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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7] 스피노자의 '인간의 나라' (8)
  2. [2008.08.14] <문명속의 불만> 프로이트의 문명론

스피노자의 '인간의 나라'

[스피노자맑스]

‘이게 인간의 나라인가’ 신문을 펴는 순간 움찔했다. 어제(11/16)김종철 선생님이 한겨레에 쓴 칼럼 제목이다. 이게 인간의 나라인가. 시의적절한 물음. 아니 질타, 한숨... 나의 괴로움을 대변해주는 한줄 요약. 얼마 전부터 깊은 통증을 느꼈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부터 같다.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물질화된 세상, 믿기지 않는 험악한 가난과 착취의 실상들. 인간이 징그러웠다. 저 인정머리 없는 기업주들. 못 자고 못 먹고 신음하는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화장실도 못 가게하고 일을 시키다니. 그들은 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도리를 모르는 타락한 인간들. 개인의 성정 탓은 아닐 것이다. 사장의 자리가 끊임없이 화폐증식을 욕망하도록 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그들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희생양이다.  

이어서 ‘G20 그리고 인권’ 토론회에서 또 한 차례 엄청난 얘길 들었다. 토끼몰이식 단속을 피하던 네팔 노동자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것이다. 한국에 8년이나 머물렀고 결혼해서 4개월 된 아기도 있다고 한다. 가정을 꾸리고 성실히 일하던 사람인데, 단지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죽었다. 한국 사람은 하루도 못 견디는 고된 작업을 소처럼 일 하다가 지렁이처럼 밟혀죽었다. 미친 것들이 이틀 동안 회의하려고 사람 하나 죽어가는 것쯤은 예사로 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사과도 하지 않더라고 이주노조 이정원 씨가 말했다. 다음 날, 삼성노조 위원장님을 만나서 삼성의 비이성적 행태에 거듭 충격을 받았고 그 와중에 용산참사 가족에게도 무거운 형벌이 내려졌다. 아무리 지배자가 만든 법이라해도 이렇게 대놓고 가진자들의 편을 드나.

게임중독으로 엄마를 죽이고 자살한 중학생 기사도 났다. 아빠가 중국에 있단다. 사실상 별거중이고 엄마는 일 나가고 아이는 초딩 때부터 게임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층민에게 가족은 해체됐고 아이들은 방치된다. 국가는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린 국가가 우리 삶을 보호한다고 여기며 꾸역꾸역 세금내고 모여산다. 
이게 인간의 나라인가.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여전히 그런 물음들이 딸꾹질처럼 불쑥 불쑥 치밀어 그치질 않는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원래 그런 종자니까 ‘통탄해서도 안 되고 비웃어서도 안 되며 혐오해서도 안 되고’ 거기서 출발하라고 했는데, 나는 인간을 통탄하고 혐오하면서 실의에 빠진 채 <정치론>마지막 부분과 <전복적 스피노자>를 읽는 둥 마는 둥 읽었다.  

“국가가 제정된 것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안전한 상태에서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기 위해서이며 증오나 분노 또는 간계를 행사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악의 없이 서로가 서로를 관용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국가의 목적은 실로 자유인 것이다.”   - 신학정치론


신학정치론에 나온 대로, 스피노자는 국가를 중시했고 국가의 참다운 존속을 위해서 '절대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란 "이성의 명령 아래 있는 자유로운 집단적 삶"이다. 이는 우리가 쓰는 일반적인 민주주의 개념과 좀 다르다. 대개 민주주의라고 하면 투표권이나 상부구조의 정치적 형태를 떠올리는데 스피노자에게 민주주의는 존재론적으로 내재하는 근본적 실천형식이다. 

또한 스피노자가 말하는 '절대성'도 절대군주의 권력의 절대성과는 전혀 다르다. 절대성이란 법 바깥, 혹은 법 위의 힘이 아니다. 절대군주가 법의 제약을 받지 않고 법을 중지시키거나 실행시키면서 임의로 행동하고 판을 갈아엎는 것과는 정 반대의 뜻이다. 스피노자의 ‘절대성’은 법과 권력의 분리불가능성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와 제약을 두지 않음을 뜻한다. 나아가 절대적인 것은 영원하기에, 민주주의는 ‘영원의 상 아래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스피노자에게 영원성은 능동적 변신의 과정을 함축한다.  

네그리의 정리. "민주주의의 절대성은 양적으로 함께 모인 모든 시민들의 총체로서 파악된다. 질적으로는 사회화의 과정 그 자체인 공동체를 향한 개인의 변신으로 파악된다. 이 때 민주주의는 단지 가능한 통치 형태들 중 하나로만 규정되지 않으며 '정치적인 것의 영원한 본질'로 파악된다. 민주주의는 멈추지 않고 결코 끝이 없는 변신이다. 거기에는 힘의 질서와 구성적 실천의 소진할 수 없는 생산성이 들어 있다. 민주주의는 전적으로 절대적이기에, 영원성에 의해 생명을 얻기에 어떤 제헌으로도 한계 지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더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다."

스피노자의 국가론은 절대적 민주주의로 요약된다. 그것은 '인간이 사는 나라'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안전한 상태에서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자유롭기 위해 모인 공동체.' 이곳에는 잉여가 없으려나. 잉여가 없으면 착취도 없을까. 아니다. 스피노자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권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위해 투쟁할 의지와 능력이라고, 그러니 통탄하지 말고 ‘영원한 -되기’를 위해 나서라고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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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속의 불만> 프로이트의 문명론

[정신분석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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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문명론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무려 세 가지나. 금기의 내면화. 사회적 생산관계에 따른 욕망. 국가와 전쟁의 차이말살 동일화 기능까지. 수시로 자신을 피고인석에 앉혀놓고 심판하는 일을 즐기는 행위는 선천적 질병이다. 모두 같아질 것을 원하는 동질화의 사회를 '국가에 대항하는 성숙한 원시사회'로 되돌릴 방법은 무엇인가. 끝모를 부유함으로 최대의 가난을 경험하는 현대인들을 누가 이렇게 바보로 만들었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집단(합)심리학’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개인심리학일까? 그렇게 보인다. 프로이트는 집단의 다수성이 갖는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집단심리는 개인심리의 양적 확장에 불과하고, 사회적 본능은 개인본능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단을 집합으로’ 이해하는 구조주의-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근본적으로 집단심리학이다. 그에게 정서나 표상은 언제나 콤플렉스, 즉 집합적이다. [꿈의 해석]에서 확인한대로 모든 표상은 집단적이다. 단일한 감정, 단일한 표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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