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간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

[올드걸의시집]


어느 겨울.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고 한 시간 가량 운전을 해서 집에 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잠들고 나는 거실에 멍하니 있었다. 두 눈만 꿈뻑꿈뻑. 모드변환 중이다. 몸에서 식용유 냄새랑 트리오 과일향이랑 시어머니와 동서의 목소리가 빠져나가길, 다시 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댁에 다녀오면 왠지 늘 착찹하고 뒤숭숭했다. 목구멍에 잔가시가 걸린 이 느낌은 뭘까. 이건 증상이 아닐까. 일체유심조를 이루고자 반야심경을 읽는 심정으로 시집을 뒤적거리는데 문자가 왔다. 뭐하니. 그냥 있어. 술자리를 마치고 가는 길인데 뭔가 아쉬워서 연락했다는 그. 문득 마음이 동했다. 자기재건 본능인지 떠남의 욕망인지 모를 기습적인 충동이 일었다. 우리는 술꾼처럼 ‘딱 한잔만’ 하기로 했다. 그는 2호선 반대방향으로 갈아타고 되돌아오고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양화대교를 건넜다. 합정역 4번 출구에서 상봉했다. 베시시 웃고는 사뿐히 팔짱을 끼고 홍대쪽으로 걸었다.

얼얼한 바람이 전신을 휘감았다. 정신이 들고 생기가 돌았다. 호프집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시댁에서 술집으로 배치가 바뀌니까 존재가 달라진다. 비록 무릎 나온 추리닝의 꾀죄한 차림이지만, 재투성이에서 신데렐라로 변신한 것 같았다. 역할이 아니라 영혼이 만나 마주하니 좋았다. 해야 할 얘기와 하지 말아야할 얘기를 구분하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그렇게 감정의 평형상태를 즐기는데 자꾸 목 앞쪽이 껄끄러웠다. 목걸이도 안 했는데 이게 뭔가 싶어 만져봤더니 스웨터 상표였다. 황급히 나오느라 윗도리의 앞뒤를 바꿔 입은 거다. ‘나 다급했나…’ 웃기면서도 부끄러웠다. 화장실 가서 고쳐 입고 그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고속버스 승객처럼 나란히 앉아 떠들다가 고개 뉘여 그의 어깨에 잠시 기대었다.  밖으로 나왔더니 얼굴에 차고 다순 알갱이가 톡 떨어졌다. 눈, 눈발이 날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영화 <러브레터> 주인공처럼 고개가 젖혀지고 두 팔이 벌려졌다. 나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았다. 그 싸락눈 깔린 하얀 아스팔트를 밟으며 다시 합정역까지 걸었다. “나오기 전에 시 읽었는데 외웠다. 완전 짧고 좋아. 시조 같기도 하고…”


너인가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하면 내가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 <그대생각> 전문

다시 겨울. 삼선동에 이사 오고는 대학로를 한 번도 못 갔다. 전에는 업무수행 혹은 친교활동을 위해 종종 들르던 동네다. 가까우니 멀어진다. 대학로에 있는 그에게 그리움 담아 문자를 넣었다. 보고잡소. 나도 보고잡소. 급작스럽게 삼자회동이 성사되어 한 시간 뒤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그가 데려간 곳은 ‘민들레처럼’. 박노해의 시 제목인데 술집 간판으로도 어울렸다. 강남에서 근무하는 그의 후배는 벌써 와 있었다. 택시타고 왔단다. “너 다급했니…” 키득키득. 나는 안다. 누구를 만나고 싶은 자가 아니라 어디로 떠나고 싶은 자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초과노동과 인간소외 벗어나 자유와 해방의 땅으로 한달음에 간다. 그곳은 편안한 소파에 안주가 푸짐했다. 도토리묵, 파전, 과일샐러드, 북어포, 오뎅탕이 이만원이란다. 어쩐지 친숙한 이 메뉴는 홍대 앞 ‘그날이 오면’ 상차림과 유사했다. ‘그날이 오면’에는 늘 광석이형 노래가 흘러나와술맛을 돋우었는데 여기는 7080송만 틀어댔다. 처음처럼 각 1병씩 마시고 수다도 비우고 술집을 나갔다. 예기치 못한 선물. 눈이 날린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민들레홀씨처럼 지상에 내려앉지 못하고 공중을 휘젓는 눈.

그해 겨울. 용산참사 노제가 열리던 날도 그랬다. 민들레처럼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 펑펑  그칠 줄 몰랐고 남일당 앞 스피커 차에서는 ‘민들레처럼’이 연신 울려 퍼졌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온몸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구슬픈 가락 따라 눈사람이 된 유족과 검은 영정사진이 무겁게 흘러갔다. 거침없이 피어나 짓밟힌 사람들. 고조되는 목소리. “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오..” 언젠가 봄은 온다고들 말하지만, 당사자에게 겨울은 너무 길고 춥다. 구체적인 아픔을 무화시키고 봉합해버리는 상투적인 결말이 거슬렸다.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보다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나는 법을 노래해야하는 게 아닐까. 마디마디 분절되어 살갗에 닿던 민들레처럼. 그 눈꽃의 기억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서걱거린다.’


겨울 숲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서 지금 돌아온 사람들은

폭설주의보가 매달린 겨울 숲에서

모닥불을 지펴놓고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가움을 녹이며

조금씩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며

자기 몫의 봄소식에 못질을 하고 있다  

- <땅의 사람들 1> 부분

그는 가고 둘은 남았다. 우리는 시야가 흐려지는 몽환적인 눈을 맞으며 학림다방으로 향했다. 창 넓은 찻집에서 꼭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내가 우겼다. 팔짱끼고 걷다가 친구가 뒤뚱 넘어지려는 걸 구제해주었다. “이런 낭만지수 100% 외출지수 50%인 날,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여서 괜히 미안하다.” “아냐. 고마워. 나 혼자였으면 분명히 넘어졌을 거야. 얼마나 서글펐겠어.” 애인 있다고 넘어질 때 항상 안전한 건 아니며 발 걸고 같이 넘어지는 놈들도 많다고 위로했다. 애잔한 말들. 비혼이어서 쓸쓸하고 기혼이어서 아니 쓸쓸하진 않다. 인간이어서 적적한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인간은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존재라고 말했나 보다. 어쨌든 인간의 존재조건인 고독을 등짐 진 두 여자는 좁고 가파른 학림다방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달달한 낭만주의 클래식이 흐르고 일제강점기 소설가의 방처럼 담배연기 피어나고 레코드판 즐비하며 소파는 나란하다. <계몽영화>에서 남녀가 맞선보던 국제중앙다방 세트장 분위기가 마냥 정겹다. 통유리에 안긴 풍경은 넉넉하고 커피는 일품이고 손님은 만석이고 우리들 대화는 처량하다.

회사 그만두고 싶어 죽겠다. 아주, 아주, 죽을 힘 다해서 짜내고, 짜내서 다니고 있어. 설에 집에 내려갔더니 나 결혼 안 한다고 엄마가 걱정을 엄청 하시는데 회사까지 그만두면 너무 불효 같아서. 그르게. 번역만 해서는 생계가 어렵지? 아는 사람이 작년에 다섯 권 했는데 연봉 2천이래. 그만큼 하려면 하루에 10시간 이상 매일 노동해야해. 너는 그쪽 일은 하나도 안 해? 요새 글쓰기 싫으네. 사람은 어떤 맹목적인 확신이 있어야 사나봐. 그 거울을 잃어버리니까 맨 얼굴의 내가 보여서 괴롭다. 그래도 체력 될 때 써라. 연령주의에 갇히면 안 되겠지만 일도 사랑도 때가 있는 거 같아. 확실히 남자는 나이 들수록 만나기 더 어렵지. 근데 사십대를 같이 보내서 한 십년 추억을 공유해야 노년에 말벗을 해도 하지 않을까. 올해는 적극적으로 남자를 만나봐. 그래야할 텐데 사람이 없네…돌림노래같은 주제들. 결론 없는 수다. 오로지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삶과 닮았다. 담소를 나누는 동안 나는 테이블에 있는 정사각형 영수증으로 종이학을 접었다. 아직도 종이학 접을 줄 아니? 그러네. 몸이 기억하나봐. 손이 저절로 접은 거야.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 <사십대> 부분

데이트 생활자의 겨울. 근래 들어 근무태만이다. 혼자 노는 기술을 알아버렸다. 이를 테면, 파울 첼란의 시집을 사고는 카페에 갔다가 독일 깔맞춤으로 뮌헨 빵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된장녀 짓을 일삼으니, 지루하진 않다. 늘 그랬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바늘 하나로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생명이고 눈송이 하나라도 깨어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이 헛됨을 ‘누리면서 견딜만할’ 한 번의 기쁨, 한번의 감촉,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필요하다. 합정동에 두고 온 그대생각. 남일당에 두고 온 민들레처럼. 학림다방에 두고 온 종이학. 팔뚝에 저장된 체온 같은 것들…나의 무제한적인 부(副), 눈과 함께 서리서리 쌓인 시간의 기억들. 그것으로 겨울을 나고 일생을 버틴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으니까.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옆에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평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 <천둥벌거숭이 노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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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고정희

관계 / 고정희, 임태경 / 열애

[올드걸의시집]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번째 회신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거다 천기를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 <앵무새의 혀> 김현 엮음, 문학과지성 신작 시집


'음악이 주사라면 시는 알약이고 철학은 한약이다.' 밤샘 음악여행을 마치고서 내린 내 나름의 정의다. 근 두어달 음악을 끊고 살았다. 하루에 한두시간은 유투브에 죽치고 앉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악을 클릭질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끊었었다. 음악 들으면 마음이 축구공처럼 이리저리 마구 굴러가기 때문에 자제했던 거다. 그러다가 니체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다시 플레이를 눌렀다. 피아노 영화음악에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듣고 건너건너 넬라 판타지아로 흘러갔는데 예전에 세음지기 때 좋아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임태경을 보았다. 극적 상봉. 애정부활. '열애'를 듣는데 마음이 토문강처럼 부풀더니 그의 깊은 눈망울 활활 타서 나는 재가 되어버리고 폭설에 발묶인 사람처럼 꼼짝 못했다. 듣고 또 듣고 아흔번 들었다. 고열에 시달리다 맞는 주사 한방이 그러하듯 음악이 살갗을 뚫고 혈관을 타는 느낌. 음악 들으면 소맥 섞어서 투샷 한 것마냥 가슴이 싸하다. 그러니까, 아무리 철학이 심오하고 시가 아름다워도 자연적 완전성은 음악이 최고봉이다. 세계를 빈틈없이 메워버린다. 음악은 정신의 공든탑을 한 번에 무너뜨린다. 나와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는 비개체성의 경지로의 진입. 혹은 몰입.

벼랑에 앉아 흔들리며 음악을 듣고 시를 읽었다. 김현이 문지사 10주년 기념으로 편집한 시집 <앵무새의 혀>. 들꽃 꺾어 꽃다발 만드는 기분으로 이시인 시 저 시인 시로 시를 골라서 세미나를 갔다. 시집에 포함된 24명 시인 중에 고정희가 인기 짱. 다들 고정희의 순정한듯 무당기 넘치는 언어에 매료되어 '고정희'를 읽겠다고 책 끄트머리를 고이 접어왔다. 소영부터 수줍게 낭독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가슴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한준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쓴 시가 아닐까 사망설을 제기했다. 미숙은 고정희 생전 그 옛날 추억을 불러왔다. 시인과의 대화 뒷풀이 자리에서 고정희가 패티김의 초우를 애절하게 불렀는데 잊혀지지 않는다며 고정희는 짝사랑의 달인일 거라 짐작했다. '관계'를 낭독했다. 신화적이고 서정적인 사랑노래. 꾸밈없이 정념을 밀고나가는 유장한 시어들. 나는 가장 고정희다운 시로 꼽았다. 이십대 유민은 고정희가 너무 질척거리는 거 같다고 새침하게 말했다. 미숙의 반론. '갑이었구나. 그러니 을의 심정을 모르지..' 고정희가 짝사랑은 했어도 직접 매달린 건 아닐 거라고, 말못하는 그리움을 시로 쓴 거같다고 조심스레 말했고 나는 부연했다. 

모든 글은 타자체험이다. 황지우 시 제목대로 '나는 너다'의 기록이다. 노랫말이든 시든 주체와 대상간의 거리가 확보되기 전에 글은 쓸 수 없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다 표현하고 매달리고 해소하면 아흔아홉통 편지는 무슨 소재로 쓰겠나. 어떻게 저런 시가 나올까. '열애'도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라디오 피디였던 분의 체험을 노랫말로 쓴 거라더라. 애써 눌러놓은 사랑. 꽁꽁 동여맨 감정, 봉인된 응어리가 풀어져야 시가 되고 노래가 되거늘. 그런데도 소영은 아픈 사랑은 하기 싫다고 고통받고 파멸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살찌우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어느 책의 인용구를 들어 사랑관을 피력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약이 되는 관계를 꿈꾸는 청춘에게 나는 말했다. 그게 무슨 사랑이야, 세미나지~ 사랑이 좋기만 하면 사랑인가. 집착과 충동의 덩어리같은 괴물로 변해가는 징그러운 부분을 보기 전엔 사랑 아니다. 사랑의 극한에는 독이 있다. 파멸이 있고 몰락이 있다. 거기서 다시 삶을 재구성할 때만 사랑은 약이 된다고, 고드름 부딪는 사랑론을 폈다.

지난주 이성복 시인 부흥회에 이어서 고정희까지. 사랑에, 참 관심들 많다. 임태경이 열애를 부를 때도 객석을 비추어주는데 중년의 여성들 눈가가 촉촉해지는 장면이 여러번 잡혔다. 돈암시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같은 모습, 소녀스러운 표정이 애잔했다. 사람은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리워만 한다. 애틋한 일탈의 감정을 향유한다. 시세미나에서도 문충성의 시 '나의 중년'을 읽은 유민은, 엄마가 오로지 성당에만 몰두하셔서 안타깝다며 '하느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시구가 더 와닿았노라고, 자기도 나이들어 그리 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중년의 내적 망명지는 하느님인가. 젠장. 예수오빠 품으로 모여라 꿈동산이네...중년의 고드름처럼 얼어버린 감정선을 봄바람 같은 노래가 녹여버리나보다. 열애에 쏟아지는 열광의 박수가 그래서 슬프다. 지금의 막강한 자본적 질서와 제도, 욕망을 잠식당한 도덕체계에서라면 사랑은 없다. 일찍부터 비타협, 불화, 모순, 난국은 싫고 조화로운 안정을 희구하는 삶에 길들여진 청춘은 더 그렇겠지. 본디 노동에 지치면 모든 격렬한 갈망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음악적 시적 상상으로 교미를 즐기는 거겠지.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불꽃같은 사랑을 흥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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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구자명씨 / 고정희

[올드걸의시집]

- 여성사 연구 5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히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 고정희 시집 <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사

가끔 궁금하다.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어릴 때야 먹여주고 재워주는 엄마가 침묵의 여신이지만 2차 성징에 접어든 사춘기 아들에게 엄마는 말 많은 무수리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어봤다. 평가가 용이하도록 수우미양가로. “아들아, 나는 점수로 따지면 몇 점짜리 엄마야?” “음..20점이요.” “뭐야? 야! 너무 한 거 아니니? 내가 오십 점도 안 돼는 엄마냐...” “왜요? 20점 만점에 20점인대요.” 어이가 없었다. 만점을 맞고도 성적표에 ‘가’라고 찍힌 느낌이다. 100점 만점 평가가 보편적인데 의도가 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쪽지시험은 20점 만점이라고 항변한다. 티격태격. 나는 찔리는 게 있는지 아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점수로 읽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엄마의 자리를 돌아봄’이란 취지를 떠올리며 민원 접수 차원에서 의견을 청취했다. 아들이 엄마의 장점은 잔소리와 체벌, 강제 등 억압적이지 않은 것이란다. 민망하게도 평소에 내가 주입했던 대사다. “친구들한테 물어봐. 나 같은 엄마 없다...”라던 대략 5분짜리 레퍼토리.  

이어 아빠의 장단점도 말했다. 아빠는 다 좋단다. 그럼서 부모의 비교평가까지 진도를 빼다가 나는 2차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엄마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 보여요.” 아들이 계속 말하기를, “아빠는 사람이 여유롭잖아요. 편안하고” 이런다. 나의 허둥지둥, 남편의 천하태평.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못마땅함이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스러움이었다. 또한 내가 여자-엄마이기 때문에 겪는 고질적인 불편이자 질곡이기도 했다. 문득 서글프고 참담했다. 작고 귀엽던 내 아들도 수컷이 되어 가는가. 남자는 다 그래, 심수봉의 노래가사가 진리란 말인가. 안 되겠다 싶어서 아들에게 퍼부었다. “엄마도 결혼하고 니네 낳기 전엔 무척 여유로웠어. 아빠랑 죽이 잘 맞는 풍류파였다고. 지금도 놀 줄 알아. 청소도 안 하고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쌓아 놓고.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고. 집안이 돼지우리가 되거나 말거나 니네가 밥을 먹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안 쓰면 엄마도 억척 안 부리고 여유롭게 살 수 있어. 왜 이러셔!”  

아빠와 엄마 성정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젠더의 문제로 사고하라고,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이데올로기는 남자들이 만든 유언비어라고 강조했다. 엄마도 인정한다. 아빠의 가부장지수는 낮다. 가사노동과 육아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아빠에겐 언제든지 손 놓을 권리가 있고 비교적 자유를 누리지 않느냐. 대체인력이 대기 중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노동 강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할머니 세대는 더 했다.... 하려다가 입이 아파 그만두었다. 말해도 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인 나도 그 땐 몰랐다. 애기 낳고 키우면서 찬바람이 불 때마다 할머니와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예전엔 뜨신 물도 안 나오고 세탁기도 없었다. 자고나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그 기저귀 빨래를 다 어떻게 해냈을까. 자식도 좀 많은가. 심술보 달린 별난 시어머니를 모시거나 남편들은 무능력 하고 술과 여자를 탐하기 일쑤였다. 밭일과 논일이나 없었으면 다행이지.  

용산02. 마을버스에 10분만 앉아 있어도 보인다. 할머니들이 탈 때마다 고작 두 칸인 버스 계단이 북한산 인수봉처럼 험해진다. 아이구 다리야, 오른 발, 어이구 다리야. 왼 발. 관절도 성치 않은데 무거운 보따리는 또 왜들 그렇게 들고 다니시는지. 한 식구의 안식을 떠받치느라 허물어진 육신들. 분장도 대사도 증상도 똑같은 여자들. 약하게 태어나 강하게 살다가 희미하게 머무는 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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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 / 고정희 - 제 몸에서 추수하는 사십대

[올드걸의시집]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 고정희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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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정희 '따뜻한 세상 한번'

[올드걸의시집]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을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그림자 멀리멀리
 얼음짱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 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 속에 든 빙산이 제 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열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고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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