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 창경궁나들이 편

[글쓰기의 최전선]

1. 글 쓸 사람

예전에 방통대에 출강 나가는 분이 고민을 터놓았습니다. 학생들이 글을 들고 와서 봐달라고 하면 무어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글의 수준을 보면 별로 가능성이 없는데 계속 쓰라고 격려를 할 수도 없고 쓰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아무 말이나 해주세요. 뭐라고 말해도 쓸 사람은 쓰니까요.”

 

가망 없다는 말에 얼른 붓을 놓는다는 건, 쓰기 싫었는데 마땅한 이유가 필요했던 사람의 행동인지 모릅니다. 또한 칭찬에 들떠서 붓을 쥔다 한들 강력한 내적 요청이 없는데 무슨 힘으로 글을 짓겠습니까. 글은 의지의 선택이 아니고 몸의 산물입니다. 그러니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읽혀지지 않는 글은 쓰여지지 않는 글과 마찬가지이고요. 지금 이 순간 읽고 쓰는 동안, 우리는 독자이자 작가로서 존재하는 겁니다.

 

좋은 독자가 아니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오랜 정설이지요. 수업 전 손수건을 놓고 동료들의 글을 읽고 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동료의 긴 글을 낭독하는 별똥별2호님은 좋은 독자이기에 좋은 작가가 되리라 믿습니다. ‘다른 잎의 조락과는 다르게 늦가을의 화려한 빛깔을 보여줬던 그 나무처럼 말이죠.

 

 

2. 치욕, 부끄럽고 욕됨

부끄러움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등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욕을 느꼈다는 건 내가 나로 존재했다는 것. 세계 내 존재로서 나를 느낄 때만 인간은 타인을 인식합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그래서 고귀하지요. 세실, 다영, 은재가 털어놓은 이야기에서 하나의 완벽한 치욕을 보았습니다. 빈틈없는 치욕의 말들이 가슴을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억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지만, 평온했으면 끝내 보이지 않았을 그 세계가 지옥일까요. 한 번의 치욕으로 자신을 헤아리는 눈이 깊어지고 그만큼 타인을 보는 눈도 깊어진다면 다른 판단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몰락할 때마다 깊어지는 생을 생각합니다.

 

쌀밥의 치욕을 이야기한 사비와 노을, 배우는녀자. 치욕을 강요하는 조직에 무감각해지지 않을 수 있음, 치욕을 가하는 대상에게 계란을 던지는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하는 동안은 그래도 치욕의 소낙비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욕에 대처하는 법이 곧 살아가는 법이구나 느꼈습니다. 영혼을 내다팔고 쌀밥을 먹은 게 아니라, 귀한 쌀밥의 힘으로 치욕을 치러낸 게 아닐까요.

 

 

3. 고생 끝에 낙은 과연 오는가

벚꽃을 보면 우주히피의 고모가 생각날 거 같아요. 흩날리는 벚꽃처럼 자유하시길 바다에 이르시길, 저도 기도합니다. 글을 읽고 너무 속상해서 옆 사람에게 짜증을 다 냈습니다. 생의 불공정함에 화가 치밉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왜 저 말이 삶의 진리처럼 전승되어오는 걸까요. 그래야 사람들이 미래에 자신을 투사하고 지금의 자기를 인내하며 계속 삶을 혹사하겠지요. 힘없는 민중의 피땀으로 굴러가는 세상이 잘 유지되겠지요. 고진감래를 기다리며 한 평생 시난고난 살다가는 사람들. 입맛 없어 수박은 아니 먹고 끈끈한 수박물만 닦는 엄마가, 쓰레기 더미 뒤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분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먹고 사는 일은 본래 즐거운 생의 활동이어야지 왜 수치와 모욕이 당연해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해요. 사람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해지는 아픔이 있는 게 인생이지만, 저는 부당함에 저항하고 노동을 거부면서 빈둥거리는 한 시절에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쾌걸조로의 말대로 참 짓궂게 흘러가는 부모님 세대의 삶을 거울삼아 다울과 같은 삶을 시도해야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일지도 모르니까요.

 

 

4. 희미한 것들의 존재론

그냥 그 자리에 작게 피어있었으나 주변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기의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해야 했던, 희미하게 빛나던 소녀를, 결국 시들어버린 한 사람의 생을 기도의 단편소설에서 떠올렸습니다. 이성복의 시구대로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안개꽃 같은 존재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요. 순전히 흙의 힘에 의해 본성대로 피어나도록 돕는 게 아니라 화학비료 붓고 속성재배 경쟁을 시켜서 여린 영혼을 병들어버리게 하는 제도교육에 근원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상협은 학창시절 6년 동안 증오심을 배웠노라 말합니다. ‘한 명의 인간을 온전히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사랑한다는 말은...한 명의 인간을 온전히 증오한다면 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증오한다가 되기도 한다고요. ‘곰팡이 핀 뿌리를 가지고는 살아갈수는 없는 노릇. 희미하게 시들어가는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기억이 잠든 도서관으로 더 심연으로 들어가는 작업은 절실해 보입니다. 벤야민이 그러했듯, 우리의 구원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음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5. 데이트생활자의 봄날

내 좋은 사람과 걷고 글 읽고 생각 나누고 맛난 거 먹을 때가 제일 행복했고, 생의 에너지가 점점 그리로 쏠리면서 데이트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어느 날 부턴가 님도 보고 돈도 벌게 되었습니다. 자유기고가로 취재 나갈 때는 일한다기보다 일일데이트를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문필하청업자 주제에 데이트생활자로 스스로를 칭했듯이, 글쓰기수업을 하면서도 글쓰기 강사가 아니라 데이트생활자의 자세로 임합니다. 고궁나들이 가느라 머리카락 끄트머리 다 태우고 옷장 뒤지면서 잔뜩 멋 내는 제 꼴이 우습기는 했지만 짱 재밌었습니다. 고마워요. 꽃피는 오월에 같이 놀아줘서. 딱 한잔만 같이 마셔줘서. 같이 시 읽어줘서. 오랜만에 정통데이트 코스를 밟아 행복합니다. 멋진 사진으로 데이트를 기록해준 선미샘에게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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