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금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5.29] 은유 읽다 - 남해금산 (4)
  2. [2009.10.06] 또 비가오면 / 이성복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3)
  3. [2008.10.30] <원스> 시간을 견디는 사랑이 있을까

은유 읽다 - 남해금산

[은유칼럼]


서울 강남역, 정오의 해를 받아 번쩍거리는 고층 빌딩들이 산처럼 우뚝하다. 마천루의 도시라도 온 양 감탄사를 연발하던 딸아이는 급기야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찰칵. “엄마, 여기가 강남이야?” 내 대답을 듣기도 전, 아이는 가장 기세 좋은 건물을 가리키며 어디냐고 묻는다. 


저 일대가 삼성타운이라고 했다. 아이가 흠칫한다. 우리 집은 수년 전부터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자기는 저런 ‘화려한 건물’에서 일하고 싶다며 나를 힐끗 본다. 입사도 어렵지만 갈 곳이 못 된다고 난 일축했다. 아이가 재차 묻는다. “내가 삼성 안 가면 백수로 산다고 해도 반대할 거야?” 


그때서야 빌딩 아래 비닐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반올림’ 농성장. 몇 번 지지 방문을 갔을 땐 지하도에서 8번 출구로 나와 곧장 농성장에 들어갔다. 건너편에서 보긴 처음이다. 푸르스름한 유리 건물에 껌같이 희고 넓적하게 달라붙은 모양새다. 풍찬노숙 어언 600일째. 빌딩 꼭대기만이 아니라 저 아래까지 봐야 한다고, 저기에 76명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다고 딸아이에게 일러주었다. 초일류 기업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해마다 학기 초에 가정통신문이 온다. 아이의 질병이나 고민, 진로를 묻는 신상조사 설문지엔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직업’ 문항이 있다. 그 공란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아이의 욕망과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좋은 직업을 설계하기 곤란한 사회에 산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남의 직업을 내가 원한다는 설정도 마뜩지 않다. 당사자의 꿈은 수시로 변한다. “초라한 소기업은 질색”이라며 대기업에 다닐 것을 천명하다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했다가 그냥 부자면 된다고도 한다. 욕망은 날것이고 희망은 계통이 없다. 


나는 딸아이가 선망하는 유수의 대기업을, 으리으리한 건물을, 사보 기자로 일하면서 수년간 드나들었다. 10년 전인데도 모기업 사옥에는 헬스장, 최신 커피 머신과 푹신한 의자가 비치된 카페가 있었다. 직원용 무료 시설이다. 처음엔 부러웠다. 그런데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 카드를 찍으면 종일 건물에 갇혔다. 안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일했다. 야근하고 회식하고 헬스장에서 땀을 빼고 책상으로 돌아갔다. 고득점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동선을 통제한 기숙형 입시학원처럼, 그곳은 고생산성을 위한 기숙형 회사 같았다. 노동자의 하루를 통째로 삼키며 기업은 몸집을 불려갔다. 


어머니, 저희는 금빛 거미가 쳐놓은 
그물에 갇힌 지 오래됐어요 
(…) 
어머니, 무서워요 
금빛 거미가 저희를 먹고 
흰 실을 뽑을 거예요 

- 금빛 거미 앞에서 (53쪽) 


20대에 나도 금빛 건물에서 일했고 30대엔 외부자의 시선으로 살벌한 내부를 뜯어보았다. 40대엔 삼성 직업병 문제, 이랜드의 아르바이트생 임금 체불 사건, 대한항공 임원의 갑질 사건,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의 자살, 연출가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대기업이 무서워진다. 등 따시고 배부른 정규직도 있겠지만 소수의 안위는 다수의 희생과 침묵을 기반으로 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무감한 기업 문화가 미세먼지보다 더 공포스럽다. 아이를 피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가정통신문의 부모가 원하는 직업란엔 ‘예술가’라고 썼다. 피아니스트나 화가 같은 협의의 예술가가 아니다. 자기 삶과 노동의 균형,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예술가라는 이상을 담았다. 대기업 직원이든 작은 가게의 점원이든 대수랴. 일할 때 자기 의견과 불편을 말할 수 있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직장이고, 남을 눌러야 내가 사는 경쟁 구도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들로 존중하며 동료와 만나는 일이면 좋겠다.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23쪽)” 밥 때문에 생겨나는 치욕 앞에 무릎 꿇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지만 삶에는 귀천이 있다.



시사인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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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가오면 / 이성복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올드걸의시집]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 이성복 시집 <남해금산>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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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시간을 견디는 사랑이 있을까

[극장옆소극장]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이제 기억조차 까마득하군요.
당신을 처음 알았을 때,
당신이란 분이 이 세상에 계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며 당신에게 드리는 긴 편지를 썼지요.

처음 당신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이 왔을 때,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득히 밀려오는 기쁨에 온몸이 떨립니다.
당신은 나의 눈이었고,
나의 눈 속에서 당신은 푸른빛 도는 날개를 곧추 세우며 막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요, 그때만큼 지금 내 가슴은 뜨겁지 않아요.
오랜 세월, 당신을 사랑하기에는 내가 얼마나 허술한 사내인가를 뼈저리게 알았고,
당신의 사랑에 값할만큼 미더운 사내가 되고 싶어 몸부림했지요.
그리하여 어느덧 당신은 내게 '사랑하는'분이 아니라, '사랑해야할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젠 아시겠지요.
왜 내가 자꾸만 당신을 떠나려 하는지를.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
오, 아름다운 당신,
나날이 나는 잔인한 사랑의 습관 속에서 당신의 푸른 깃털을 도려내고 있어요.

다시 한번 당신이 한껏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성복 시인의 글이다. 내가 많이 아끼는 시집 <남해금산> 뒷표지에 적혀있다. 과연 '시간을 견디는 사랑이 있을까' 궁금했다. 이 글은 사랑에 관한 모든 답을 정리해주었고 꿈을 심어주었다. 가을날, 햇살 좋은 아침이면 한번씩 소리내어 읽어보곤 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가을이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읽다보면, 너무 맑은 하늘에 눈이 시리듯 코끝이 시큰해진다.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밤에도 슬프다. 글을 쓰다가 손끝이 시려지면 시집을 꺼내 읽으며 몸을 덥힌다. 가장 빨리 데우기 위해선 이성복의 시집이 좋다. 특히 이 글이. 사람은, 사랑을 하면 사랑을 함부로 대한다. 집착하고 훼손한다. 그런데 이 제목없는 글에서는 사랑을 소중히 대한다. 사랑에 대한 예의바름, 오롯함, 솔직함. 그것이 아름다워서 가끔씩 좋은 사람에게 이 시집을 한권씩 분양해준다. 아름다운 사랑, 멀리 멀리 민들레 꽃씨처럼 퍼져나가라고.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피어나라고.   



영화 <원스>는 어쩌면 이성복의 글이 영화로 환생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절묘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깊은 영화였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 아닌 시간을 견딘 사랑이다.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이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임을 아는 이들의 사랑. 그래서 아름답고 눈물겹다. 피아노가 선율을 만들듯이 무수한  감정의 결을 생성해내는 사랑. 영원한 사랑. 필시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피아노 한 대 선물하고 떠나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또 나는 '도를 믿으십니까?'하는 사람처럼 떠들고 다녔다. '원스 보셨어요?'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퍼날랐다. 시집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꺼내볼 수 없으니 음악을 틀어놓고 살았다. '원스'가 핏줄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녔다. 입김으로 먼지로 우주의 공기로 흩날렸다. 한없이 부푼 선율은 '凋落하는 가을빛' 따라 낮은 숨결로 잦아들었다. 며칠 전부터 몸에서 'If you want me'가  들린다. 어미들이 매년 출산일즈음에 산통을 겪듯이, 나는 가을을 알아차렸다. 가슴으로 가을을 낳는다. 이성복의 시집과 <원스>를 쌍둥이처럼 품고 있다. 다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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