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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관계 / 고정희, 임태경 / 열애



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번째 회신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오래 못 살거다 천기를누설하고
배 한 척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왔다
갈대밭 둔덕에서
철없는 철새들이 교미를 즐기고
언덕 아래서는
잔치를 끝낸 들쥐떼들이
일렬횡대로 귀가할 무렵
노을을 타고 강을 건너온 그는
따뜻한 어깨와
강물 소리로 여자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쁜 탓으로
마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빼놓은 마음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 <앵무새의 혀> 김현 엮음, 문학과지성 신작 시집


'음악이 주사라면 시는 알약이고 철학은 한약이다.' 밤샘 음악여행을 마치고서 내린 내 나름의 정의다. 근 두어달 음악을 끊고 살았다. 하루에 한두시간은 유투브에 죽치고 앉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악을 클릭질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끊었었다. 음악 들으면 마음이 축구공처럼 이리저리 마구 굴러가기 때문에 자제했던 거다. 그러다가 니체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다시 플레이를 눌렀다. 피아노 영화음악에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듣고 건너건너 넬라 판타지아로 흘러갔는데 예전에 세음지기 때 좋아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임태경을 보았다. 극적 상봉. 애정부활. '열애'를 듣는데 마음이 토문강처럼 부풀더니 그의 깊은 눈망울 활활 타서 나는 재가 되어버리고 폭설에 발묶인 사람처럼 꼼짝 못했다. 듣고 또 듣고 아흔번 들었다. 고열에 시달리다 맞는 주사 한방이 그러하듯 음악이 살갗을 뚫고 혈관을 타는 느낌. 음악 들으면 소맥 섞어서 투샷 한 것마냥 가슴이 싸하다. 그러니까, 아무리 철학이 심오하고 시가 아름다워도 자연적 완전성은 음악이 최고봉이다. 세계를 빈틈없이 메워버린다. 음악은 정신의 공든탑을 한 번에 무너뜨린다. 나와 사물의 경계가 사라지는 비개체성의 경지로의 진입. 혹은 몰입.

벼랑에 앉아 흔들리며 음악을 듣고 시를 읽었다. 김현이 문지사 10주년 기념으로 편집한 시집 <앵무새의 혀>. 들꽃 꺾어 꽃다발 만드는 기분으로 이시인 시 저 시인 시로 시를 골라서 세미나를 갔다. 시집에 포함된 24명 시인 중에 고정희가 인기 짱. 다들 고정희의 순정한듯 무당기 넘치는 언어에 매료되어 '고정희'를 읽겠다고 책 끄트머리를 고이 접어왔다. 소영부터 수줍게 낭독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가슴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한준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쓴 시가 아닐까 사망설을 제기했다. 미숙은 고정희 생전 그 옛날 추억을 불러왔다. 시인과의 대화 뒷풀이 자리에서 고정희가 패티김의 초우를 애절하게 불렀는데 잊혀지지 않는다며 고정희는 짝사랑의 달인일 거라 짐작했다. '관계'를 낭독했다. 신화적이고 서정적인 사랑노래. 꾸밈없이 정념을 밀고나가는 유장한 시어들. 나는 가장 고정희다운 시로 꼽았다. 이십대 유민은 고정희가 너무 질척거리는 거 같다고 새침하게 말했다. 미숙의 반론. '갑이었구나. 그러니 을의 심정을 모르지..' 고정희가 짝사랑은 했어도 직접 매달린 건 아닐 거라고, 말못하는 그리움을 시로 쓴 거같다고 조심스레 말했고 나는 부연했다. 

모든 글은 타자체험이다. 황지우 시 제목대로 '나는 너다'의 기록이다. 노랫말이든 시든 주체와 대상간의 거리가 확보되기 전에 글은 쓸 수 없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다 표현하고 매달리고 해소하면 아흔아홉통 편지는 무슨 소재로 쓰겠나. 어떻게 저런 시가 나올까. '열애'도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라디오 피디였던 분의 체험을 노랫말로 쓴 거라더라. 애써 눌러놓은 사랑. 꽁꽁 동여맨 감정, 봉인된 응어리가 풀어져야 시가 되고 노래가 되거늘. 그런데도 소영은 아픈 사랑은 하기 싫다고 고통받고 파멸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살찌우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어느 책의 인용구를 들어 사랑관을 피력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약이 되는 관계를 꿈꾸는 청춘에게 나는 말했다. 그게 무슨 사랑이야, 세미나지~ 사랑이 좋기만 하면 사랑인가. 집착과 충동의 덩어리같은 괴물로 변해가는 징그러운 부분을 보기 전엔 사랑 아니다. 사랑의 극한에는 독이 있다. 파멸이 있고 몰락이 있다. 거기서 다시 삶을 재구성할 때만 사랑은 약이 된다고, 고드름 부딪는 사랑론을 폈다.

지난주 이성복 시인 부흥회에 이어서 고정희까지. 사랑에, 참 관심들 많다. 임태경이 열애를 부를 때도 객석을 비추어주는데 중년의 여성들 눈가가 촉촉해지는 장면이 여러번 잡혔다. 돈암시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같은 모습, 소녀스러운 표정이 애잔했다. 사람은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리워만 한다. 애틋한 일탈의 감정을 향유한다. 시세미나에서도 문충성의 시 '나의 중년'을 읽은 유민은, 엄마가 오로지 성당에만 몰두하셔서 안타깝다며 '하느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시구가 더 와닿았노라고, 자기도 나이들어 그리 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중년의 내적 망명지는 하느님인가. 젠장. 예수오빠 품으로 모여라 꿈동산이네...중년의 고드름처럼 얼어버린 감정선을 봄바람 같은 노래가 녹여버리나보다. 열애에 쏟아지는 열광의 박수가 그래서 슬프다. 지금의 막강한 자본적 질서와 제도, 욕망을 잠식당한 도덕체계에서라면 사랑은 없다. 일찍부터 비타협, 불화, 모순, 난국은 싫고 조화로운 안정을 희구하는 삶에 길들여진 청춘은 더 그렇겠지. 본디 노동에 지치면 모든 격렬한 갈망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음악적 시적 상상으로 교미를 즐기는 거겠지.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불꽃같은 사랑을 흥얼거리면서.