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버티기

[은유칼럼]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는데, 찬 바람이 불면 내 마음엔 커다란 김장독이 산다. 남도의 땅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김치를 중시했다. 배추김치는 기본에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물김치를 번갈아 담갔고 김장철엔 손이 더 커졌다. 김치 가져가라는 전화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선 냉장고에 자리도 없는데 또 담갔냐고 기어코 한소리하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 엄마 김치를 못 먹게 된 지 10년이다. 김치 가뭄으로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시댁에서 가져온 김치는 빨리 동나고 산 김치는 비싸서 감질나고,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 가사노동, 양육노동, 집필노동으로 꽉 채워진 일상. 내 인생에 김치노동까지 추가되면 끝장이라는 비장함으로 안 배우고 버텨왔다. 할 줄 알면 누가 시키기도 전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일 게 뻔하니까, 식구들이 잘 먹으면 먹이고 싶으니까. 내가 나를 말리는 심정으로 김치 먹을 자유보다 일하지 않을 권리를 수호하고 있다. 

“이번엔 황석어젓을 사봤는데” “고춧가루 빛깔이 안 좋아서 속상해” “올해는 절임배추 써볼까 하는데” 요즘 시장에서, 거리에서, 버스에서, 목욕탕에서 나이 든 여자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김장 얘기다. 마음에 김치가 사는 나는 이런 목소리를 줍고 다닌다. 머리가 허옇고 허리가 기역자로 굽어도 장바구니 달린 보행기를 밀고 다니면서 쪽파며 배추를 실어 나르는 동네 할머니를 본다. 

살아계셨으면 일흔일곱. 우리 엄마도 저이들처럼 억척스럽게 장 보고 김장을 하고 삭신이 쑤신다며 앓아누우셨을까. 엄마는 그즈음 부쩍 음식 간이 안 맞는다고, 뭘 해도 맛이 없고 김치도 짜기만 하다고 낙심했다. 혀가 늙는다는 것도, 김치 담그기가 중노동이라는 것도 삼십대인 나는 알지 못했다. 김장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을 그 시절 엄마가 알지 못했듯이. 

어쨌거나 나는 매년 김장 김치를 먹는다. 파는 김치는 비위생적이며 당신 손으로 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여기는 시어머니가 담가주시고,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의 김장이 답지한다. 올해는 친구의 시골 노모가 담근 김치를 분양받았다. 양이 많다며 배추김치 한 통에 덤으로 총각김치랑 묵은지까지 보내주었다. 끼니마다 콕 쏘는 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면서도 목 안이 따끔하다. 한 여성이 소위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노동이 필요하듯이, 내가 김치 담그기에서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의 산물인 김치를 먹게 된다. 얼마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지고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렸을까.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느 소설가의 문학관에는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한 볼펜과 원고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평생 담근 김치와 사용한 고무장갑을 한눈에 쌓아놓으면 어떤 붉은 스펙터클이 나올지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 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unpaid work)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한 동료의 엄마는 여든살을 맞아 김장을 안 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늦은 은퇴다. 엄마들의 잇단 김장 파업 선언에 김치 난민이 속출하는 또 다른 겨울 풍경을 그려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2724.html?_fr=mt5#csidx59f1e4f302efc4dba1b0897023be4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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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이 더치페이를 만났을 때

[은유칼럼]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라,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십 년 전이다. 모름지기 저것이 올바른 노년의 처세라며 탄복했었다. 심상하게 나 자신을 얻어먹는 위치에 두었거나 태평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중년 이후를 자신했던 거 같다. 실상은, 위계 구조에 속한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다보니 나 혼자 입도 열고 지갑도 열며 나이 들고 있다.


간헐적으로 글쓰기 수업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 직업, 성별, 주머니 사정이 제각각인 소규모 만민공동회 같은 구성체인데, 유급 노동자로서 상호 이해가 얽혀 있지 않아서 동등한 관계 맺음이 가능한 편이다. 그래도 사람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권력을 작동하게 하는 두 가지를 피해갈 수 없으니 바로 호칭과 돈이다.


호칭은 닉네임을 ‘님’자 빼고 부르자고 권한다. 한번은 어느 학인이 “은유 글에서도 착한 딸 역할을 강요하는 부분이 보여요”라고 비판했다. 정말 그런가? 난 내 글을 남 글인 양 은유 글로 재차 검토했다. “선생님 글에서도(…)”라고 하는 것보단 확실히 메시지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걸 느낀다. 닉네임은 존칭에 따른 감정 소모를 줄이고 말의 내용과 맥락에 집중하게 하며, 통상 연장자 순으로 배정되는 말의 점유를 막아주었다.


돈 문제는 더치페이로 탈권위주의를 도모한다. 애초엔 소득과 고용 형태에 비례해 차등 적용했다. 과제 미제출이나 지각 시 벌금을 정규직 1만원, 비정규직 5천원, 무직 3천원으로. 근데 이게 또 서열이 돼버렸고 본의 아니게 정규직에게 가부장의 짐을 지웠다. 어차피 과제 안 하고 지각하면 그 자체가 형벌이기에 이중처벌 금지에 따라 벌금을 없앴다. 뒤풀이를 하면 인원수대로 나누어 낸다. 억대 연봉자도 시급 알바생도 강사도 공평하게. 원칙은 이렇게 정하고 지역에서 올라와 교통비가 많이 드는 이나 보릿고개를 넘는 이 등 속사정을 아는 한도에서 눈치껏 배려했다.


나는 닉네임 쓰기보다 더치페이 하기가 더 어려웠다. 세월이 나를 연장자 축에 데려다놓았고 지갑은 채워주지 않았지만, 왠지 팍팍 열어야 할 것 같아 손이 움찔거렸다. 그러는 나를 ‘고리타분하게 왜 이러느냐’며 젊은 친구들과 유학파 출신들이 말렸다. 나의 지갑 열기 충동을 되돌아보았다. 돈을 통한 지배 의지인가, 배제에 대한 불안인가, 내리사랑의 선의인가. 가(식)없는 증여를 위해선 해처럼 넘치는 자가 되어 베풀어도 가진 것의 총량이 줄지 않아야 하는데 그 조건에 난 미달했다.


아무튼 자기 처지가 어려워 남의 형편도 헤아리는 ‘요즘 젊은이들’ 덕분에 ‘쿨하고 힙하게’ 관계 맺는 법, 지갑을 열어야 할 때와 닫아야 할 때를 분간하는 법을 배운다. 권위주의 타파하고 상호 평등 이룩하자, 구호뿐이던 일상에 닉네임과 더치페이 실천으로 틈이 생기고 섬세한 시야가 열렸다. 계급장 뗀 그 사람의 안색, 형편, 고민을 보게 됐다. 아울러 나이, 지위, 재력 등 외적 조건을 우선시하는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고통 감수성이 부족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얼마 전, 세 시간 거리에서 통학했던 한 학인에게 문자가 왔다. “우리 회식할 때 저한테 멀리서 왔다고 회비 아껴두라고 말해줬었는데 그게 고마운 밤이네요. 오늘 우리 글 모임 회식하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에게 회비 내지 말라고 말하려고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라는 걸 상기한 덩달아 고마운 밤이었다. 호칭의 간소화와 지출의 민주화가 노년 초년 할 것 없이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면 괜한 체면의 무게로 뒤뚱거리는 삶이 좀 더 가벼워질 것 같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4441.html?_fr=mt5#csidx336aa9fad962f2897ae8b0b0899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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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인터뷰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리베카 솔닛이 처음 되고 싶었던 건 도서관 사서였다. 도서관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저장되어 기억되는 장소였고, 그 안에는 세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책이라는 보물 상자를 열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책과 한층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 

ⓒ시사IN 윤무영

솔닛의 글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깊고 넓어서다. 때로 시 같기도 하고 때로 잠언 같기도 한 문장은 독자를 오래 책 속에 붙든다. 자전적인 이야기와 성찰에서 출발하는 글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비평을 잇고, 환경과 인간의 역사를 엮으며, 종내 사회와 정치에 대한 논평으로 밀고 나간다. 

여러 사상가와 작가의 문장을 재료로 삼지만, 솔닛의 글은 단단한 ‘현장’ 위에 서 있다. “내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준 것은 네바다 핵실험장이다(영국 문예지 <화이트리뷰>, 2013년 인터뷰)”라고 할 만큼, 솔닛은 작가와 활동가라는 두 가지 역할을 충실히 살아왔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고,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부터 인권운동, 기후변화,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권 반환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의 현안에 참여해왔고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도 적극 가담했다. 2010년 미국의 대안 잡지 <유튼 리더>는 솔닛을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솔닛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는 2008년에 찾아왔다. 미국의 독립언론 매체 <톰 디스패치>에 기고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라는 제목의 원고는 이전에 쓴 어떤 글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널리 퍼졌다. ‘맨스플레인(mansplain:man+explain)’은 2010년 <뉴욕타임스>가 꼽은 ‘올해의 단어’가 됐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도 등재됐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는 국내에서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와 개정 출판된 <어둠 속의 희망>(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 출간을 기념해 솔닛이 8월25일 4박5일 일정으로 처음 방한했다. 강연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신청자가 폭주했다. 애초 15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강연 장소를 준비했던 출판사는 800석 규모의 행사장을 다시 마련해야 했다. 최종 신청자는 1400명이 넘었다. 유료 행사 ‘페미데이’ 역시 일찌감치 마감됐다. 몇 년 전 방한한 마이클 샌델이나 슬라보예 지젝을 능가하는 대중 동원력이었다. 주요 매체가 강연 현장을 보도했다. ‘솔닛 현상’이라 부를 만했다. 

<시사IN>은 8월26일 서울 마포구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 서울가든호텔에서 리베카 솔닛을 만났다. 대담자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등을 쓴 은유 작가가 나섰다. 독립 연구자이자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여성의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1시간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회견과 강연장에서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시사IN 윤무영 8월26일 은유 작가(왼쪽)와 리베카 솔닛은 에세이스트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글쓰기와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은유:이번에 개정 출판된 <걷기의 인문학>에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환경운동가·철학자·페미니스트·예술가 등 다양하고도 입체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계기가 있었나? 솔닛:이민 2세대(솔닛 어머니의 조부모는 아일랜드, 아버지의 부모는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지대 출신이다)이자 좌파 성향을 가진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트로츠키주의자였고, 외할아버지는 아일랜드의 반식민혁명을 지지하셨다. 또 내 남동생은 사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다(솔닛의 남동생인 데이비드 솔닛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던 시애틀에서 이른바 ‘시애틀 대첩’이라 불리는 반WTO 시위를 주도했다). 동생이 뉴스레터를 발간할 때 내가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 이슈들이 얼마나 응급한지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다. 

은유:현장 기반의 공부가 글을 쓸 때 어떤 도움이 되었나? 솔닛:일단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를 말하고 싶다. 여성으로 산다는 일은 일상적으로 굉장히 많은 위협에 시달리는 일이다. 여성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이를 일종의 시민권 문제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게 여성 이슈는 사적인 문제이니 그냥 이런 환경에 적응하라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좀 더 남자처럼 보이게 입어라, 아예 총을 사라, 호신술을 배워라, 생활수준이 높은 동네로 이사를 가라…. 남성 폭력이 만연한 환경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적응하라고 나에게 강요했다. 

은유:나는 가부장 사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에게 부여되는 많은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페미니즘 공부가 절로 됐다(웃음). 당신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이 있는데, 일과 공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하나? 솔닛:조카를 여럿 둔 고모로서 나 역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웃음). 남편이 없고, 아이가 없다는 게 시간을 절약해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활동가나 작가로서 공적인 삶이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사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하는 데 시간적으로 방해를 받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방한 일정을 마치면 히말라야에서 머물 예정이다. 그런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은유:솔닛이 추구하는 인문학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의 인문학과 어떻게 다른가? 솔닛:페미니즘의 근간이 되는 생각은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정폭력이나 차별 같은 불의한 일이 분리되고 구별함으로써 감춰지는데, 나는 그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내 작업을 해왔다. 역사학자는 이거, 인류학자는 이거, 하는 식으로 각각의 학문 분야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은 거부한다. 특정 분야에 국한되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생태학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모든 것은 상호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위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보수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의 문제는 사회나 경제 시스템과는 무관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으로, 이 말대로라면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줄 필요가 없다. 고립주의적인 보수 이데올로기의 대립항으로 상호연결성, 의존성에 기반한 진보 진영의 사상이 인문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은유:한국에서는 논픽션이나 에세이를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사사롭게 여긴다고 할까. 솔닛:미국에서도 논픽션이 비슷하게 폄하되는 측면이 있다. 시나 희곡, 소설은 고매한 문학인데 저널리즘은 쳐주지 않는 식으로. 그러나 지난 20여 년에 걸쳐 미국에서는 논픽션의 위상이 계속 올라간 측면이 있다. 

은유:솔닛의 영향인가?(웃음) 솔닛:전혀(웃음). 나는 사실 논픽션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데 마치 유색인종을 지칭할 때 논화이트(non-white, 백인이 아닌 사람)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픽션을 기준으로 하는 분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전이나 지도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논픽션이 세계를 소유하고, 픽션은 그 안에 있는 섬 아닌가? 나는 논픽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은유:사람들이 나에게 ‘언제 소설 쓰냐?’ ‘시는 안 쓰냐?’라고 묻는다. 솔닛: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그렇게 묻는다. 그게 꼭 글쓰기가 오를 수 있는 정상인가? 되묻고 싶다. 

은유: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어떤 독자가 당신의 방한 행사를 다녀와서 이런 후기를 남겼더라. ‘나에게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이 온 정도의 존재다.’ 솔닛:글을 쓸 때 ‘오웰이라면 어떻게 썼을까’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너무 감사한 평가다. 

은유:글쓰기 수업을 할 때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반비)을 꼭 넣는다. 에세이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굉장히 공감하는데, 남성들은 난감해한다. 이 감수성의 차이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솔닛:여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위주의 교육,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와 책을 접하게 되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콘텐츠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책을 쓸 때도 남성 독자에게도 꼭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멀고도 가까운>을 쓸 때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생각하거나 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건 논픽션에 대한 이야기와도 이어질 것 같은데,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과거에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나 성 소수자,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논픽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체제나 현상을 깨뜨리는 증언을 담는 것이다. 

은유:<멀고도 가까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독자를 말하는 주체로 끌어낸다. 솔닛:그 부분이 내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했던 바다. 내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와 연결하는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 

ⓒ민음사 제공 8월26일 민음사 주최로 열린 ‘페미데이’에 참석한 리베카 솔닛(마이크 든 이)이 ‘공적 공간을 걷는 여성의 역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은유:어머니가 딸에게 가하는 억압은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책에 나온 당신과 어머니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과 어머니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아들은 곱셈이고, 딸은 나눗셈”이었던 경험 같은 것들이다. 

솔닛:<멀고도 가까운>은 내가 쓴 책 중 가장 여성주의적인 책인데, 서평 등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 게 흥미롭다. 최근에 한국에서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여성혐오를 페미니즘을 통해 극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는 여성으로서 남성보다 더 열등한 지위, 제대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고통받았지만 또 그걸 나에게 물려준 측면이 있다. 그게 내 지난 50여 년의 삶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는데, 이 책을 쓰면서 극복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머니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계와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게 됐고, 어머니와의 긍정적인 경험들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은유: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걷기의 인문학>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새로 보낸 서문에 한국의 ‘촛불혁명’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솔닛:걷기의 힘을 볼 수 있는 사례는 역사에 고스란하다. 근간에는 아랍의 봄이 그랬고, 한국의 촛불혁명이 그렇다. 공적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증거다. 100만명이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모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걷기를 통해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에는 분명 가치가 있다. 

은유:촛불집회는 공적인 감각을 몸에 새기는 경험이었다. 당신은 낙관적인 것 같은데, 광장에서 진보적인 구호를 외치고 현실에서는 보수적이고 위계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처럼 민주주의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괴리가 생기더라. 솔닛:광장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평등을 경험했길 바란다. 이를 통해 위계질서를 거부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특히 가정의 영역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이룬 경험이 사적 경험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은유:싸워야 한다는 건가?(웃음) 솔닛:경험이 전염성을 갖기를 바라는 거다(웃음). 

은유:정권교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젠더 이슈는 뒷전이 된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여성혐오 발언이 나왔고, ‘해일 밀려오는데 조개 줍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남성중심성 앞에서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솔닛:미국에서 힐러리에 대해 사람들이 보여줬던 반응과 굉장히 유사하다. 물론 힐러리는 젠더와 무관한 이슈로 싫어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지만(웃음). 삼성의 이재용도 보자. 그 사람이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남성’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남성은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모든 남성의 대표로 취급되지 않지만 여성 한 명의 잘못은 모든 여성의 잘못이 된다. 젠더를 기반으로 해서 여성 정치인에 대해 폄훼하고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트럼프는 가부장제의 모든 해악을 대표하는 존재로, 남성을 대표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웃음).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사람들은 여성의 권리가 중요하긴 한데 다른 모든 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 여성 이슈 중요하지. 근데 아직 너네 차례 아니니까 저 뒤에서 기다려.’ 이런 느낌이랄까? 가부장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싸워온 시간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은유:말씀하신 것처럼 여성은 계속 사적 존재, 보조적 구실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공적 자아에 대한 공포가 큰데 한국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공적 공간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솔닛:한국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들은 지난 몇 년간 아주 훌륭한 일들을 해왔다. 노력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변화가 더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다. 여러분이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래, 깊은 뿌리를 가진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남성에게 가정과 일을 다 건사하고 있느냐고, 잘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일·가정 양립’은 당연히 아내 몫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그런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이슈들을 계속 공론화하길 바란다.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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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은유 -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푹력이 되는가

[사람,기억,기록]




저는 글 쓰는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은유라고 합니다. 글쓰기를 가르치지만 강사라고 하기엔 역할에 한계가 있습니다.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줘도 상대방이 안 쓰면 그만이니까요. 방법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 글을 쓰게 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째 마감, 둘째 독자, 셋째 원고료. 이 중 하나만 있어도 글을 씁니다. 저는 독자 역할을 합니다. 써온 글을 열심히 읽고 의견을 말해줍니다. 


1. 나의 편견과 무관심 – 게으르니까 뚱뚱하다 


한 친구가 아르바이트 경험을 글로 써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더니 살이 쪘다”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어봤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힘들어서 살이 빠지지 않아요?”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어요. 식사 시간이 넉넉지 않아 음식을 빨리 먹고, 빨리 먹으려니까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고, 바쁘면 못 먹고 안 바쁠 때 몰아서 먹고, 규칙적인 식사가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살이 찐다는 거죠. 

그렇다면 방금 말한 내용을 글에다가 보완해라, 나처럼 알바생들 처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요. 저는 뜨끔했습니다. 우리 보통 뚱뚱한 사람들 보고 뭐라고 말하죠? “게을러서 살이 찐 거다.” “젊은 사람이 자기 관리도 못하네.” 저도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기 관리는 젊은 사람이라 잘하는 게 아니라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에요. 온종일 서서 일하느라 붓기가 안 빠져 살이 되고, 알바하면서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 운동 하기도 어려워요. 근데도 “게을러서 뚱뚱해” 혹은 “뚱뚱한 걸 보니 게으르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알바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았습니다. 내가 일하는 청년들 생활을 모르는구나. 누굴 적극적으로 미워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더라도 남의 삶에 무관심하다면, 익숙한 생각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편견이 강화되고 혐오가 생기겠구나, 하는 걸요. 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이 되는가. 


2-1. “남자는 무조건 여자말만 들어라”


어느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연 동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특유의 재치와 입담, 사회적 약자 편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남자분이었죠. 저도 좋아해서 기대감을 안고 보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조건 남자들은 앞으로 살면서 여자 말을 듣고 산다 생각하면 중간은 갑니다.”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잘 보살펴 달라.” 

“(남자는) 사람이 아니고 개다 생각하면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강연 제목이 뭔 줄 아세요?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 객석을 채운 선남선녀 커플들이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난리 났어요. 

근데 노트북으로 그걸 보는 저는 한숨만 나와요. 그냥 처음 드는 생각은, ’무조건 여자 말만 듣는다고? 여자를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얼핏 여자를 추켜세우고 남자를 비하하는 거 같지만 잘 보면 아니에요. 온갖 잡다한 일 여자가 다 하라는 거잖아요. 시시콜콜 멀티플레이어가 돼라. 이런 류의 말은 많습니다. 고인이 된 탤런트 최진실 씨가 처음엔 씨에프 모델로 활동했는데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 있어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또 결혼해서 아들 둘 키우는 여자들은 뭐라고 하죠? “저는 아들 셋 키워요.” 남편도 애처럼 손이 많이 가고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란 뜻입니다. 나이드신 어른들은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 된다”라고도 해요. 여자는 남자를 보살피는 것도 모자라, 집안 부흥의 책무까지 맡게 되죠. 요즘 이걸 ‘효도 대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말들은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이 아니라, ‘여자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는 법’에 가깝죠. 


2-2. 여자의 수고와 노동에 무관심한 사회 – 남성의 언어


또 한평생 여자 말만 듣고 산 남자는 어떤 가요. 결혼 전에는 엄마가 결혼 후에는 아내가 해줘서, 여자 말만 듣고 산 남자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여보 양말 어딨어? 작년 여름에 입던 바지 어딨지?” 자기 옷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됩니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안 좋습니다. 남자를 무능하게 만들고 여자를 혹사시키죠. 그 방송인은 여자가 상위종족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여자는 서열 맨 아래에요. 궂은 일 도맡죠. 그걸 사람들은 잘 몰라요. 여자가 하는 노동과 수고에 대해 무지해요. 왜? 그래도 되니까요. 

‘남자는 평생 여자말만 들으면 중간은 간다’ 우리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말들은 그 말로 인해 안락을 누린 사람들, 자기 손에 물 안 묻히는 사람들, 상대적으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담아낸 말입니다. 남자의 언어, 어른의 언어입니다. 


3-1. 무관심이 혐오로 : 약자는 자기 언어가 없는 사람. 쉽게 해석-혐오당한다. 


약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릴 수도 있을까요? 약자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사람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언어는 배제돼 왔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온갖 역할을 부여해놓고, 그걸 못하면 ‘여자답지 못하다’ 여성 혐오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내면화되면 여자도 자기 스스로 여성 혐오 합니다. ‘내가 좀더 지혜로웠다면 다 잘했을 텐데’ ‘남편을, 남자친구를 사람 만들었을 텐데.’ 싸우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무려 개를 어떻게 사람을 만들어요? 학교도 부모도 못한 ‘사람 만들기’를 어떻게 한 사람이 합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고 쓰는 말들은 이미 기득권의 것이에요. 약자 편이 아니에요. 약자들은 그래서 쉽게 혐오에 노출됩니다. 남들에게 온갖 힘든 역할 부여받고, 해석 당하고, 평가 당하고, 손가락질 당합니다. 그런 말들이 퍼져나가서 편견이 되고 혐오의 씨앗이 됩니다.


3-2. 여성혐오의 대표 사례 : 맘충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사례, ‘맘충’ 얘기 해볼까요. 맘충은 식당에서 사람들이 밥 먹는데 기저귀 갈거나, 컵에다 소변을 보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엄마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해요. 저도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에게 들었어요. 기름 넣으면서 아기가 똥 싼 기저귀 버려달라고 내미는 엄마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알바생 입장에선 참 너무한다 싶으면서도, 그 엄마 입장을 모르지 않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위험에 빠지는 한 생명체를 돌본다는 일은 간단치 않아요. 24시간 365일 고도의 집중을 요합니다. 아기가 갑자기 토한다거나 똥을 싼다거나 운다거나 긴급 상황이 발생해요. 엄마가 되면 아기 중심으로 세상을 살게 되고 딱 아이 몸뚱이 만큼 시야가 좁아지는 거 같아요. 그러니 남의 사정과 형편을 헤아릴 수 없죠. 우리나라는 수유실 같은 육아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니까 엄마가 애 데리고 더 곤란에 처하죠. 몰상식한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런 속사정을 헤아려본다면, 마냥 혐오의 손가락질을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4. 강자와 약자에 대한 이중 잣대 :  노 키즈 존? 노 아재 존은?


근데 이상하죠? 아이는 남녀 둘이 낳고 기르는 건데, 아빠는 어디가고 욕은 엄마가 먹죠? 

또 욕먹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죠. 노키즈존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거에요.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특정 연령 이하 아이들 출입을 금지시키는 ‘노 키즈 존’이 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봤는데요, 음식점을 찾은 사람들이 시간적 공간적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이런 생각을 해요. 그 식당 운영하시는 분들도 어른일 텐데,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을 침해하고 민폐 끼치면서 어른이 되었을 거에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을 품어주지 못한다는 건 심한 반칙 같아요. 


어른은 과연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삽니까? 한 친구가 편의점에서 손님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이 힘들다. 스무살 재수생이었어요. 신용카드를 건넬 때 툭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비닐봉투가 20원이라고 말하면 왜 그 돈을 받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답니다. 주로 카드를 던지거나 언성을 높이는 사람은 중장년 남성이래요. 인사도 잘하고 제일 좋은 고객은 초등학생이고요. 

은행에서 우체국에서 대합실에서 ‘왜 안 되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중장년 어르신들인 경우가 많죠. 그렇다고 편의점에서 은행에서 50세 이상 남자 고객의 출입을 금하는 ‘노 아재 존’이 생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매력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출입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서 보듯이 타인에게 불편을 끼친다고 해서 다 출입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거나 발언권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우선적으로 배제하죠. 쉽게 낙인 찍고 혐오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체성은 계속 바뀌죠.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 아이를 키우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피해를 입히기도 하고 입기도 합니다. 편의점 고객이다가 나이들어 편의점 알바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삶은 계속 변합니다. 그때마다 당장 불편하다고 금지하고 차별하고 혐오한다면 결국 내가 설 자리도 사라집니다. 우리 사회 생태계는 온갖 금지와 차별의과 혐오의 지뢰밭이 되어, 우리 모두 발 디딜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5-1. 사람 공부가 필요해 – 알면 사랑하고 모르면 혐오한다 


무관심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이 되는가. 오늘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죠. 저는 뒤집어서 모르면 혐오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 아느냐? 무관심에서 어떻게 벗어날까가 중요하죠. 

이것은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어요. 글쓰기에서 공감하는 게 중요한 거 같은데, 공감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거죠. 저는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면 시간과 계획을 갖고 공부하듯이,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려면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제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타인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독자가 되어야하는 거죠. 저도 글쓰기 수업 하면서 남들이 써온 곡진한 자기 이야기 들으면서 편견이 사라졌거든요. 그렇지 않았으면 자동으로 편견이 막 생겼을 거에요. 


저는 글 쓰는 일 할 때, 인터뷰 하면서 동성애자 감독을 처음 만났거든요. 인터뷰이니까 공부해갔어요.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동성애자 친구들이 생겼어요. 편견이 생길 틈이 없이 직접 삶으로 부딪치고 알아간 거죠. 지금 일부 동성애 혐오하는 분들도 가까이 지내고 서로 섞여 지내면 진지한 대화 나누면 혐오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나와는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접하면서 배우고 자극이 되고요. 동성애 친구들 고민을 듣다보면 나는 이성애자이지만, 곧 어떤 상황에서 억압받고 곤란했던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다르지만 같아요. 성 정체성은 다르지만 같은 고민과 한계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이성애를 반대할 수 없듯이 동성애도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도 다른 존재를 반대할 자격은 없으니까요. 


5-2. 말의 재난시대 – 00충 없는 사회를 위하여


지금을 말의 재난 시대 입니다. ‘노 키즈 존’ ‘맘충’ ‘일베충’ ‘진지충’ ‘급식충’ 단정짓고 낙인찍고 혐오하는 말들을 너도나도 사용하고 있어요. 무슨무슨 충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저는 남이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질 걸 제안하고 싶어요. 가까이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관찰해볼 수 있고, 매일 드나드는 편의점 알바생의 표정도 살피고, 카드도 이왕이면 곱게 내주고요. 니체도 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했거든요. 가깝고 익숙한 존재가 아니라 나와 다른 상관 없어 보이는 낯선 존재의 삶에도 다가가고요. 그렇게 타인의 삶에 대해 알려하고 물어보고 이해하려하고. 맨 처음 했던 얘기 기억하시죠. 독자 역할, 우리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읽어주는 독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 혐오와 폭력이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카메라 앞에 얼굴이 연속으로 나오는 게 창피하지만, 열심히 준비했므로, 나누기 위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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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 왜 살수록 빚쟁이가 되는가

[은유칼럼]


“왜 목동 아파트를 고집하느냐” “좁아터진 집에서 사느니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넓게 산다” “공부할 애들은 학원 안 보내도 공부한다”…. 내가 목동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사는 동안 귀가 따갑게 들었던 충고다.


신혼 때 남편의 지점 발령으로 목동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단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10층이었다. 몇 해 사이 백화점과 방송국이 들어서고 주상복합 시설과 고층빌딩이 앞다퉈 생겼다. 건물 안은 학원과 부동산으로 신속하게 채워졌다. ‘전문가 집단’ ‘물꼬터 학원’ ‘열정과 끈기’ ‘자기주도학습센터’ 등등 자고 나면 학원 간판이 내걸렸다. 내가 학원 천국 목동으로 이사를 간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학원들이 난입한 거다. 


그 즈음 난 20평 아파트 세입자가 됐다. 단지 안 가장 좁은 평수 맨 위층 복도 끝 집을 겨우 구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4인 가족이 살기엔 비좁았다. 그래도 이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이 아니라 양육 때문에. 목동은 내게 학원이 많은 곳이 아니라 급할 때 아이를 부탁할 ‘언니들’이 많은 동네였다. 그 ‘언니들’은 남편 말고 육아 대체자가 없는 워킹맘에겐 동아줄이다. 육아 난민이 되느니 목동 빈민을 택했다.


 가끔 만나는 친척이나 지인들은 주저 없었다. 아이가 둘 있고 집이 목동이라고 하면 사교육 때문에 목동에 사는구나 자동으로 연상했다. 대개의 판단은 자기 정념과 욕망에 근거하는 법. 현실은 달랐다. 서울·경기 서남부권에서 세단을 몰고 와 아이들을 들여보내는 소위 이름난 학원과 족집게 강사를 집 앞에 두고 구경만 했다. 입시생이라고 해주는 것도 없는데 친구들과 생이별까지 시키기 미안해서 큰애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20년 살던 나의 고향 목동을 등졌다.


목포에 취재 갔을 때다. 여느 도시처럼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가 생겨났고 구도심도 재개발 위기에 처했다. 구도심에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어르신들만 남았다. 이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말했다. 어르신들이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려면 김치도 담가 이웃과 나누고 마실도 다니고 해야 한다, 그런데 노인네라서 음식 할 기력도 없고 관절도 성치 않고 귀도 안 들린다, 재개발이 시행돼 어르신들이 이 동네를 떠나면 살기 힘들 거라고 우려했다. 어르신들이 ‘살던 데서 살기를’ 고집하는 이유를 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에는 가난한 대학생의 속사정이 소상히 나온다. 독립연구자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서 “통장잔고는 늘 10만원을 넘지 못했”(9쪽)던 저자가 대학원까지 학자금 대출금 2200만 원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내가 무심코 가졌던 청년․공부․가난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게 했다.


“끼니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더 이상 절약할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세미나 뒤풀이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15쪽)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경우, 메뉴와 가격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195쪽)


‘우리 때’와 달리 혼밥이 왜 그리 유행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요즘 청년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스펙 관리만 하느라 밥도 혼자 먹고 깍쟁이처럼 뒤풀이도 안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500원 1000원이 고민거리가 되는 “굶주림이 익숙해진 삶”을 채무자-대학생은 피할 수 없었다. “밥 한 끼에 마음 졸이며 눈치를 보는 삶 속에서 음식뿐만 아니라 생활의 전 영역에서 스스로 단속하며 살아간다.”(196쪽)


또 다른 편견들. 가난한데 대학원을 왜 굳이 가려고 할까, 했다가 저자처럼 공부가 너무 재밌고 평생 하고 싶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까를 묻게 됐다. 학자금 대출 받지 말고 장학금 받으면 되잖아? 각 장학금마다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 “가난소개서”(99쪽)를 써야 한다며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강제적으로 발화하게 하는 것은 특정 계층에 대한 낙인화이자 폭력”(102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큰애도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아이의 표정이 얄궂었다. 장학금 종류마다 이름이 다르단다. 기준 학점 이상에, 부모 소득 분위 하위권 학생에게 지급되는 ◯◯◯ 장학금을 받았으니 그 사실 하나로 자기 처지가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거다. 나는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틀에 박힌 말로 위로했는데 저자는 나은 답을 들려준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부끄러운 것이다.”(102쪽)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 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 없다. 설명도 간단치 않다. 저자처럼 수년을 공부하고 책 한권 분량의 구조적 분석을 마쳐야 제대로 이해시킬까 말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189쪽)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유통 된다. 


나는 목동 아파트를 떠나 집을 구하며 주택담보대출이란 것을 받았다. 용쓰고 살았으나 살다보니 중년에 빚쟁이다. 20년 상환의 굴레에 갇혀 죽지도 못할 처지가 된 게 황망하고 서글펐는데 이 책에서 부채에 관한 다른 해석을 얻었다.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105쪽) 학생-채무자의 글에 노동자-채무자인 나는 위안을 받는다.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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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읽다 - 슬픔만 한 혁명이 어디 있으랴

[은유칼럼]

“눈물이 안 멈춰요.” “대통령 연설에 눈물 흘리긴 처음이에요.” 5월18일, 눈물바람으로 SNS가 넘실댔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 전문과 동영상을 너도나도 인용하고 공유하고 복기했다. 한날한시에 다 같이 운다. 남의 아픔에 감응하는 이 집단적 애도극을 보며 비로소 정권 교체를 실감했다. 

내게 눈물은 길조다. 모두가 웃는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누구나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세월호 참사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할 줄 아는 대통령을 가졌으면 했고, 노동자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기업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했고, 폭력이나 치욕을 당했을 때 큰 소리로 울고불고 떠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가 긴 병명처럼 세간에 오르내릴 정도로 무감각의 일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웠다.

글쓰기를 배우러 온 이들도 더러 고백하곤 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메말라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가가 아니라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 ‘문제 있다’고 여기는지. 그 각성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돈이나 스펙이 아닌 슬픔 없음을 근심하는 사람의 탄생이 내심 반가웠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감정과 느낌을 되찾을까. 이 물음은 어떻게 인간다운 세상이 가능한가와 닿아 있다.

내 슬픔의 계보를 따져본다. 슬픔의 첫 습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자료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망월동 묘역을 다녀오면서 소위 세상에 눈 떴다. 당시 구 묘역의 황량한 무덤가에 놓인 영정 사진에 눈 맞추고 유가족이 써놓고 간 편지를 일일이 다 읽었다.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오월 광주를,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통장부터 회원 가입까지 온갖 비밀번호 네 자리를 0518로 지정했다. 그 숫자를 암호 삼아 세상을 읽고 슬픔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의 저자 백상현은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는 것 자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능이 존재한다(23쪽).” 슬픔에 빚진 나로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퍼서 책 보고 슬퍼서 글 쓰고, 이 슬픔에서 돌아 나와 저 슬픔으로 건너간다. 

이 책은 슬픔이라는 개념으로 세월호 사건에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갔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전한 이 슬픔은 우리를 스펙터클의 관객석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하는 특별한 슬픔의 형식이었다. 존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그리하여 광장으로 나서게 만드는 슬픔이었다(61쪽).”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슬픔은 이렇게 혁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80년대 ‘광주’를 통해 그랬듯이 ‘세월호’로 존재의 지진과 정치적 각성을 경험했다. 슬픔의 주체로서 광장을 메웠다. 저자가 라캉을 빌려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보다 슬픔을 끌고 가는 힘이다. 권력의 부패와 무능이 야기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 죽음과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말기.

이번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가 감동적인 이유가 바로 이 ‘슬픔의 가치’가 존중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의 주체들이 공동체의 내부를 유령처럼 떠돌게 되었을 때 국가는 그들을 억압하려 했고, 길들이려 했다(44쪽).”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밝은 미래를 내다보자’ 같은 “생각의 방황을 정지시키는 고정관념들(25쪽)”에 타협하지 않았고 슬픔을 털어내지 않았다. 문학에서 일상에서 현장에서 광주를 불러냈다. 

슬픔은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자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욕망(45쪽)”이다. 슬픔의 인간띠가 더 길어지고 질겨졌으면, 부디 애도의 눈물바람이 오래갔으면 한다. 아무도 침몰하지 않도록.



- 시사인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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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키즈 존은 없다

[은유칼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좌를 열었을 때다. 한 여성이 꼭 읽고 싶었던 책이라며 아기를 데리고 참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생후 12개월 남아랬다. 두 마음이 다퉜다. 마음 하나. ‘공부하러 나와서까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 내게 아이란 존재의 훼방꾼, 공부의 대립물이었다. 책 한 줄 보겠다고 아이의 숙면을 얼마나 애태웠던가. 마음 둘. 아이를 달고서라도 ‘공부하러 나가고픈’ 그 여성의 열망은 불과 얼마 전까지 내 것이기도 했다. 외면하면 반칙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평생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학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사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아기라는 불편한 존재를 배제가 아닌 관계의 방식으로 우리 삶-공부에 들여 보자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아기는 온순했다. 기적처럼 두세 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필기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간혹 수업이 끊겼지만 여느 수업의 흐름을 벗어나진 않았다.


영유아와 함께 수업이 가능하다는 선례와 신뢰는 그렇게 생겼다. 엄마의 시도, 동료의 협조, 아이의 견딤. “남편이 일찍 온다고 해놓고 늦어서요” “맡길 곳이 없어서요” 요즘도 가끔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지 엄마들은 문의를 하고 아이들은 장학사처럼 수업에 슬그머니 들어온다. 또한 곁에 없다 뿐 전화로 수업에 끼어들기도 한다. 엄마 학인은 주로 강의실 ‘문간’에 앉는데 아이에게 긴급한 연락이 오면 튀어나가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이 육아·공부 병행의 난리통에서 난 외부자였다. 공부하는 여성들의 분투를 지지하고 조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긴급 호출이 왔다. 군에 간 아이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제가 걸 순 없고 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거든요. 문자도 안 되고….” 일이분가량 수업 중단을 초래한 나는 일이분 정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저 혼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무살 넘은 군인 ‘아이’ 때문에 양해를 구하게 될 줄이야. 도대체 인간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지만 공부하면서 사람답게 살기는 퍽 어렵다. 공부든 일이든 하나의 목적성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본다. 관계를 놓치고 일상을 망친다. 내 경우 그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오도록 도운 건, 무력한 아이다. 틈만 나면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떼어지지 않는 성가신 존재가 복잡한 삶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도록 환기시켜준 것이다.


‘노 키즈 존’이란 말을 보고 철렁했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며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 출입을 금한다는데 그 논리가 옹색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여전히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권리를 주장할까. 그래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양육의 책임을 나누지 않는 어른(배우자)에게 가야 할 원망이 애꿎은 아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5467.html?_fr=mt5#csidx686b75dac6a85a0bcf25b75e560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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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사람,기억,기록]

어제 학인들에게 받은 선물. 드물고 귀한 손그림과 편지.

나중에 혼자 이런 책을 내고 싶다. '은유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나도 그랬다. '은유'는 나에게도 은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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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 화장하는 아이들

[은유칼럼]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파우치를 꺼내놓고 입술연지를 바르거나 파우더를 두드린다. 헤어롤을 말고 있거나 셀카에 열중하는 아이도 보인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30명이 모인 자리니까 시집이나 만년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책상을 점령한 의외의 사물에 놀란 건 사실. 이 신세계 구경에 어리둥절한 내게 담당 교사는 귀띔했다. 대다수 아이들을 ‘교칙 위반자’로 만들 수 없다는 교장의 용단에 따라 화장 금지 조항을 없앴다고. “아침에 화장 못 하고 출근하면 애들한테 빌려 써요” 하며 웃는다.

비슷한 시기에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교사와 학생의 토론 끝에 교내 화장 금지로 결정이 났단다. 화장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대립 관계가 아니다, 화장을 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는 내용의 과제물을 한 학생이 제출했다. 그 글에 다른 학생이 동조했다. “십대는 화장 안 해도 예쁘다는 어른들 말은 이상해요. 사실 화장하면 더 예쁘잖아요?”

귀가 반짝 열렸다. 정말 그런가 싶어 떠올려 보았다. 화장한 얼굴은 해님같이 쨍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햇살처럼 퍼진다. 또렷함과 은은함의 차이, 같은 신체 다른 표현이다. 근데 나는 왜 교복 입은 아이들은 맨얼굴이 낫다고 믿었을까. 자연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 같은 건가. 생각해 보니 생각 자체가 없었다. 크는 동안 어른들에게 들어온 익숙한 말들을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적용한 것뿐. 대개의 선악 판단이 그러하듯 낯섦에 대한 저항, 익숙함에 대한 옹호일 따름이다.

딸내미는 열여섯살이다. 얼마 전 생일엔 립글로스와 마스크팩을 선물로 받았다. 앞머리를 목숨처럼 여겨 헤어롤을 가방에 부적처럼 넣고 다니는데 아직 화장은 하지 않는다.(밖에서는 하는지도 모름) 고등학생이 되면 입술색도 짙어지려나. 10년 후쯤엔 직장을 나가면 아마 지하철에서 허둥지둥 손거울 들고 눈썹을 그리는 민폐녀가 될 수도 있겠다. 중년엔 지체 높은 신분이 되어 실수로 헤어롤을 매단 채 회의에 나가면 일하는 여성의 애환을 보여준 미담의 주인공이 될지도.

아이들 말대로 어른들은 이상하다. 화장과 관련한 일련의 삽화들을 떠올려보니 일관성이 1도 없다. 십대의 강을 건너는 순간 여자의 민낯에 대한 평가는 순수의 상징에서 무례의 표시로 뒤바뀐다. 화장이 부덕에서 미덕이 되는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정하는지 알 수 없으나 당사자인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는 애초부터 배제된다. 묻지 않고 듣지 않고. 화학 물질이 아이들 피부에 해롭기에 화장을 금한다는 말도 궁색하다. 이 미세먼지 나쁨의 나라를 건설한 어른들이 말이다.

이상한 어른 일인으로서 반성한다. 갑갑한 교육 현실, 세상은 못 바꾸고 화장으로 자신을 바꾸겠다는 주체적인 아이들을 잠시나마 힐끔거렸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분류하는 자체가 기성세대의 문법이다. 그것도 낡은. 너희들은 육체의 좋음에 무능하여 영혼의 좋음을 최상으로 추구하는 게 아니냐고 니체라면 일갈했을 것이다. 좋은 화장품 사주든가, 해로운 화장품은 만들지 말고 팔지를 말아야 한다. 그게 어른의 일이다.

꾸준한 행동으로 분가루 냄새 약동하는 교실 풍경을 일궈낸 아이들, 화장을 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주장하고 어른들의 두서없는 논리와 간섭을 반박하는 아이들, 나탈리 크나프가 정의한 대로 “인생의 지혜에서 아직 멀어지지 않은” 이 존재들에게 화장권이 널리 허용되길. 화장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1757.html?_fr=mt5#csidx5ef57463832a4e797c7f8ebf50f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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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은유칼럼]

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살다가 슬퍼지는 순간이면 자동 연상처럼 세월호가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문장들이 생각난다. 내 평생 목도한 비참의 총화, 그 불가해한 사건의 실체를 나는 이 책으로 이해했다. 번호가 매겨진 희생자가 아닌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었다는 건 어떻게 실감하는지, 슬픔이 정수리까지 꽉 찬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얼마나 휘청이는지, 대체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지 부모들은 소상히 들려준다.


“전화로 미지 엄마한테 속옷서부터 팬티까지 얘기했지. ‘겉옷은 무슨 색인데 이게 맞냐’ 그랬더니 ‘맞다’. ‘속옷은 땡땡이 입었는데 이거 맞냐’, ‘맞다’. ‘팬티는 줄무늬에 뭐가 있는데 맞냐’, ‘맞다’”(54쪽) 미지 아버지 유해종 씨는 사고 한 달 만에 속옷 무늬로 딸의 시신을 찾는다. 죽은 아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 무늬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속옷은 아이의 몸과 취향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표지이자 엄마와의 내밀한 연결을 매개하는 유품이 된다. 아마도 미지 어머니는 일 인 분만큼 줄어든 빨랫감에서, 보이지 않는 땡땡이 무늬의 속옷에서 딸의 부재를 두고두고 실감할 것이다.


소연 아버지 김진철 씨는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도둑질만 안 하고” 다 해가며 홀로 아이를 키운 한 부모 가장이다.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데 잃은 그 아이, 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을 때 소포가 와 있었다. “풀어보니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책들인듸 소설책과 참고서였어유. 그걸 보고 엄청 울었네요. 그 책들을 샀을 때는 열심히 살려고 그런 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겄시유.”(96쪽) 


그 책들은 결국 딸의 친한 친구에게 주었다고 나온다. 짧게 언급된 한 줄 문장. 나는 그 행간에 오래 머물렀다. 너무 빨리 간 아이의 너무 늦게 도착한 책들을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책들을 건네주고, 살아 있는 딸의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에 눈물짓고 소주를 들이켜다 쓰러져 잠들었을 아버지의 동선을 끝말잇기 하듯이 더듬더듬 그려보았다. 유통기한 없는 슬픔의 효소는 얼마나 오래 아버지의 술잔을 채웠을까.


“애가 좋은 데 간다”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호성 어머니 정부자 씨는 아이의 노트며 가방을 그대로 태웠다. 그런데 신발은 아이가 수학여행에 다 신고 가버리는 바람에 남은 게 없었다.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줬다.”(126쪽) 왜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가슴을 친다.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글쓰기 수업 교재로 자주 쓴다. 한국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사회학 교과서이자, 삶을 질문하게 하는 철학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문학 작품으로 더없다. 이 책을 언급하면 거의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사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안 읽었다며 뒷걸음질 친다. 용기 내어 읽고 나면 눈빛이 단단해진다. 어떤 학인은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알려고도,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은 무소통‧불통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대로 믿어왔고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국세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미 떠나간 아이들이 뭐 건진다고 달라질까? 아이를 잃은 슬픔이 어떤 건지 아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행동 양식의 초기화는 의식화로 이어진다. 세월호 사건이 “동네 저수지에 사람 하나 빠졌을 때보다 못하다”(291쪽)는 사실을 알아챈다.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26쪽) 물론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거야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는 한 명도 없다.”(157쪽) 


        제훈 어머니 이지연 씨는 교육열 높은 엄마였다. 아이의 뇌기능에 좋게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주고 영어를 일찍 접하게 하고 학원 스케줄을 관리했다. 저만 삐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한참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고 위로를 받았다며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29쪽)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는 세희 아버지 임종호 씨는 “우리 자식 물에 빠져죽지 않게 수영 가르쳤다”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개인이 노력해서 수영 잘 해서 될 게 아니잖아. 왜 법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하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자식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소를 잃어본 사람이 외양간을 고치지,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은 모르더라고.”(276쪽)


         얼마 전 인천에서 여덟 살 아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친구와 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빌리러 한 여성을 따라간 뒤 봉변을 당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충격이 컸고,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젊은 엄마에게 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권했다.


나는 과연 소가 멀쩡하게 있는 사람인지, 멀쩡함의 기준이 되는 시기와 조건은 무엇인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자기 욕망과 세계관에 질문을 던지는 책. 핸드폰을 지니거나 생존 수영을 배우기처럼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게 자기 슬픔과 불안을 직시하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 채널예스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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