행 다녀온 것조차 사진을 첨부해서 자신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포장하는 수단이 되어버리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변의 사람과 경험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 느끼지 못하고 자기의 목적에 - 결국은 자기 상품화에- 편입시키는 기술을 십대 때부터 배우고 있었다. 그래도 가장 계산 없고 순수해야할 나이에 말이다. 자기 존재증명을 외부 권력의 요구와 틀에 맞게 능숙하게 때로는 비굴하게 해내는 것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 공부하다보니 서울대를 갈 수는 있어도, 나는 서울대 가기 위해 태어났고 살아왔다고 말해진다는 것에 수치를 느껴야할 게 아닌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극기와 극복부터 강요하는 해병대 캠프의 일상화 버전이 아닌가.

 

며칠 전에는 선배의 친구에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선배의 집안 행사 때, 그러니까 십년에 두어 번 마주치는 정도이고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닌 관계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너무 사랑하는 조카가 특목고 다니거든, 고3인데 고려대 입학사정관제 원서를 넣을 예정이니 자기소개서를 좀 봐줄래?그런다. 너무 당황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언니는 이러는 게 큰 실례인 줄은 알지만이라는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평소 선배가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부탁한다는 발언을 덧붙였다. 다 듣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제 아들도 고3인데요, 자소서 안 봐줬는데당황한 눈치였다. 내 아들이 고3인 것은 물론이고 내가 생계형 글쓰기로 정신없이 산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 나라 학벌사회 상징자본의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대단하긴 하구나. 한 사람을 저렇게 염치없이 만들 정도이구나. 큰 실례인 줄 알면서 부탁하는 건, 얼마나 실례인지 아는 게 아니라 전혀 모르는 것이다. 특목고 아이들이라고 다 싸잡아 얘기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삶의 이력이나 가치관을 알아서 꼭 내가 돕고 싶은 학생도 아니고, 자기소개서 하나 자기 힘으로 쓰지 못하고 일가친척의 자원까지 총동원해서 오직 자기 앞가림에만 매달리는 아이를 돕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내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저런 부탁을 할까. 앞으로 내 가치와 지향을 더 분명히 드러내고 언행일치하면서 살아야겠구나, 계급재생산에 복무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다짐은 다짐이고. 거절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겠는 상황에 빠진 게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부실한 사람이다. 실수와 허점이 많고 민폐도 끼치고 이율배반적으로 갈등하면서 산다. 이기적인 엄마로 살아온 미안함과 뭔지 모를 부러움으로 인한 반발일 수도 있다. 근데 사실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소서나 수행평가의 글쓰기 과제를 단 한 번도 봐준 적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요청하지도 않았다. 작고 보잘 것 없더라도 자기 힘으로 하는 게 중요하니까, 망쳐보는 것도 배움이니까, 또 고유성을 간직하는 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보다 내가 끼어들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어서, 결정적으로는 내 일이 더 중요해서 밥만 잘 챙겨먹이면서 지켜보고 있다. 아이가 뒤처지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이 모순되고 부조리한 체제에 순응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거의 방치와 방목 사이에서 이뤄진 양육행위를 나는 그렇게 합리화하고 있다.

 

수능이 백일도 안 남았다. 아들이 영어 수학에만 매달리더니 과탐 성적이 너무 안 나와서 물리 과외를 시작했다. 영어수학 학원비 굳은 돈을 과탐으로 돌렸다. 어제 첫 수업을 하고 나서 엄마, 한 달만 일찍 할 걸 그랬어요한다. “인생에서 제 때라는 건 없어. 네가 결단하고 시작하면 그게 제 때지. 지금부터도 열심히 하면 되잖아의연한 엄마 행세를 하면서 말했다. 한 달을 아쉬워하더니 수업 끝나고서는 덥다고 또 누워서 세월아 네월아 마냥 뒹굴 거리는 아들을 답답한 심정으로 지켜본다. '저것이 나중에 밥은 먹고 살아야할 텐데...' 결국은 밥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한 인간의 존엄과 대결하고 거래하는 구도가 되어버렸다. 이 세계의 비참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까. 고3 아들도 힘들겠지만, 하는 일 없는 고3 엄마도 고달프다.

 

 

 

 

 

 

 

 

 

신고

'올드걸의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진주 - 이백  (13) 2013.09.17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16) 2013.09.11
오은 - 이력서 '밥 먹기 위해 쓰는 것'  (6) 2013.08.05
헌책들 / 이영광  (6) 2013.05.01
아름다운 적(敵) / 강정  (8) 2013.03.13
감각 / 랭보  (2) 2013.02.28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