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왜 살수록 빚쟁이가 되는가

[은유칼럼]


“왜 목동 아파트를 고집하느냐” “좁아터진 집에서 사느니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넓게 산다” “공부할 애들은 학원 안 보내도 공부한다”…. 내가 목동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사는 동안 귀가 따갑게 들었던 충고다.


신혼 때 남편의 지점 발령으로 목동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단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10층이었다. 몇 해 사이 백화점과 방송국이 들어서고 주상복합 시설과 고층빌딩이 앞다퉈 생겼다. 건물 안은 학원과 부동산으로 신속하게 채워졌다. ‘전문가 집단’ ‘물꼬터 학원’ ‘열정과 끈기’ ‘자기주도학습센터’ 등등 자고 나면 학원 간판이 내걸렸다. 내가 학원 천국 목동으로 이사를 간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학원들이 난입한 거다. 


그 즈음 난 20평 아파트 세입자가 됐다. 단지 안 가장 좁은 평수 맨 위층 복도 끝 집을 겨우 구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4인 가족이 살기엔 비좁았다. 그래도 이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이 아니라 양육 때문에. 목동은 내게 학원이 많은 곳이 아니라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언니들’이 많은 동네였다. 그 ‘언니들’은 남편 말고 육아 대체자가 없는 워킹맘에겐 동아줄이다. 육아 난민이 되느니 목동 빈민을 택했다.


 가끔 만나는 친척이나 지인들은 주저 없었다. 아이가 둘 있고 집이 목동이라고 하면 사교육 때문에 목동에 사는구나 자동으로 연상했다. 대개의 판단은 자기 정념과 욕망에 근거하는 법. 현실은 달랐다. 서울·경기 서남부권에서 세단을 몰고 와 아이들을 들여보내는 소위 이름난 학원과 족집게 강사를 집 앞에 두고 구경만 했다. 입시생이라고 해주는 것도 없는데 친구들과 생이별까지 시키기 미안해서 큰애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20년 살던 나의 고향 목동을 등졌다.


목포에 취재 갔을 때다. 여느 도시처럼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가 생겨났고 구도심도 재개발 위기에 처했다. 구도심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르신들만 남았다. 이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말했다. 어르신들이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려면 김치도 담가 이웃과 나누고 마실도 다니고 해야 한다, 그런데 노인네라서 음식 할 기력도 없고 관절도 성치 않고 귀도 안 들린다, 재개발이 시행돼 어르신들이 이 동네를 떠나면 살기 힘들 거라고 우려했다. 어르신들이 ‘살던 데서 살기를’ 고집하는 이유를 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에는 가난한 대학생의 속사정이 소상히 나온다. 독립연구자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서 “통장잔고는 늘 10만원을 넘지 못했”(9쪽)던 저자가 대학원까지 학자금 대출금 2200만 원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내가 무심코 가졌던 청년․공부․가난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게 했다.


“끼니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더 이상 절약할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세미나 뒤풀이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15쪽)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경우, 메뉴와 가격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195쪽)


‘우리 때’와 달리 혼밥이 왜 그리 유행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요즘 청년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스펙 관리만 하느라 밥도 혼자 먹고 깍쟁이처럼 뒤풀이도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500원 1000원이 고민거리가 되는 “굶주림이 익숙해진 삶”을 채무자-대학생은 피할 수 없었다. “밥 한 끼에 마음 졸이며 눈치를 보는 삶 속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 영역에서 스스로 단속하며 살아간다.”(196쪽)


또 다른 편견들. 가난한데 대학원을 왜 굳이 가려고 할까, 했다가 저자처럼 공부가 너무 재밌고 평생 하고 싶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까를 묻게 됐다. 학자금 대출 받지 말고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각 장학금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 “가난소개서”(99쪽)를 써야 한다며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강제적으로 발화하게 하는 것은 특정 계층에 대한 낙인화이자 폭력”(102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큰애도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아이의 표정이 얄궂었다. 장학금 종류마다 이름이 다르단다. 기준 학점 이상에, 부모 소득 분위 하위권 학생에게 지급되는 ◯◯◯ 장학금을 받았으니 그 사실 하나로 자기 처지가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거다. 나는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틀에 박힌 말로 위로했는데 저자는 나은 답을 들려준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부끄러운 것이다.”(102쪽)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 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 없다. 설명도 간단치 않다. 저자처럼 수년을 공부하고 책 한권 분량의 구조적 분석을 마쳐야 제대로 이해시킬까 말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189쪽)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유통 된다. 


나는 목동 아파트를 떠나 집을 구하며 주택담보대출이란 것을 받았다. 용쓰고 살았으나 살다보니 중년에 빚쟁이다. 20년 상환의 굴레에 갇혀 죽지도 못할 처지가 된 게 황망하고 서글펐는데 이 책에서 부채에 관한 다른 해석을 얻었다.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105쪽) 학생-채무자의 글에 노동자-채무자인 나는 위안을 받는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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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읽다 - 슬픔만 한 혁명이 어디 있으랴

[은유칼럼]

“눈물이 안 멈춰요.” “대통령 연설에 눈물 흘리긴 처음이에요.” 5월18일, 눈물바람으로 SNS가 넘실댔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 전문과 동영상을 너도나도 인용하고 공유하고 복기했다. 한날한시에 다 같이 운다. 남의 아픔에 감응하는 이 집단적 애도극을 보며 비로소 정권 교체를 실감했다. 

내게 눈물은 길조다. 모두가 웃는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세월호 참사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할 줄 아는 대통령을 가졌으면 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기업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했고, 폭력이나 치욕을 당했을 때 큰 소리로 울고불고 떠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가 긴 병명처럼 세간에 오르내릴 정도로 무감각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웠다.

글쓰기를 배우러 온 이들도 더러 고백하곤 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메말라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 ‘문제 있다’고 여기는지. 그 각성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돈이나 스펙이 아닌 슬픔 없음을 근심하는 사람의 탄생이 내심 반가웠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감정과 느낌을 되찾을까. 이 물음은 어떻게 인간다운 세상이 가능한가와 닿아 있다.

내 슬픔의 계보를 따져본다. 슬픔의 첫 습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자료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망월동 묘역을 다녀오면서 소위 세상에 눈 떴다. 당시 구 묘역의 황량한 무덤가에 놓인 영정 사진에 눈 맞추고 유가족이 써놓고 간 편지를 일일이 다 읽었다.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오월 광주를,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통장부터 회원 가입까지 온갖 비밀번호 네 자리를 0518로 지정했다. 그 숫자를 암호 삼아 세상을 읽고 슬픔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의 저자 백상현은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는 것 자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능이 존재한다(23쪽).” 슬픔에 빚진 나로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퍼서 책 보고 슬퍼서 글 쓰고, 이 슬픔에서 돌아 나와 저 슬픔으로 건너간다. 

이 책은 슬픔이라는 개념으로 세월호 사건에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갔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 슬픔은 우리를 스펙터클의 관객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하는 특별한 슬픔의 형식이었다. 존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그리하여 광장으로 나서게 만드는 슬픔이었다(61쪽).”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슬픔은 이렇게 혁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80년대 ‘광주’를 통해 그랬듯이 ‘세월호’로 존재의 지진과 정치적 각성을 경험했다. 슬픔의 주체로서 광장을 메웠다. 저자가 라캉을 빌려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보다 슬픔을 끌고 가는 힘이다. 권력의 부패와 무능이 야기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 죽음과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말기.

이번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가 감동적인 이유가 바로 이 ‘슬픔의 가치’가 존중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의 주체들이 공동체의 내부를 유령처럼 떠돌게 되었을 때 국가는 그들을 억압하려 했고, 길들이려 했다(44쪽).”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밝은 미래를 내다보자’ 같은 “생각의 방황을 정지시키는 고정관념들(25쪽)”에 타협하지 않았고 슬픔을 털어내지 않았다. 문학에서 일상에서 현장에서 광주를 불러냈다.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자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욕망(45쪽)”이다. 슬픔의 인간띠가 더 길어지고 질겨졌으면, 부디 애도의 눈물바람이 오래갔으면 한다. 아무도 침몰하지 않도록.



- 시사인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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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 존은 없다

[은유칼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좌를 열었을 때다. 한 여성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라며 아기를 데리고 참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생후 12개월 남아랬다. 두 마음이 다퉜다. 마음 하나. ‘공부하러 나와서까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 내게 아이란 존재의 훼방꾼, 공부의 대립물이었다. 책 한 줄 보겠다고 아이의 숙면을 얼마나 애태웠던가. 마음 둘. 아이를 달고서라도 ‘공부하러 나가고픈’ 그 여성의 열망은 불과 얼마 전까지 내 것이기도 했다. 외면하면 반칙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학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아기라는 불편한 존재를 배제가 아닌 관계의 방식으로 우리 삶-공부에 들여 보자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아기는 온순했다. 기적처럼 두세 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필기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간혹 수업이 끊겼지만 여느 수업의 흐름을 벗어나진 않았다.


영유아와 함께 수업이 가능하다는 선례와 신뢰는 그렇게 생겼다. 엄마의 시도, 동료의 협조, 아이의 견딤. “남편이 일찍 온다고 해놓고 늦어서요” “맡길 곳이 없어서요” 요즘도 가끔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지 엄마들은 문의를 하고 아이들은 장학사처럼 수업에 슬그머니 들어온다. 또한 곁에 없다 뿐 전화로 수업에 끼어들기도 한다. 엄마 학인은 주로 강의실 ‘문간’에 앉는데 아이에게 긴급한 연락이 오면 튀어나가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이 육아·공부 병행의 난리통에서 난 외부자였다. 공부하는 여성들의 분투를 지지하고 조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긴급 호출이 왔다. 군에 간 아이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제가 걸 순 없고 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거든요. 문자도 안 되고….” 일이분가량 수업 중단을 초래한 나는 일이분 정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저 혼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무살 넘은 군인 ‘아이’ 때문에 양해를 구하게 될 줄이야. 도대체 인간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지만 공부하면서 사람답게 살기는 퍽 어렵다. 공부든 일이든 하나의 목적성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본다. 관계를 놓치고 일상을 망친다. 내 경우 그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오도록 도운 건, 무력한 아이다. 틈만 나면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떼어지지 않는 성가신 존재가 복잡한 삶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도록 환기시켜준 것이다.


‘노 키즈 존’이란 말을 보고 철렁했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며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 출입을 금한다는데 그 논리가 옹색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여전히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권리를 주장할까. 그래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양육의 책임을 나누지 않는 어른(배우자)에게 가야 할 원망이 애꿎은 아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5467.html?_fr=mt5#csidx686b75dac6a85a0bcf25b75e560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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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사람,기억,기록]

어제 학인들에게 받은 선물. 드물고 귀한 손그림과 편지.

나중에 혼자 이런 책을 내고 싶다. '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나도 그랬다. '은유'는 나에게도 은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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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 화장하는 아이들

[은유칼럼]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파우치를 꺼내놓고 입술연지를 바르거나 파우더를 두드린다. 헤어롤을 말고 있거나 셀카에 열중하는 아이도 보인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30명이 모인 자리니까 시집이나 만년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책상을 점령한 의외의 사물에 놀란 건 사실. 이 신세계 구경에 어리둥절한 내게 담당 교사는 귀띔했다. 대다수 아이들을 ‘교칙 위반자’로 만들 수 없다는 교장의 용단에 따라 화장 금지 조항을 없앴다고. “아침에 화장 못 하고 출근하면 애들한테 빌려 써요” 하며 웃는다.

비슷한 시기에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교사와 학생의 토론 끝에 교내 화장 금지로 결정이 났단다. 화장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대립 관계가 아니다, 화장을 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는 내용의 과제물을 한 학생이 제출했다. 그 글에 다른 학생이 동조했다. “십대는 화장 안 해도 예쁘다는 어른들 말은 이상해요. 사실 화장하면 더 예쁘잖아요?”

귀가 반짝 열렸다. 정말 그런가 싶어 떠올려 보았다. 화장한 얼굴은 해님같이 쨍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햇살처럼 퍼진다. 또렷함과 은은함의 차이, 같은 신체 다른 표현이다. 근데 나는 왜 교복 입은 아이들은 맨얼굴이 낫다고 믿었을까. 자연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 같은 건가. 생각해 보니 생각 자체가 없었다. 크는 동안 어른들에게 들어온 익숙한 말들을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적용한 것뿐. 대개의 선악 판단이 그러하듯 낯섦에 대한 저항, 익숙함에 대한 옹호일 따름이다.

딸내미는 열여섯살이다. 얼마 전 생일엔 립글로스와 마스크팩을 선물로 받았다. 앞머리를 목숨처럼 여겨 헤어롤을 가방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는데 아직 화장은 하지 않는다.(밖에서는 하는지도 모름) 고등학생이 되면 입술색도 짙어지려나. 10년 후쯤엔 직장을 나가면 아마 지하철에서 허둥지둥 손거울 들고 눈썹을 그리는 민폐녀가 될 수도 있겠다. 중년엔 지체 높은 신분이 되어 실수로 헤어롤을 매단 채 회의에 나가면 일하는 여성의 애환을 보여준 미담의 주인공이 될지도.

아이들 말대로 어른들은 이상하다. 화장과 관련한 일련의 삽화들을 떠올려보니 일관성이 1도 없다. 십대의 강을 건너는 순간 여자의 민낯에 대한 평가는 순수의 상징에서 무례의 표시로 뒤바뀐다. 화장이 부덕에서 미덕이 되는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지 알 수 없으나 당사자인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는 애초부터 배제된다. 묻지 않고 듣지 않고. 화학 물질이 아이들 피부에 해롭기에 화장을 금한다는 말도 궁색하다. 이 미세먼지 나쁨의 나라를 건설한 어른들이 말이다.

이상한 어른 일인으로서 반성한다. 갑갑한 교육 현실, 세상은 못 바꾸고 화장으로 자신을 바꾸겠다는 주체적인 아이들을 잠시나마 힐끔거렸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분류하는 자체가 기성세대의 문법이다. 그것도 낡은. 너희들은 육체의 좋음에 무능하여 영혼의 좋음을 최상으로 추구하는 게 아니냐고 니체라면 일갈했을 것이다. 좋은 화장품 사주든가, 해로운 화장품은 만들지 말고 팔지를 말아야 한다. 그게 어른의 일이다.

꾸준한 행동으로 분가루 냄새 약동하는 교실 풍경을 일궈낸 아이들, 화장을 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주장하고 어른들의 두서없는 논리와 간섭을 반박하는 아이들, 나탈리 크나프가 정의한 대로 “인생의 지혜에서 아직 멀어지지 않은” 이 존재들에게 화장권이 널리 허용되길. 화장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1757.html?_fr=mt5#csidx5ef57463832a4e797c7f8ebf50f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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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은유칼럼]

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살다가 슬퍼지는 순간이면 자동 연상처럼 세월호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문장들이 생각난다. 내 평생 목도한 비참의 총화, 그 불가해한 사건의 실체를 나는 이 책으로 이해했다. 번호가 매겨진 희생자가 아닌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는 건 어떻게 실감하는지, 슬픔이 정수리까지 꽉 찬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얼마나 휘청이는지, 대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지 부모들은 소상히 들려준다.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54쪽) 미지 아버지 유해종 씨는 사고 한 달 만에 속옷 무늬로 딸의 시신을 찾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 무늬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속옷은 아이의 몸과 취향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표지이자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유품이 된다. 아마도 미지 어머니는 일 인 분만큼 줄어든 빨랫감에서, 보이지 않는 땡땡이 무늬의 속옷에서 딸의 부재를 두고두고 실감할 것이다.


소연 아버지 김진철 씨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도둑질만 안 하고” 다 해가며 홀로 아이를 키운 한 부모 가장이다.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데 잃은 그 아이,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을 때 소포가 와 있었다. “풀어보니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책들인듸 소설책과 참고서였어유. 그걸 보고 엄청 울었네요. 그 책들을 샀을 때는 열심히 살려고 그런 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겄시유.”(96쪽) 


그 책들은 결국 딸의 친한 친구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짧게 언급된 한 줄 문장. 나는 그 행간에 오래 머물렀다. 너무 빨리 간 아이의 너무 늦게 도착한 책들을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책들을 건네주고, 살아 있는 딸의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에 눈물짓고 소주를 들이켜다 쓰러져 잠들었을 아버지의 동선을 끝말잇기 하듯이 더듬더듬 그려보았다. 유통기한 없는 슬픔의 효소는 얼마나 오래 아버지의 술잔을 채웠을까.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줬다.”(126쪽)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가슴을 친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자주 쓴다. 한국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사회학 교과서이자, 삶을 질문하게 하는 철학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문학 작품으로 더없다. 이 책을 언급하면 거의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사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안 읽었다며 뒷걸음질 친다. 용기 내어 읽고 나면 눈빛이 단단해진다. 어떤 학인은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알려고도,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은 무소통‧불통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대로 믿어왔고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국세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미 떠나간 아이들이 뭐 건진다고 달라질까? 아이를 잃은 슬픔이 어떤 건지 아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행동 양식의 초기화는 의식화로 이어진다. 세월호 사건이 “동네 저수지에 사람 하나 빠졌을 때보다 못하다”(291쪽)는 사실을 알아챈다.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26쪽) 물론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거야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는 한 명도 없다.”(157쪽) 


        제훈 어머니 이지연 씨는 교육열 높은 엄마였다. 아이의 뇌기능에 좋게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주고 영어를 일찍 접하게 하고 학원 스케줄을 관리했다. 저만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한참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고 위로를 받았다며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29쪽)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는 세희 아버지 임종호 씨는 “우리 자식 물에 빠져죽지 않게 수영 가르쳤다”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 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276쪽)


         얼마 전 인천에서 여덟 살 아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친구와 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빌리러 한 여성을 따라간 뒤 봉변을 당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충격이 컸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젊은 엄마에게 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권했다.


나는 과연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인지, 멀쩡함의 기준이 되는 시기와 조건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자기 욕망과 세계관에 질문을 던지는 책. 핸드폰을 지니거나 생존 수영을 배우기처럼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게 자기 슬픔과 불안을 직시하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 채널예스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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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동은 일흔 넘어도 계속된다

[은유칼럼]

“여자는 박쥐나 올빼미같이 살며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마거릿 캐번디시).” 장송곡 같은 인용문으로 시작된 글을 읽어나간다. “남자 셋을 부양하기 위해 컴컴한 새벽길을 나서는 일이 서럽고,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가 없는 낯선 건물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고됐을 것이다.” 엄마의 신산한 노동은 일흔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다. 


오십 대 딸이 인터뷰한 엄마 이야기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이 써오는 부모님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한다’는 가부장제 성별 분업 구도가 허위는 아닐까 자주 의심한다. 자식들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생계를 맡았지만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곤 했다. 엄마는 식당 아줌마로, 목욕탕 매점 이모로, 백화점 의류판매원으로, 똥 치우는 간병인으로 일했고, 농사짓거나 장사했다. 그러고도 당연히 살림까지 도맡았다. 


작년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일곱 명을 만났는데 그중 여성 피해자가 두 명이다. 김순자씨는 결혼 후 잦은 외도로 ‘집 나간’ 남편을 대신해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5년 옥살이를 마치고는 여관 청소와 식모살이를 전전했다. 삼 남매를 혼자 키웠다. 박순애씨는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나 12년 수감 생활 끝에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파출부뿐이었다. 


남성 피해자들도 투옥과 낙인으로 생활고가 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 그 가장 노릇의 빈자리를 채운 것도 아내인 여자였다. 반찬가게나 분식점을 차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했고, 십수 년 생선 행상으로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부터 남편 옥바라지까지 묵묵히 해냈다. 광주리를 하도 이고 다니는 바람에 정수리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며 “눈물 흘려서 한강수 되고 한숨 쉬어서 동남풍 된다”라고 말하는 피해자 아내의 사연을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나의 주변에서 대강만 추려도 이 정도. 여성 노동 잔혹사가 고구마줄기처럼 끝도 없이 나온다. 앞치마 두른 전업주부는 드라마나 CF에서 나올 뿐 현실에서는 드문 거 같다. 여성의 노동은 왜 기록되지 못했을까. 나부터도 여성은 임노동자 이전에 엄마나 아내로 먼저 인식했다. 노동자는 전태일이다. 노동자는 택배기사다. 남성은 허드렛일을 해도 일하는 주체로 인정받는다. 이 남성 중심의 노동사에서 여성의 노동은 늘 주변화한다. 


한번 초점이 맞춰지니 보였다. 열아홉 개 섬 사람들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낸 산문집 <섬>을, 그래서 나는 여성 노동 생활사로 읽었다. 계집애로 태어나 윗목에 버려졌던 딸내미, “나나 마나 한 거라는 이름을 받아 ‘쬐그만 몸뚱이’로 평생 갯일, 부엌일, 피붙이들 바라지로 살아온(98쪽)” 형도의 나 할머니.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갯바닥으로 나갔(186쪽)”다는 우도 해녀 공명산 할머니. 웅도의 박경분 할머니는 “웅크리고 조개를 캐니까 몸이야 항상 아프지유. 오늘 갔다가 내일 앓더라도 일단은 나가게 돼유(86쪽)” 한다. “나이 들어서 물일은 못해도 손 노릇은 할 만항께(164쪽)” 칠순을 넘기고부터는 비탈밭에 약초 가꾸기로 용돈벌이 하는 세 할머니가 만재도에 살고 있다. 

<섬>박미경 지음봄날의책 펴냄

기록되지 못한 여성 노동 잔혹사 

<섬>은 숙박시설과 맛집 안내, 역사 유적 소개로 채운 여행서가 아니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민중 자서전이다. 그리 사는 할머니들은 섧지 않다는데 읽는 나는 섧다. 퇴근이 없고 정년이 없어 평생 몸을 가만두지 못하면서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상과 보호도 받지 못한 여성들. 자식 돌봄, 부모 봉양, 가사 노동, 남성 부양 의무까지 이중 삼중 노동을 수행하는 쪼글쪼글한 그녀들로 인해 나는 여자는 ‘고생한다’는 막연한 통념을 벗고 ‘노동한다’로 인식을 바로잡았다.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 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 곱과(노을이 고와)(98쪽)”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220쪽).”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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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은유칼럼]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초봄 꽃샘바람이 사정없이 볼을 때리니 견디지 못해 올라탔다. 중간에 환승할 심산으로 옷에 붙은 바람을 털며 통로 안쪽에 자리를 잡던 중, 한 사람과 시선이 얽혔다. K? 어! 여기 웬일이냐며 우린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눅였다. 우연한 상봉, 물러설 곳 없는 마주침, 기승전결의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어정쩡한 시공간. 이 불리한 조건의 만남이란 강제된 소개팅처럼 어색하다.

 

“저 이 버스 백 년 만에 탔어요.” “저도 거의 안 타는 버스인 걸요.” 어머 이럴 수가.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영화 한 편 봤어요.” “무슨 영화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좋나요?” “네. 초반엔 좀 졸다가 울면서 봤네요.”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서촌에 미팅이 있어서요.” “그랬구나. 아직 거기 살죠?” “작업실 냈어요.” “와, 번성하네요.”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이번에 작업한 거 좋던데요.”

 

K는 디자이너다. 5년 전 작은 잡지를 만들 때 같이 일했다. 편집주간까지 뭉쳐 낮밤으로 술 마시고 말을 나눴다. 흥이 잘 통했다. K는 젠틀하고 익살맞다. 엉뚱하고 단정하다. 색깔이 다른 양말을 신되 셔츠의 단추는 반드시 목 끝까지 채웠다. 남자 사람이지만 자기 얘기를 앞다투어 꺼내지 않았으며, 가만히 듣다가 한 번씩 재치 있는 대사를 쳤다. 섬세한 개인주의자인 K는 좋은 동료였다. 일하기에도 놀기에도. 가끔 보고 싶었지만 굳이 연락은 하지 않고 그리운 대로 흘려보낸 지 어언 2,3년이다.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K와 나. 말의 시속이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대화가 끊기다 이어지다 했다. K가 입을 뗐다. “영화 보고 나서 눈물까지 흘리셨잖아요, 조용히 감동을 안고 가야 하는데 제가 괜히 방해한 거 아니에요.” 두 눈을 껌뻑이며 미안함을 표하는 K는 여전했다. 난 손사래를 치고 고개까지 흔들었다. 선의도 호의도 없이 우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탄 것뿐이다. 게다가 난 극장을 나와 카페에 들러 비엔나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다. 영화를 음미했으니 괜찮다고 했다. K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제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이 짧은 해후가 삼삼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의 모범 답안 같은 그것. 버스 장면을 몇 번 돌려봤다.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흔해 빠진 관용구로 인연을 복제하는 건 시시하니까. 자기가 나의 고요를 침탈한 거 아니냐고 물어봐주어 고마웠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말씨는 다정하니까. 기억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싫음이 올라오면 곤란하니까.

 

예정된 후배의 결혼식에 갔다. 재작년 다른 결혼식에서 만났던 후배의 동기들 서넛이 보인다. 그중에 Y도 있다. 지난 번에 이혼 의사를 내비쳤던 Y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궁금한데도 연락 한번 안 하는 일이 살다보니 가능해지고 있다. 어쩐지 미안해서 직접 묻지 않고 옆에 있던 C에게 넌지시 물었다. 귀에 대고 손으로 막고 소곤소곤. “Y말야, 이혼했어?” C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때 했지” 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저쪽에서 다가오는 Y에게 말한다. “언니가 모르고 있어서 네 소식 업데이트 해드렸다.”

 

순간 난 뒷담화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저 혼자 무안했다. Y는 결혼하든 이혼하든 슬기롭고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이혼이 비옷에 묻은 빗방울 털 듯 간단한 문제는 아니니까, 말 꺼내는 자체가 아직 괴로울 수도 있으니까, 여기는 결혼식장이고 난 교양인이니까 조용히 말한 건데 나 빼고 아무도 조심하지 않았다. 신여성들 사이에서 나만 동그마니 구여성이다.

 

그 어중간한 만남, 결혼식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평소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이란 관습적 사고의 척결을 주장했다. 결혼식은 일생의 화창한 하루일 뿐 평생의 맑음을 보장하는 의례는 아니고 이혼은 비감한 일이지만 앞날의 불행을 예비하는 생의 절차는 아니다.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한다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혼은 축하로 이혼은 염려로 몸이 자동 반응한 것이다.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내 고민과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신상 정보의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쪽)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 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 차례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의 탑승 기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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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부와 놀다

[은유칼럼]

여자 다섯이 짧은 여행을 갔다. 나이는 삼사십대. 농부, 활동가, 직장인, 백수 등 하는 일도 제각각. 레즈비언 부부와 이성애자 셋. 이성애자들 중 둘은 기혼, 하나는 비혼이다. 아무래도 커플이 있다 보니 중심이 그들에게 쏠렸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티격태격할 때는 여느 부부 같았고 손잡고 걷는 모습에선 흔한 연인이 떠올랐다. 아득한 바다보다 다정한 사람 풍경에 눈이 시렸다. 곤한 일정을 마친 밤, 술이 한 순배 돌자 사랑 얘기가 나왔다.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 아직 연애의 꿈이 짱짱한 비혼 친구가 물었다. 십년 전 모임에서 봤어.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있는데 눈에 띄더라고. 어떤 점이? 얼굴이 동그랗고 예뻐서.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사고가 유연했어. 2차는 우리끼리 따로 가자고 했지. 얘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자취방에 가자고 했는데. 어머, 라면 먹고 갈래요? 그날은 그건 아니었고…. 그로부터 7년째 그들은 연인이다.


사연이 한 보따리다. 친한 동창들한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 어떤 친구가 그러지 말고 남자랑 한번 자보라고,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네가 먼저 여자랑 한번 자봐라. 네가 가능하면 나도 남자랑 자겠다고 했다고. 딸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양가 부모는 ‘시집 안 간 딸’ 때문에 속 끓이다가 마흔이 넘자 포기한 거 같다고 했다. 한데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걱정이 들어섰으니 파트너의 존재를 ‘죽고 못 사는’ 오랜 지기로 아는 엄마가 하루는 그러더란다. ○○가 너 두고 먼저 결혼하면 어떡하니?


웃기엔 슬프고 울기엔 다행인 상황. 엄마의 바람이 자식의 결혼이 아니라 자식의 행복이라면 그건 엄마가 모르는 상태로 충족되고 있으니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커밍아웃은 포기한 상태다. 누구를 탓할까. 부모 세대는 물론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학교, 종교, 매스컴을 통해 이성애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남녀의 결혼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섹슈얼리티를 일탈이나 변태로 몰아가는 ‘강제적 이성애’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그들 역시 자기 앎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혹독한 시기를 거쳤고 자기 몸-삶과 화해한 후에야 비로소 짝을 만난 것이다.


‘공짜 숙소’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이틀 만에 성사된 여행이다. 차 한 대에 끼여 타고 가다가 경치 좋으면 걷고 배고프면 먹고 수시로 셔터를 눌러대는 별다를 것 없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은밀하고 넉넉했다. 어딜 가나 귀 따갑게 반복되는 자식 얘기, 입시 얘기, 돈 얘기, 연예인 얘기 같은 레퍼토리를 벗어나 안으로 파고든 대화들 덕이다.


일명 내면 탐사 여행.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성애 가족 중심 제도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부부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엄마, 아내, 딸, 노동자 같은 역할의 수행자로 보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존재에 관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자리. 정체성이나 성욕 같은 단어를 두서없이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중얼거려도 민망하지 않은 배치 덕에 익숙한 나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2017년 퀴어문화축제 기사가 뜬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로 슬로건이 정해졌단다. 나중으로 유보될 수 없는 삶이 어디 그들뿐이랴. 인생이라는 책에서 접어두었던 존재 물음의 장. 사랑, 존재, 관계, 편견, 욕망의 페이지를 넘기도록 자극을 준 내 친구들을 만나러 오월에는 퀴어 축제로 떠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7903.html#csidx956910baa66b9b194d896a92ff4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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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파스텔 - 논픽션 쓰기 처음학교 개강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논픽션 쓰기 처음학교> 신청 링크 : http://www.frente.kr/product?pa=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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