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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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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 김종삼 샘물이 맑다 차갑다 해발 3천 피트이다 온통 절경이다 새들의 상냥스런 지저귐 속에 항상 마음씨 고왔던 연인의 모습이 개입한다 나는 또다시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 김종삼 시집 민음사 시 한줄 읽고 음악 한곡 찾아 듣고 원고 한 줄 쓰면서 계속 시계를 힐끔거린다. 회의하러 가야하는데 회상을 듣고 있다. 9시 반. 그래도 회의는 가야한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4월 22일 슬픔과 충격을 가누지 못해 결석을 해버렸었다. 영하 10도 이하의 엄동설한에도 빠지지 않았던 나. 근면성실 외길인생인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버스정류장.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오후 2시에 약속 땜에 핸드폰을 챙겨야했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김종삼 시집 민음사 내가 사랑하는 것들. 할증요금 올라가는 택시에서 듣는 옛날가요. 십대후반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듣던 주옥같은 노래들. 밤마다 심취해 베껴쓰던 노랫말들. 토씨하나 안틀리고 재생가능. 오늘같은 경우라면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촛불. 한강변 끼고 달리면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했는가.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모든 사랑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약 일이십분정도. 밤과 침묵의 현전. 경험할 순 있지만 말할 수 없는 바깥을 유람한다. 눈치..
김종삼 / 묵화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시집 민음사 긴 하루가 지났다. 단거리 마라톤을 끝낸 것 같다. 다리가 팅팅 부었다. 다시 한 호흡 가다듬는다. 늘 삶이 단조롭기를 소원하나 그러질 못해 말썽이다. 친구가, 나이 사십에 접어들면서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기로 결심했는데도 왜 똑같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니만 내가 그 짝이다. 분명 결심했다. '잘할 수 있는 일만 하자. 한 가지라도 공들여 일하자.' 그리고 종종거리지도 징징거리지도 말고 묵묵히 거뜬히 해내자. 그런데 여전히 부릉부릉 시동소리 요란하다. 이런 삶은 주위에도 민폐다. 나와 접속하는 사람들의 인사말이 늘 이렇다. “요새 바쁘지?” 완전 민망하다. 조용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