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좋았지> 과제 리뷰

[글쓰기의 최전선]

억압된 것은 외부에서 회귀한다. 그것을 억지로 보지 않으려고 하면,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하면, 외부에서 그것의 복수를 당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이치의 요점입니다. 일명 억압된 것의 귀환.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요. 살면서 불가피한 억압의 기제들. 일상적 삶에 괴물 같은 형식으로 돌출되기 이전에 몸소 시간 들여가면서 자기를 관찰하고 외부로 언어화하는 작업을 갖는 일은 소중한 것 같습니다.

학교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참 다른 듯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구나 생각했어요.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강제하는 폭력이 있고, 선생님이든 친구이든 나약한 인간이기에 저지르는지도 모르면서 저지르는 죄가 있고요. 그들은 알까요. 자신의 행동이 한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오래토록 멍울져 있음을요.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 주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상처 받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기도 하고. 그게 두려워 권력에 슬쩍 기대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생의 중심을 잡아가는 게 인생이고 그래서 인간은 슬픔으로 가득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첫 과제 '학교'편 잘 읽었고요. 몇 가지 당부. 1) 분량을 한 페이지 반 정도 (원고로 대략 15) 쓴다는 느낌으로 내용 있게 써주세요. 지난시간 배운 대로 2) 사실, 사례, 사유를 구체적으로 단문으로 녹여주시고요. 과제를 하기 전에 3) ‘내가 말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이것이다한 줄 문장으로 정리하고 시작하면 글쓰기가 더 수월하고 값질 겁니다. 과제에 관한 코멘트는 지적질 위주로 합니다. 소심해지지 마세요. 우리는 16주 동안 더 나은 글로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야하는 운명에 처했으니까요. ^^  

 

:: 학인들 과제리뷰

= 고등학교 생활을 개괄적으로 서술해주었네요. 선생님에게 야단 맞아본 적 없는 모범생이 동아리활동과 학업에 충실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고 연애 한 번 못해본 게 살짝 아쉽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글은 주제가 너무 크고 헐거워요. 이럴 때 글에 임팩트가 없고 글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고유성이 드러나지 않아요. ‘대한민국 한 모범생의 평범한 얘기가 아니라 ‘Tim'이라는 한 사람. 모범생의 인격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연애 욕망 같은 것, 혹은 혼자 갇혀서 공부할 때와 달리 사람을 많이 만나서 얻은 자극과 성장 스토리가 사례와 곁들여지면 더 좋습니다.

= 윤리선생님. 재밌는 단편 읽은 기분이에요. 좋은 글을 가늠하는 제 기준은 그 글을 읽고 나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가입니다. 글을 읽기 전이라면 윤리선생님을 욕정에 눈이 먼 변태 젊은 남자 교사 정도로 치부했겠지만 바다님 글에서는 태생적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하는 나약한 한 사람이 보일 듯 말 듯 해요. 바다님이 당사자로서 느낀 감정을 더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해주세요. 왜 진주에 동행했는지 당시의 심정, 절대적 권위의 상징처럼 보이는 선생님에게서 본 존재의 빈 틈, 그런 것들이요. 이 글은 서두를 산소 신에서 시작해도 좋습니다. 할머니 산소에 온 스승과 제자. 그리고 뒤에 학교에서 선생님의 인기 배경설명을 풀어 가면 더 흥미롭겠지요

= 야무지고 똑부러지는 여학생의 글. 글쓰기 수업하다보면 사람의 느낌과 글이 닮아서 신기한 적이 많은데 가은 씨 글이 그러네요. 그런 점에서 좋습니다. 신체에 내장된 고유의 리듬으로 글을 끌고 가는 힘이 있어요. ‘나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를 자라게도 했고 나를 멈추게도 했고 나를 더 작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문장은 자기 삶 전체를 굽어보아야 나오는 통찰이죠. 중간에 석차 묘사하는 학창시절 부분이 지루해요. 내용을 좀 줄이고 결론이랄 수 있는 부분, ‘나의 적당함이 (알고 보니) 나의 최선이었다에 비중을 늘여야합니다. 적당함이 학창시절 해방감을 주었다면 생의 어느 시점에서 더 치고 나아가지 못하는 족쇄처럼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을 구체적 사례와 덧붙여 풀어내면 좋겠네요 

= 글의 소재가 학창시절 전반에 걸쳐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글이 설명식으로 되고 산만해집니다. 책 읽기 좋아하는 소녀가 노동의 새벽이라는 이질적이지만 본능으로 직진해오는 어떤 글을 읽었을 때의 혼란과 수습 등에 관한 얘기로 주제를 좁혀서 그 일화를 통해 전체를 보여주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라는 시처럼 살고자 했을 때 지금 당장 그렇게 살려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에 관한 엄밀한 고찰이 뒤에 더 나오면 어떨까요? 각도기처럼 과거의 조그만 차이는 이후에 너무나 큰 차이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런 문장 좋네요.

= 70년대 학교 체벌, 가난과 소외를 겪는 아이에 관한 내용이네요. 주눅 들어 있었고 조용하고 말 없었고, 너무 빨리 공부도 포기했고, 해도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버렸고, 반항이나 저항할 힘이 없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좋은 주제인데 다소 지루하게 늘어집니다. 우리는 늘 어떤 사건보다는 사건 이후의 변화를 다루어야죠. 이 가난과 자기소외와 억압이 어떻게 나의 정서적 토대를 형성했는가, 그리고 여성단체 활동으로 이어졌는가가 더 밀도 있게 엮이면 좋겠어요. 앞에서 힘을 많이 뺐고, 자기연민이 설명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글에 전체적으로 가 많죠. 주어 반복을 조금 줄이세요. ‘선생님이 내 손바닥을 한 대 쳤을 때 나는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린 것 같았다.’ -> 선생님이 손바닥을 한 대 쳤을 때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너무 억울하였다.’ -> ‘너무 억울했다.’

=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고, 그 후 내가 지나온 삶은 이과에서 문과로 되돌아가는 여정이 되었다. 때로 순간의 선택은 인생을 거꾸로 가게도 한다.’ 이 부분 흥미로워서 이게 첫 문장이면 좋겠어요.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고 거꾸로 돌아가는 인생. 그리고 뒤에 아들이 붙어야지 딸이 붙었네.’ 등을 통해서 보여 지는 멍이 쉽게 드는 약한 아이의 삶에 학교와 가족과 제도가 가하는 억압과 부정적 영향 등이 더 시퍼렇게 드러나면 좋겠어요. 지금은 글이 감각적이고 운율이 시적이기도 한데, 쓸쓸하고 애잔한 정서만 느껴지고 주제의식이 명확히 드러나진 않습니다.

= 글을 쓸 때 독자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안 다고 생각해서 정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은 너무 많은 정보가 노출되어 그 안에서 길을 잃게 되는 경우네요. NLPD로 양분된 운동권의 대립에 기인한 적대적 분위기가, 자유롭고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어떻게 왜곡 좌절시키는가. 이것은 좋은 글감이고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도 있어요. 그런데 앞부분에서 복잡한 내용이 나오니까 지루하게 느껴져요. 경직되고 권위적인 운동권 문화에서 지내면서 자기도 모르게 무릎까지 꿇을 정도로 변해가는 모습. 그것은 단지 자기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한 사건이 아니라 자기-욕망에 대한 무지가 낳은 비극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이 또한 단편소설이네요. ‘2 때까지 학교는 내 집보다 편안한 곳이었다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보통 학교하면 억압과 강제가 자행되는 공식 감옥쯤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 안에서 한 모범생이 성적을 수단으로 자기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기를 펴고 안방처럼 편히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기 전에 실감하지 못했어요. 이런 사실을 그냥 나열했으면 와 닿지 않았고 거북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모범생의 입지와 혜택이 무너진 중3시절을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적절했습니다. ‘저 선생님이 아직 내 성적을 모르나?’ 이런 솔직한 독백이 글에 긴장을 불어넣네요. 상실감은 인간을 깨어있게 합니다.

=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드문드문 보여주셨네요. 마지막 두 줄, ‘내용물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살아있다는 방증이기에 과거를 추억한다는 일은 행복한 작업이 될 수 있다. 기억하고 추억함으로써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관찰하며 때로는 바로잡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은 더없이 훌륭한 도약의 파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이 결론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를 들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생의 한 시기를 추억하는 작업이 어떻게 행복감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경험담이 들어있었다면 이 글이 더 힘을 가졌을 것입니다.

= '학교란 평범한 사람을 양산하는 기관'이라는 통찰을 개인적 경험에서 이끌어내려 했다는 점에서 주제가 참 좋습니다. 가령 너무나 평범해서 학창시절 12년이 모두 한 모습인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학교 안에 있었을 12년이 몽땅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을 더 붙들고 나의 12년이 왜 어디로 갔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해주는 게 글쓰기 작업입니다. 봉히 씨의 자전적 기록만 잘 해내도 학교가 순치된 개인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엔 느낌에 살을 붙이는 노력을 해보세요. 형사처럼 사건과 단서도 찾아보고요. 간단 오타 수정. 세삼-> 새삼 

= 노는 데 훨씬 관심이 더 많았던 학생이 학교를 겨우 탈출하고 사범대생이 되었는데 학교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접고 방황하는 이야기네요. 재광 씨가 고딩 때 정말 노는 데 관심이 많았는지를 보여줬으면 글이 더 생생했을 텐데요. 선배라는 악마에 끌려 다니던 대학생활 처럼요. 이 글은 학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반론으로 설명적으로 흐르면서부터 긴장이 사라지고 진부해집니다. 제가 볼 때는 재광 씨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요즘 학교는 어떻다더라’ ‘대안학교는 이러지 않을까하는 식으로 타인의 말에 의존해서 내린 판단을 서술한 글이라 그런 거 같아요. 재광 씨가 살기도 전에 선판단 내린 게 아니라 직접 본 것, 느낀 것, 한 것 즉 살아낸 것을 글로 쓴다면 훨씬 더 좋을 거예. 안정된 문장력이 있으니까.

= 유년부터 최근까지 좌절된 민주주의의 경험담이군요.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네요. 고유의 글 호흡도 있고 특히 반장선거 신 재밌어요. 그런데 감정이 조금 더 자제되면 좋겠어요. 첫 문장. ‘얼마 전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곳에 면접을 보았다.’ 이것은 사실 쓰기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정보를 주세요. 얼마 전 어느 시민단체에 면접을 보았다. 평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곳이었다. 뭐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겪은 일들을 나열하면 판단은 독자가 하는 거죠.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곳이 뭐 이래.’ 이렇게요. 이걸 필자가 미리 선점해버리고 글을 시작하면 어떤 정서를 강요하는 꼴이 되어버려요. 민주적이라 말하는 것들에 대해 자질구례하게 당한 사례 속편 궁금합니다.

= 글 좋아요. 사실과 사례와 사유가 조화를 이루었네요. 서두에 김상훈이라는 인물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풀어갔고 결말에 김상훈으로 마무리한 것. 좋은 구성입니다. ‘찌질이가 되지 말자. 고등학교 3년 내내, 의식 밑에 숨은 과제였다는 것. ‘잘 나가는 친구를 둬서, 스스로를 찌질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학창시절을 살다는 고백. ‘나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친구를 사귀었다는 총체적 해석까지 수미일관하게 주제로 수렴하여, 타인에 의지한 자기존재 증명의 불안함이 아슬아슬하게 잘 나타납니다. 주현 씨가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지도 궁금하네요. 사실, 잘 나간다는 많은 사람들도 나는 누구랑 친하다는 것에 위안 받고 무리지어가면서 존재의 불안을 달래고 살아가잖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약한 인간의 무리본능일지도 모르겠고요. 생존을 위해 더 유리한 존재를 끌어들이기. 생각해볼만한 주제네요.

 = 교회에서의 나, 학교에서의 나. 거대한 조직이 만들어낸 두 개의 자아가 잘 드러난 글입니다. 정해진 본성이란 게 있을까. 사람은 어떤 배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어요. 적절한 사례 제시가 되어 글에 흡인력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스누피의 적극적 해석이 빠진 것이 아쉽습니다. 이런 일들을 경험하고 스누피가 내린 한 줌 사유, 그 이후의 변화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더 들여다보기 싫어서 회피하고 넘어가면 다음에 글 쓸 때 걸리는 부분에서 항상 또 걸리더라고요. 스누피는 글쓰기의 기본기를 갖추었으므로 글에 깊이를 부여하는 방식에 더 역점을 두어보세요.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독자도 몰입하지 않습니다.

= 예고편의 짧은 스케치네요. ‘주먹이 벌떼처럼 날아들었다.’ 흠씬 맞아 본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아팠겠어요. 이처럼 한 것 본 것 당한 것 느낀 것에 근거해서 꼭 완성시켜주세요. 12살 편이라도 ^^ 

= 화가가 쓴 글이라서 그런지 아련하고도 선연하게 시각화가 되네요. 수채화 같아요. ‘교실이 부서져라 떠들어도 되었고...’ ‘엄마의 인색한 호의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노란색으로 얼룩덜룩하게 염색된 마룻바닥은 탁하고 뻣뻣했다.’ 표현이 섬세하고. 마루 윤내기에 관한 일화를 담았지만 우리나라 학교라는 곳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인가, 한 개인에 대해 얼마나 무심한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날 아침 맞닥뜨린 노란 염색물의 시큼한 냄새와 축축한 노란 얼룩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아 시시때때로 못되게 굴었나.’ 어떻게 못되게 굴었는지 궁금해요.

= 딸기 한 팩 사고 바이킹 탄 것. 선생님한테 일러바친 것. 어린 시절 저지른 과오에 관한 고백이네요. 어른이 되어서 쓴 글인데 귀엽게 동화적으로 읽힙니다. 앞부분 학교생활 일화가 조금 늘어져요. 주제에 필요한 정보만 주는 것으로 조금 추려보고요. 맨 앞 단락과 똑같이 반복되는 부분은 빼거나 다른 표현 한 줄로 축약해주세요. 남자친구 두 명이 각기 다른 해석- 너의 잘못, 선생님의 잘못- 을 내린 점이 흥미롭습니다. 과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나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마지막 결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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