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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남의 집 귀한 자식

대학 밴드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치는 큰아이가 정기공연을 한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홍대 앞 작은 클럽. 벽면은 포스터 붙여다 뗀 테이프 자국이 너덜너덜했고 조명은 교차로 신호등 같은 삼색불빛이 단조롭게 깜빡였다.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사운드가 터지고 조명이 켜지자 기타를 멘 여학생의 어깨끈에서 무슨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귀한 자식’. 동그란 장식용 배지였다. 


어느 알바생 유니폼 등쪽에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진상 고객이 얼마나 많으면 저랬겠냐, 사장님 센스 있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요즘 ‘귀한 자식’이라는 말이 유행인가. 그러나 저 몸에 새긴 표지는 너무 온당해서 쓸쓸하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값싼 부속처럼 쓰이는 세상을 향한 청년들의 혼잣말 같다. 


가끔 들르는 감자튀김 파는 호프집이 있다. 그곳 아르바이트생의 유니폼 문구는 이렇다. ‘손님이 짜다면 짠 거다’. 고객이 왕이다의 호들갑스러운 표현이겠지만 사람 사이에 ‘위계’를 설정한 그 억지가 거슬렸다. 그 말을 알바생들 스스로 선택했을 리도 없다. 무분별한 갑질을 승인하고 순치된 개인을 기르는 나쁜 말이다. 그에 비하면 ‘남의 집 귀한 자식’은 사람 사이를 ‘관계’로 접근한다. 우리는 먹는 자와 일하는 자로 잠시 결합한 사이. 종신 노예 부리듯 할 권리가 없다. 각기 다른 역할로 만난 대등한 동료 시민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한 존재를 겹으로 헤아려 살피는 좋은 말이다. 


존귀함의 자기선언. 셀프 인권수호의 시대. 문필하청업 중년 여성노동자인 나도 귀한 자식 선언의 전력이 있다. 어느 정례회의 시간, 의견을 개진하는 내게 한 동료가 여러 번 다그치듯 말했다. 거친 말투와 독한 눈빛이 몸을 찌르는 것 같았으니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모멸감은 이미 눈물로 새어나왔다. 나는 부들거리는 양손을 지그시 누르며 더듬더듬 입을 뗐다. “저 귀하게 자랐거든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얼핏 시트콤 대사 같기도 한 말, 귀한 자식 타령이 갑자기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존재 본연의 마음이 침해당하는 순간 재채기처럼 튀어나온 거 같다. 다행히 그 동료는 나쁜 사과에 꼭 들어간다는 ‘그럴 의도 없음’을 들먹이지 않았고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상황은 금세 수습이 되었다. 울음 사태까지 초래한 게 미안하고 무안하여 나도 맞절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짜를 진짜처럼 위장하는 것

가짜인데 진짜라고 믿는 것을 

더는 못 참겠어요

못 참는 저를 참아야 할까요

...

생(生)은 진짜이고 

활(活)은 가짜예요


- 윤병무 시 '생활' 부분



일-돈 중심의 세계에서 사람은 부풀어 풍선껌처럼 작았다 커지고 커졌다 꺼진다. 사람이 일을 하는데 일에다 사람을 우겨넣는 조직의 난폭한 생리가 두렵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는 나 포함 귀한 자식 일군이 가여워 참았던 눈물이 그 참에 솟구친 것도 같다. 존재의 항변. 나는 눈물로 구질구질하게 말하고 아이들은 배지로 데면데면하게 말한다. 이게 세대차이려나.


스무 살 청춘들 공연을 보며 나는 내가 일으킨 귀한 자식의 난이 떠올라 머쓱하다. 무대에서 키보드를 치는 저 아이도 방학 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 돌리면 제자리인 좁다란 점포에서 꼬박 열 시간을 서 있느라 종아리에 파스 두 장을 붙이고 잠들곤 했다. 귀한 자식이 낳은 귀한 자식이 겪었을 현실과의 격투, 제몫의 설움에 눈가가 시큰하다. 클럽에서 빠져나온 홍대 앞 거리. 일년 내내 성탄전야처럼 북적거리는 이 향락의 미로는 또 얼마나 많은 귀한 자식들의 노동으로 굴러가는가.



*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 블로그에만 아들 사진 특별 공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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