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절망의 골수분자

[올드걸의시집]


나의 삼십대는 두 번 기록될 수 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풍파도 보람도 넘실넘실.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고통과 행복이 쌍둥이처럼 나란하던 시절, 비극버전을 쓴다면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제목만으로도 목차와 내용을 메울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여인의 종말> <우우, 널 버리고 싶어> <부질없는 물음>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억울함>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등등. 처연하고 당돌한 웅성거림. 그 말들의 꽃다발을 덥석 받아 안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이 있다.

결혼과 출산을 마치자 가족이 마구 늘어났다. 정서노동의 분량은 인간의 기준치를 초과했다. 혹처럼 내 삶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을 떼버리고 싶었다. 24시간 이인삼각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절뚝절뚝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먹고 자고 멍하니 있는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 그들이 제거되는 ‘사악한 꿈’을 꾸기도 했다. 본디 인간은 누구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 한사람 엄마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트랙이 깔렸고 스위치가 켜졌다. ‘나의 불모가 너희의 영원한 풍요가 되는’ 삶.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주문처럼 외던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움직이고 싶어
큰 걸음으로 걷고 싶어
뛰고 싶어
날고 싶어
깨고 싶어
부수고 싶어
울부짖고 싶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어
까무러쳤다 십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고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시’던 서른 중반 어느 날, 선배랑 여자의 고단한 삶을 주제로 수다를 떨면서 “이렇게 살다가 마흔에 내 모습이 어떻게 돼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선배가 말했다. “난 마흔은커녕 눈 떴다 감으면 70살이면 좋겠어.” 그녀는 알아버린 것일까. 십년 후에 깨어나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음을. 세월은 ‘길고 긴 함정’에 지나지 않음을 말이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왜 결혼은 했는지 ‘부질없는 물음’과 입씨름하면서 그렇게 ‘절망의 골수분자’가 되어가던 즈음 <올 여름의 인생공부>가 시작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해석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는 은혜로운 팁을 니체오빠에게 전수받았다. 사유의 근력이 자기배려의 기술이며, 남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게 더 신속한 자유와 해방의 길임을 깨달았다. 자기연민으로 주춤거리다가 자기초극의 스텝을 밟아보려 낑낑거렸다. 안 쓰던 근육을 쓰느라 탈골과 찰과상으로 비틀비틀. 덕분에 일상의 번다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너무도 자유로와 쓸쓸한 세상’ 생일조차도 <슬픈 기쁜 생일>일 수밖에 없던, 늘 슬픔이 앞서가던 ‘후즐근’한 그 시절. 승자언니 시집을 가슴팍에 올려놓고야 잠들던 나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삼십대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필모의 비극적 감수성 극뽁기이고, 세계와의 화해가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천생 시인 최승자처럼.

김현은 『말들의 풍경』에서 ‘최승자의 시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다’라고 썼다.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은 이성이나 절대자, 때로는 단순한 대상이나 바람 같다고 했다. 나는 다르게 읽힌다. 최승자의 시는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의 곡소리다. 사실,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가장 큰 자기애다. 그녀는 절대자나 한 남자의 사랑을 간구하는 신체 건강한 꽃청춘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있던 사랑은 이미 ‘몇 세기 전의 겨울’의 추억일 뿐. 시집 전체에 도저히 흐르는 자기부정의 언어는 ‘단다한 슬픔의 이빨’로 ‘갈라진 혀끝’으로 ‘컹컹’ 짓는다.

첫 시 <일찍이 나는>에서부터 스스로를 ‘마른 빵에 핀 곰팡이’이자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이며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로 소개했다.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선포한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에 갇힌 채 ‘슬픔의 독이 전신에 발효하기를 기다리’는 이 극단의 허무주의자가 그리는 <자화상>이란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되’는 ‘어둠의 자손’일 뿐이다. 밤이면 ‘감긴 철사줄 같은 잠에서 깨어나려 꿈틀거’린다.

아버지의 두 발바닥은 운명처럼 견고했다
나는 내 피의 튀어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

이것은 고급한 성장통이 아니다. 가혹한 운명이다. ‘자신이왜사는지도모르면서 육체는아침마다배고픈시계얼굴을하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일이 선천적으로 자연스럽게 영위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시대의 흐름과 어긋나면서도 세상과 보조를 맞추려 노력한다. 부단히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애쓰고 시쓴다.

왜 어느 별은 하얗게 웃으며 피어나고
왜 어느 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가
조용히 나는 묻고 싶었다.

그리고 ‘외로움을 장전’한 채 <네게로> 간다. 살기위해 매달린다.

흐르는 물처럼
네게로 가리.
물에 풀리는 알콜처럼
알콜에 엉키는 니코틴처럼
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
네게로 가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 균처럼
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한 없이 오래 죽고 싶’은 방식으로 영생을 기원하는 그녀. 하지만 시집의 마지막에는 <불안>을 예감한다. ‘죽음이 나를 겨누고 있다’ ‘쨍! 죽음이 나를 향해 발사한다’는 환청을 듣는다. ‘어둠의 아가리’에서 발버둥 치던 한 사람. ‘정신이 아프고 인생이 아프다’며 ‘문간에 나가 앉아’있던 ‘긴 슬픔의 몸뚱어리’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삼십대를 보내고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마흔>(『내 무덤, 푸르고』,1993)을 맞는다.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최승자는 1993년 ‘따뜻한 무덤’을 뚫고 나온 말들로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여전히 고독한 자의식에 붙들려 세계의 오염을 견뎌내(이광호)던 불혹의 시인은 결국 정신병원으로 망명한다. 2010년 ㅈ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최승자는 11년간 심신쇠약과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했다고 한다. 개량한복 입은 향기롭고 원숙한 중년이 아닌 환자복 걸친 ‘불 꺼진 신호등 같은’ 얼굴이 되었다. 죽음의 자리를 사수하면서 삶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던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조화와 안정으로 귀결되지 않는 비타협과 난국의 목소리 쟁쟁하다. 어떤 위안도 거짓낙관도 없다. 몸이 쪼그라들도록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 것이다.

‘꽃, 상처, 스물 넷’에 이미 시인은 선언했다.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겠다고. 현실을 부정하는 난폭한 파괴가 꿈꾸는 건강한 힘이라고. 그리고 쓴대로 살았다. 그 풀리지 않은 모순을 견디며 시로 하여금 말하게 했다. 그렇게 ‘쓸쓸해서 머나먼’ 나이 예순까지 흘러왔다. 이 병든 시대에 진짜로 병자가 되어 살아가는 한 시인이 있어 나는 놀랍고 아프고 반갑고 서럽다. 자기파멸로 자기생장을 이루는 화해불가능성의 생(生) 시(詩). 그것은 고착인가. 무능인가. 비정상인가. 불행인가. 건강함인가. 고귀함인가. ‘행복행복행복한 항복’인가…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법은 내게 ‘귀신처럼’ 다가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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