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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03] 휴면기- 허연 (6)
  2. [2012.05.07]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8)

휴면기- 허연

[올드걸의시집]

오랫동안 시 앞에 가지 못했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

할 만큼 오만해졌다.

 

세상은 참 시보다 허술했다. 시를 썼던 밤의 그 고독에 비

하면 세상은 장난이었다. 인간이 가는 길들은 왜 그렇게 다

뻔한 것인지. 세상은 늘 한심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

도 아니었다.

 

염소 새깨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

며 시 앞에 섰다.

 

- <휴면기>,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

 

 

직장인이 된다는 건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 하는 일이다. 물론 퇴근이 불규칙한 경우가 더 많다.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일상을 통째로 넘기는 일이다. 12월이 다가온다. 4월부터 지금까지 8개월간 받은 월급을 계산해보았다. 그 금액에 내 마흔넷이 그렇게 거래되었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손에 쥐어진 돈이 크지 않아서 더 그렇고, 그 초라한 월급 외엔 또 남은 게 없다는 사실이 황망하다. 집을 이사하고 빚이 생겨서 매월 일정액을 갚아야 한다. 큰 돈보단 고정급이 필요해서 회사에 들어간 거니까 내몫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온갖 일을 시도하고 축제를 치러내기도 했지만 그 만족은 금새 빠져나갔다. 미미하다. 내 삶의 위기는 월급이 적다는 게 아니라 읽고 쓰는 삶이 불가능해졌다는 것. 퇴근 후 책 읽고 글 쓰고 싶었는데 야무진 꿈이었다. 대체로 비실거리다가 잔다. 아니, 잠이 든다.   

 

매주 화요일에 연구실 회의도 자주 가지 못한다. 어제도 불참했다. 원래는 행신동에서 외부 미팅이 있었고, 그걸 끝내고 갈 참이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져 끝나니 7시. 그 때 연구실에 가면 8시, 회의하고 집에 올 길을 헤아리니 오밤중. 회의 하고 나면 진이 빠져 기운이 바닥난다. 또 민망하게 못간다고 단톡방에 남겼다. 병권샘은 못 본지 오래됐다며 담주에는 꼭 오라고 하고, 나는 '직장인에 육아인에 집이 해방촌이 아닌 사람은 연구실 활동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스럽다'며 '밤 되면 눕고만 싶다'는 신세한탄 문자를 보냈다. 정수샘은 요새 '미생'을 본다며 '직딩의 고단함'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미생을 하기 전에 정수샘은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래요?" 하면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곤 했었다. 알아주니 고맙고 서럽다.

 

시를 읽는 삶. 시에 감응하여 글을 쓰는 삶. 시를 읽고 남루한 일상의 위로 받고 삶을 추스리던 시기가 있었고 무언가 열심히 올라오는 상념을 털어놓으면 가벼운 마음에 또 살아갈 힘을 얻곤했다. 그런데 그게 시시했다. 맨날 칭얼대는 어린애가 된 거 같아, 염소새끼처럼 같은 노래를 부르는 거 같아 부끄럽고. 언제부턴가, 아마 시세미나가 끝나고부터 일 것이다. 시도 드문드문 읽고 글도 잘 안 쓰게 되었다. 시도 삶도 뻔하고 시시하고. 헌데 그 뻔하고 시시하단 자각조차 시가 아니면 하지 못했다. 시가 빠져나간 삶은 급속도로 퇴락했다. 시는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시가 아무것도 아닌 내 삶의 근거이자 이유였단 말인가.  고백하자면 내가 다시 몸부림을 치게 된 건 시 때문이다. 요즘 나는 다시 시를 읽는다. 오래 끊었던 술을 마시는 것처럼 빨리 취한다. 심수봉 노래같이 바로 자극이 오는 허연의 시도 읽고, 유희경이라는 낯선 시인의 시집도 읽는다. 몸부림이 시작됐다. 이 시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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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올드걸의시집]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랑 점심을 먹었다. 친구가 후배직원과 같이 나왔다. 뿔테 안경에 더벅머리를 인 선머슴 비주얼에다가 어딘가 겅중거리는 뒤태가 단독의 망상체계를 구축한 소년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월의 다정한 햇살로 데워진 합정동 주택가 골목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그 소년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말을 건다. “, 등단 하셨다고요?” 첨엔 놀랐고 바로 웃겼다. 너무 뜬금없는 대사가 무슨 접선하는 거 같았다. 시 읽는 여자로 나를 치장한 적은 있을지언정, 시 쓰는 인격으로 행세한 적은 없다. 그 푸른색 거짓말을 나는 모른다. 알고 보니 친구가 나에 대해 시를 좋아한다며 시집 운운한 모양이다. 그 소년이 시집이라는 말에 혹해서 등단까지 진도를 빼서 정보를 왜곡 수용한 거다. 뭐 그럴 수 있다. 사람은 들리는 말을 듣지 않고 자기의 욕망을 투사하여 듣고 싶은 대로 들으니까. 나는 시를 좋아만 하지 한 번도 써본 적 없으며 좋은 독자가 되는 게 꿈이라면 꿈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간첩같은 소년이 묻는다. 시인 중에 누구를 좋아하세요. 이럴 때마다 갈등한다. 황지우에게 미안해하면서 이성복이라고 대답했다. 반색한다. 저도요. 이성복. 저는 필사도 했어요. 나도 필사했는데. 무슨 시집? , 뒹구는 돌. , 남해금산. 파편처럼 무섭게 반짝였다. 동질감 싹트고 소수성 돋았다. 어느 쯤에서 사라지려던 무엇이 이 세상에 용납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끝말잇기처럼 대화가 척척 풀렸다. 그럴수록 처연했다. ‘시의 일은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것이라는 말대로 나는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백팔 배를 하는 심정으로 시를 필사한다. 의식의 흐름은 차단되고 근육의 움직임만 있는 그 상태. 관절이 뻐근해지면서 몸에서 목탁소리 들릴 때까지, 쓴다. 소년은 어쩌자고, , 그리도 썼는가. 시인이 되고 싶었고 등단을 준비했는데 재능이 없는 거 같아서 포기하고 밥벌이에 나섰다고 한다. 뒹구는 돌...처럼은 못 쓰겠더라고요. 목표가 좀 과했네요. 소년은 낄낄거렸다.

 

 

염소 새끼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 휴면기부분

 

 

오래 알고 지내던 건축가 부부가 있다. 둘 다 음악, , 만화 등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긴다. 십년 전인가 집이야기를 묶어 첫 책을 냈다. 두 권 세 권 지속적으로 책을 냈고 건축가 부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일간지에 매주 연재도 하고 학교, 외부 강연을 다닌다. 한번은 언니에게 물었다. 일과 육아만도 바쁠 텐데 어떻게 그렇게 계속 책을 내느냐고. 그랬더니 형부가 술, 골프 등 주류적 남성문화에 취미가 없으니 책 쓰는 게 영업이며 먹고 살기 위해 쓴다고 했다. 책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고객이 된다는 거다. 이것은 바로 글과 밥의 조화로운 삶이 아닌가. 글에서 밥이 나오고 밥이 글이 되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아이들에게 시를 암송시켰더니 자신감이 상승하더라고 형부가 말했다. 선배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배웠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좋은 자기표현이 되는구나. 남녀노소 누구라도 시 읽기는 멋진 자기유지에 기여하는구나. 잘 쓰는 것보다 늘 쓰는 게 중요하고, 사는 일이 불리해질수록 시를 곁에 두어야하는구나.

 

내 친구가 일하는 출판사는 경제경영서를 주로 낸다. 그리움의 언어로 집을 짓는 문학과는 좀 먼 일,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도끼로 깨는 일(카프카)과도 좀 동떨어진 책을, 소년은 만들고 있다. 어쩌자고 초면에 고독의 패를 보아버린 지라 심란했다. 누군가 재능이 없다면 재능이 발휘될 때까지 써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써보기 전에는 재능은 드러나지도 않고 드러날 수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푸른색 거짓말을 나는 곧잘 한다. 그날은 그냥 담백하게 시 놓지 말아요했다. 때 아닌 시담에 배고픔을 잊었는지 소년은 비빔밥을 남겼다. 근처 카페로 갔다.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며 아이스커피를 마시는데 소년이 낮은 포복으로 상체를 숙이고 2차 암호를 건넨다. “저기, 이장욱밖을 보는 척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얼굴에 초점이 잡힌다. 다음 주 시 세미나에 읽기로 한 시인이다. 어제 사진을 본 시인과 오늘 같은 카페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원두를 마시게 될 줄이야. ‘채워야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최승자)인 한 사람. 김수영이 죽은 바로 다음 날 태어난 한 시인이 와 있다. 무슨 법처럼, 한 시인이 서 있다.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

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

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

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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