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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6] 산 / 김종삼 (10)
  2. [2011.03.23] 어부 / 김종삼 (5)
  3. [2010.05.21] 김종삼 / 묵화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8)

산 / 김종삼

[올드걸의시집]

샘물이 맑다 차갑다 해발 3천 피트이다

온통

절경이다

새들의 상냥스런 지저귐 속에

항상 마음씨 고왔던

연인의 모습이 개입한다

나는 또다시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 민음사



시 한줄 읽고 음악 한곡 찾아 듣고 원고 한 줄 쓰면서 계속 시계를 힐끔거린다. 회의하러 가야하는데 회상을 듣고 있다. 9시 반. 그래도 회의는 가야한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4월 22일 슬픔과 충격을 가누지 못해 결석을 해버렸었다. 영하 10도 이하의 엄동설한에도 빠지지 않았던 나. 근면성실 외길인생인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버스정류장.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오후 2시에 약속 땜에 핸드폰을 챙겨야했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컴퓨터를 켰다. 위클리 게시판에 몇줄 남겼다. '내일 강의안과 인터뷰 원고를 아직 못 썼는데 주말에 시댁을 가야합니다. 냉장고는 텅 비고 세탁기는 꽉 차고 살림이 엉망입니다. 열흘 째 혓바늘이 돋아서 가라앉질 않고 아무래도 제 삶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전사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규호에게 전화가 온다. '보류-끊기' 버튼을 누른다.  어디냐고 문자가 온다. 못본 척 하려다가 게시판에 결석사유를 남겼다고 문자를 넣었다.

인터뷰 강의 요청했던 김모씨에게 문자가 온다. 정식 이력서가 있으면 보내주시란다. 없다고 했다. 편집회사 전화번호가 뜬다. 사보일을 95% 그만두었다. 지금까지 나를 찾는 에디터는 신뢰관계가 돈독한 친구다. '매우 급한 취재'라는 전보다. 앰블런스 신호음같이 요란하다. 저절로 지쳐 끊기길 세 번. 거절하기 미안해서 못 받았다. 오후의 약속도 어찌어찌 자연 취소됐다. 박모씨에게 전화가 온다. 회의하다가 물어볼 것이 있는 모양이다. 외면했다. 못된 년의 날. 부재중 전화의 난. 타인의 개입을 원천봉쇄 하는 건 처음이다. 음악 듣고 원고 쓰고. 장을 보려고 현대에 갔다. 시동 끄고 내리려다가, 오디오를 다시 켰다. 3만원 주유하고 공짜로 받은 싸구려 커피가 남았다. 달고나처럼 단 그것을 마저 마시며 노래를 듣는다. '괜찮아요. 나도 예전엔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적 많았죠.' 궁상스러운 노랫말. 송곳처럼 파고든다. 문자가 온다. '쉬라고 하고싶은데 쉴 수 없는 상황이고.. 원고정리 잘하시고 내일 봐요~' 늘 미안한 지연씨. GS칼텍스 주유소 휴지 한장 꺼내 눈물을 찍는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괜히 서럽다. 오늘 따라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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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 김종삼

[올드걸의시집]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 민음사



내가 사랑하는 것들. 할증요금 올라가는 택시에서 듣는 옛날가요. 십대후반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듣던 주옥같은 노래들. 밤마다 심취해 베껴쓰던 노랫말들. 토씨하나 안틀리고 재생가능. 오늘같은 경우라면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촛불. 한강변 끼고 달리면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했는가.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모든 사랑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약 일이십분정도. 밤과 침묵의 현전. 경험할 순 있지만 말할 수 없는 바깥을 유람한다. 눈치없는 기사아저씨가 말을 거네. 데이트 안 하시고 왜 이렇게 일찍 들어가세요. 이게 왜 일찍인가. 택시 탈 때 여자후배랑 헤어지는 거 봐놓고 저런 얘기는 왜 한담. 한시 다 돼어 들어가는 에미. 아들이 깨어있다가 예의바르게 인사한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안주로 먹다 남은 치킨 싸와서 야식으로 주고. 어서 자라. 한다. 괜히 멋쩍다. 국어선생님이 이글스 공연 다녀왔다더라는 얘길 하면서 침대에 누워 딩굴딩굴 음악듣는 아들. 이글스꺼니? 아니오. 콜드플레이요. 아, 비바라비다구나. 엄마 저 잘게요. 그래. 컴에 앉아 라디오를 켜니 아들이 말한다. 엄마. 호텔캘리포니아 틀어주세요. 디제이엄마. 그래. 기타소리가 심금을 뜯는다. 아들 잘자.  

바닷가에 매어둔 고기배처럼 날마다 출렁이는 엄마. 배타고 요 앞바다 마실 다녀왔다. 마음은 태평양 가로질러 떠나고싶지만 묶인채 출렁인다. 가끔 다른 배들이 와서 툭툭 머리를 맞댄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건넨다. 며칠 전에 후배에게 편지가 왔다. 한줄요약하자면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 상대가 모르게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어서 아파요'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라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착하고 순수하니까 그런 사람 좋아하지 싶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답장을 보냈다... 틀에서 보면 나는 찬성이다. 찬반 문제가 아니지만, 그냥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어.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눈물 흘리라고. 살면서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잘 살고 싶게 하고 존경하는 마음, 애틋한 에로티시즘까지 얹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만나는 일은, 드물잖니...사랑하는 사람, 강물에 던져버리고 싶은 이름 있고 그래도 독사처럼 칭칭 감기는 사람 있다는 거..참 행복한 일이야. 아프겠지만. 사랑 놓지마. 전송했다. 외사랑. 요즘같은 성과와 효율의 시대 흔치 않은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나처럼 은근히 선호하는 것은 도착증이다. 순정만화증후군같은. 화사한 사랑만 기다리고 있는. 뭐 어쩌겠는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동력은 사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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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 묵화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올드걸의시집]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시집 <북치는 소년> 민음사



   

긴 하루가 지났다. 단거리 마라톤을 끝낸 것 같다. 다리가 팅팅 부었다. 다시 한 호흡 가다듬는다. 늘 삶이 단조롭기를 소원하나 그러질 못해 말썽이다. 친구가, 나이 사십에 접어들면서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기로 결심했는데도 왜 똑같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니만 내가 그 짝이다. 분명 결심했다. '잘할 수 있는 일만 하자. 한 가지라도 공들여 일하자.' 그리고 종종거리지도 징징거리지도 말고 묵묵히 거뜬히 해내자. 그런데 여전히 부릉부릉 시동소리 요란하다. 이런 삶은 주위에도 민폐다. 나와 접속하는 사람들의 인사말이 늘 이렇다. “요새 바쁘지?” 완전 민망하다. 조용히 많은 일을 해내는 인간상을 구축하지 못해서. 인간이란 얼마나 일상의 흐름에 예속적인 존재인가. 습 하나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인식'하지 않고 '확신'만 남발한다.

어제는 후배가 전화해서 “언니 잘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들지”로 시작하는 하소연을 한 시간 가량 해댔다. 동조했다. 언제쯤 돼야 사는 게 수월해질까 모르겠다. 그런데도 후배가 나는 인생 고수처럼 보인다고 부러움을 표했다. 그래서 말했다. “낮에 속상한 일 있어서 울었어. 어쩌구 저쩌구...나도 힘든 일 많아. 왜 이러셔!” 후배 푸념이 잦아들었다. 눈물이 한숨을 구원한 둣 보였다.  삶은 선한 의지와 굳은 결심만으로 매끄럽게 살아지지 않는다. 외부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닥치기 마련이다. 상처 주고 사랑 받고. 포기하고 욕망하고. 인생이란 언제나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그런데 또 감정의 결은 매번 새롭다. 그 때마다 느끼고 수용해야지 별 수없다. 무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 말자. 그게 꼭 좋은 삶은 아니다. 발잔등 부은 오늘 하루를 찬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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